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비오는 날 천재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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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여행객들을 위한 최상급 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특급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PS).
한쪽, 긴 유리창으로는 쉴 새 없이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
이런 비 때문에 약간 칙칙한 모습의 도심 풍경. 이것이 유리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의 내부 모습. 그것은 충분히 화려한 모습이었다.
“하하. 다들 여기 앉도록 합시다.”
코니 교수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고.
김태풍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새뮤얼 왓슨 교수.
그들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코니 교수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세팅된 응접실 테이블.
새뮤얼 왓슨 교수와 김태풍는 바로 그쪽으로 다가가, 테이블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 어느새 간편한 복장으로 바꾸어 입은 케이트 코니.
그녀가 걸어 나왔는데.
이때, 김태풍마저 눈이 커질 정도로 케이트 코니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사방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케이트! 여기 와서 인사부터 하지.”
사실, 공항에서 올 때, 김태풍 등은 케이트 코니와 따로 이동했다.
코니 교수 때문에 갑자기 차량 탑승 인원에 포함이 된 김태풍.
그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수행진들과 함께 다른 차량을 타고서 호텔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유명한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로서의 그녀!
당연히 따로 수행진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전형적인 보디가드들 외에도.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네일 아티스트, 의상 스타일리스트 등.
그런 수행진들이 이번 여행에 그녀를 위해서 동행했고.
그래서 차량들이 여러 대 필요했던 게 사실이었다.
“할아버지. 소개부터 해 주세요.”
케이트 코니.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김태풍을 쳐다봤다.
보통, 백인 미녀들 중에는 벽안, 즉 엷은 하늘색 동공을 가진 이들이 꽤 있는데.
그래서 그런 여성들의 눈동자를 대하게 되면, 무척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런 눈동자는 한국인들에게 아직 익숙지 않았고, 때로는 부담감마저 생길 수 있는 눈동자였다.
그러나 다행히 케이트는 짙은 브라운 계통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전체 얼굴 인상이 너무나도 밝아.
김태풍은 어떤 괴리감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다.
어떻게 저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마저 저렇게 세련될 수가 있는지.
눈이 높은 김태풍마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
케이트는 그렇게 무척 아름다웠다.
“하하. 닥터 킴은 여러 사람들이 인정하는 대단한 천재야. 간단히 한 가지만 언급하면 되겠군. 내가 일전에 너한테 잠시 설명을 해 주었을 텐데. 올레핀 메타세시스(Olefin metathesis) 반응 말이야. 무척 신비하고 무척 흥미로운 반응이지. 그 반응을 완벽하게 실현시킨 유타대 브룩하이머 교수. 그를 옆에서 도왔던 대단한 브레인이 바로 이 친구야. 하하하. 참! 닥터 킴. 자네 이름이 태? 풍? 이라고 했던가?”
“네. 코니 교수님. 태풍 킴.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미스 코니.”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말한 천재라는 단어.
그래서 그 단어의 무게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일까.
케이트 코니의 두 눈.
더욱더 호기심이 넘치고 있었고.
그런 그녀는 곧바로 다가와.
약간의 친밀함까지 드러내며, 김태풍에게 가벼운 포옹까지 해 준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제 소개는 생략해도 되죠? 앞으로 케이트라고 불러주세요.”
케이트?
이렇게 불러달라고?
두 눈이 자신도 모르게 커져가는 김태풍.
입꼬리도 쓱 올라간다.
“네. 그럼 앞으로 절 대니라고 불러주세요.”
아무래도 무척 기분이 좋은지.
곧바로 말이 많아지고 있는 김태풍.
“원래 제 미국 이름을 좀 근사하게, ‘에드워드’라고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브룩하이머 교수님 랩에 있을 때, 잭 커비라는 녀석이 절 ‘탠푼’, ‘탠’, ‘태니’, 이렇게 부르다가, 그냥 ‘대니’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부르기 쉽게, ‘대니’가 됐습니다.”
김태풍은 그렇게 말했고.
케이트는 눈매와 입 모양마저 움직이며.
보는 이의 눈을 환하게 만드는 그런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한국인들 이름은 발음하기 너무 힘들어요. ‘탠푼’, ‘탠’, ‘태니’, ‘대니’, 이렇게 바뀌다니. 호호. 대니~ 아주 괜찮은 이름이에요. 앞으로 ‘대니’라고 부를게요.”
“자! 그럼! 인사를 다 나눴으면, 다시 앉지. 참! 제럴드! 여기 음료수나 칵테일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부탁하네.”
코니 교수는 자신의 수행 비서 제럴드에게 그렇게 부탁했고.
30대 중반의 검정 정장 차림의 백인 남자, 제럴드.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 룸메이드들이 나타났는데.
단정한 정장 차림인 그녀들은.
음료와 간식 등에 대한 각자의 주문을 받은 뒤, 조용히 그곳에서 물러났다.
사실, 이곳 프레지덴셜 스위트룸(PS)에는.
룸메이드 2명, 보안담당 4명, 관광 가이드 2명이 배속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래서 코니 교수와 케이트 코니는 따로 수행원들을 데리고 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곳은 이미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곳의 하룻밤 숙박료.
이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숙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잠시 후, 다시 이어지게 되는 대화들.
“닥터 킴. 서울은 비가 많이 오는 도시가 아닌 걸로 아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옵니까?”
“아. 그게, 날씨가 참 묘하네요. 어제까지는 좀 괜찮았는데, 갑자기 새벽부터…. 아무래도 계절이 바뀌면서, 가을로 접어들려고 이러나 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고 나면, 더 쾌적해지고, 또 하늘도 무척 맑아지거든요. 내일부턴 날씨가 아주 좋다고 하니까, 걱정 마십시오.”
“아, 그래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날짜를 잘못 잡은 것 같군요. 하하.”
이때, 케이트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 나쁘지 않아요. 도심에서 이런 비를 보면, 꼭 시애틀에 와 있는 기분도 들고. 이렇게 조용한 느낌. 낭만적이고, 나름 괜찮지 않아요?”
그 말에 새뮤얼 왓슨 교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케이트. 당신은 그렇게 낭만을 좋아하면서, 왜 남자친구는 안 사귑니까?”
그 말에 환하게 웃는 케이트.
그녀의 하얀 치아는 유난히 매력적이다.
“할아버지! 저도 이제 남자친구 만들어도 되죠? 저더러 레즈비언이 아니냐고 자꾸 그런다니까요.”
그러자 코니 교수는 껄껄 웃는다.
“난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어. 좋은 남자가 있다면, 나야 언제나 환영이지.”
그렇게 그들은 사소한 대화들을 나누며 웃고 있었는데.
이때 김태풍은 코니 교수를 한번 쳐다보고, 또 새뮤얼 교수를 한번 쳐다보고.
그러다가 한번 시선이 케이트 코니한테 닿으면.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는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신다길래 제 스케쥴은 몽땅 다 비워놨는데, 하필 비가 오네요.”
새뮤얼 교수가 대답했다.
“오늘은 어디 나가기도 힘들겠고, 차라리 여기 쭉 치고 앉아, 이야기나 하는 건 어떻습니까? 닥터 코니. 어떠세요?”
“하하! 그거야 나야 좋지. 나이가 드니까, 어디 돌아다니는 건 영 부담스럽거든. 그럼 우리는 그렇게 하면 되고, 아! 케이트! 넌 다음 일정이 있다고 했지?”
그러자 케이트는 자신의 오늘 일정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했다.
“저도 그렇게 빡빡하지 않아요. 갑자기 스케쥴이 돼서 한국에 오게 된 거라. 그냥 저녁때쯤, 한국 영화배급사 사람들과 조인해서, 잡지사 인터뷰 좀 하고, 방송사 인터뷰도 좀. 오늘은 그게 다죠.”
“그래. 그럼 오늘 너도 시간이 좀 있구나? 그럼 이걸 어떡한담! 이 젊은 아가씨를 이 좁은 호텔 방에 가둬두다니! 으음. 그럴 게 아니라, 넌 좀 있다가 닥터 킴이랑 백화점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떠냐? 너는 쇼핑하는 걸 무척 좋아하잖아?”
그 말에 바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케이트.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다.
그 순간, 흠칫 놀라고 있는 김태풍.
그러나 김태풍은 곧 정신을 차리고, 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미스 코니, 저는 영광입니다.”
그 순간, 표정이 바로 환해지던 케이트.
그녀는 또 귀엽게 웃는다.
“그런데 대니~ 당신 말투는 꼭 나이든 신사 같아요. 저야 듣기 좋지만. 그러지 말고, 우리,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내요.”
그러고 보면, 케이트는 김태풍과 나이 차이가 고작 몇 살밖에 나지 않았다.
그래서 케이트는 그런 말을 했고.
정말 놀랍게도 김태풍은 지금!
할리우드 여배우와 친구 관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쯤.
여배우 케이트가 듣기엔 아주 지루한 사업 이야기들과 학문적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러나 케이트는 아주 정자세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또한, 한 번씩 이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사실, 대단한 지성을 보유하고 있는 세 남자들의 대화.
보통 사람이 듣기에도 무척 어려운 대화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놀라운 학자인 코니 교수.
그는 종종 은유적인 표현 기법을 써서.
여러 가지 가설들과 컨셉들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 때문에 손녀 케이트는.
한 번씩 대화에 동참할 기회를 얻곤 했던 것이다.
사실, 눈앞의 케이트는 코니 교수의 덕분인지, 머리가 텅텅 빈 금발 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웬만한 화학반응에 대해서도, 곧잘 이해하는 모습이었던 것.
“그러니까 할아버지 말씀은, 안드로겐(androgen)과 안드로겐 수용체(androgen receptor)의 결합을 억제해서,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 그런 개념이 맞죠?”
“맞아. 고약한 놈(암세포)을 논리적으로 안드로겐(androgen)로부터 고립시키는 방식이지. 그러면 그 고약한 놈은 더 자라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제풀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어. 이런 것들을 우리는 수용체 길항제(antagonist)라고 부르지.”
“음. 그러니까 그 수용체 길항제는… 꼭 제삼자가 제 일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 드네요?”
“맞아. 고약한 놈(암세포)한테만 해당되는 그런 논리가 아니지. 갑자기 무언가가 나타나 사람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정말 행운 같은 일이 일어나, 방해 요소가 사라지면서… 아주 좋은 관계가 발생하기도 하고. 하하! 뭐, 이런 것들을 보면, 세포의 일과 세상의 일은 유독 비슷한 면이 많아. 그래서 학문을 하다 보면, 모든 게 더 신비롭고, 또한 많은 부분들에서 감탄을 하게 되지.”
좀 더 표현력이 대단한 코니 교수.
특히, 요즘 코니 교수는 자신의 연구 범위를 좀 더 넓힌 모양이었고.
다양한 합성 물질의 약리학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두루 연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화학에서 출발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쭉 이어지다가.
다시금 비즈니스 이야기로 돌아오기도 했고.
그렇게 그들은 아주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음. 그럼 내년 초에 벌써 임상 1상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말이군. 음…. 그건 정말 빠른 속도인데? 그렇다면 TSP가 단순 벤처를 넘어서 금방 궤도에 오르겠는데?”
“네. 그래서 저도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아주 빨라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왓슨 교수님 덕분입니다.”
김태풍이 자신에게 은근히 공을 넘기자, 새뮤얼 왓슨은 바로 웃으며 대꾸했다.
“아닙니다. 꼭 그렇지는 않죠. 결국, 개발자의 천재성이 대단한 황금알을 낳게 하는 법이니까요. 참! 이제 닥터 킴 연구 이야기는 그만하고, 제 연구에 대해서도 토론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최근에 재조합 단백질 신약 쪽에서도 제법 괜찮은 포맷들을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쭉 이어지고 있는 새뮤얼 왓슨 교수의 설명들.
그렇게 대화들이 계속되다가….
잠시 후, 그들은 대화를 마무리한 뒤.
그 호텔에서 나왔고.
이제 강남의 어느 한정식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중간에 김태풍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던 중.
혹시나 해서, 김선호 대표에게 연락을 해 봤는데.
이때, 김선호 대표는 무척 흥분하더니.
자신이 그들에게 직접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며, 부득부득 요청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이런 나쁜 날씨 덕분에.
김선호 대표와의 점심 약속은 순식간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일부터 코니 교수, 새뮤얼 왓슨 교수, 케이트 코니는 무척 바빠지게 된다.
먼저, 코니 교수는 내일 청와대 방문 약속 건이 있었고.
교육부, 과학기술부, 정통부 등의 고위공무원들.
그리고 학계 원로 과학자들과도 미팅이 약속되어 있었다.
또한, 각종 세미나 초청 등도 포함되어 있어, 그는 무척 바쁠 수밖에 없다.
물론, 새뮤얼 왓슨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여러 대학들을 방문해서.
세미나 강연을 하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영화배우 케이트 코니!
그녀도 두말할 것도 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스케쥴 표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아주 대단한 스타 배우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김선호 대표와 더불어.
아주 깔끔하면서도 푸짐한 한정식을 점심으로 먹은 뒤.
나이가 많은 코니 교수는 좀 더 쉬고 싶어하는 모습이라.
그는 곧바로 호텔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새뮤얼 왓슨 교수.
그는 오후 3시 30분에 예정되어 있는 박한식 교수와의 만남을 위해, 그 약속 장소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반면, 김태풍과 케이트 코니.
그들은 이제 같은 차량에 탑승한 뒤.
곧바로 인근 백화점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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