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남
<31> 케이트 코니
“그럼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입니까?”
“아마 2주 정도. LA에서 이것저것 일들을 마치고 나면, 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날아갈 예정입니다. 거기서 국제학회 일정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아마 그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그렇게 알고서, 저택 보안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좋은 여행 되십시오!”
성북동 자택.
김태풍은 백옥의 거대한 건물 현관에서 걸어 나왔고, 이때 집 관리를 하고 있는 업체 직원들과 그렇듯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5월 말경, 이 저택을 구입한 뒤, 거실 등의 인테리어 외주 공사를 맡겼던 김태풍.
그 인테리어 작업이 끝난 뒤, 이 자택으로 입주했는데.
사실상, 아주 넓은 집에 혼자 살게 되다 보니.
김태풍은 단순 저택 관리인보다는 저택 전문 관리 업체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그 업체에게 모든 일들을 맡기게 되었다.
정원 관리, 집 청소, 보안 관리, 간단한 가사 도우미 업무까지.
이런 일들을 모두 맡기게 된 셈인데.
그래서 이 집에 파견 나온 업체 인원만 하더라도, 대략 십여 명에 이를 정도다.
실제로 워낙 넓은 저택이다 보니, 이런 저택 관리 비용은 절대 만만치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듯 전체 관리를 맡기고 나니.
김태풍은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고.
특히, 이렇게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될 때는 보안 문제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져, 심리적으로도 더 편안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럼 2주 후에 뵙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렇듯 집 관리인들과 인사를 마친 뒤.
김태풍은 이제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벤츠 차량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신약 개발 기업 메드TX가 일성SD신약과 합병하면서.
자연스레 일성SD신약으로 회사 소속이 바뀌게 된 김태풍.
그래서 일전에 일성SD신약으로부터 지원받았던 벤츠 차량과 차량 운전사.
이 지원들을 다시 받게 되었고.
그리고 그 덕분에 김태풍은 좀 더 편안하게 대외활동을 하게 된 상태였다.
“그럼 소장님. 김포공항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김태풍의 여행 가방을 받아서 트렁크에 실은 운전사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그렇게 물었고.
김태풍은 바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운전하셔도 됩니다.”
“참, 비행기 시각이 오후 4시라고 하셨죠?”
“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잠시 후, 대로를 나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는 벤츠 차량.
그러고 보면, 오늘 날씨는 크게 춥지 않았으나 약간 쌀쌀한 정도다.
낮 최고 기온은 섭씨 17도 정도.
그러나 나중에 해가 저물면 섭씨 8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소장님. 좀 답답하시지 않게, 선루프를 좀 열어드릴까요?”
운전 중, 중간에 그렇게 묻고 있는 운전사.
이때, 김태풍은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대답했다.
“네. 좋죠.”
그리고 곧 드러난 청명한 하늘의 모습.
약간 구름이 있긴 하지만, 하늘이 아주 파랗고 맑다.
무척 좋은 날씨가 아닌가.
그런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참 달린 끝에 마침내 김태풍은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99년 11월 7일 일요일 오후.
이날, 김태풍은 김포공항 내 항공사 부스에서 항공권 티켓팅부터 먼저 끝냈고.
이후, 보안검색대를 지나, 곧바로 출국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곧장 그는 탑승 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는데.
그 와중에 슬쩍 손목시계를 보니, 앞으로 대략 1시간쯤 남은 상태다.
그래서 주변 행인들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좀 더 느긋하게 걸어가던 김태풍.
그런데 그때, 그는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한쪽 대기 좌석 쪽을 쳐다봤다.
뜻밖에도 아주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을 여기서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저들은 저번 제약산업개혁위원회 회의 때 만났던 사람들이 아닌가.
특히,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사람.
그는 한 달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미국 대학교수 출신의 경제 전문가 윤광진 박사다.
그리고 한 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서 사임한 강순도 전 실장도 김태풍은 바로 알아봤는데.
이 외에도, 이들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행정관 중에 여럿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도 안면이 있다 보니, 김태풍은 그들의 존재를 바로 알아보게 되었고.
그래서 곧바로 아는 척을 하게 되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
김태풍이 다가와 갑자기 인사를 하자, 흠칫 놀라며 쳐다보는 그들.
그리고 이내 윤광진 수석과 강순도 전 실장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태풍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하하. 이거, 김 소장님이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두툼한 안경에 여전히 눈이 부리부리한 강순도 전 실장.
그가 그렇게 묻자, 김태풍은 바로 대답했다.
“미국 출장 때문에 나왔습니다.”
“아, 출장? 하하. 그러셨군요.”
“그럼 두 분께서는?”
“저희들이야 뭐. 하하하, 갑자기 일이 좀 생겼습니다. 윤 수석님과 함께 워싱턴에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공무 목적의 해외출장인 것이다.
“웬걸, 저는 저 푸른 기와집(청와대)에서 잘린 뒤, 이제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윤광진 수석도 미소를 지으며 김태풍에게 입을 열었다.
“하하. 김 소장님. 다시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참! 그때 회의 때, 이 이야기를 못 했는데, 혹시 저랑 언제 식사라도 같이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딱딱한 회의장에서 제약산업 구조 개혁 논의만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똑똑하신 김 소장님과 함께, 국가 경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하하하. 요즘 VIP께서도 김 소장님을 아주 주목하고 계십니다. 사실, 김 소장님 덕분에, 국내 외국 자본 진입이 더 활발해진 게 아닙니까?”
“네? 아! 아닙니다. 제가 뭐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큰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요즘 일성SD신약 주식을 사려고,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난 거 아닙니까? 이런 흐름은 결국, 코스피 전체로 불붙듯이 옮겨왔습니다. 그 결과, 투자 시장 전체가 아주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윤광진 수석은 김태풍에게 무척 큰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죠. IMF 때문에 그간 움츠려 있었던 기업들도, 김 소장님 덕분에 기술 가치 중요성을 더욱더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간 중단했던 R&D 투자를 다시 크게 늘리고 있고, 또 외형 확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뭐, 이런 흐름이라면, 하하하! 우리나라 IMF 조기 종식도 이제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면서, 잠깐의 인사 시간이 좀 더 길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러나 어느덧 비행기 탑승 때문에 헤어질 시각이 되자.
그들은 밝게 웃으며 서로 악수했고.
또한,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십시오. 김 소장님.”
“네. 윤 수석님, 강 실장님.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김태풍은 좀 더 게이트 안쪽으로 걸어갔고.
드디어 자신이 탑승할 탑승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김태풍은 약간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서, 주변을 이리저리 쳐다봤는데.
왜냐하면, 조금 전 만남 때문에 다소 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네.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을 이런 데서 보게 되고.’
물론 자신이 정부 위원회에 들어가, 그들과 안면이 생기다 보니.
그들을 좀 더 쉽게 알아보게 된 것이지만.
그러고 보면, 일반인들은 자신의 주변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 국정원 요원들도 그러고 보면 사방에 널려 있을 텐데. 마치 동네 아저씨들처럼, 회사원들처럼, 대학생들처럼 하고서, 여기저길 돌아다닐 텐데.’
거기다가 국내에 쫙 깔려 있는 미국 CIA 요원들까지 생각한다면.
세상 모습은 더욱더 복잡해질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되겠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청와대 수석이 직접 움직이는 거니까, 요 근처 국정원 요원들이 진짜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던 김태풍.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비행기 탑승 순서에 따라, 가장 먼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의 이번 비행기 좌석은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서 제공해 준 퍼스트클래스 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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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손님. 식사 전, 와인을 드시겠습니까?”
편안한 퍼스트클래스 좌석에 앉아서.
비행시간 내내.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던 김태풍.
그 질문을 받고서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때, 김태풍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자세를 미리 낮춘 아리따운 스튜어디스.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묻고 있었다.
역시 국적기의 스튜어디스답게 무척 아름다운 용모다.
이목구비가 곱상하고, 또 입가의 미소가 아주 시원시원한 모습.
그리고 그런 미소를 보게 되자, 김태풍의 표정도 자연스레 밝아질 수밖에 없다.
“네. 한 잔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스튜어디스.
그런데 그 와중에 그녀는 무슨 일인지도 몰라도 슬쩍 곁눈질하면서.
김태풍의 노트북을 한번 쳐다본 뒤 지나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김태풍의 노트북 화면.
거기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실험 데이터들이 가득했고, 또한 짤막짤막한 영어 문구들이 여기저기에 적혀 있다.
즉, 김태풍은 다음 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게 되는 국제학회, 그곳에서 발표할 발표자료들을 손보고 있는 중인 것이다.
- 어때? 저 손님?
- 음. 잘 모르겠어. 그냥 부잣집 아들은 아닌 것 같은데? 영어 ppt를 만들고 있는 걸 보면.
- 그럼 혹시 학회 발표? 아니면 해외 비즈니스?
- 음. 근데, 단순 학회 발표 쪽은, 이 좌석과 좀 안 어울리지 않아?
- 음. 그건 모르지. 암튼 괜찮은 사람 같은데?
- 그치만 저 정도 클래스 옷에 저 외모라면, 애인이 있지 않겠어?
- 음. 하긴, 그렇겠지?
차단된 한쪽 승무원 공간.
다른 승객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던 두 아리따운 스튜어디스들.
그러나 그런 대화도 잠시.
이내 모른 척하며.
그녀들은 그곳에서 나왔고, 곧 서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시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느덧 장거리 비행이 끝이 났고.
비행기는 드디어 미국 LA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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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벌써 LA에 도착했구나. 시간 한번 잘 가네. 근데, 케이트가 정말 마중 나왔을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호기심이 잔뜩 커진 김태풍.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그는 baggage claim에서 짐을 찾았고.
그리고 곧장 도착 터미널 쪽으로 나왔는데.
이때,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김태풍의 두 눈은 한없이 커지고 있었다.
도착 여행객들을 반겨주고 있는 열린 통로.
그리고 그곳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한 늘씬한 금발 머리 아가씨를 발견했는데.
그녀는 보디가드들 틈에 있다가, 순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 입가에 미소가 한없이 만발해지게 되는 김태풍.
비록 큰 선글라스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김태풍은 상대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녀는 바로 케이트 코니다.
“헤이! 대니!”
이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는 그녀.
아름다운 케이트 코니,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헬로우(hello)나 하이(hi)라는 말을 쓰지 않고.
‘헤이(hey)'라고 인사하며.
김태풍에게 더욱더 친밀감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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