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힘을 얻다
<30> 힘을 얻다
웅성웅성.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또한,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들이 터지고 있는.
일성SD신약 본사 대회의실.
약간 흐린 하늘 탓에 가을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1999년 10월 28일 목요일 아침 10시.
아침 일찍부터 이곳 대회의실에서는 미국 파이자(Pizar)와 당뇨병 신약과 관련된 기술이전 협약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오늘 이 중요한 협약 체결을 위해, 계약당사자인 일성SD신약 김선호 대표와 한국 파이자(Pizar) 아시아 지역 대표인 스티븐 최 외에도, 김선호 대표의 부친인 김인철 일성전자 부회장이 김신웅 회장을 대리하여 참석한 상태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일성제약 배정현 사장, 그룹총괄 전략기획본부 서정철 사장도 참석했고.
또한, 일성SD신약 기획·재무 부문 최경도 전무, 개발·투자 부문 강재현 전무, 마켓팅·인사 부문 장태윤 전무 등도 참여했는데.
한편, 김태풍은 이번 당뇨병 신약 개발자이자, 이노베이션 연구소 연구소장 자격으로 이날 계약 체결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 앞으로 저희 파이자(Pizar)는 신약 MTD-2000375의 미국, 유럽 내 승인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공동연구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서, 양사가 더욱 발전적인 연구 협력 모델을 도출할 수 있길 더욱더 기대합니다.”
한국 파이자 아시아 지역 대표인 스티븐 최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김선호 대표는 밝게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
그리고 이때, 다시 요란하게 터지고 있는 카메라 플래시들!
찰칵! 찰칵! 찰칵!
이런 사진 촬영들이 잠시 후 끝이 나자.
약간 눈빛이 날카로운, 일성전자 김인철 부회장.
그는 다가가, 스티븐 최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특히, 김인철 부회장이 향후 일성그룹 차기 회장이 될, 후계자임을 잘 알고 있는 스티븐 최.
그는 아주 공손하게 김인철 부회장과 악수했고.
곧이어 김인철 부회장은 연단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기자들 앞에 서서, 간단히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아직 대한민국은 IMF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일성전자의 반도체 부분을 포함하여, 국내 산업들은 아주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주도의 정보통신 혁명에 이어서, 앞으로 무한 경쟁 시대에 접어들 제약·신약 신사업 분야에서, 우리 김선호 대표의 일성SD신약은 대한민국 산업 구조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잠시 좌우를 살피다가 그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앞으로 일성SD신약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또한, 오늘 신약 개발이 있기까지 아주 노력해 주신 그룹 전략기획본부 서정철 사장님과 일성SD신약 김태풍 연구소장님, 그리고 이하 여러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듯 김인철 부회장의 발표가 끝나자, 요란한 박수들이 터졌고.
다시 카메라 플래시들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렇듯 일성그룹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기술이전 협약식은 드디어 성황리에 끝이 나게 되었는데.
이날 미국 파이자(Pizar)와 체결한, 당뇨병 신약 기술에 대한 기술이전 액수는 종전 예상보다 더 높아져, 무려 30억 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당뇨병 신약 기술이 향후 미국 FDA 승인을 받게 된다면.
이 신약 개발자인 김태풍은 지금 체결한 기술이전료의 대략 30%가량을 로열티로 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9억 달러 수준.
이걸 현재 환율로 계산한다면, 대략 1조8백억 원에 달하는 아주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그리고 이날.
장 초반 등락을 잠시 반복했던 일성SD신약 주가.
이 주가는 결국 오전 11시를 넘어서는 순간.
바로 상한가로 직행했고.
이날 장 마감과 동시에 확정된 일성SD신약의 주가는 무려 72만5천 원에 이르고 있었다.
##
“음. 어서 오게.”
“아,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흠. 나야 뭐, 요즘 김 소장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프긴 하지. 그래도 내가 내년에, 세계에서 200등 안에는 들 거라고 하더군.”
일성그룹 김신웅 회장의 집무실.
이날 오후 늦게, 김태풍은 다시금 김신웅 회장의 호출을 받아, 그의 집무실에 도착했는데.
지금 김신웅 회장이 하는 말은.
일성SD신약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
내년 미국 포브스지 발표, 세계 갑부 순위에서 대략 200위권에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일성SD신약 주가가 그저 그랬다면.
김신웅 회장의 갑부 순위는 김태풍의 회귀 전과 동일하게 300위 권에 가까운 순위였을 것이다.
“그럼 이쪽으로 와서 앉게. 뭐, 자네도 예측했을 테지만. 이제 일성전자 지분 문제를 결정해야 해서, 오늘 자네를 불렀네. 앉아서 이야기하지.”
“네. 회장님.”
일성그룹 회장 공식 집무실.
다시금 회의 탁자를 중앙에 두고서, 그와 마주 앉게 된 김태풍.
이때, 최혁수 실장은 서류 하나를 가져와 김태풍에게 건네줬고.
그러고는 김태풍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음. 알다시피, 나는 주가가 더 튀면 좋겠어. 현재 70만 원대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충분히 100만 원대도 가능해. 물론, 자네가 중간에 끼면 말이야.”
“그럼 회장님! 곧 기술이전 작업을 진행하실 겁니까? 새로운 파킨슨병 치료제 기술. 이 기술은 TSP 팜 코리아를 통해, 기술 이전할 준비가 모두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의 개발 시기는 제가 박사과정 때, 박한식 교수님과 함께 한 일로 입을 맞출 생각입니다. 그래야 저도 로얄티를 챙길 수 있을 테니까요.”
“음. 본래 내 계획은 10월 초순이었네. 그게 좀 더뎌졌지만. 그래도 이번 건은 11월 초순에는 무조건 진행해야 할 것 같아. 이번 파이자 계약 건도 있으니까, 후속타까지 터트리게 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되겠지.”
그러고 보면, 지난 1년 사이, 일성SD신약 지분 구조에 많은 변화가 생긴 상태다.
메드TX와의 합병 계획을 세우기 전, 일성SD신약의 대다수 지분은 일성전자 김재호 전무에게 쏠려 있는 상태였는데.
그런 지분 구조는 메드TX와의 합병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완전히 깨져버렸다.
과거, 김재호 전무는 일성SD신약 지분을 무려 40%나 갖고 있었는데.
메드TX와의 합병 과정에서 그 지분율은 급감하여 무려 10%대로 떨어져 버렸다.
대신에 김신웅 회장의 지분율은 20%에서 25%로 상승했고.
고작 10% 지분율에 불과했던 김선호 대표의 지분율은.
놀라울 정도로 상승하여, 무려 20%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서정철 사장.
그는 천문학적인 인수금을 받은 것 외에도.
일성SD신약 지분 15%를 확보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현재, 제1 주주는 김신웅 회장이 되었고.
그 다음 대주주 순서는 김선호 대표로 바뀌게 된 상황이었다.
“음. 원래 내가… 메드TX 인수자금으로, 7천억 원정도 생각했는데. 그게 갑자기 그 몇 배에 달하는 인수자금이 들어가게 됐어. 뭐, 중간에 전략팀 애들을 좀 시켜서, 메드TX 주가 장난질도 좀 쳐 봤고. 은행에서 돈도 좀 빌리고. 허허! 뭐, 그랬더니 내 재산이 전보다 더 많아지게 되더군.”
다시 말해서, 결과적으로 보면, 최근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일성SD신약의 상한가 행진 때문에, 김신웅 회장은 더 큰 부자가 된 것이었다.
“그럼 회장님! 그럼 저에게 이제 일성전자 지분 3%를 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김신웅 회장은 바로 최혁수 실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하고 있는 최혁수 실장.
“김 소장. 그 서류부터 자세히 보게. 일성전자 지분 3%의 시가가 현재 4,230억 원 정도 가치가 되네. 으음!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나머지 에누리를 떼고, 대략 4,000억 원 선에서 넘길 수 있다고 하셨네.”
지금 김태풍의 눈앞에 놓여있는 서류.
그것은 바로 일성전자 지분 3%의 가치를 평가한 서류였다.
‘와. 고작 4천억 원? 이게 엄청난 돈이긴 하지만, 진짜 IMF 덕분에 거저먹는 가격인데.’
지금 김태풍은 너무나도 기뻐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김신웅 회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무진장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분 3% 가치는 2000년도 중반이 되면, 대략 6천억 원 정도로 뛰어오르게 된다.
또한,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나고 나면, 무려 11조 4천억 원에 육박하게 되는데.
특히, 이 지분만큼은 다시 사고파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평생 품고 가도 되는, 그런 가치가 있는 지분이었다.
예를 들어, 이 지분을 통해서 배당금 수익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또한, 이 지분은 일성그룹 경영권과도 관련이 있어, 향후 일성그룹의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일에 섣불리 방해하기 힘들게 될 지도 모른다.
“음! 그럼 회장님. 11월 말까지, 제가 4천억 원을 입금하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너무나도 쉽게 나온 김태풍의 그 말에.
김신웅 회장은 갑자기 유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 뭐, 11월 말까지라?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시원하게 웃은 뒤.
이내 묘한 시선으로 김태풍을 쳐다보며 입을 열고 있는 김신웅 회장.
“음. 내가 듣기로는 자네가 큰 부자가 되었다던데? 결국, 자네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이 지분을 가질 수 있겠군.”
그 말에 김태풍도 웃었다.
사실, 김신웅 회장 정도의 힘이라면.
자신의 국세청 세금 납부 내역 정도는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계약에 단서 조항이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네. 그 지분으로 권리를 행사할 때, 김선호 대표에 한해서는 무조건 우호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 말이네.”
“네. 그 점은 저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약서에도, 그 부분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래. 뭐, 그렇기야 하지.”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김신웅 회장.
그런데 그는 갑자기 표정을 달리하며, 좀 더 진지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는 자네가 저번에 번 그 돈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사실, 요즘 내가 자네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아봤는데, 이것저것 무척 흥미롭더군. 혹시나, 자네는 우리 일성그룹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겠지?”
한편, 그의 입에서 ‘적대’라는 단어가 나올 때, 그의 시선은 무척 따가웠다.
그러나 김태풍은 이를 모른 척하며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회장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일성SD신약 이노베이션 연구소, 현직 연구소장입니다. 또한, 그룹본부 서정철 사장님, 그리고 김선호 대표님과도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 그렇지. 사실, 그런 부분들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긴 하지. 그러고 보면 말이야. 흐음. 자네는 확실히 날 닮았어. 결국, 자네에 대한 평가가 계속 바뀌게 되는군. 그래서 말인데…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자네한테 딱 두 가지만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싶네.”
그러고는 김신웅 회장의 눈빛이 약간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자네가, 어떤 사업을 벌인다고 해도, 특별히 관여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자네는, 자네가 반드시 지켜줘야 할 게 있네.”
뜻밖의 말에 의아해진 김태풍.
“음! 이건 경고이자, 내 부탁일 수도 있네.”
그리고 이어지고 있는 김신웅 회장의 말.
“자네는 절대… 내가 이룩한 반도체 사업 쪽으로는… 어떤 경우에서든 넘어와서는 안 되네!”
아, 그 말인가?
“그리고 또한, 일성전자 지분. 그건 딱 거기까지만 갖도록 하게! 그 이상을 가지려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 피를 보게 될지 몰라. 뭐, 자네가 그 선만 잘 지켜준다면, 앞으로 나는 자네의 일이라면, 되도록 돕도록 하겠네.”
지금 김신웅 회장은 경고와 타협의 말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김태풍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또한 바로 대답할 수가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대신에 저는 앞으로, 회장님께 정말 많은 것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김태풍은 현시점에서는 반도체 사업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에 관심이 없는 이상, 일성전자 지분을 더 이상 가질 이유도 없다.
사실, 김태풍이 머릿속으로 정말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 내부에서의 출혈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새로운 기업을 대한민국에서 설립하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