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인수합병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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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레이 킴 대표님! 제 의견을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분야는 제약, 신약, 바이오산업 쪽이지만, 응용 화학 분야의 인근 분야 쪽까지 모두 포괄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기본적인 산업 구조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소재부품 산업부터 시작해서… 화학을 매개로 응용이 가능한 의공학 분야, 이런 의공학 분야와 결합할 수 있는 마이크로 부품, 전자기기, 전자 장비, 기계 등의 하드웨어적인 시스템 분야, 이런 부분들까지 모두 포괄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화장품 소재, 건강 보조 제품 등의 헬스케어(Health care)적인 부분도… 포함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1999년 10월 31일 일요일.
가을의 기운이 물씬 피어오르고 있는 10월의 마지막 날.
이제 전국 곳곳에서는 화사한 단풍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날.
강남 특급 호텔 내, 중형 회의실에 모여있는 사람들.
특히, 김태풍은 하루 내내 이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TPI홀딩스 대표 레이 킴 박사를 비롯하여,
법률담당 전무이사 이헌영 변호사, 재무 담당 전무이사 김병철 세무사, 투자 부분 담당 강길남 부장, 바이오 분야 최경진 대표, 그리고 인수합병 분야의 김의준 전무이사 등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새로운 인물, 40대 초반의 김의준 전무!
그는 이헌영 변호사의 소개로, 몇 달 전 TPI홀딩스에 합류하게 된 것인데.
그 전까지 그는 홍콩에 위치한 대형투자 회사에 재직하고 있었다.
그의 주 종목은 기업 인수합병 실무 및 합병 프로토콜 컨설팅.
특히, 탁월한 실적까지 갖춘 그를 스카웃하면서.
이때, 김태풍은 연봉 50억 원 외에도 플러스 알파(인센티브)까지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연봉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는 아주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예사롭지가 않다.
대검 검사장 출신의 이헌영 변호사
국세청 국장 출신의 김병철 세무사.
향후, 대한민국 바이오 분야의 신기원을 이루게 될 최경진 대표.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학위자이면서도 미국 임상약사(팜디) 출신인 레이 킴 대표.
또한, 한국연구기술원 출신으로 젊고 뛰어난 머리를 가진 강길남 부장.
여기에다가 인수합병 쪽 최고 전문가인 김의준 전무까지.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TSP 공동창업자인 새뮤얼 왓슨 교수와 일성SD신약 김선호 대표 덕분에.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김태풍.
그래서 그는 국내 최고 인재들을 초빙했고.
이제 자신이 가진 천문학적인 돈으로.
자신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럼 먼저,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김태풍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김의준 전무가 입을 열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인 김의준 전무.
그는 젠틀맨이라는 단어가 가장 합당할 정도로.
아주 시원시원한 얼굴에 목소리도 아주 듣기 좋았다.
“먼저, 며칠 전, 제가 올린 보고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본 소재부품 회사 디아이텍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어지고 있는 그의 설명들.
“뭐, 간단히 히스토리를 소개하자면, 3년 전, 디아이텍은 홍콩계 자본, MCK블루B1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PEF)에 매각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기업회생 절차가 이루어졌고. 또한, 그 과정에서 화학 기반 반도체 소재 분야 외에도, 각종 미세 마이크로 부품 쪽으로도 회사 영역을 확대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김 박사님께서 원하시고 있는, 그런 쪽 분야에 가장 합당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 TPI홀딩스의 제1 주주인 김태풍에 대해서, 주요 임직원들은 그를 그냥 ‘박사님’으로 부르기로 합의를 한 상태다.
왜냐하면, 김태풍의 공식적인 현 직책인 ‘연구소장’을 그의 이름 뒤에 붙여서 부르기에는 뭔가 생뚱맞을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TPI홀딩스는, 일성SD신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태풍을 직접적으로 ‘대표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고.
‘대주주님’이라는 호칭도 약간 어색했다.
특히, 김태풍은 영리 목적 겸직이 금지된 전문연구요원 신분이다 보니.
그런 김태풍의 법적 문제까지 고려해서.
결국, ‘박사님’이라고 부르기로 최종 합의된 상태다.
“네! 김 전무님! 사실, 김 전무님이 며칠 전, 저한테 보내주신 그 디아이텍 관련 보고서. 그건 충분히 검토했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만약 우리가 디아이텍을 인수하게 된다면, 이때 필요한 인수자금은 대략 어느 정도입니까?”
“뭐, 아직 협상 과정에 들어간 게 아니라서, 저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다만,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MCK블루B1 사모펀드 측은 지분 51%에 대한 대가로, 대략 2,100억 원 정도를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그 디아이텍의 정규직 임직원 규모가 대략 800명. 한 해 매출 규모가 대략 3천억 원 정도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특히, 소재부품 관련하여 기술적 가치는 충분히 있어서, 지난 2년간 매출 규모가 꾸준히 상승세입니다.”
“네. 뭐, 그런 부분들은 좀 긍정적이군요. 그렇다면, 김 전무님! 이 회사에 대해서 조금만 더 분석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죠. 아, 그 전에 혹시…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서 북미 지역에 출시한 퓨어 센서 시리즈에 대해서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아, 퓨어 센서 시리즈라면? 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북미 쪽에 친구들이 많아서. 근데, 그건 박사님께서 개발하신….”
이때 김태풍은 피식 웃고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사실, 제가 추가로 궁금한 부분은, 그럼 Relian Medical Corporation사의 퓨어 센서 시리즈에 들어가는 전자 부품들과, 저 디아이텍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까요?”
“으음. 그건 제가 아는 부분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데… 현재, 디아이텍은 의료 전자장비 부품 납품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외, 상세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결국 회사 측과 접촉한 뒤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 좀 더 클리어(clear)해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네. 좋습니다. 그럼 그 부분부터 먼저 확인한 뒤, 향후 인수 작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디아이텍 건은 그렇게 우선 결정짓고….”
그리고 또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말.
“참, 김 전무님. 그럼 HK투자파트너스 인수합병 건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렇듯 김태풍은 다시 김의준 전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TPI홀딩스는 현재 사세를 넓혀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가장 쉬운 길은 바로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의준 전무의 역할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향후 TPI홀딩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투자행위들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단순 투자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강길남 부장 외에도.
좀 더 전문적인 투자 조직이 필요한 게 사실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김태풍은 홍콩 투자전문 회사, HK투자파트너스의 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인 것이다.
“참, 이럴 게 아니라, HK투자파트너스 일에 대해선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김 전무님께선 간단하게 배경 설명부터 먼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태풍이 바로 그런 요청을 하자.
김의준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간단히 설명하자면, HK투자파트너스는 홍콩에 위치하고 있는 중견 투자 회사입니다. 특히, 이 회사는 미국, 유럽 쪽의 주식 투자, 파생상품 투자, 벤처 기업 투자 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현재 운용하고 있는 자산 규모는 대략 1조 원 정도 됩니다. 또한, 영국 내에도 따로 브랜치를 두어, 유럽권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고 있는 그의 설명들.
“그런데, 2년 전, HK투자파트너스의 찰리 홍 회장이 사망하면서, 이쪽 경영권이 좀 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사망한 찰리 홍 회장의 장남 패트릭 홍. 그가 회사 지분 16%를 갖고 있었는데, 그에 반해서, 차남인 리칸 홍은 지분 13%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망한 찰리 홍 회장이 지니고 있던 지분 38%. 이것의 상속권 배분 문제와 또한 이로 인해서 발생한 경영권 분쟁입니다.”
김의준 전무는 눈을 반짝이며,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 지분은, 찰리 홍 회장의 유언에 따라, 두 아들들과 그의 젊은 아내 캘리 신에게 각각 배분되었는데. 그 상속을 마치고 나자, 장남 패트릭 홍은 지분 31%, 차남 리칸 홍은 지분 26%, 캘리 신은 지분 10%를 각각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김의준 전무의 설명을 들으며.
이헌영 전무 등은 점점 더 흥미를 보이고 있었고.
이때, 김의준 전무는 좀 더 중요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 대주주들이 결정되면서, 결국 치열한 공방전 끝에 회사 경영권은 장남 패트릭 홍에게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심각한 집안싸움이 발생한 겁니다. 특히, 분개한 차남 리칸 홍과 캘리 신은 뒤늦게 서로 손을 잡았고, 그들은 패트릭 홍 사장을 쫓아내려고 치열한 지분 경쟁까지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불미스러운 일들까지 발생했습니다.”
지금 김의준 전무의 그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물론 패트릭 홍 사장은 회사 경영권 방어에 최종적으로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크게 격분했고. 결국, 그는 HK투자파트너스를 포기할 생각까지 갖게 된 겁니다. 즉, 자신만의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결국, 그는 자신의 지분 31%를 매각할 의사를 제시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김의준 전무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김병철 전무가 입을 열었다.
“으음. 그렇게 복잡한 가정사가 얽힌 회사를, 우리가 이런 회사를 구태여 인수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김 전무님! 사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분쟁 때문에 최적의 가격에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패트릭 홍은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에 대한 매각 의사를 드러냈고. 또한, 패트릭 홍 만큼이나 무척 격분한 리칸 홍과 캘리 신! 그들 역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한 매각 의사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싸움 끝에, 결국 모든 게 콩가루가 되어간다는 말이다.
“음. 그럼 그 말씀은?”
“그러니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수전략은, 패트릭 홍, 리칸 홍, 캘리 신 지분을 몽땅 다, 회사에서 흡수하는 전략입니다. 물론 각기 다른 측면에서, 각기 다른 중개인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접근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김태풍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김의준 전무에게 거액 연봉까지 제시하며 이곳으로 그를 스카웃한 이유는, 저렇듯 김의준 전무가 아주 영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머리 회전이 비상한 이헌영 변호사.
그가 극찬했을 정도로.
이쪽 방면에서 김의준 전무는 아주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드디어, 제 질문을 다시 하도록 하지요. 김의준 전무님! 그럼 HK투자파트너스 인수는 언제쯤 완료될 수 있습니까?”
그렇게 김태풍이 묻자.
김의준 전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이어 대답했다.
“음. 제 생각에는, 늦어도 내년 3월 말까지. 그 전까지 인수가 완료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인수자금은요?”
“지분 67%에 대해서, 3,600억 원 정도. 우선, 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네. 좋습니다. 그리고 향후 법적 부분에 대해서는, 이헌영 전무님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김 박사님.”
그렇듯, 김태풍의 TPI홀딩스.
TPI홀딩스의 영역은 점점 더 커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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