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미래를 아는 투자자
“근데, 소장님.”
“네?”
“그 여배우와… 좀 친하신 모양입니다?”
“네? 아, 그게….”
“제가 좀 멀리서 본 건데도… 정말 엄청난 미인이던데요?”
공항에서 막 나오던 중, 차량 운전기사가 슬쩍 입을 열고 있다.
그 바람에 어색하게 웃던 김태풍.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을 바꾼다.
“아. 그것보다 기사님. 갑자기 목적지를 좀 바꿔야겠습니다. 회사로 바로 갈 게 아니라, 식약청으로 잠시 가시죠.”
“네? 식약청요?”
“네.”
“아,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쪽으로 바로 방향을 틀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 9시쯤 갑자기 받은 연락.
식약청 고위공무원인 박성태 국장(부이사관급)으로부터 받은 전화.
그게 김태풍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식약청에서 난데없이 신약 임상시험과 관련하여.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그 민간자문위원회 구성 작업을 도와달라며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바로 박성태 국장.
아무래도 김태풍이 청와대에서 했던 말들이.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김태풍은 바로 그 요청에 응했는데.
그러자 박성태 국장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최대한 빨리 식약청 담당 김 과장을 만나봐 달라는 부탁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음. 이런 일들은 바로바로 해결해 주는 게 가장 좋아. 그리고 이런 명목으로, 식약청 공무원들과 두루두루 안면을 터놓으면… 언제든 이쪽 일에 큰 도움이 될 거고.’
어쨌든 신약의 임상시험 신청에서부터 그 승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에 대해서.
식약청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태풍은 식약청 서울청사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50대 초반의 김태식 과장을 만나.
좀 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2시간가량 논의를 했다.
그리고 이후,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한담도 나누게 되었는데….
“그럼 김 과장님은 은퇴 걱정이 전혀 없으시다는 말씀이군요?”
“하하하. 뭐 그렇습니다. 제 와이프도 약사이고, 저도 약사 출신입니다. 와이프는 일산에서 대형약국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페이약사만 다섯 명이나 쓰고 있습니다. 하하. 제가 여기서 버는 돈은, 그냥 제 용돈 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서 무척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태식 과장.
그러고 보면, 약국은 그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 그 수익은 천차만별이다.
김태풍은 화학과 출신이지만, 신약 개발을 주로 하다 보니.
회귀 전, 여러 약사 출신 연구원들을 많이 만나봤고.
그래서 약국 운영이라든지, 약국 수익이라든지, 약사의 비전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두루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페이약사만 다섯 명이나 쓰는 대형약국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 정도로 벌이가 아주 대단한 모양이었다.
“와! 은퇴 걱정이 전혀 없으시다니, 많이 부럽습니다. 김 과장님.”
“하하. 김 소장님은 이렇게 젊은데, 벌써 대기업 연구소 소장이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앞으로 저희보다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식약청 김태식 과장.
그는 경제적으로 무척 풍요로운 탓인지, 자연스레 인심도 많이 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물론, 돈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닐 테지만.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돈이 충분히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일인 것 같았다.
어쨌든 김태식 과장과의 협의를 마친 뒤.
김태풍은 마침 시간이 되어, 식약청 박성태 국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그 일을 마친 뒤.
김태풍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는데.
그리고 그 후, 회사 일에 한동안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 9월, 10월이 지나갔고.
어느덧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 11월을 김태풍은 맞이하게 되었다.
<24> 거부가 되는 길
한편, 1998년 9월 중순.
드디어 Relian Medical Corporation는 한국에 브랜치(branch: 지부)를 출범하면서 한국 진출을 공식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설립하게 된 한국릴리언메디컬.
이곳은 Relian Medical Corporation의 CTO인 송정민 박사의 친동생인 송정식씨가 대표를 맡게 되었는데.
그는 이 브랜치 회사 지분 40%를 갖고서.
이 회사 경영을 주도하게 된 상태였다.
한편, 미국 송정민 박사의 부탁을 받게 된 김태풍.
그래서 그는 송정식 대표를 한국릴리언메디컬 서울 본사에서 만나게 되었고.
이날, 한국릴리언메디컬의 사업 비전과 향후 발전 방향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미팅이 어느덧 끝날 무렵.
김태풍은 송정식 대표로부터, 무척 흥미로운 투자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뭐, 우리 형님(송정민 박사)은 점잖은 연구·개발자이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요.”
그렇게 자신에 관한 과거 경력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송정식 대표.
“뭐, 속된 말로 하면, 일확천금을 노렸던 도박꾼이었죠. 하하하! 원래 내 직업은 작년까지 투자사 대표였습니다.”
그 말에 김태풍은 바로 흥미를 보였는데.
송정식 대표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간 주식 투자 외에도… 원유 선물 상품, 주가지수 파생상품, 선물환·옵션 거래 등으로 아주 짭짤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사실, 김태풍은 신영벤처투자 회사의 직원인 강길남 선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투자사 관련 인물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저 송정식 대표는 뼛속부터 투자맨이었고.
다양한 투자기법들에도 아주 밝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한국릴리언메디컬의 대표가 되었다?
결국, 송정민 박사의 친동생이라는 점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물론, 한국릴리언메디컬의 설립 목적은 국내 연구개발 사업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었고.
주 업무는 미국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서 만든 의료·진단 상품들을 아시아권에 공급하는 역할이었다.
추가로, 한국, 일본 등지에서 진행하게 될 임상시험들을 보조할 수 있는 기능.
그런 기능들을 맡고있는 터라.
한국릴리언메디컬 대표에게.
큰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그러고 보면.
이 한국릴리언메디컬이 2000년대 초중반.
의약·바이오 기업 분야에서.
주가폭등을 주도하게 되는 이면에는.
어쩌면, 저 송정식 대표의 오랜 투자 노하우가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다행히, 김 박사님도 투자 쪽에 관심이 무척 큰 가 봅니다? 그럼 좀 더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혹시 선물환 투자 쪽에 대해서 들어봤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선물환거래라는 것은, 미래의 일정일 혹은 미래의 일정 기간 내에, 특정 통화를 일정 환율로 매매할 것을 미리 약속하는 거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걸 간단히 살펴보면, 현재 환율이 달러당 120엔이라고 가정할 때.
현재의 시점에서 1주일 뒤, 달러당 120엔에 매매하기로 약속한다면.
실제 엔화환율이 120엔보다 떨어지게 되면, 자신은 바로 이익을 보게 되는 상황이 되고.
반면, 120엔보다 더 올라 140엔이 되었다면, 그냥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된다.
즉, 엔화를 가지고 거래를 하는 당사자가.
1달러 구입에 120엔을 쓸 것을.
1달러 구입에 140엔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큰 손해가 생기는 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점은, 어찌 되었든 국가 환율변동이 자신한테 유리한 쪽으로 변하는 순간.
쏠쏠한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중반.
한국은행들 사이에서는 이런 환투기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1989년도인가, 아니면 1990년도인가… 그때 한 지방은행이 이 선물환거래를 크게 벌였다가… 갑자기 큰 피해를 본 적이 있어요. 이것도 투자라서 말입니다! 이익을 술술 내다가도 한순간 다 말아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기만 잘 조율한다면, 큰 리스크도 없이 제대로 한몫 챙기고 나올 수 있죠. 뭐, 이런 투자를 세상에서 가장 잘 하는 데가, 아마 들어봤을 겁니다. 퀀텀펀드(Quantum Fund)라고. 그런 헤지펀드들 쪽입니다.”
“아!”
김태풍은 모처럼 각종 투자들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자,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가지수 파생상품들도 있는데… 혹시 들어봤습니까?”
그러면서 송정식 대표는 각종 주가지수 파생상품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특히, 미국 다우존스 지수 파생상품들과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 지수 관련 파생상품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는 한 가지 예를 들기도 했다.
이른바, 1989년도에 발생한 미국 주가 대폭락 사건.
“그러니까 대략 9년 전, 1989년 10월 13일 금요일일 겁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만. 그런데 바로 이날, 남들이 피눈물을 흘릴 때, 큰 수익을 본 인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989년 10월 13일 금요일.
당시, 미국증시는 무섭게 무너졌다.
이날의 주가 하락 폭은 미국 주식 시장 역사상 두 번째로 큰 낙폭이었는데.
다우존스 지수가 이날 하루 만에 6.91%의 하락하게 되고.
당시, 스탠더드 앤 푸어스(S&P)500지수는 21.74포인트 하락하여 333.65포인트를 기록하게 된다.
대략 6.12%의 하락 폭.
일명 블랙 먼데이 사건으로 일컬어지게 되는 1987년 10월 19일의 주가 대폭락 사건 이후, 처음으로 겪게 되는 최대 낙폭의 재난이었다.
“그때, 친한 친구 녀석 하나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 전에 주가지수 풋옵션 상품 쪽에 돈을 넣었더군요. 그날 그게 대박이 터졌어요! 그 때문에 대략 50배가량 수익율을 냈는데, 아마 180억 원가량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 투자라는 게 참 냉혹하죠?”
그로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다 듣게 된 김태풍.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현재까지 다소 순진한 투자자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주식 투자도 상당한 수익률을 담보하지만.
그럼에도 더 무시무시한 수익 비율을 가진 곳은 바로 파생상품 쪽이다.
비록 원금 상실이라는 리스크가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주식 투자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파생상품 쪽 투자.
그러고 보면, 미래를 아는 자신이 단순히 주식 투자에만 매달린 것은 어쩌면 무척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음. 그래. 지금껏 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파생상품 투자 쪽만큼이나 대단하긴 하지만. 문제는 내가 만지게 되는 돈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이제 단순히 주식 투자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투자 폭을 넓힐 필요도 있어.’
그래서 김태풍은 송정식 대표와의 만남 이후.
이때부터 파생상품 쪽 관련 투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1998년 11월을 맞이하여.
회사 일도 열심히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김태풍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떠올린 덕분에.
김태풍은 최근에 벌어질.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 아마 이 무렵, 국제유가! 그게 역사적인 최저점을 찍게 될 거야. 물론 그 뒤로는 무조건 상승 곡선을 타게 될 거고….’
이른바 유가 최저가 시대가 곧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