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청와대 방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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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근데 이거 어떡하지? 생각해 보니까, 내가 뭘 안내할 수도 없을 텐데? 난 백화점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데.’
사실, 연구에 미친 김태풍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백화점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다.
옷을 살 때도 대충 눈으로 한번 보고, 대략 한 번 정도 입어보면 그걸로 그냥 오케이다.
그런 김태풍에게 백화점은 무척 어려운 곳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케이트의 옆자리에 앉아서 이동하면서.
김태풍의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음.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도움을 청해볼까?’
그래서 김태풍은 조용히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곧바로 김선호 대표에게서 답장을 받게 되었다.
- 네! 제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아까 그분들을 만나게 해줘서 무척 감사했는데, 제 선에서 손을 써 보겠습니다.
- 하하. 일이 잘 됐습니다. 일성백화점에 도착하시면, VVIP 담당으로 아주 예의가 바른 정혜진 과장이 나올 겁니다.
- 정 과장은 VVIP 전문이고, 최고명품 컬렉션을 여러 번 런칭한 전문가라서, 그냥 정 과장한테 모든 걸 다 맡기면 됩니다.
- 아무 염려 마시고, 즐거운 쇼핑을 하세요.
김선호 대표.
그가 그렇게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다음 문자.
- 고액 결제 건은 차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그 부분도 조치해놨습니다.
사실, 결제 부분은 김태풍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지금 김태풍이 가지고 있는 일반 신용카드.
그의 씀씀이가 그리 크지 않다 보니.
사용 한도는 고작 2천만 원.
‘휴. 이제 무제한으로 쓸 수 있으니까, 그럼 나름 좋은 선물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러고 보면, 케이트 코니는 한국을 방문한 유명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코니 교수의 친손녀다.
이미 코니 교수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터라.
돈 액수를 떠나서.
그 손녀인 케이트 코니에게 김태풍은 아주 괜찮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셀러브리티인 케이트 코니!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VVIP 전문가가 안내를 해준다면, 좀 더 일이 편해지지 않을까.
이제야 여유가 생긴 김태풍.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계속 무언가를 떠들어 대고 있는 케이트 코니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럼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 좋아하는 건 없어요? 혹시 카 레이싱이라든지?”
“…음. 작년에 제가 블랙 다이아몬드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갈 때….”
“…한국은 들뜨지 않고 분위기가 좀 조용하네요? 아마 비가 와서 그런 거겠죠?”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
은근히 케이트가 수다스럽다는 것을 김태풍을 이때 알게 되었다.
“…이번에 같이 영화를 찍었던 배우들 중에, 프랑스 출신 배우 제이크라는 녀석이 있거든요.”
그렇게 운을 떼며, 또 다른 이야기도 시작하고 있는 케이트.
“그는 심심할 때마다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녀석인데, 한국에 가면 IMF 때문에 생긴 수많은 홈리스(노숙자)들이, 거리에서 돈 달라고 난리를 친다고 하더라고요.”
“네?
”봐요. 제가 속았어요. 그래서 제 보디가드를 무려 5명이나 데려왔는데.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다니! 돌아가면, 그 자식, 멱살을 잡아서 던져버려야겠어요.”
한 번씩 이런 식의 다소 과격한 말투도 나오기도 하지만.
김태풍은 그냥 웃음만 넘어온다.
어쩔 수 없이 김태풍도 남자인가 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재잘거림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귀가 즐겁기 때문.
또한, 한 번씩 그녀가 환하게 웃을 때마다.
그녀의 외모가 비록 이국적이지만.
그런 이질감마저 싹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 왔어요. 빨리 내려요.”
그리고 잠시 후.
호들갑을 떨며, 차량에서 내리고 있는 케이트 코니.
눈앞으로 보이는 대형 백화점의 모습에 그녀는 다소 들뜬 모습이었다.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서.
또한, 화사한 무늬들이 수놓은 원피스 옷차림을 하고서.
그녀는 이제 백화점으로 들어섰는데.
그 원피스가 그녀의 몸에 딱 달라붙어 있어.
도톰한 힙을 포함하여,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가 자연스레 드러나고 있었다.
“아. 김태풍 소장님? 맞으시죠?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정혜진 과장입니다. 이쪽은 저희 VIP 컨시어지(Concierge)팀 직원들과 보안팀 직원들입니다.”
이미 연락을 받고서 나타난 일성백화점 정혜진 과장.
그녀는 두 명의 여자직원들과 보안팀 소속 젊은 남자 직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한편, 이번 VIP가 할리우드 여배우 케이트 코니인 것을 이미 연락받았음에도.
그들 직원들은 전혀 흥분하지도 않았고, 아주 평온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태풍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아.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정혜진 과장은 바로 웃으며, 케이트에게 말을 걸고 있다.
“반갑습니다. 케이트 양.”
“네. 반가워요.”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정혜진 과장은 김태풍에게 말했다.
“김 소장님. 좀 더 일찍 저희들에게 연락을 주셨다면, 케이트 코니 양에게 맞춘 최고급 컬렉션들을 따로 기안해 뒀을 텐데, 지금은 컬렉션 코스가 좀 제한적이긴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양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척 인상이 좋은 정혜진 과장.
그녀는 말투도 무척 공손했다.
절대 쉽지 않은 재벌가의 사람들.
그리고 강남 건물주 사모님들을 주로 상대하고 있는 그녀는 말투, 몸가짐, 행동 외에도 시선 처리에서부터 확실히 전문가다웠다.
“물론, 저희가 준비하지 못한 특정 브랜드 쪽에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직접 해당 매장까지 정성을 다해서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지금 정혜진 과장은 아주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정혜진 과장의 설명을 다 들은 케이트.
그녀는 슬쩍 김태풍 쪽으로 더 다가오더니, 그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 능력이 대단한가 봐요? 설마, 한국에서 퍼스널 쇼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치만, 저는 저런 딱딱한 쇼핑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쇼핑을 하고 싶어요. 제 보디가드들도 있고, 특별히 안 좋은 상황이 생길 것 같지도 같고.”
할리우드 여배우 출신, 그리고 미국 상류층 출신인 그녀.
그녀가 의외로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자.
김태풍은 잠시 당황했으며.
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저분, 한 분만 모시고, 움직이면 어떨까요? 정말 전문가라서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떡하든 김태풍은 정혜진 과장을 데리고 움직이고 싶은 것이다.
괜히 이곳에서 자신이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케이트가 웃으며 동의하자.
김태풍은 바로 양해를 구했고.
그래서 정혜진 과장만 대동하고서.
백화점 쇼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금발의 늘씬한 미녀.
아무리 선글라스로 눈매를 가렸다고 해도.
저절로 드러나고 있는 그녀의 화려한 몸매와 얼굴 윤곽.
그러다 보니, 뭇 남성들의 뜨거운 시선들 외에도.
젊은 여성들까지 케이트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설마 그녀가 케이트 코니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물론 긴가민가하는 눈빛을 보이고 있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입국 기사가 실릴 석간신문 인쇄본.
그것이 배부되는 저녁.
아마 그때쯤 되면.
일반인들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될 거고.
그러면, 케이트 코니의 이런 자유로운 활보도 더 이상 힘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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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뒤.
케이트 코니와 함께 했던 쇼핑 시간은.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사실, 김태풍은 현금 결제 총알(?)까지 장전하며 준비했으나.
케이트에게 고작 선물한 것은.
립스틱 3개, 그리고 모자 한 개가 전부였다.
이걸 다 합친다고 해도, 고작 50만 원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김태풍은 자신의 신용카드로 이걸 모두 결제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VVIP 전문 정혜진 과장까지 대동하고서 백화점을 돌아다녔는데.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매출을 내서.
김태풍은 정혜진 과장에게 무척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성그룹가의 일원 김선호 대표로부터 직접 부탁을 받은 터라.
정혜진 과장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말투, 태도, 눈빛.
그 어느 것 하나도 변함이 없는 정혜진 과장.
“혹시 제 가이드 중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꼭 이야기해주십시오. 더 나아진 모습으로, 항상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다음에 다시 저희 백화점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언제든 편안하게 연락해주세요. 더욱더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그리도 오늘, 시간은 짧았지만, 두 분을 모시게 되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끝까지 예의를 갖추고 있는 정혜진 과장의 모습.
그런 정혜진 과장의 배웅을 받으며.
곧이어 차량에 탑승하게 된 케이트 코니와 김태풍.
이때, 케이트는 하얀 치아를 보일 정도로 웃으며.
김태풍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즐거웠어요.”
그러고 보면, 케이트는 주로 아이쇼핑(eye-shopping)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준 김태풍에게 나름 호감이 생겼는지.
그녀는 옆으로 몸을 완전히 틀어, 김태풍에게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뺨을 김태풍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친숙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는데.
한편, 그녀의 부드러운 뺨이 자신의 얼굴이 닿자.
김태풍의 심장은 급격하게 뛰고 만다.
“그럼 우리 호텔로 갈까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심심하실 텐데, 호텔로 가서 말 상대해드리면 어떨까요?”
“아, 네. 전 좋습니다.”
그렇게 케이트와의 짧은 쇼핑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김태풍은 평생 처음으로 아주 대단한 용기를 냈다.
“케이트. 혹시 제가 다음에 연락을 해도 될까요?”
“네?”
바로 되묻던 케이트.
그리고 손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저한테요?”
그 순간, 김태풍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억지로 꾹 참았고.
더 어색해질 뻔하던 바로 그때.
케이트 코니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할아버지도 인정한 천재. 호텔에 도착하면, 제 연락처를 적어 드릴게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김태풍은 하늘로 펄쩍 날아오를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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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날.
1998년 9월 6일 일요일 아침.
김태풍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가 너무 개운하다.
몸과 마음… 그리고 심장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아직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 순식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호감?
관심?
첫 인상?
첫 느낌?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상형에 무척 가까웠던 한국대 화학과 여학생 최하영.
그런 최하영과 무척 비슷한.
그런 도도한 느낌을 그녀에게서 받았기 때문일까?
하긴 케이트는 웃을 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그녀가 가만히 있을 땐.
흡사 그리스 여신 같은 도도함이 그녀에게서 표출되고 있었다.
결국, 피식피식 웃게 되는 김태풍.
그는 바로 방에서 걸어 나와.
화장실로 갔고, 곧바로 샤워를 시작했다.
물론 두 사람은 아직 아무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김태풍은 그저 혼자서 무척 들뜬 모습이다.
사실, 오늘은 서로의 일정들이 너무 바빠.
케이트 코니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이 따로 예정되어 있어서.
김태풍은 한편으로 또 즐겁기만 하다.
오늘 김태풍은 새뮤얼 왓슨 교수를 대신해서.
코니 교수의 주요 수행원에 포함되었고.
그래서 코니 교수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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