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83화 (83/153)

99-솔로먼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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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데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HK투자파트너스가 해외 투자사라는 점은 물론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구태여 저희가 HK투자파트너스를 인수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더 괜찮은 회사들을 물색한다면 더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어느덧 회의가 끝난 뒤.

잠깐 티타임을 가질 때.

강길남 부장은 그렇듯 조심스럽게 김태풍에게 묻고 있었다.

그런 강길남 부장의 모습에 입가에 여린 미소를 보이던 김태풍.

잠시 후, 그는 대답했다.

“근데 생각보다, 그쪽 직원들 투자 능력이 대단합니다. 뭐, 오너 집안 쪽은 엉망진창이지만. 중견 투자사치고는 그쪽 실적이 아주 좋습니다.”

김태풍의 그런 대답에 바로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강길남.

“우선… 최근에, 영국 선물옵션시장 쪽에 230억 원을 투자한 게 있는 게, 그 5배가 넘는 평가 차익을 거둔 적도 있습니다. 특히, 그 회사는 파생상품 쪽 수익률이 아주 대단합니다. 최근 3년 치 회사 분석 자료들을 보면, 파생상품 쪽 연평균 수익률이 350%를 넘어섰습니다.”

연평균 350% 수익률.

이 정도 수치라면, 일반 투자사들 쪽에서도 거의 달성하기 힘든, 아주 믿기 힘든 수치였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선물옵션 관련 수치 통계 분석 쪽에 아주 능한 친구들이 그 회사에 다수 재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트래들(straddle) 분석, 스트립(strip) 분석, 스트랩(strap) 분석 외에도 이항 모델 활용, 근사치추정법 등등, 각종 선물옵션 분석 툴(tool)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조직을 흡수할 수 있다면, 향후 TPI홀딩스의 투자 부분이 더욱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그건 그렇지만, 뭐, 그래도…. 아, 사실, 이건 그냥 제 생각입니다. 사실, 김 박사님의 투자 실적이 그들보다도 더 월등하지 않습니까?”

강길남 부장의 그 말에 김태풍은 이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실소하고 말았는데.

사실, 명목상 TPI홀딩스 소속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김태풍의 투자 대리인이 된 강길남 부장.

그래서 김태풍의 이전 투자 내역들도 어느 정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태풍의 투자 수익률은 HK투자파트너스 투자 전문가들조차도 감히 명함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그런 그가 왜 투자전문 조직이 필요한지.

강길남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음. HK투자파트너스를 통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투자 일을 병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수치 분석 자료들을 제가 얻을 수 있으면, 아마 제 투자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좀 더 복잡한 투자들을 조직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답을 한 뒤, 김태풍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강 부장님!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 풋옵션 보험상품 조사 건! 그건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태풍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게 되자.

강길남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서.

현재 풋 옵션 관련 진행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흔히 풋옵션’이라는 것은, 선물시장에서 발생된 파생상품으로 콜옵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즉, 콜옵션은 특정상품을 미래에 일정 가격으로 살(call)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하며.

풋옵션은 특정상품을 미래에 일정 가격으로 팔(put)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말하면, 선물시장에서 쌀 한 포대를 10달러에 팔 수 있는 권한(풋옵션)을 샀다면.

나중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풋옵션 소유자는 원래 계약했던 가격(10달러)에 쌀 한 포대를 팔 수 있게 된다.

이런 논리로 전개가 된다면, 만약 미래에 쌀 한 포대의 가격이 1달러로 하락하게 된다면.

풋옵션 소유자는 미래 시세인 1달러 비용으로 쌀 한 포대를 산 뒤, 그걸 10달러(원래 계약가)에 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생기게 되는 9달러의 차익.

다시 말해서, 시장 상황이 악화가 되면.

큰 이익을 보게 되는 구조가 바로 풋옵션 상품 쪽인 것이다.

“음.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미국 월스트릿 쪽 여러 투자은행들과 우선적으로 접촉을 해봤습니다. 몇몇 투자은행들은 이미 개설된 보험상품들이 있다고 했고, 다른 투자은행들은 추가로 새 상품 개발도 가능하다는 연락을 줬습니다. 다만, 3년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풋옵션 보험상품 쪽은 수익 비율을 크게 잡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말인즉, 1996년도 연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그린스펀 의장은 현 미국증시 상황에 대해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미국증시의 대몰락을 경고했는데.

그때 했던 그의 말을, 미국 월스트릿 투자은행들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이 나왔던 1996년도 당시.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연중 최고치인 6,400선을 기록했는데.

놀랍게도 이런 다우존스 지수는 그 뒤에도 꺼지지 않고, 더 폭발적으로 성장해 버렸다.

다시 말해서, 올해 초, 역사적인 10,000포인트를 돌파했으며.

또한, 올 5월에는 11,000포인트 돌파까지 해냈던 것이다.

이런 대단한 증시 활황 분위기.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 그 어떤 누구도, 미국증시 몰락을 예상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월스트릿 투자은행들.

그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스닥 지수 상품으로만 한정했을 때, 제가 어떤 류의 보험상품들을 살 수 있다고 합니까?”

“음. 먼저, 모건스탠리 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모건스탠리는 2년 기한으로 하되, 나스닥 종가 지수 기준으로 해서, 지수 20% 하락시 대략 2배, 지수 30% 하락시 대략 3배, 지수 50% 하락시 원금포함 20배의 보상금이 발생하는, 그런 보험상품 판매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으음. 그럼 다른 쪽은요?”

“솔로먼 브라더스 쪽도 알아봤는데… 거긴 초반 수익률이 모건스탠리 상품보다도 더 낮은 편입니다. 즉, 지수 15% 하락시 대략 1.5배, 지수 30% 하락시 2배, 그러나 나스닥 지수 2,000선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그땐 원금포함 최대 50배의 보상금이 발생하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네. 골드만삭스 쪽은 지수 10% 하락시 대략 1.5배, 지수 20% 하락시 대략 2배, 지수 30% 하락시 대략 3배. 이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 외 몇 가지 투자상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더 했지만.

김태풍은 솔직히 솔로먼 브라더스의 보험상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음. 그렇다면, 솔로먼 브라더스의 보험상품에서, 저희가 원금을 잃게 되는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즉, 약정 날짜 기준으로 책정이 됩니다. 향후 지수 상승시 무조건 원금은 손실되고, 혹은 지수변동 폭이 -5% 이내일 경우에도 원금의 절반은 손실됩니다.”

“음. 원금보장 조건이 최악이군요. 그럼 2년 약정 범위 내에서, 언제든 보험금 청구는 가능한 겁니까?”

“네. 보험금 지급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지수 하락이 발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언제든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한번 청구가 되고 나면, 추가 청구는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보험상품들은 아무리 봐도 조건이 최악이었다.

누가 봐도, 상품 판매사 측만 유리한 조건.

특히, 심리적 최저한계선이라고 하는 나스닥 지수 2,000선.

아마 이 시점에서 미국증시 전문가 100명 중 100명에게 물어봐도, 단 한 명도 나스닥 지수 2,000선 붕괴를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아주 박하고 힘든 조건이 설정되어 있어서.

구매자 입장에서는 이런 보험상품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뭐, 그래서 제 생각이지만, 다른 투자은행들 상품 역시, 이 범위 내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위험도를 생각해서, 마이너스 지수변동에 대한 보험을 걸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이 상품들의 원금 손실 우려가 큽니다. 그래서 되도록 보험 구매를 지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듯 강길남 부장은 아주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지만.

그러나 김태풍의 생각은 달랐다.

‘음. 그럼 할 수 없겠다. 솔로먼 브라더스 상품을 구매하는 쪽으로 진행해 봐야겠어.’

그러고 보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

1996년도 1,300포인트에 이르렀던 나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중순, 5,000포인트라는 기록적인 최고점을 찍은 뒤, 그 이후 무섭게 폭락하게 될 것이다.

그건 이 시점에서, 김태풍만 아는 일이었다.

특히, 2001년 3월 중순!

나스닥 지수는 모두가 절대적인 지지선이라고 믿었던 2,000선마저 붕괴되게 마는데.

그러면 앞으로 대략 1년 5개월 뒤.

김태풍은 50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솔로먼 브라더스 쪽 보험에 어느 정도까지 돈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까?”

“네?”

지금껏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험상품들에 대한 상황 설명을 마친 터라, 더는 김태풍이 이쪽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런 추가 질문까지 받게 되자, 강길남은 흠칫 놀랐으나, 우선 대답했다.

“음. 최대 가능한 납입 액수는 미화 1억 달러입니다.”

“1억 달러? 좀 적은데. 혹시 그 액수를 좀 더 높일 수가 있습니까?”

“네?”

“최대 5억 달러. 이 정도라면, 그쪽과 협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거야 협의를 진행해 봐야… 아, 근데 정말 그 보험을 구매하실 생각입니까?”

“네.”

“…네에?”

자신의 물음에 김태풍이 곧바로 ‘네’라고 대답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강길남.

그는 크게 놀라며 두 눈이 바로 커졌고, 곧바로 무언가 반박하려다가.

이때,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몰라도, 그의 표정이 갑자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음. 그럼 혹시,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 순간, 김태풍은 바로 입가에 미소를 보였는데.

정말 똑똑한 강길남.

확실히 이 사람은 사태 파악이 빨랐다.

자신이 무언가 헛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전제에서 생각한다면, 바로 다른 추론이 가능한데.

강길남은 바로 그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죠. 다만 저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저 미국증시 활황이 꼭 일본의 과거 버블 붕괴 때와, 꼭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음.”

“확실히 미래는 누구도 모르니까. 혹시 모를 위기를 대비해야겠죠.”

그러고는 김태풍은 좀 더 선명하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5억 달러짜리 보험상품이 오픈이 된다면, 향후 김태풍은 250억 달러를 벌게 된다.

환율 기준으로 대략 30조 원!

만약, 1억 달러짜리 보험상품 구매가 된다면, 김태풍은 50억 달러를 벌게 될 것이다.

그게 뭐가 되었든.

솔로먼 브라더스는 나스닥 지수 2,000선 붕괴과 함께, 회사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 솔로먼 브라더스가 보험금 지급을 못 하게 된다면, 차라리 내가 그냥 솔로먼 브라더스를 인수해버릴까?’

김태풍의 두 눈은 아주 묘하게 반짝거렸지만.

그럼에도 그런 대형투자 은행 인수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편, 그로부터 며칠 뒤.

제약산업개혁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서 참석하게 된 김태풍.

그는 거기서 고위공무원들 외에도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날, 그는 제약산업 리베이트 관행 철폐와 관련된 긴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흘 뒤.

김태풍은 드디어, 미국 LA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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