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이노베이션 연구소
##
“하하. 어서 오십시오. 김태풍 박사님! 드디어 저희 회사에 김 박사님을 모시게 되었군요. 환영합니다!”
아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 주고 있는 서정철 사장.
무척 이른 시각인 아침 8시.
김태풍은 아주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서, 메드TX 연구소로 출근하게 되었는데.
숙취로 눈이 약간 충혈되었지만.
그럼에도 표정은 무척 밝았다.
“자! 들어오시죠!”
그리고 눈앞으로 펼쳐진, 또 다른 풍경.
의외로 무척 소박한 모습이다.
아기자기한 난(蘭) 화분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고.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메드TX 회사 깃발이 꽂혀 있는데.
한편, 우측 큼직한 책장 쪽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목록별로 진열되어 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길쭉한 갈색빛의 소파.
김태풍은 그가 가리킨 곳에 앉았는데.
저절로 엉덩이로부터 푹신함이 느껴졌다.
“댁에서 거리가 멀어서, 오시느라 힘들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메드TX 연구소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하고 있다.
어제까지 다녔던 일성SD신약.
이 회사는 서울 강남에 자리를 잡고 있어, 위치상으로 아주 좋았는데.
그러나 메드TX는 초창기 회사 설립 비용이 일성SD신약만큼 넘치지 못했고.
그래서 좀 외딴 지역에 회사 자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특히, 용인 내에서도 좀 더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앞으로 회사 출퇴근하는 일이 무척 고될 것만 같았다.
‘버스에 택시에… 휴. 여긴 운전기사 지원도 안 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내로 좋은 차라도 사야겠어.’
물론 메드TX는 서울 강남에도 영업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마케팅 부서 등 몇 개 부서들만 들어가 있었고.
실질적인 메드TX 운영은 이곳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연구소 한쪽.
작은 제약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 공장은 일명 복제약에 해당되는 OTC(Over The Counter Drug: 일반의약품) 쪽 약물 생산에 주력하는 곳이다.
“하하. 회사가 좀 많이 작은 편이죠?”
서정철 사장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일성SD신약과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번듯한 10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일성SD신약.
특히, 일성SD신약이 입주하기 전, 건물 자체를 완전히 리모델링을 한 터라, 그 내부는 완전히 깔끔했는데.
그에 반해서, 메드TX는 그런 비용 자체를 아껴야만 했고.
그래서 투박한 건물 외형에다가.
내부 인테리어마저 다소 투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중소기업 특유의 느낌이 이곳에서는 흘러나오고 있다.
보통, 대기업 연구소들은 널찍널찍한 느낌들이 나는 데 반해서.
메드TX는 어딘지 모르게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답답하다는 느낌마저 저절로 일어났는데.
거기다가 창문 너머로 보이고 있는, 휑한 벌판과 산야의 모습들.
이런 경관들 때문에 기분이 약간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김태풍은 밝게 웃으며, 그런 기분들을 얼른 떨쳐냈다.
사실, 이 회사가 외형적으로는 일성SD신약만큼 되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메드TX는 지금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나날이 급성장하고 있었고.
이미 시총 규모만 해도 벌써 수조 원에 달하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김태풍은 이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성과 연동 형태로, 스톡옵션 100만 주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어느새 자신이 2조 원대의 부자가 된 터라.
이런 몇백억 원대의 주식이 크게 와 닿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 남짓.
김태풍은 서정철 사장으로부터.
회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메드TX 입사 조건 중의 하나인 스톡옵션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우선, 이틀 뒤로 예정되어 있는 메드TX 주주총회.
이 주총 회의에서 스톡옵션 부여 건이 결의가 될 것이라고 했고.
이후, 김태풍과의 스톡옵션 계약이 완료되면.
이 사실은 공식적으로 일반 주주들에게도 공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 박사님의 회사 내 직책은, 이노베이션 연구소 연구소장입니다.”
이노베이션 연구소 연구소장?
김태풍은 서정철 사장의 말에 바로 두 눈을 반짝였다.
“아시다시피, 임원급은 아니고, 이사대우라서 회사 경영진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발령은, 오늘 자로 이미 발령이 나갔습니다.”
“그럼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호기심을 느낀 김태풍이 바로 묻자.
서정철 사장은 메드TX 조직도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이노베이션 연구소 외에도 회사 조직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메드TX는 신약합성 및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신약 연구소가 중심이 되고 있는 모습인데.
그 외, 각종 의약제제를 연구하고 있는 제제 연구소로 양분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임상시험 관리팀, 전임상시험팀, 분석팀 등을 포함하고 있는 임상의약 연구소.
이 연구소는 앞선 두 연구소들을 지원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메드TX는 주력 2개 연구소, 지원·보조 기능을 갖춘 1개 연구소 체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이런 메드TX에 새로운 연구소 하나가 갑자기 설립이 되었고.
이게 바로 ‘이노베이션 연구소’라는 곳이다.
“그래서 이 연구소는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들을 최초 스크리닝하는 작업 외에도 관련 기초 선행 연구들을 진행하는 게 목적입니다. 즉, 여기서 기초 연구를 완성하게 되면, 그 결과들을 모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후 신약 연구소나 제제 연구소에 그 기술들을 넘겨서, 심화 형태로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음. 그럼 다른 연구소들과 업무 조율을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김 박사님. 김 박사님은 여기서 어떤 연구이든 간에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특별히 제가 인사권도 드리겠습니다. 즉, 이 연구소는 초기 한 개 연구팀으로 시작될 거지만, 향후 김 박사님께서 추가로 한 개 연구팀을 더 디자인하고, 또 새로운 연구원들을 직접 뽑으셔도 됩니다.”
서정철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아주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뭐든 연구해도 된다고? 사람을 뽑을 인사권까지 준다고?’
우선은 김태풍은 그렇게 이해했는데.
이때, 서정철 사장은 한가지 말을 덧붙였다.
“추가로, 곧 국내 임상 2상이 끝나는 당뇨병 신약 말입니다. 현재, 미국 파이자(Pizar) 측과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나중에 미국 파이자(Pizar) 측에 이 기술을 넘긴 뒤에도 일부 현안들이 좀 남아 있을 거고. 그래서 그 일들을 김 박사님께서 좀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서정철 사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이 일은 김 박사님의 첫 신약 성공작으로 남을 수 있는 무척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그 마무리를 김 박사님께서 하시는 게, 가장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은 왜 자신이 이 메드TX에 오게 된 것인지, 가장 큰 이유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앞으로 이 신약 개발을 통해서 자신은 천문학적인 로얄티를 지급받게 되겠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적어도 신약 개발자로서.
신약 성공작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정말 남다른 의미가 아닐까.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꽤 있었던 김태풍.
그러나 서정철 사장의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리는 한층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한국이 아니라, 무려 미국 FDA에서, 세계적인 신약 승인을 받게 된다면 정말 어떤 기분이 들까?’
네이처 논문출판, 사이언스 논문출판, 그리고 다양한 기술이전들.
그러나 그런 것들과 또 다른, 신약 승인.
그런 신약 승인을 받게 된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지.
김태풍은 아직 그 느낌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마법같은 시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한편, 1999년 2월 11일 목요일.
창밖으로 하얀 눈이 우수수 쏟아지던 날.
일성SD신약 김선호 대표의 형이자, 일성전자 마케팅 담당 전무인 김재호 전무의 사무실에는 무척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흠. 이거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될 것 같습니까?”
날카롭게 들려오고 있는 목소리.
늘씬한 한쪽 다리를 꼰 채, 무척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34살의 나이인 김재호 전무.
그리고 그의 앞에는 40대 초반의 젊은 배창훈 상무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다.
이때, 인상을 팍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고 있는, 날카로운 눈매에 강렬한 눈동자를 가진 김재호 전무.
“흠.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요. 앞으로 2주 뒤. 사장단 회의가 열립니다. 더 싹이 나기 전에, 이맘때 싹둑 자르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자 배창훈 상무는 바로 표정이 굳어지더니, 곧 입을 열고 있다.
“음. 전무님. 이번 합병 건은 회장님께서 직접 관여하시는 일입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움을 달라는 겁니다! 이렇게 마냥 두고 보다간, 제 위치가 나중에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으음. 그래도 전무님.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압니다. 전무님은 일성SD신약 지분을 틀어쥐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배 상무님!!”
그 순간, 갑자기 목소리가 확 달라지고 있는 김재호 전무.
그리고 그의 도드라진 두 눈에서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 상무님은 저희 아버지, 아니 부회장님께서 어떻게 작은아버지들을 제치고, 후계자 위치에 오르게 되셨는지,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네. 으음. 그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젠장, 김선호. 그 자식! 왜 신약 회사를 만들어서 내 머리를 아프게 해! 거기다가 인수합병이라니!”
김재호 전무는 짜증 섞인 어조로 외치다가.
다시 배창훈 상무에게 말했다.
“암튼, 이번에 두 회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 김선호는 확실히 계열사 한 꼭지를 잡게 됩니다. 비록 지분이 저한테 아무리 많다고 해도, 현재 제 위치는 꼴랑 전무 나부랭이에 불과해요. 반면에 그 자식은 계열사 사장이 됩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걸 그냥 두고 보라고요?”
“음.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좀 염려스러운 게… 흠!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버지께 연락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배 사장님께도 말씀드리세요. 제가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네. 그럼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전무님.”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배창훈 상무.
그리고 잠시 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배창훈 상무는 곧바로 자신의 아버지 일성제약 배정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네. 접니다. 네… 네… 네… 이 일은… 네! 그때 말씀드렸던 대로… 네. 네. 네. 그렇게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바로 김재호 전무에게, 배창훈 상무는 전화를 했다.
“네! 전무님! 방금 통화를 마쳤습니다. 네. 네. 네. 일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그대로 움직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김재호 전무에게 보고를 마친 배창훈 상무.
이때, 배창훈 상무는 자신의 얇은 안경테를 만지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으음. 이대로 진행이 된다면, 일성SD신약이 메드TX를 인수하는 데 변동사항이 없어도, 결국 일성SD신약이 일성제약에 합병될 수밖에 없겠지? 그간 일성제약이 일성SD신약 때문에 기형적인 모습이었는데… 결국 이 합병으로, 국내 최고 제약회사로 도약할 기반을 갖추게 될 거야. 또한, 그 과정에서 김선호 대표는 낙마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러나 관건은 김신웅 회장이다.
김신웅 회장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젊은 배창훈 상무.
그래서 그의 머릿속은 자연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김태풍의 회귀 전 과거!
그때 김선호 대표는 이것저것 일들을 많이 벌리기도 했는데.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일이 잦았고.
그 결과, 그는 계속 계열사 한직으로만 맴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좀 다른 점들이 있었다.
그때보다는 좀 더 이른 시기에.
즉, 친형 김재호 전무의 힘이 아직은 약한 이 시기에.
김선호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김선호 대표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게 된 김신웅 회장!
그래서 김신웅 회장이.
그런 김선호 대표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앞으로 좀 더 두고 볼 일이었다.
##
그리고 한편.
메드TX에서 새롭게 회사 생활을 이어가게 된 김태풍.
그는 어느덧 1999년 2월, 설 연휴를 끝낸 뒤.
서정철 사장의 동의를 받고서, 이제 군입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물론, 제대로 된 군입대는 아니었다.
현재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신분이기 때문에.
병역법 규정에 따라, 김태풍은 앞으로 4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게 되는 것.
그래서 그는 이제 논산훈련소 입소를 코앞으로 앞두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