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인공면역시스템
<33> 국가적 보호 대상
1999년 11월 15일 월요일 아침.
북유럽권에 해당되는 덴마크는 일 년의 절반에 해당되는, 즉 11월부터 4월까지가 겨울인데.
그래서 어느덧 초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이날, 오전 10시.
김태풍은 코니 교수를 대신하여.
이번 덴마크 국제학회 기조 발표자(plenary speaker)로서 연단에 서게 되었다.
특히 오늘 학회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내 벨라 센타(Bella Center)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거대한 컨퍼런스 센타로써.
이곳 대형 회의장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각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편, 김태풍은 이렇듯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잠시 후, 기조 발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사실, 이런 학회의 참석 인원 대다수는 이쪽 분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대학교수들, 다양한 국책연구소 연구원들, 기업 연구원 등의 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김태풍은 이번 발표에서.
학생들조차 이해하기 쉬운 기본 배경과 컨셉 설명부터 시작해서.
아주 복잡한 화학구조 디자인 방법들과 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연구결과들을 차례로 발표했는데.
이때 김태풍은 자신의 발표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발표를 진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진단 영역 분야.
특히, 이쪽 진단 부분 쪽은 바로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서 지난 6월 말경에 출시한 퓨어 센서 시리즈와 관련된 내용들을 발표하게 된 것인데.
특히, 자신이 합성한 핵심 물질들을 매개로 응용된 질병 진단 방법들과 그 연구결과들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러고 보면 현재 북미권을 넘어서, 유럽에서까지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퓨어 센서 시리즈.
이런 관심 덕분인지.
좌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아주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미국, 유럽, 아시아권에서 각 나라별로 70세에서부터 80세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특히,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하는 사람의 욕망! 이것은 정말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가장 원초적이기에 가장 순수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발표.
“그런데 문제는, 이 욕망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좀 더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의식들이… 결국, 과학적 발전 과정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김태풍은 무척 여유롭게 발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수많은 청중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고.
또한, 자신에게 큰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김태풍은 자신의 연구결과 발표를 통해서.
그들에게 단순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편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자신의 가져온 연구 철학들을.
이 발표 과정 중간중간에 드러내기도 했는데.
물론 그럼에도 이번 발표의 핵심은.
어떤 식의 논리적 전개를 통해서,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세상에 도출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식의 사고 전환을 통해서, 아이디어들을 혁신적으로 다듬어나갈 수 있는지.
그런 실행적인 부분에 더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 연구 요소요소 하나하나를.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 또한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desire)들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좀 더 섬세하게.
또한, 그러면서도 좀 더 원론적인 욕망 현안에 접근하며.
좀 더 색다른 과학적 방법론들을, 그는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혁신적인 휴대용 진단 장치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치료 영역 연구에 대해서도 좀 더 과감하게 뛰어 들어야 할 때입니다. 이미 수많은 스몰 몰리컬(small molecule, 일반적인 저분자량 합성 약물)들이 세상에 나왔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질병 치료율은 고대, 중세, 근대와 비교해도,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고는 김태풍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약물들이 가진 수많은 부작용들은 새로운 근심거리가 되어가고 있고, 또한 새로운 질병 발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 김태풍은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좀 더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사용에 대한 욕구! 그러면서도 뛰어난 효능을 가진 신약의 개발. 이건 어쩔 수 없이 신약 개발자들의 아주 무거운 책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발표 영역으로, 치료 분야를 제시하겠습니다. 특히, 최근 파이자(Pizar)에 기술이전이 된 새로운 당뇨병 치료 신약, MTD-2000375의 개발 배경과 화학구조, 그리고 약리 기전 등의 연구결과들을 먼저 발표하고. 곧이어, 최근 한국에서 진행한 임상 1상 및 임상 2상 시험 결과들에 대해서도 발표하겠습니다. 특히, 이 임상시험 과정에서, 약물 복용 환자들의 관점에서, 좀 더 원초적으로 이 약물의 효능과 가능성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분 남짓한 빠른 설명들이 이어졌는데.
특히, 꾸준한 반복 투여가 필요해서, 종래에 무척 고통스러운 방식인 정맥 주사, 피하 주사 형태.
이런 투여 방식을 탈피해 버린.
MTD-2000375 신약은 그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상당히 컸다.
즉, 이 신약은 순수한 경구 복용 방식으로 약물 복용이 가능했는데.
그래서 실제 임상 2상 참여 환자들의 웃는 사진 모습들과 환자들이 각자 제출한 각종 코멘트들은, 청중들이 보기에도 무척 인상적인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인간을, 아니 환자들을 직접 바라보면서… 즉, 그들에게 맞춘 신약 개발을 해야 할 순간이 도래했음을, 반드시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 김태풍의 이 말은 무척 의미심장했다.
그래서 청중들은 더욱더 그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체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하며, 또 무엇을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 시점에서는 모두가 무척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마지막 발표 영역. 이것은 바로 예방 영역에 관한 것입니다.”
진단 영역, 치료 영역 발표에 이어서.
이제 예방 영역 발표를 시작하고 있는 김태풍.
“즉, 이 예방 영역 발표 파트에서는… 실험 결과들 외에도, 몇 가지 순수 아이디어들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그러고는 김태풍은 무려 50분이나 되는 긴 기조 발표시간 중, 마지막 10분 정도를 예방 영역과 관련된 발표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저는, 이 예방 영역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아이디어 도출 차원에서,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이라는 학문적 분야를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어떤 식으로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도출될 수 있는지.
그 방법들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생체모방공학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즉, 살아있는 생물의 구조, 형태, 생리학적 특성 등을, 특정 목적을 위해 모방하는 형태인데.
이것은 ‘생체(bio)’와 '모방(mimetics)'이라는 것의 융합적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런 개념들은 역사적으로 봐도, 또한 우리 주변에서 봐도.
현실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인데.
예를 들어.
새의 날개에서 모방된 비행기의 외형.
육식동물의 발톱에서 모방된 칼과 화살촉.
육각형 벌집을 모방한 골판지 구조.
인체구조를 모방한 에펠탑 구조.
이런 형태의 발명품들을 보게 되면.
결국, 우리가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고, 또 그것들을 우리 실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런 과학적 모방은 지금껏 기술의 진보, 새로운 기술의 도래, 기술 혁신의 패러다임 등을 세상에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김태풍은 잠깐 그런 이야기들을 이어나간 뒤.
이제 자신의 직접적인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에볼라 바이러스, 마버그 바이러스. 이런 바이러스들은 마치 실처럼 길쭉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좌우를 살피며, 또 여유를 보이고 있는 김태풍.
“그런데 이 바이러스들은 체내 면역시스템들을 철저하게 교란하면서, 아주 높은 치사율(20~90%)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악랄한 바이러스들입니다. 특히, 이런 바이러스들은 일반적인 바이러스 모양과 다르게, 마치 실처럼 긴 모양을 가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외형적인 특이성 때문인지… 실제 면역시스템들은 이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근래에 아직 치료방법이 나와 있지 않은.
즉, 사람한테 무척 해로운 바이러스들에 대해서 언급한 뒤.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좀 더 순수하게 사고적 전환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즉, 단순한 관점의 차이로써, 또한 생각의 차이로써, 우리는 이런 악마적인 바이러스를, 우리의 예방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지금 김태풍은 팩트를 보되, 사고의 전환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즉, 제가 여기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이런 해로운 바이러스에서 해로운 유전자 부분만 모두 제거하고. 대신에 이런 실 모양의 바이러스 껍질 부분만 우리가 이용한다면, 새로운 인공면역시스템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김태풍은 좀 더 설명을 했다.
“즉, 여기에 미세 질병 진단 탐침 장치를 달 수도 있을 거고. 또한, 다양한 약물들을 여기에 탑재할 수만 있다면, 기존 면역 체계의 방해 없이, 아주 오랫동안 혈관을 돌아다니면서, 질병 예방과 치료 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또 다른 예도 제시했다.
“혹시 에이즈 바이러스! 네. 아마,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아실 겁니다.”
그렇게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 뒤.
곧이어 그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 정보에서 뽑아낸 TAT 펩타이드에 대해서 우선 설명했다.
특히,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 TAT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주 놀라운 세포 침투 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래서 이런 자유로운 세포 침투 능력 덕분에.
에이즈 바이러스는 강력한 후천성 면역결핍 효과를 발휘하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 큰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TAT 펩타이드 부분만 뽑아내서, 이것을 약물에 결합시킨다면.
다시 말해서, 이런 약물의 경우.
아주 뛰어난 세포 작용성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약물은 약효를 발휘하기 위해서.
세포에 잘 흡수되거나.
혹은 세포막과 잘 결합해서 특정 시그널을 세포에 줄 필요가 있는데.
이런 약리 기전을 발휘하는 데 있어.
TAT 펩타이드는 아주 큰 상승효과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인공면역시스템 역시 악랄한 바이러스의 형태를 모방하되, 이런 형태를 좀 더 현명하게 개량한다면, 질병 예방 효과 외에도, 특히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암세포들, 즉 암 전이(metastasis) 현상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데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웃으며, 다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런 형태의 의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한 과학적 진보와 아주 많은 과학적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현 단계에서, 저희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여러 실험 결과들에 대해서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마지막 10분이 지나가 버렸는데.
그렇게 그의 긴 발표가 끝나게 되자.
이때부터 긴 행렬의 질문자들이 질문 마이크 뒤로 줄을 섰고.
쉴 새 없이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모두가 김태풍에게 현명한 답을 구하는 모습들이었고.
코니 교수 역시 환하게 웃으며, 김태풍에게 이것저것 질문들을 던지기도 했다.
특히, 이날 기조 발표가 끝난 뒤, 쏟아지게 된 수많은 질문들.
그 때문에 무려 30분이나 시간이 더 지체되었지만.
학회 조직위원회에서는 다음 발표시간을 조정까지 하면서.
충분한 질의응답이 될 수 있도록 김태풍과 질문자들을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조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끝나게 되자.
김태풍은 거의 진이 빠질 지경으로 연단에서 내려왔는데.
그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코니 교수.
그는 크게 팔을 벌리면서, 김태풍을 힘껏 포옹해줬다.
젊은 천재 과학자의 시대를 앞선.
아주 놀라운 발표.
지금 코니 교수는 모든 학자를 대표해서, 김태풍에게 큰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브라보! 브라보! 하하하. 역시 정말 대단한 발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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