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청와대 방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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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6일 일요일 점심 무렵.
전날 억수 같이 쏟아졌던 비 덕분인지.
유난히 화창한 초가을 날씨 속에서.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의 청와대 방문은 기분 좋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노벨상 수상자와의 오찬 및 국내 과학자 간담회 행사들은.
그 행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더 이른 오전 9시부터.
예행연습이 진행되게 되었다.
즉, 청와대 의전담당자들은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서별관(西別館)에, 코니 교수를 제외한 20여 명의 과학자들을 미리 집결시켰고.
거기서 그들은 대통령과의 악수 요령, 청와대 내 이동 경로 및 특별 주의사항, 그리고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말들에 대해서.
사전 교육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런 사전 교육 대상에 김태풍도 포함되었는데.
이 교육을 위해 참석한 사람들 대다수는.
주로 원로 과학자들이었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명망이 높은 대학교수.
그리고 대기업 연구소 임원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이런 사전 교육의 핵심은.
국가수반인 대통령에게 돌발적인 질문과 건의를 하는 것을 피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특히,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의견을 아주 효율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숙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자신이 각자 준비한 의견들을, 대략 십여 번가량 의전 담당자 앞에서 시연해 보였는데.
코니 교수의 가장 지척에서 수행하게 될 김태풍 역시 이런 예행연습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오케이! 딱 1분. 딱 맞췄습니다. 하하. 아주 잘 하시네요. 다른 분들보다 더 젊어서 그런지, 순발력이 좋군요.”
김태풍을 담당했던 행정관.
그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원로 과학자들.
그들은 발언 시간을 딱 1, 2분 내로 맞추는 게 영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수다스러운 원로 과학자들한테 대통령이 중간에 붙잡혀서.
대통령이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데 혹시라도 지장이 생긴다면, 그건 의전 담당자들에겐 무척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리 방지하려는 게.
바로 의전 담당자들의 몫일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연습을 마친 이들.
이들은 이제 의전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내부로 이동했고.
잠시 후,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코니 교수와 합류했다.
그리고 한편, 이날.
청와대는 어느덧 오후 3시쯤이 되자.
공식적인 브리핑 자료를 내면서.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와의 오찬 행사 및 과학진흥에 관한 간담회 개최 결과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고.
또한, 간단한 논평 자료를 내기도 했다.
특히, 이날 청와대 오찬 행사와 간담회 행사장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기사를 작성해서.
신문사에 송고했는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각 신문마다 활자화된 기사들 중에는.
젊은 참석자, 즉 일성SD신약 연구소장 김태풍에 관한 기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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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서 김 소장이 노벨상 수상자와도 대단한 친분이 있다, 그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노벨상 수상자 코니 교수와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모양입니다.”
“음.”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청와대 최 비서관의 말을 들어보니까, 코니 교수의 요청에 따라 김 소장이 참석자로 포함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날 개별 의견 발표 자리에서, 대통령께 대한민국 미래 과학발전을 위해서라도, 전문연구요원 제도와 그 처우에 대한 개선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음. 전문연구요원 제도?”
“네. 현재 김태풍 연구소장은… 병역특례 과정에 있고, 일성SD신약에 전문연구요원으로서 입사했던 겁니다.”
“그래. 그 이야기는 내가 언젠가 한 번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럼 자신의 상황에 맞춰,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발언을 했다, 그 말인가?”
“네. 회장님. 그런데 김 소장의 위치에서 볼 때, 어쩌면 합당한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 김 소장은 코니 교수의 수행진으로 그곳에 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청년 과학자 대표 격으로 참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즉,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그런 의견을 낼 수밖에 없을 거고. 또한, 그 발언은 청와대 의전 쪽에서 미리 조율을 했을 겁니다.”
“음. 특별한 게 아니니까, 대통령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였겠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쯧쯧. 대통령께 건의할 기회가 그리 흔치 않은데, 그런 좋은 기회를 헛되게 날려버렸군.”
그렇게 김태풍을 단순히 평가절하하려던 김신웅 회장.
그런데 이어지는 최혁수 실장의 말에 그는 흠칫 놀라고 만다.
“다만, 그게… 오찬이 끝난 뒤, 대통령께서 코니 교수와 10분가량 산책을 하셨다고 합니다.”
“음. 10분씩이나? 좀 의외로군.”
“아마도 대통령께서, 코니 교수가 설립한 과학 재단 형태에 대해서 관심이 무척 크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 비서관을 통해서 그때 있었던 일도 들었는데, 이때 김태풍 연구소장이… 음! 대통령에게 뜻밖의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뭐? 대통령께 건의를? 또 말인가?”
“네.”
“무슨 건의?”
“이건 비공식적인 것인데… 이 산책에 같이 참여했던 김동걸 수석비서관의 특별한 도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동걸 수석?”
“네.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권 실세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이때, 신약 개발과 관련하여 국가 프로젝트 입안과 임상시험 절차 간소화 부분에서, 몇 가지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으음. 내용은?”
“회장님. 근데 최 비서관으로부터, 대략적인 내용만 전해 들었습니다.”
“음. 아는 만큼만 빨리 말해.”
“네. 회장님. 제가 들은 바로는… 즉, 신약 개발 시, 국가가 기업에 임상시험 비용을 적극적으로 보조해 주고, 이를 다시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런 국가 단위 제약산업 활성화 프로젝트 도입을 건의했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IT 쪽으로 몰리고 있는 정부의 관심을 좀 더 타 분야까지 넓혀… 제약·바이오 쪽까지 확대해 달라는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시 더 있나?”
“네! 제약·의료계의 리베이트 관행. 이 관행을 철폐하는 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대통령께서는 이때만큼은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으음. 이거 정말 뜻밖이군!”
“네?”
“정말 뜻밖이야. 내가 그때, 그 녀석이 일성전자 지분을 요구할 때, 그때부터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묘한 흥미가 생기는 녀석이군.”
사실, 김신웅 회장은 김태풍의 ‘전문연구요원 제도’ 관련 건의에 대해서는 아주 낮게 평가했는데.
그러나 그 다음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자.
저절로 김태풍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흠. 그러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싱거운 이야기로 끝내고, 진짜 이야기는 산책하면서 했다? 핫핫. 이거 다시 생각해 봐도, 무척 흥미로워.”
그렇게 독백하던 김신웅 회장.
곧이어 그는 최혁수 실장에 당부했다.
“앞으로 유심히 지켜봐! 그 친구와 관련된 거. 그 어떤 거라도 상관없으니까, 뭐든 변화가 있다면 나한테 꼭 알려주고.”
“네. 회장님.”
“근데 그러고 보면 말이야. 그 친구는 이미 김동걸 수석과 친분이 있다, 그 말이지?”
그렇듯 김신웅 회장은 김태풍에 대해서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어떻게 김태풍의 면면을 평가해야 옳은 것인지.
그것이 좀 더 알쏭달쏭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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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
월요일 아침.
김태풍은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했는데.
이때, 강지연 비서로부터 아침 인사와 함께.
김선호 대표의 호출 사실을 전해 받았다.
“소장님. 대표님께서 지금 찾으십니다.”
그래서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나온 김태풍.
그는 그 길로 김선호 대표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이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신문을 유심히 보고 있던 김선호 대표.
그는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김 소장님. 어서 오세요. 하하! 참! 오늘자 이 신문들을 보니까, 어제 아주 대단한 일을 하셨더군요.”
김선호 대표가 보고 있는 신문에는 어제 청와대 오찬 행사 관련 기사들이 있었고.
그 아래 작은 단락의 기사에는.
이번 청와대 오찬 행사에 참석한 젊은 과학자 김태풍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다시 말해서, 최연소 연구소장이자.
한국 신약 개발 붐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과학자들 중의 한 명인 김태풍!
이런 젊은 과학자 김태풍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인 전망이 듬뿍 담긴 기사였는데.
한편으로는 현행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문제점들.
이런 것들도 쭉 기술되어 있었다.
“아닙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제대로 건의도 못했습니다. 근데, 대표님. 어떤 일로 절 부르셨습니까?”
“아. 잠깐 앉으시죠.”
김선호 대표의 집무 데스크 앞쪽.
그 소파에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된 두 사람.
그리고 김선호 대표는 이때부터 자신이 김태풍을 부른 이유에 관해서 설명했다.
“아침에 회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하하. 근데, 대체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김태풍 소장님과 앞으로 최대한 친하게 지내라고 하시더군요.”
“네?”
“하하. 제 생각에는, 다행히 회장님께서 김 소장님이 무척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그러나 김태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곧 이어지고 있는 김선호 대표의 다음 말.
“뭐, 그건 그냥 잡설이고… 사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현재, 회사 차원에서 극비리에 진행 중인 사안이 있는데, 저는 그것에 대해서 김 소장님의 의견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김선호 대표는 드디어 진짜 목적을 설명했다.
“물론 그 전에, 아주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드디어 회장님으로부터 최종 허락도 받았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김신웅 회장의 허락이 필요한 일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저기, 김 소장님. 혹시…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성SD신약과 메드TX의 합병을,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두 눈이 커지고 있는 김태풍.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네? 지금 합병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아… 그럼 혹시, 합병 시기가?”
“뭐, 우선은… 내년 하반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쉬며, 크게 안도해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나중에 메드TX로 넘어가, 거기서 스톡옵션을 받을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두 회사가 일찍 합병해 버린다면.
예정된 스톡옵션 건은 무척 복잡해져 버린다.
다행히 합병 시기는 뒤로 미루어진 상황이었고.
그래서 안도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한 호기심이 생기게 된 김태풍.
“그럼 현재 진행은 어느 정도까지 된 겁니까?”
김태풍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