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92화 (92/153)

108-이시하라 카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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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22일 수요일.

이날 기온은 최대 섭씨 –9도까지 떨어지며, 한겨울의 날씨를 톡톡히 느낄 수 있는 맹렬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이미 체감온도는 –20도일 정도로 무척 추운 날씨였는데.

이날, 두툼하게 외투를 차려 입은 김태풍.

그는 일성SD신약 용인 연구소에서 일을 마친 뒤.

저녁 7시쯤, TPI홀딩스에 들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김의준 전무를 만나.

인수합병 진행 과정 외에도 신규 빌딩 구매 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역삼동, 그리고 영등포, 경기도 쪽에서는 분당 쪽 매물이 괜찮다는 겁니까?”

“네. 우선 경매 입찰을 통해, 저가 매입이 가능한 쪽은 영등포 매물과 분당 쪽 매물입니다. 다만 역삼동 쪽은 대형 매물 건이라 가격이 아주 비쌉니다.”

“그럼 역삼동 쪽 매물은, 가격이 대체 어떻습니까?”

“예상가 800억 원 규모. 물론 IMF 이전에는 건물 가치가 대략 4천억 원 이상이었습니다.”

“그럼 규모는요?”

“지상 23층, 지하 6층 규모입니다. 1991년도에 준공된 빌딩인데, 내부 리모델링 작업을 추후 하게 된다면 대략 100억 정도 추가 지출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꼬마 빌딩 정도가 아니라, 제법 큰 규모를 가진 빌딩 매물 건이었다.

사실, 이 무렵,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가진 꼬마 빌딩들에 대한 매입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이 당시, 20억 원대, 30억 원대 꼬마 빌딩들을 매입한 뒤.

그로부터 10년 뒤.

수백억 원대 차익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게 된다.

이른바 빌딩 투자 붐.

이게 이제 시작되는 시기가 활짝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태풍은 장기간 돈이 묶이는 단순 빌딩 투자보다는.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이 필요했다.

“음. 좋습니다. 그럼 역삼동 빌딩 매입을 한번 진행해 보시고, 추가 협상을 진행해서 가격을 좀 더 낮춰 보십시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주변 꼬마 빌딩들 중에 혹시 경매에 나온 건이 있으면, 추가 매입도 같이 진행하죠. 훗날 다른 목적으로, 그 빌딩들을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김의준 전무와의 1차 회의를 마친 뒤.

김태풍은 잠시 후, 직원이 가져온 초밥과 샐러드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고.

곧이어 김의준 전무와 2차 회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뉴욕 빌딩 건은 대체 뭡니까?”

“아, 김 박사님. 우선, 이쪽 설명은 박 과장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듯 김태풍이 관심을 보이자, 김의준 전무는 바로 몇몇 직원들을 호출했다.

현재 TPI 홀딩스의 일반 직원들 숫자는 고작 50명에 불과했지만.

대다수가 경력직 직원으로서, 각자 역량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연봉 역시 일성전자 연봉 수준을 넘어서.

국내 최고 은행급 연봉 수준에 맞춰 지급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른바 국내 최고연봉이다.

그리고 그런 수준에 맞춰서.

모두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IMF로 아주 복잡한 이 시대에 야근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태풍이 2차 회의를 하는 저녁 9시에도.

모든 임직원들은 누구도 퇴근하지 않고, 아주 정신없이 자신들의 일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재개된 2차 회의.

이때, 김태풍은 새로운 빌딩 매물 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김 박사님. 다시 말해서, 이 뉴욕 햄프리 빌딩은 지상 45층의 초호화, 초고층 빌딩입니다. 맨해튼 핵심 상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큰 장점이 되며, 또한 뉴욕 랜드마크 빌딩들 중에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아메리칸뱅크, 제너랄 모건, 안젤로IB 등의 기업 등이 입주해 있고, 이들 기업들의 잔여 임대 기간은 평균 10년 이상 남아 있어 임대수익도 아주 안정적입니다.”

홍콩에 위치한 대형투자 회사에 다녔던 김의준 전무.

그는 역시 세계적 안목이 넓었다.

마침 괜찮은 뉴욕 대형빌딩 매물 건이 나오자, 그는 바로 분석 작업에 들어갔고.

그는 지금 여러 측면을 보면서, 김태풍에게 투자 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경기가 아주 좋아서, 빌딩 가격 상승 요소를 크게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이 빌딩의 연간 기대 수익률은 투자금 대비 2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음. 그건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군요.”

“그리고 이 빌딩의 가장 중요한 매력들 중의 하나가, 즉, 미국 경제를 관통할 수 있는 핵심 요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수많은 회사들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는 데다가, 또한, 여기에 주목할 만한 점은 최상층, 45층에 위치하고 있는 세 개의 스위트룸인데….”

뜻밖의 말에 김태풍의 두 눈은 반짝거렸다.

“네? 스위트룸이라고 하시면?”

“하하. 이 부분이 좀 재밌습니다. 이 스위트룸은 매년 7백만 달러 수준의 돈을 받으며, 임대가 가능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빌딩을 매입하시게 되면, 향후 뉴욕 한복판, 가장 높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특히, 현재 스위트 룸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임차인과의 인맥 부분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현재 그 스위트룸의 거주자들은 누굽니까?”

“혹시 퀀텀 펀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네? 퀀텀 펀드? 아, 알긴 하죠.”

퀀텀 펀드.

워낙 유명하기에, 김태풍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엄청난 투자가들.

즉, 제임스 소로스와 데이빗 로저스.

그들이 설립한 세계적인 헤지펀드가 바로 퀀텀 펀드(Quantum Fund)가 아닌가.

“이곳 스위트룸의 거주자들은 퀀텀 펀드에서 이사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퀀텀 펀드의 일원이라는 사실 외에도 다른 부분들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하게 이어지는 설명들.

“먼저, 저희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이곳을 뉴욕 집으로 각각 쓰고 있는 사람들은 도날드 카츠와 아담스 애던버그, 이들 두 사람인데.”

여기서, 도날드 카츠라는 사람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로스차일드 은행의 CEO 겸 이태리 밀라노 은행의 총재라고 한다.

즉, 억만장자 은행가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아담스 애던버그.

그는 영국, 세인트 런던 캐피탈의 CEO로서, 역시 억만장자다.

다시 말해서,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각각 그 스위트룸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빌딩 가격은 현재 얼마쯤 됩니까?”

“사실, 이런 대형빌딩이 매물로 나오게 된 것은 꽤 의외인 상황인데. 그래서 이 빌딩을 노리는 곳이 의외로 좀 많습니다. 물론, 입찰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저희가 판단한 최소 매입 금액은 10억 달러입니다.”

10억 달러라고 한다면, 환율 기준으로 대략 1조2천억 원에 달한다.

이 인수 금액은 이미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다만, 이 빌딩의 채권들을 인수하는 조건이라, 최초 매입 금액은 6억 달러 선에 맞출 수도 있습니다.”

“음. 그럼 입찰 시기는 언제쯤 예상됩니까?”

“현재, 2000년 6월경 혹은 7월경으로 잡히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시간 여유는 충분히 있다.

그래서 김태풍은 좀 더 뉴욕 햄프리 빌딩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이 대형빌딩을 소유하게 된다면.

아마 자신은 단숨에 미국 억만장자들의 대열, 즉 미국 최상류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건 신출내기 동양인 사업가가 아니라.

단숨에 미국 주류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다면.

향후 더 큰 비즈니스를 펼칠 기회도 갖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빌딩 매입을 떠나서, 상징적인 의미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매입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본 뒤 결정하기로 했고.

대신에 곧이어.

그는 강길남 부장과도 투자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김 박사님.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출시된 투자상품들을 모두 정리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강길남 부장은 금 선물·옵션 상품들의 목록을 김태풍에게 보여줬는데.

그중에서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들은 따로 정리해 둔 상태다.

그러고 보면, 1994년 8월.

뉴욕상업거래소(NYMEX)는 뉴욕 귀금속거래소 코멕스(COMEX)와의 합병 작업을 거쳐,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로 거듭났는데.

현재, 이곳은 원유·휘발유 등 석유 관련 선물들 외에도.

금·은·동 등의 금속 선물들이 아주 원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특히, 한 번에 거액 투자금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상태다.

한편, 강길남 부장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김태풍의 표정을 유심히 주시하다가.

곧이어 다음 서류들도 넘겨주었는데.

“김 박사님. 여기에 더해서, 런던금속거래소 쪽에 나와 있는 투자상품들도 함께 정리해 봤습니다. 특히, 예측 금 시세를 온스당 250달러로 보고, 이 기준 하에 예상 수익 비율과 수익금을 따로 계산해 봤습니다. 그건 각 상품 옆에 표기해 뒀습니다.”

김태풍은 그 문건들을 집중해서 보며 검토하다가.

곧이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곧바로 투자지시를 시작했다.

“여기에 5천억 원을 집어넣죠.”

“네??”

이때, 아주 크게 놀라고 있는 강길남 부장.

“시장이 최근 위축되었지만, 이 시장에서, 이 정도 투자금은 흡수 가능한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너무 액수가 크지 않습니까?”

“우선, 선물옵션 투자가 거의 맥시멈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간, 물량이 나오는 족족 다 흡수하죠. 역시 목표는 하락장으로 보고, 최대 6개월 이내에 모두 털고 나오는 전략으로 가죠.”

“하지만, 금 시세가 만약 상승하게 되면, 그 피해가 엄청납니다.”

“흠. 뭐, 투자라는 것은 항상 하이 리스크일 때, 가장 큰 수익이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최저 하한, 온스당 250달러는 너무 낮습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봅니다.”

“네. 좋습니다. 그럼 최저선을 온스당 260달러 선으로 잡고, 한번 추진해보세요. 현재 온스당 320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온스당 260달러 목표치를 잡아도, 최대 60달러의 마진이 생깁니다.”

김태풍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뉴욕 거래소, 런던 거래소에 나와 있는 풋옵션들을 구매한다면, 결국 현재 상품들 기준으로, 최대 8배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최대 8배 이익.

과거 김태풍이 거둔 수익률과 비교한다면.

수익률 자체는 별로 크지 않다.

그러나 5천억 원대의 대규모 투자 때.

이런 수익률을 달성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초고액 투자라서.

투자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또한, 이런 투자금이 시장에 몰렸을 때, 시장 분위기가 크게 반전될 수도 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김 박사님의 결정대로 진행하겠지만, 시장 상황 변동에 대해서는 더욱 세심하게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듯 강길남 부장은 김태풍의 의견을 무조건 존중했고.

그래서 드디어 본격적인 금 투자가 시작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 여러 가지 회의들이 더 이어지게 되면서.

결국, 이날 밤.

밤 12시가 되어서야 성북동 자택으로 돌아온 김태풍.

그러나 그 뒤에도 2시간 정도, 더 일을 한 뒤.

그는 아주 늦게서야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어느덧 이틀 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는데.

이날 아침 일찍.

김태풍은 케이트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그녀와 함께 보낼 수가 없어 무척 아쉬운데.

그런 기분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 Danny, Don’t worry. 저는 할아버지 별장에서 보내기로 했는데, 부모님과 같이…. 그리고 또, 내년 초 새 영화 촬영도 계획되어 있어….

그렇듯 케이트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김태풍은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무척 마음이 들떴지만.

그래도 억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사실, 전문연구요원 신분이다 보니.

김태풍은 쉽게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

늘 합당한 사유를 제시한 뒤, 병무청 허가를 꼭 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녀와의 전화 통화를 끝낸 김태풍은 이제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한편, 오늘은 차량 차창 밖으로, 하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물론, 눈발을 보니, 눈이 땅에 수북이 쌓일 정도로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저렇듯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게 되자.

저절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5시 무렵.

이때, 김태풍은 정말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비서를 경유해서, 자신에게 넘어온 전화.

그런데 그 누군가는 ‘hi’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했고.

그리고 약간 일본인 액센트가 강한 영어로 말을 했는데.

그리고 그 영어를 듣자마자.

순간,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맙소사! 설마, 닥터 카스미?”

그는 그렇게 놀라고 말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한층 센티해지는 크리스마스이브.

이날 오후 늦게.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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