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57화 (57/153)

73-한 발짝 더 내딛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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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자네가 나한테 했던 말도 있고, 또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도 있고 해서…. 그래서 내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네. 내 딴에는 늘 선호한테 강요만 했지, 제대로 된 기회를 준 적이 없는 것 같아. 허나, 녀석이 스스로 일성SD신약을 만들어낸 걸 보면, 이제는 선호한테도 충분히 역량이 있다고 봐.”

“음. 회장님.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네. 까놓고 이야기하지. 우선, 저번에 듣기로, 자네는 일성그룹에 큰 뜻이 없는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대신에 제가 일성SD신약에 재직하고 있는 기간 만큼은, 정말 열심히 회사 일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네의 그 이름값이라도 한번 활용해 볼까 생각해 봤네. 뭐, 이런 거지. 언론에 천재로 알려진 자네가 다시 한번 신약을 개발했다고 치면, 저 동성제약과 연관성 따위는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 관심도 대단해지겠지?”

“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음. 김 소장. 내 앞에서 겸손할 필요는 없네.”

“아,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절 높이 평가해주신다면, 저야 뭐,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음. 이거 참! 그런 뜻이 아닌데. 또 오해가 있었군. 그건 아니네. 단지 자네의 신약 부분에 한해서지, 괜한 오해는 말게.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인재는 큰 비즈니스를 볼 수 있는 뛰어난 경영자야. 단순한 개발자가 아니라! 불행히도 나는 자네한테서 그런 부분을 아직 엿보지 못했네.”

“음.”

“근데 저번에 보니까, 자넨… 자기 이름을 함부로 팔 사람 같지는 않던데?”

질문도 아니고, 다소 애매한 대답 요구.

“네. 그 부분은 잘 보셨습니다. 제 미래를 위해서라도, 제 이름을 함부로 쓸 생각은 없습니다.”

“맞아. 나도 그렇고,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다 그래야지. 자기 이름을 항상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돼. 그래서 이제 내가 자네한테 맞는 제안을 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좋은 신약 기술이 있으면, 언제든 우리한테 넘기게.”

“네?”

“내가 요즘 신약 쪽 계약들을 쭉 살펴봤는데, 이쪽 바닥은 뻥튀기가 무척 많더군. 선급기술료도 있고, 단계별 기술료도 있고. 물론 언론에 발표될 때는 기술이전 금액 총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단계별 통과를 못 하게 되면, 그냥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도 말이야. 그럼에도! 언론 쪽에도, 국민들한테도 생색내기에 딱 좋고.”

“음. 회장님. 그건 생색내기용이 아닙니다. 그저 임상 단계 통과가 너무 힘들어서, 일종에 서로 간에 합의된 보험같은 것인데….”

“핫핫. 보험이라? 그건 딱 맞는 표현이겠군. 그래서 나도 이런 좋은 시스템을 한번 활용해 볼 생각이네. 참! 사실, 자네 뒷조사까지 해서 미안한데… 김 소장! 학생 때, 또 다른 신약 기술을 만들어 그걸 메드TX에 팔았더군?”

“네? 아… 네.”

“내 자문위원들의 의견도 그래. 김 소장의 연구 능력은 이미 범인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네. 하긴 그런 인재가 주변에 없었다면, 애초에 우리 그룹에서 신약을 가지고 놀 생각을 하지도 못했겠지.”

“음.”

“그래서 말인데. 자네한테 그런 게 더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이 되었든 내가 사겠네. 물론 아주 좋은 가격으로 말이네.”

그러니까 김신웅 회장은 김태풍의 신약 기술을 자신이 미리 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신약 기술.

그걸 미리 사겠다고 언질을 하고 있는 김신웅 회장.

“회장님. 너무 앞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직 저한테는 그런 신약 기술이 없고, 더군다나 신약 기술이전은 대체로 천문학적 수준의 기술이전료가….”

“그만! 나도 잘 아네. 나도 내 자문위원들로부터 이것저것 많이 들어서 웬만큼은 아네. 그리고 자네한테 아직 신약 기술이 없다고 해도… 자네가 요 몇 년간, 몇 건의 신약 기술들을 만들었는지, 나도 잘 알고 있어서 하는 소리네.”

“음.”

“그리고 신약 기술이전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기술이전료가 터지면, 그 여파가 그만큼 엄청나더군. 메드TX 주가만 봐도 충분히 알겠네.”

주가?

그렇다.

어쨌든 현재 김신웅 회장의 타깃은 일성SD신약의 주가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인데도, 이게 합법을 가장한 불법 증여 개념이 아니라고?

김태풍은 다시금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의 입장에서는.

김신웅 회장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신약 기술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좋은 가격에 파는 것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

물론!

정말 좋은 신약 기술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게 맞겠지만.

김태풍도 잘 알고 있듯이, 신약 기술들 중에는 약간 계륵 같은 것들도 종종 있다.

또한, 아무리 효력이 좋아도.

전문적인 마켓팅 지원 없이는 시장 개척이 힘든, 그런 신약 분야도 더러 있다.

그래서 그런 신약 개발 선별작업을 할 수 있는 곳.

박한식 교수가 이끌게 될 ‘TSP 팜 코리아’는 그런 일들을 앞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음. 근데, 어떻게 이 일이 김선호 대표한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김태풍은 대략적인 전개 과정을 예측하면서, 고민하다가.

그래서 다시금 질문을 던져봤다.

“그럼 회장님. 제가 그런 기술을 팔게 된다면, 그게 김선호 대표님한테도 혜택이 간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셈이지. 뭐, 자세한 부분까지 자네한테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선호에게 큰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은 맞네. 물론 관건은 자네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합법을 가장한 불법 증여가 아닙니까?”

“핫핫핫. 불법 증여라?”

“네. 회장님.”

“하지만 그 회사는 선호가 만든 회사야! 자기가 만든 회사가 잘 되는 걸, 그걸 불법 증여라고는 할 수 없지. 다만, 재호 녀석한텐 그런 말이 해당될 수 있겠군.”

“회장님. 그 말씀은?”

“흠. 자세한 것은, 자네한테도 절대 말할 수 없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 회장님을 믿겠습니다. 다만,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괜히 재벌가의 후계자 지분 조정 일에 관여하기 싫었던 김태풍.

자신이 이제 거기서 어느 정도 비켜나간 것에 만족했고.

대신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특히, 이 대목에서.

김태풍은 정말 기막히게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회장님. 앞으로 이런 일들이 전개되면, 무조건 일성그룹은 큰 이득을 보게 될 겁니다.”

“음. 그래서?”

“즉,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그림대로 가게 된다면, 기존 메드TX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의 주가폭등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런 수익을 안겨드리는데 제가 협조하는 만큼, 신약 기술 계약금 협상과는 별도로, 제 개인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음. 별도의 조건이라? 어디 말해 보게.”

“제가 만약… 앞으로 2, 3년 안에 새로운 신약 기술을 회장님께 넘길 수 있다면, 저한테 일성전자….”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고, 김신웅 회장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김태풍.

이때, 일성전자가 갑자기 언급되자, ‘이놈 봐라’하는 표정을 짓던 김신웅 회장.

그런데 곧 이어지는 김태풍의 말을 들으며, 김신웅 회장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회장님. 저한테 일성전자 지분 3%를 살 수 있는 권한, 즉 주식 매수 권한을 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최혁수 실장!

“김 소장! 정신 차리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있어?”

그렇게 최혁수 실장은 고함을 질렀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또다시 이변이 발생했다.

김신웅 회장.

다시 표정이 바뀐 그.

그는 몹시 어이가 없다는 듯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난 도무지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군.”

“네?”

“3% 지분을 사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디 셈이나 해 보고 하는 소리인가? 연구자가 신약 나부랭이를 팔아선, 절대 그런 돈을 마련할 수가 없네. 그걸 자네는 모르는가?”

“회장님! 그래서 저한테 어려운 조건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 적어도 회장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만큼, 저한테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정말 꿈 같은 소리를 조건으로 내건다? 과연, 2, 3년 안에! 3천억 원대 자산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자네에게 불가능한 일이거늘.”

사실, 일성전자 3% 지분의 현재 가치.

그러고 보면, 현재 일성전자 시가총액은 IMF의 여파로, 대략 9조 원이다.

그래서 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분 3%의 가치는 현재에도 무려 2,700억 원!

그러나 이 지분 3% 가치는 2000년이 되면, 대략 6천억 원 정도로 뛰어오르고.

또,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나고 나면, 무려 11조 4천억 원에 육박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지분 3%는 고작 3% 지분 따위가 아니라,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

일성그룹을 대표하는 기업, 일성전자 3% 지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즉 대한민국 내에서 나름 대단한 힘(?)을 갖게 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일성그룹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향후 일성그룹의 힘을 빌리거나.

또는, 그들을 협상의 무대로 끌고 오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가 있다.

“흠. 자네는 내가 왜 이런 말까지 해서, 자네 신약을 사겠다고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나는 그런 무모한 제안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드네.”

“회장님! 대신에 저도 옵션을 드리겠습니다.”

“옵션?”

“네! 즉, 회장님께서 원하는 시기에 신약 기술을 넘길 수 있도록, 저도 서둘러 준비를 하겠습니다. 지금 원하신다면, 아마 6개월 후에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뭐? 6개월 후에? 으음.”

그 순간, 김신웅 회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사실, 김태풍이라는 저런 천재가 국내에 없었더라면.

자신의 목적에 ‘신약’이라는 도구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신약’이라는 도구가 자신한테 생기게 되었다.

물론 자신은 구태여 이 ‘신약’이라는 도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자신한테 또 다른 편법들이 아주 많이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편법들에서 대체로 김선호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짜 놓은 상태의 편법들이니까.

그러고 보면, 혹시 자신이 말년에 노망이 든 걸까?

왜 갑자기 김선호가 자신의 눈에 들어왔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일성그룹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

그런 녀석한테 자신도 모르게 큰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 인철(김인철 부회장)이가 내 뒤를 이어받겠지만, 그 다음 대에 누가 회장이 될까? 으음. 내가 여기서 그냥 멈춘다면, 무조건 재호가 그 후계를 잇게 되겠지. 흐음. 그건 아무래도 너무 싱거워. 너무….’

사실, 김신웅 회장의 욕심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아들 대를 넘어서, 손자 대, 그 다음 대까지.

일성그룹이 영원히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으로 남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고심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훗날 일성그룹이 정체할까 봐, 그는 그것이 무척 두려운 것이다.

“음. 그렇다면, 나도 몇 가지 조건들을 다시 걸도록 하지. 그 권한은, 기술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반드시 한 달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는 조건. 물론 그 신약 기술이전 비용을 받아서, 일성전자 지분을 살 수는 없네. 그리고 혹여 자네가 그 지분을 사더라도, 훗날 그 지분의 권한을 행사할 때, 최소한 김선호 대표에 한해서는… 반드시 우호적이어야 하네. 그것만 확답해주네.”

잠깐 생각하던 김태풍.

그는 곧 대답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그 순간.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하고 있는 최혁수 실장.

그러나 김신웅 회장.

그의 입꼬리는 묘하게 치솟고 있다.

김태풍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 일성그룹 총수 김신웅 회장은 김태풍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 일로.

김태풍은 일성전자 지분 3%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회귀 전에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사건!

몇천 주, 몇만 주 정도의 주식이 아니라.

무려 지분 3%!

더군다나 이런 규모는, 돈을 주고도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김태풍은 지분 3%를 개인적 자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이제 갖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훗날 일성그룹 회장은 여기저기 자신의 지분을 넘기다 보니.

겨우 개인 지분 3.5%로, 일성전자를 지배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김태풍이 가진 지분 3%의 가치.

그래서 이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물론, 이런 지배구조가 아니더라도.

김태풍이 이제 재벌 중심의 재계로.

한 발짝 더 내딛게 되는.

아주 놀라운 계기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잠시 후.

김태풍은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룹 회장 집무실에서 나왔고.

이때부터 아주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작정을 하고서.

신약 개발 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음. 그럼 어느 치료제 분야가 좋을까?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도, 또 적당히 괜찮을 걸 찾아야 하는데….’

그래서 김태풍은 다시금 두 눈에 강렬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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