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만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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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5일 토요일 새벽 6시.
김태풍은 부랴부랴 아파트에서 나왔다.
사실,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잠원동 아파트는 전세다.
비록 대단한 재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돈이 투자 등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자신한테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
그때가 되면, 미국 야후, 현보컴퓨터, 한성정보네트워크 등에 투자한 대다수 돈을 회수할 수 있게 될 거고.
이른바 금제 같은 것들이 풀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김태풍은 가장 먼저 아주 좋은 집과 아주 좋은 자동차부터 살 생각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의 생활이 빈곤한 것도 아니었다.
일성SD신약에서 받고 있는 연구소장 연봉.
쥐꼬리만한 월급에 신음하고 있는 대다수 샐러리맨들과 달리, 그의 연봉은 무려 3억 원에 달한다.
초임 연구소장 연봉으로는 최상급 대우인데.
거기다가 벤츠 차량에 운전사까지 지원된 상태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새벽부터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서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나간 김태풍.
이때, 그 앞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벤츠 차량의 운전사는 곧바로 뛰어나왔다.
“소장님! 마침 나오셨군요. 이 시각에 많이 피곤하시죠?”
어두컴컴한 새벽 6시.
전날, 즉, 불타는 금요일 날.
김태풍은 거하게 회사 회식 시간도 가졌다.
각 팀이 회식할 때마다.
자신은 한 번씩 그 팀에 꼽사리 끼어서 회식 참석을 하는 방식인데.
어제는 신약연구2팀의 회식이었던 것.
새로 들어온 김준성 박사.
그의 환영회를 포함하는 회식이었고.
그러다 보니, 남녀직원들과 함께.
1차 삼겹살, 2차 생맥주, 3차 노래방, 4차 포장마차까지, 풀로 가동하면서.
밤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셨던 것이다.
“뭐,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렇게 일찍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소장님. 어서 타시지요. 지금은 차가 안 막히는 시각이라, 금방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뒷좌석에 탑승한 김태풍.
잠시 후, 차량은 출발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커먼 도로 풍경에 김태풍은 저절로 눈이 감기고 만다.
그렇게 한참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덧 공항에 도착한 상태다.
얼른 시간부터 확인한 김태풍.
그는 곧바로 국제선 도착 터미널로 걸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요란하게 몰려든 상태다.
각종 카메라를 든 기자들, 방송국 촬영 팀들까지.
입국 수속과 세관 수속을 마치고 나오는 입구 쪽으로.
그들은 이미 집결해 있는 모습이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 오니까, 기자들부터 난리구나.’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김태풍에게 바짝 다가오며, 아는 척을 했다.
“김태풍 대표님!”
그 순간, 김태풍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한 달 전, 자신의 회사로 직접 찾아와 인사를 했던.
레이 킴과 로버트 최.
바로 그들이었다.
재미교포 출신인 이들 박사들.
그들은 현재 미국 TSP 본사 소속인데.
박한식 교수의 ‘TSP 팜 코리아’ 설립을 돕기 위해서,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상태였다.
“일찍 오셨군요? 하하. 저희는 막 도착했는데.”
“아, 아닙니다. 저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참! 대표님. 이렇게 뵙게 되어서 드리는 말씀인데, 현재 TSP 팜 코리아 쪽은 실험실 세팅 작업도 거의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김태풍을 보자마자, 바로 무언가 설명을 하려는 로버트 최.
이때, 김태풍은 갑자기 그를 제지했다.
“아! 잠깐만요. 최 박사님.”
“네?”
“아, 이거 정말 죄송한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데서는, 되도록 ‘대표’라는 호칭, 생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뭐, 제가 아직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아하! 맞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깜빡했습니다. 그럼 김 박사님. 이렇게 호칭하면 되겠죠?”
“네.”
그제야 그들은 좀 더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 나갔는데.
이들 두 사람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이었다.
미국식 젊은 남자들의 헤어 스타일인, 양 옆머리가 아주 짧은 모습들.
한편, 로버트 최는 스탠퍼드대 출신에 유기합성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다.
레이 킴은 임상시험 분야 전문가로, 미국 팜디(Pharm. D, doctor of pharmacy), 즉 임상약사 출신이면서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즉, 두 사람 모두 고액연봉자들이었다.
이렇듯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주변이 요란해졌는데.
이때, 기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일반 승객들은 다 빠져나간 통로.
그리고 잠깐의 공백기 뒤에.
드디어 제일 마지막으로 나오게 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
바로 그들을 향해, 일제히 카메라들이 집중되고 있었고.
곧바로 요란한 카메라 플래시들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란한 카메라 플래시들 사이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며 걸어 나오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
MIT의 새뮤얼 왓슨 교수.
그리고 가장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코니 교수의 손녀이자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배우 케이트 코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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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찰칵! 찰칵!
“케이트! 한국을 방문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공항 한쪽에 준비된 기자회견장.
하얀 천이 깔린 테이블 앞에 앉은 세 사람.
특히,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아름다운 금발 미녀 케이트 코니(Kate Corney)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아. 네. 저한테 먼저 질문하셨으니까 제가 답변하겠습니다. 참! 할아버지, 괜찮겠죠?”
“그래. 난 상관없어.”
“네! 저희는 할아버지가 최근에 설립한 ‘코니 사이언스 재단’을 알리기 위해서, 한국을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코니 사이언스 재단?
그 순간, 기자들은 또 다른 놀라운 기삿감을 발견한 듯.
바로 코니 교수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
오늘 이 기자 인터뷰가 열리게 된 것은,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와 그녀의 손녀 케이트 코니가 내한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코니 교수님. 그럼 코니 사이언스 재단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사업을 진행하게 됩니까?”
바로 터져 나온 질문들.
그러자 코니 교수는 큼직한 안경테를 슬쩍 만지고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재단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시작했는데.
미래 학문 후속 세대를 위한 비영리 과학 재단.
즉, ‘코니 사이언스 재단’의 목적과 향후 펼칠 사업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특히, 코니 교수는, 비록 IMF 여파로 나라가 힘들긴 해도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에 자신의 재단을 소개할 생각을 갖게 되었고.
한국, 일본, 홍콩 등을 거쳐 가는 여행 일정을 짜서, 이렇게 직접 방한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공식적인 이유였고.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최근 서포트하고 있는 김태풍.
그의 모국을 한번 방문하고 싶은 그 의중이 포함된 방한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동안 기자들은 ‘코니 사이언스 재단’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내다가.
곧이어 다시금, 할리우드 미녀 여배우 케이트 코니에 대해서 강한 관심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트! 최근 개봉할 영화가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긴 곱슬 금발 머리에 턱선이 가름하고 눈매가 무척 아름다운 케이트 코니.
이제 겨우 24살에 불과한 그녀.
무척 젊었고.
또한, 그 청초한 매력이 최근 최고조로 발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놀라운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에게 단 하나의 사생활 관련 기사들이 보도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할리우드 여배우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사생활은 아주 모범적이었는데.
그녀에겐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가 없었고.
과거에도 남자친구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때, 그녀가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지만.
그녀의 할아버지는 무척 예의가 바른,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였고.
그녀의 집안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코니 교수를 똑 닮은 모습들이다 보니.
어느 순간 오해가 풀리면서.
그녀의 인기는 더없이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즉, 미국 상류층 출신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케이트 코니!
거기다가 국내 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오늘 그녀가 할아버지 코니 교수와 함께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정말 그야말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고.
소셜미디어가 아직 발달되지 못한 이 시대.
그래서 국내 팬들은.
그녀의 내한 사실을 정확히 몰라, 오늘 공항으로 몰려들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이 사실이 미리 전해졌다면.
아마 이 주변 공간.
폭발하듯 미어터졌을 것이다.
어쨌든 대단한 소식통을 갖고 있는 기자들.
그들은 전날 케이트 코니의 내한 사실을 알게 된 터라.
새벽부터 공항으로 나와, 만반의 준비를 했고.
이렇게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기자 인터뷰 행사는 원래 노벨화학상 수상자 코니 교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고.
점점 더 기자들은 케이트 코니에게,
모든 시선과 모든 관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기자 인터뷰로 예정된 30분이 지나자.
케이트 코니의 보디가드들은 그들을 에워싸며, 그들을 터미널 밖, 대기 차량 쪽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코니 교수가 손을 들며, 기자들 틈에 있던 누군가에게 다가갔고.
놀란 보디가드들이 바로 그의 옆으로 따라붙는 순간.
이때, 코니 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와 악수를 나눴다.
“하하. 닥터 킴! 인터뷰 때문에 아는 척도 못했군요. 하하. 이제 같이 움직이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코니 교수는 바로 김태풍의 손을 훅 잡아끌었는데.
그 바람에 자연스레 중앙으로 들어오게 된 김태풍.
깜짝 놀란 김태풍!
그를 향해.
그 순간, 요란하게 터지고 있는 카메라 플래시.
카메라맨들은 뭐든 찍어보자는 심정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의아해하며, 그쪽을 쳐다보게 된 케이트 코니.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잠시 김태풍의 얼굴에 멈췄다가.
보디가드들이 바로 재촉하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뒤.
김태풍은 자신의 벤츠 차량이 아니라.
얼떨결에 코니 교수가 준비한 차량에 함께 타게 되었다.
그리고 흐린 하늘 아래.
요란하게 쏟아지는 빗방울을 헤치며, 도로를 빠르게 달렸고.
마침내 서울 강남에 위치한 특급 호텔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때, 코니 교수의 비서가 먼저 움직여.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쳤고.
이제 그들은 다 같이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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