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무조건 원샷입니다
<25> 4주 군사 훈련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김 소장님. 뭐, 조만간 일을 다시 같이하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하얀 김이 사르르 올라오고 있는 따뜻한 커피.
이 커피를 같이 마시며, 김태풍은 김선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인수자금은 대략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겁니까?”
“음. 그 부분이 상당히 복잡하긴 합니다. 우선, 그룹 내부 결정은, 지분 25% 확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시세보다 좀 낮게 잡더라도, 잠정적으로 7,000억 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메드TX의 규모가 커져 버렸다.
현재, 임상시험 2상 혹은 3상을 진행 중인 신약후보 물질만 해도.
벌써 4종을 넘어서고 있는 메드TX.
거기다가 대형 블록버스커급 약물 후보들도 이 대상에 포함되고 있었다.
물론 주가라는 것은 단순 매출만 반영되는 게 아니다.
투자자들의 강력한 기대심리.
그리고 사회적 변화와 요구들.
이런 것들까지 몽땅 다 반영되다 보니.
김태풍의 회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메드TX의 시총 규모는 엄청나게 커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더 늦기 전에, 김 소장님께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 김 소장님 덕분에, 우리 회사 신약 프로젝트들이… 정말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어, 무척 감사할 뿐입니다. 뭐, 제 판단으로도 이미 2건 정도! 곧 임상시험 후보군으로 도출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하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뭐, 별말씀을요. 저야 뭐, 소장으로서 꼭 해야 할 일들을 했던 것뿐입니다.”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뭐, 올 하반기쯤에 다시 뵙게 되겠지만… 그래도 중간 정리하는 셈 치고! 하하. 이 말씀도 꼭 드리고 싶은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조합들이 아주 좋습니다. 자체 개발 5건, 라이센스인 5건. 총 10건! 하하. 회사가 아주 활발해져서 무척 좋습니다.”
김선호 대표는 김태풍에게 대만족이었다.
김태풍이 직접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새로운 신약 개발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놀라울 정도로 실적들을 도출했다.
그는 연구소 시스템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그런 행정 조치들의 결과로.
아주 값진 10건의 프로젝트들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김태풍에게서 획기적인 신약 아이디어를 기대하고서 그에게 연구소를 맡겼던 김선호 대표.
그러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김선호 대표는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조직 구조 개선.
연구 시스템 개선.
이런 것들은 결코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 일성SD신약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근데 언제 회사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네?”
“조직 장악력부터 시작해서, 하하! 연구소 경영 업무까지…. 그 모든 것들을 무척 잘하시더군요?”
김선호 대표가 그렇게 호기심을 품을 만큼, 김태풍의 역량은 무척 뛰어났다.
사실, 회귀 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품었던 생각들을, 김태풍은 이제야 풀어내게 된 것인데.
그래서 좀 더 능숙하게 여러 일들을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김태풍은 지금 김선호 대표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자 절로 마음이 즐거워져 속으로 웃었지만.
그러나 겉으로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거야 뭐… 제 생각과 좀 잘 맞아떨어져서, 제가 좀 운이 좋았던 겁니다. 하하. 뭐, 별다를 건 없습니다.”
“아닙니다. 역시 천재는 뭘 해도, 정말 남다르군요. 하하.”
그러면서 한껏 미소를 짓던 김선호 대표.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을 바꾸며, 다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메드TX와 합병을 하게 되면, 회사 조직 체계를 약간 바꾸어볼 생각입니다.”
“네?”
“사실, 저는 김 소장님의 직급 부분이 좀 안타까운데, 김 소장님은 한동안 병역특례 문제 때문에 임원급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네.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 생각인데… 향후 합병이 되면, 동일하게 이사대우급으로 처우를 하되… 대신에 김 소장님의 혁신신약 연구소만큼은, 따로 조직에서 떼어놓을 생각입니다. 즉, 혁신신약 연구소는 대표 직속으로 두고서, 그런 식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김태풍의 위에 자신을 제외하고는 따로 누군가를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즉, 메드TX와 합쳐지게 되면, 회사 규모가 자연스레 더 커질 거고.
좀 더 복잡한 조직이 형성될 것인데.
이때, 김태풍의 위쪽 지휘 체계에 임원급 담당자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여서.
이것은 김태풍으로서는 무척 고마운 말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리고 또 있습니다. 아마 김 소장님이 향후 메드TX에서 받게 될 스톡옵션. 하하. 그 부분도 합병 사실과 무관하게 변동없이 그대로 진행이 될 겁니다.”
그 말에 흠칫 놀라고 있는 김태풍.
사실, 자신은 그 이야기를 김선호 대표에게 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 사실까지 김선호 대표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곧 약혼녀 서희선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선호 대표.
결국, 서정철 사장과는 사돈 관계, 즉 친인척 관계가 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두 회사 간의 인수합병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김선호 대표도 자연스레 그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이어지고 있는 김선호 대표의 말.
“뭐, 사실, 지금에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지분과 스톡옵션 건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좀 많이 답답했습니다. 이렇게라도 김 소장님께 혜택이 간다면, 저로서는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표님! 저도 그룹 사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계속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 뭐,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까,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서정철 사장님께, 따로 한 가지 부탁 말씀을 드렸는데….”
“네?”
“아마 이직을 하시게 되면, 이사대우 부서 실장이 아니라, 아마도 이사대우 연구소장으로, 직책 변화가 있을 겁니다.”
“네? 그 말씀은?”
“하하. 적어도 누가 봐도 현재 기준에선, 일성SD신약이 대기업 연구소가 아닙니까?”
“네. 그건 맞습니다만?”
“그런데 이곳 연구소장님이 메드TX 실장급으로 가게 된다면, 남들 보기에도 절대 좋지가 않습니다. 특히, 연구소장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실적도 많이 내셨는데, 메드TX에 가신다고 해도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정철 사장님도 바로 동의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김선호 대표의 적극적인 요청 덕분에.
김태풍의 메드TX 내 직책에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미 연구소장을 했던 자신.
그런 자신이 메드TX 내에서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게.
무척 답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이 바로 사라지자.
김태풍은 무척 기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실, 자신은 저번 국제유가 콜 옵션 투자 성공으로.
순식간에 2조 원대의 거부가 되긴 했지만.
그런 재력과 상관없이.
사회에서의 위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병역특례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괜찮은 대우까지 받으면서.
병역특례를 마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을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요즘 들어 웃음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김태풍.
그렇게 김선호 대표와의 면담을 마친 뒤.
그는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일성SD신약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대표 면담까지 막 마쳤으니.
이제부터 짐을 챙겨야 했고.
또한, 몇 가지 결제건만 처리하면.
오늘 사무도 바로 끝날 것이다.
물론, 인사팀 직원이 조만간 찾아오면, 퇴사 관련 서류들을 작성해야 할 것인데.
그것 역시 그리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근데, 소장님. 정말 회사를 옮기셔야 해요? 전 너무 아쉬운데….”
아리따운 강지연 비서.
그녀는 마지막 결재서류들을 김태풍에게 건넨 뒤.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쓱쓱.
이미 내용들을 알고 있던 문건들이라.
순식간에 사인을 마친 김태풍.
“강 비서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제 퇴사는 뭐, 이미 결정한 일이라, 번복하는 것은 힘들고. 참, 이거.”
이때, 김태풍은 책상 옆에 뒀던, 선물이 든 종이백을 그녀에게 건넸다.
흠칫 놀라며 그걸 받는 강 비서.
“소장님. 이건?”
“크게 비싼 건 아닙니다. 한방 화장품 세트인데, 혹시 안 쓰던 브랜드이면, 어머님께 드려도 될 겁니다.”
“어머? 이거 정말 비싼 건데, 와.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리고 팀장님들한테도, 전화를 좀 돌려주시겠습니까? 차례로 뵙고 싶습니다.”
“네. 소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김태풍이 일성SD신약을 떠난다고 해서, 그냥 떠나는 게 아니다.
조만간 합병이 되면, 다시 만날 사람들.
물론, 이 합병 건은 회사 내 최고 기밀 중의 하나인 상태다.
그래서 아직 팀장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편, 김태풍은 이 상황을 조금 이용할 생각이었다.
즉, 그냥 차가운 모습으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들한테 한층 더 유해질 수밖에 없는 회사원의 심리.
그런 심리를 그들과의 인간관계에 자연스레 반영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야. 야! 빨리 폭탄주 말아! 소장니-임! 무조건 원샷입니다!!”
“워와!! 소장님을, 위하여!!”
무척 떠들썩한 송별 회식이 이어졌는데.
김태풍은 팀장급, 부팀장급 직원들에게 자신이 준비해서 가져온 선물들을 주었고.
한편, 소주 두 병을 잇달아 마신 신약연구1팀 장준혁 팀장은.
비로소 자신의 속내까지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소장님! 이거 참!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지. 쩝! 이젠 진짜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때, 그러니까… 소장님이 회사에 오실 때… 제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새로운 돌이 들어오면, 있던 돌들이 튕겨 나가는 게, 세상 이치가 아닙니까?”
그리고 또 이어지는 장준현 팀장의 말.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까놓고 말하면 회사 노예가 아닙니까? 집에 있는 처자식들. 어떡하든 먹여 살려야 하고, 또 어떡하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죠! 제 나이가 적은 편도 아닌데, 다른 데 이직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제가 그때 정말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그렇게 마음을 열어주자.
김태풍은 좀 더 진솔하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그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숙취 때문에.
다소 부스스하게 변한 김태풍.
그는 드디어 메드TX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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