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정말 어쩌다가 생긴, 뜻밖의 기회
##
“으음. 근데 이번 건은 딱 보면, 견적이 나오지 않나요? 작전 세력들이 미리 알고서,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린 것 같고. 아마 며칠 내로 물량 다 털고 사라지면, 거의 흔적도 없겠죠.”
그렇게 김태풍은 대꾸하며, 쓴 미소를 짓고 있다.
“정말 그렇겠죠? 소장님. 근데 그자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휴! 아무래도 금융감독원에서, 정밀조사가 나올 수도 있겠어요. 이건 아무래도 좀….”
“음. 그렇겠죠?”
“근데 조사를 해 봐도 누구 짓인지 밝혀내기 힘들 겁니다. 그냥 오늘 손해 본 사람만 분통 터질 일이죠.”
그러고 보면, 김태풍은 메드TX 스톡옵션만 보유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주식은 단 한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회생한 메드TX 주식 상황.
그걸 보고 있자니, 괜히 저도 모르게 욱해진다.
늘 손절만 했던 회귀 전 자신의 모습.
그게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참, 남 팀장님은 입사할 때, 회사 주식을 샀다고 했죠?”
“네. 그때 조금 샀습니다.”
“그럼?”
“전 오늘 안 팔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거의 최고가인 20만 원대에서 산 거라서. 아무리 올라도 저는 아직 손해죠.”
“아, 그러셨군요.”
그러니까 남상훈 팀장은 그때 주가 꼭대기 지점, 즉 상투를 잡은 것이다.
IMF 여파로 주가가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손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지금은 주가가 상승 쪽으로 순항 중!
그래서 조만간 그의 투자도.
곧 이익 구간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지독한 뚝심이다.
물론, 저런 장기투자 때문에.
그는 큰 손해를 모면한 것이다.
‘으음. 그러고 보면, 나도 그때 무조건 장기투자로 갈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런 식의 투자도 보통 일이 아니고.’
뻔히, 눈앞에서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데.
누구나 새가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
-20%.
-30%.
이런 식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그걸 견디는 것은 보통 인내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눈앞에서 상한가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린 메드TX 주식!
서둘러 매도를 마친 개미 투자자들.
그들은 그걸 보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런데도, 그 와중에도 하한가 입성에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주식 투자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이날.
큰 폭의 주가 변동률을 보였던 메드TX 주식.
이 주식은 다음 날부터 다시 상한가 행진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 우와! 이거 지린다! 지려! 무려 3분 만에 쩜상!!!
- 3분 카레도 아니고, 이거 말도 안 돼. 존나 열 받아!!!
즉, 개장 3분 만에 벌어진 놀라운 진풍경.
화제 만발인 메드TX 주식은 곧바로 상한가에 안착해 버린 것이다.
주식을 쥔 사람은 이른바 환희가.
주식이 없는 사람은 이른바 절망이.
이렇듯 순식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이른바 완벽한 쩜상이 터진 것이다.
- 존나 짜증 나! 이러다가 또 푹 꺼지는 거 아냐?
- 경고! 경고! 내일은 무조건 쩜하다! 쩜하!
- 도박을 하다간 패가망신합니다. 조속히 따뜻한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세요.
- 다들 꼭 붙잡고 있어! 무조건 붙들어 매!!!
- 오늘부턴 무조건 쩜상 행진! 쩜상!! 쩜상!! 쩜상!!
- 고수님들, 저 지금 16층인데, 적어도 20층까지는 가겠죠?
- 특별 회원 모집. 비공개 정보 다수. 선착순 10명. 회원제 운영. 메드TX 향후 주가가 궁금하다면?
- 무조건 30층까지 가즈아! 자자!! 다들 꼭꼭 붙들고 매!!
- 이러다간 설마, 50층까지 보는 거 아냐?
특히, 어제의 학습 효과 때문인지.
메드TX 주가에 대한 불안감은 싹 사라진 상태였고.
이제는 기대심리가 훨씬 더 커져 버렸다.
이런 심리적 요인들은 다음 날부터 더 크게 주가에 반영되었다.
특히, 그날부터 매도세가 꽁꽁 얼어붙고 말았는데.
그 결과, 수많은 매수세들이 몰리면서 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더니.
마침내 메드TX 주가는 20만 원대를 훌쩍 넘어서 버렸고.
어느덧 25만 원대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럼에도 이 주가 상승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편, 1999년 5월.
따뜻한 5월이 되면서.
김태풍은 드디어 일성그룹 김신웅 회장을 만나.
기술이전 건에 관하여, 짧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때 김태풍은 새로운 파킨슨병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물론, 아주 전문적인 약물 구조 이야기가 태반이라.
김신웅 회장은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주 큰 흥미를 보였는데.
이날 짧은 면담을 마치면서.
김태풍은 신약 관련 분석 자료들을.
다가오는 6월 말까지 김신웅 회장에게 넘기기로 했고.
김신웅 회장은 그런 김태풍의 시원시원한 일 처리가 만족스러운 듯 이렇게 대답했다.
“으음. 요즘 메드TX 가치 상승으로 좀 난항이긴 해도, 7월 초쯤에는 일이 모두 마무리될 거네. 그래서 가장 최적 시점은 10월 초순쯤. 그 일정에 맞춰서 자네도 준비하게.”
이날 오후, 김신웅 회장은 청와대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무척 바쁘다고 했고.
그래서 그와의 짧은 면담을 마치게 된 김태풍은 그곳에서 바로 나와.
이제 다음 행보를 이어 나가게 되었다.
어쨌든 신약 붐의 대명사가 된 메드TX는 현재, 역대급 호재들이 넘치고 있는 상태였고.
특히, 조만간 일성SD신약과의 합병 사실이 밖으로 흘러나가게 된다면.
다시 한번 주가는 폭발적으로 치솟아 오르게 될 것이다.
##
“…그럼, 다음 소식은…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사이버 코리아 21 계획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발표된 정보통신부의 기본 계획은, 향후 28조 원을 투입하는 대단위 정보인프라 구축 계획으로써, 향후 4년간 민간자본 17조3천억 원을 포함하여, 총액 28조 원을 투입하여 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용 창출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국가적 정보화 구축 작업을 통하여, 선진국 수준의 전산화 및 인터넷 문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 설명으로, 정보통신부의 관계자의 입장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기 기자!”
자신의 회사 사무실에서, 밤 9시 뉴스를 잠깐 보고 있던 김태풍 소장.
그는 이때 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대단위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며.
대한민국에도 인터넷 시대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즉, 앞으로 국내 인터넷 사용자 수는 현행 수백만 명에서.
2000년 연말이 되면, 무려 1,900만 명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음. 결국, IT 시대가 열린다는 말인데. 그럼 이쪽 분야 국내 투자도 빨리 시작해야….’
그 뉴스를 보면서, 김태풍은 자신의 턱을 살짝 만지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때.
뒤이어 흘러나오고 있는 뜻밖의 보도.
그 보도 내용을 보면서, 그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작년 연말, 초 저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휘발유 값이 큰 폭으로 떨어진 사실을 국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유가와 관련된 파생상품 쪽에 투자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둔 국내 투자자가 있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이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증권가를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었고, 최근 저희 보도팀에서는 국세청 관계자를 통해서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국외투자 성공 사실에 힘입어, 현재 국외 선물시장 및 파생상품 쪽 투자자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현재 하루 거래대금은….”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각종 수치 제시와 국외 투자 분석들이 이어졌는데.
그러나 소파에 앉아서 그 뉴스를 보고 있던 김태풍은 바로 눈이 동그래지며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맙소사!
설마, 자신의 이야기가 저런 식으로 다루어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자신이 큰 대박을 친 이후, 자신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그러나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이슈가 터졌던 것이다.
“…또한, 이런 국외 투자 심리가 확대되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선물시장으로 투자가 몰리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3년 전, 코스피200 선물시장이 최초로 개설되면서 시작된 국내 파생상품시장! 특히, 코스피200 옵션이 최근 폭발적인 거래량 증가로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의 큰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김태풍은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왔다.
이미 이것저것 자신의 신약과 관련된 일들이 국내에서는 여러 차례 이슈가 되고 있는 터라.
유가 옵션 대박까지 얽히게 된다면.
더 도미노급 폭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으음. 저게, 저렇게 터지면… 기자들까지 난리가 날 텐데.’
비록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괜한 구설에 오를까 봐, 절로 걱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김태풍.
이때, 불현듯 아주 좋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런 건 내 힘으로는 안 돼. 누군가 조금만 힘을 써 주면, 금방 가라앉을 일인데. 그럼 누가 좋을까? 적어도 힘이 있으면서도, 거추장스럽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나서줘야… 으음. 혹시 김동걸 수석이라면?’
기업가 출신에 재선 국회의원, 그리고 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금 그를 머릿속에 떠올릴 정도로.
김태풍의 모습은 회귀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상태다.
그리고 며칠 뒤!
김태풍은 광화문 근처의 한정식집에서 김동걸 수석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와 2시간 남짓 긴 대화를 나눈 뒤.
웃으며,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김태풍은 바로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차량을 몰고서.
의외로 강남의 모 외제차 전시장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하하! 안녕하십니까? 손님! 아, 아주 젊으신 분이시군요. 혹시 어떤 브랜드 혹은, 혹시 좋아하시는 모델이 있습니까? 먼저, 원하시는 모델이나 옵션 등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그 사양에 맞춰서 제가 모든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참, 오늘 혹시, 그냥 구경만 하러 오신 겁니까?”
아주 친절하게 의향을 물어보고 있는 매끈한 슈트 차림의 30대 후반의 남자.
인상도 아주 선하고.
또, 입가에 웃음이 가득한 딜러였다.
“저는 괜찮은 게 있으면, 구매를 하려고 왔습니다. 현금 결제 가능하죠?”
“현금? 아, 하하. 네! 당연하죠!”
사실, 김태풍은 메드TX로 회사를 옮긴 이후, 회사 업무를 파악하느라 무척 바빴는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주간 논산에서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고.
또, 4주 훈련 뒤에는 새로운 파킨슨병 치료제 합성을 하느라, 그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껏 국산 중형차를 렌트해서 몇 달째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조금 전, 김동걸 수석을 만난 뒤,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 것이다.
- 와!! 이거 속된 말로, 놀랄 ‘노’자입니다. 천재는 확실히 다르군요! 하하하! 사실, 언론에 공개된 제 재산은 대략 2천억 정도가 되는데, 이제 김 소장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겠습니다? 하하하!
그러고는 김동걸 수석은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 사실, 저는 김 소장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주 잘 압니다. 돈 번 거로 주목받는 건, 재벌 회장들도 지독하게 싫어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근데, 어떻게 국세청에서 그런 정보들이 흘러나갔는지,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말.
- 혹시 그 일을 담당한 세무사가? 아, 그럼 그쪽과는 거액 보상금이 걸린, 비밀협약 계약을 맺었다고요? 그럼 그쪽은 적어도 아닐 테고. 흠! 좋습니다! 제가 아는 언론사들 쪽에 한 번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내리기 싫으시다면, 제가 힘을 다해 도와드려야죠. 하하하.
그러고는 김동걸 의원은 이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 음. 근데, 이건 아직 비공개 정보인데… 곧 국가 제약산업 육성 사업이 공식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근데, 그 속에는 리베이트 관행 철폐도 담겨있는데, 흠! 그 파장이 아주 클 거로 예상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고 있는 놀라운 말들.
- 그래서 제가 이참에 부탁을 드리는 건데… 이 제약산업개혁위원회에, 서정철 사장님이나 혹은 김선호 대표님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정부의 정책 입안에 큰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그들 두 사람 중의 한 명을 그 위원회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아주 단순한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미래를 아는 김태풍은 그 속내를 깨닫고 바로 표정이 굳어졌는데.
그러고 보면, 과거 정부 차원의 제약 리베이트 금지 발표가 있은 뒤,
그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몇몇 제약회사들.
그들 회사는 한순간 매출 급락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당시 국내 제약회사 랭킹이 바뀌기도 했던 것.
다시 말하면, 이번 위원회에 서정철 사장이나 김선호 대표가 참여한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업계의 공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걸 알기에 더 조심스러워진 김태풍.
그렇다고 김태풍은 김동걸 의원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의약 리베이트 철폐를 최초 주장한 사람은 바로 김태풍이 아닌가.
- 으음. 정 그런 일이라면, 제가 위원을 참여하면 안 되겠습니까? 조만간 메드TX에서 당뇨병 신약 개발자가 저라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할 예정인데… 그 정도 이력이라면 저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김태풍이 말을 하자.
김동걸 수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곧 환하게 웃었다.
- 아! 그것도 아주 좋겠군요! 홍보 효과도 아주 대단할 거고! 하하! 그럼 김 소장님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맡게 되시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게 될 거고. 그 와중에 김 소장님 정관계 인맥도 이래저래 쌓이게 될 겁니다. 어쨌든 저랑 약속한 겁니다. 하하하!
정말 어쩌다가 생긴, 뜻밖의 기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건 나쁜 기회가 아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정관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것 같고.
또한, 앞으로 자신의 비즈니스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면서.
김동걸 수석은 또 다른 이야기들을 꺼냈는데.
그게 바로, 부자가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
그것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김태풍은 이 외제차 전시장을 찾은 것인데….
“오? 그렇다면, 먼저 카탈로그부터 보시면서,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제가 가격, 트림, 옵션, 할부 등등, 모든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특히, 최대한 프로모션을 넣어서, 싸게 제공해드릴 테니까,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이때, 입꼬리가 더 올라가고 있는 외제차 딜러.
그는 더욱더 친절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