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63화 (63/153)

79-우선은 친구처럼

“음. 아직 진행까진 말하기 힘들고, 이제 시작입니다.”

“네?”

“그저 양측 의사만 대략 확인한 겁니다. 이제 점진적으로 미팅을 통해서, 세세한 일들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뭐, 제가 고심 끝에, 이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게 됐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신약개발회사를 만들려는 게 최종 목적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수자금도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 말에 김태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드TX의 덩치는 이미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성SD신약의 구조가 그룹 부속 연구소라는 타이틀과 벤처 기업이라는 특성이 한데 뒤섞여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곧 조정이 될 겁니다.”

그 말인즉, 현재 애매한 노선을 밟고 있는 일성SD신약.

그러나 앞으로 메드TX와 합병을 하게 되면.

대기업 연구소라는 타이틀을 버린다는 말이었다.

우선은 중소기업으로 그 위치가 떨어지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독립적인 계열사 한 꼭지를 가져가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지분 변동도 생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걸 바로 감지한 김태풍.

김태풍의 두 눈은 이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선호 대표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던 김신웅 회장의 언급.

그건 단순히 자신의 신약 기술을 사는 선에서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번 인수합병까지 그가 고려하고 있다는 말.

‘그럼 주가는?’

그 순간,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훗날, 이 인수합병 사실이 세간에 흘러나가게 된다면.

대단한 주가폭등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특히, 일성SD신약이 그룹 부속에서 완전히 분리가 되어.

순수한 벤처 형태로 메드TX와 합병이 된다면.

이때, 곧바로 우회상장도 가능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신약 개발 건과 관련하여, 수많은 호재들이 앞으로 터질 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합병 회사의 주식은 순식간에 백만 원대 고지까지 밟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른바 대박 중의 초대박!

그런 것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1998년 9월 8일 화요일 점심 무렵.

김태풍은 코니 교수가 숙박하고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거기서 코니 교수, 새뮤얼 왓슨 교수, 케이트 코니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한담을 나눈 김태풍.

그들은 지난 토요일, 한국에 도착한 이후.

일요일, 월요일, 양일간 무척 바빴고.

이제 오늘 오후 4시 혹은 오후 6시 비행기로.

각각 일본 혹은 미국으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이때, 코니 교수와 새뮤얼 왓슨 교수는 비행거리가 가까운 일본으로 향하게 될 거고.

케이트 코니는 바쁜 스케쥴 때문에 곧장 미국 LA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한편, 호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을 다 먹은 그들은 이제 공항으로 향했는데….

“하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우리 다음에는 내년 가을, 국제학회가 열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또 봅시다. 아주 유쾌한 한국 여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코니 교수와 새뮤얼 왓슨 교수.

그들은 비행기 시간에 맞춰 출국 절차를 밟아야 해서.

좀 더 일찍 그들은 김태풍과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럼 전화상으로 계속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그렇게 그들을 먼저 보낸 뒤.

이제 김태풍은 케이트 코니와 함께.

공항 내 퍼스트클래스 라운지에서 조촐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현재, 케이트 코니의 비행기 탑승시각은.

좀 더 남아 있었고.

그래서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김태풍은 이때.

자신이 미리 준비해 왔던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다.

“제가 기념으로 선물 하나 가져왔는데… 받아주시겠어요?”

“네?”

그러면서 김태풍은 그녀에게 이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주었고.

놀라며 그것을 받다가, 그녀는 바로 입을 열고 있다.

“아~ 제가 지금 바로 풀어봐도 될까요?”

“네.”

웃으며 김태풍이 대답하자.

케이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선물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현재, 그녀는 하얀 쇄골이 드러나고 있는, 와인색 계통의 통 넓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풀어 헤쳐진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과 이 와인빛 셔츠는 무척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한편, 쫙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

자신의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려 쓰고 있는 모습인데.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망울은 온통 김태풍의 선물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눈앞에 드러난 선물.

그것은 바로 아주 반짝이는 시계였다.

“이건?”

그리고 곧 시계의 가치를 알아보게 된 케이트.

“이거 Blancpain(블랑팡) 시계가 아닌가요?”

“아, 네. 맞습니다.”

그 순간.

“어머!”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케이트.

상당한 명품 브랜드인 Blancpain(블랑팡) 시계.

사실, 이 Blancpain(블랑팡) 시계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바로 프랑스 신교도들의 스위스 이주와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프랑스 신교도들은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이주했고.

스위스 쥬라 산맥 기슭, 빌레레 마을에 정착하면서.

그때부터 그들은 이 시계 제작에 나서게 된 것이다.

지금 김태풍이 케이트에게 선물한 블랑팡 시계.

이것은 대략 5천만 원 정도가 되는 고가의 시계였는데.

심플한 구조에 착용감도 아주 좋은.

여성용 백금 시계였다.

특히, 시계 원 안으로 작은 백금빛 시계태엽들이 보이는데.

그로 인해서 좀 기묘하면서도.

또한, 은은한 기품까지 느껴지는.

과연 명품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계는 아주 고가인 데다가 디자인도 제법 이쁜 터라.

시중에서는 무척 구하기가 힘든데.

김태풍은 저번에 만났던, 일성백화점 VIP 컨시어지(Concierge)팀 정혜진 과장한테 직접 연락을 했고.

그리고 아주 운 좋게, 이쪽 Blancpain(블랑팡) 시계를 현금을 주고 사게 된 것이었다.

이때, 김태풍은 자신의 손목시계 외에도.

부모님께 드릴 손목시계도 같이 구매를 하게 되었고.

비록 상당한 현금 출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와. 이거 너무 이쁘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환하게 웃으며, 바로 자신의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는 케이트.

그녀가 그렇게 기뻐하자, 김태풍의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가고 있다.

“근데, 전 선물을 전혀 준비 못 했는데, 어떡하죠? 한국에서 이것저것 도움만 많이 받았는데….”

이내 케이트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러나 김태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제가 다음에 LA에 가게 되면, 그때 절 위해 저녁 식사를 사주실 수 있습니까?”

“저녁 식사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데?”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어머. 그럼 알았어요. 제가 LA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으로 데려갈게요.”

그렇게 바로 다음 약속(?)을 은근히 잡게 된 김태풍.

입꼬리가 더 올라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으며 김태풍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하. 케이트. 그럼 제가 저번에 받은 연락처로, 앞으로 연락을 해도 될까요?”

원래 김태풍은 그 다음 말도 이어서 하려고 했지만.

중간에 갑자기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데.

기술이전, 논문 발표, 연구소장 등등.

이런저런 일들로 자신감이 부쩍 올라간 그.

그래서 그는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그 뒷말도 그대로 삼켜버린 것이다.

사실, 김태풍이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부담스럽다면, 제가 다음에, LA에 가게 되면… 그때 연락을… 드릴게요.’

바로 이런 말이었는데.

이건 케이트를 배려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대목에서, ‘부담’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어쩌면 상대방도.

즉, 본능적으로 마음속에 ‘부담감’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었다.

옛날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내뱉는 말은 그 자체가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행히 김태풍은 지금.

좀 더 밝은 인상과 좀 더 밝은 말투로 그녀에게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은 케이트에게도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었다.

“네.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이때,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케이트의 대답.

김태풍의 그 자연스러움이.

케이트로부터 그런 자연스러운 대답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또한, 아주 반짝이는 눈으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는 케이트.

그런 케이트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선에.

김태풍이 잠시 정신이 먹먹해질 정도였으나.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김태풍은 웃으며 대꾸했다.

“귀찮게 안 할게요. 친구처럼.”

“네… 친구처럼.”

김태풍의 그 말들은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 부드럽게 각인되고 있는 듯했는데.

그렇게 그는 아주 좋은 인상들을 그녀에게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덕분일까.

케이트는 김태풍의 존재가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듯한 그런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남짓.

두 사람은 한 번씩 환하게 웃으며.

이것저것 사소한 대화들을 이어 나갔는데….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그녀의 수행원들.

그들은 약간 묘해진 눈초리로.

김태풍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피식피식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 그 즐거웠던 시간은 순식간에 끝이 나버렸는데.

드디어 김태풍은 케이트와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특히, 케이트의 주도로 그들은 가볍게 포옹을 했고.

또한, 포옹하는 자세 그대로 가볍게 뺨을 맞댄 두 사람.

그리고 케이트는 김태풍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죠.”

“네. 케이트. 조심해서 가세요.”

그렇게 케이트가 보안검색대 쪽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김태풍은 여간 아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툴툴 웃으며 등을 돌렸는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김태풍은 흠칫 놀라고 만다.

웅성웅성.

어느새 주변으로 밀집해 있는 사람들.

케이트 코니를 알아보고서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비록 퍼스트클래스 라운지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조금 전, 김태풍과 나눈.

그 작별 인사 모습을 여과없이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

지금 그들은 눈이 동그래진 모습으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김태풍!

그는 얼른 몸을 돌리며,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보니, 케이트 코니.

그녀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

‘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설마 사진은 안 찍혔겠지? 설마?’

뒤늦게 신경이 계속 쓰이고 있는 김태풍.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니.

자신과 작별 인사를 한 케이트.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은?

그러고 보면, 이렇게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은 좀 더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결국, 쓸데없는 걱정을 훌훌 떨쳐내기로 마음먹은 김태풍.

‘그래. 그냥 미국식 인사였어.’

그렇게 생각하고.

김태풍은 이제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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