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미래 가치(3)
“이 질환은 이를테면, 하지 정맥 쪽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래서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최악의 경우, 혈관 내에 혈전(핏덩어리)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특히, 항공기 좌석 중에 좁은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다 보면, 이런 상황들이 종종 생겨,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겁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은 아주 심각한 질환이기도 했다.
“문제는, 허벅지나 장딴지 등에 생긴 혈전들이 결국 폐혈관을 막아서, 심폐 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호흡 정지, 심장 기능 정지, 색전성 뇌경색 등의 문제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질환에 대해서 소개한 뒤, 김태풍은 좀 더 구체적인 신약 개발안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신약 개발자는 유기합성 분야에 아주 능통하면서도, 또한 약학적인 지식, 의학적인 지식도 두루 갖춰야 하는 것이다.
“현재 치료 요법으로는 주로 아스피린, 와파린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동물의 폐장이나 장에서 분리된 의약용 헤파린(heparin)이 이 요법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헤파린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하고 있는 김태풍.
“특히, 이 헤파린은 뮤코 다당류 물질로써, 이미 형성된 혈전을 용해시켜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추가 혈전의 응집을 막을 수 있어, 아주 효과적인 약물입니다.”
그러고는 김태풍은 두 눈을 반짝이며, 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번 아이디어에서 도출된 것은, 헤파린의 특정 화학구조를 가져와, 새로운 저분자량 혹은 올리고머 수준의 화학 약물을 디자인하고, 또 합성하는 신약 개발 연구입니다. 이게 만약 성공한다면, 기존 헤파린으로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혈전 용해 능력을 일부 확보할 수가 있는데, 그 결과, 정말 획기적인 혈전 용해 및 혈전 방지 신약으로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을 마친 김태풍은 앞으로 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들은 현재 단계에서만 보면, 아주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실행 능력!
자잘한 화학구조 아이디어들.
그리고 유기합성 아이디어들.
이런 것들이 한데 뭉쳐져야만 하고.
또한, 좀 더 전문적인 약리학적 이해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거기다가 독성학적인 부분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신약 개발 경험들과 노하우들!
이런 것들까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즉, 이 모든 것들이.
몽땅 다 어우러져야만.
그때서야 진정한 신약 형태가 나올 수 있게 되는데….
그 때문에 대다수 신약 개발자들은 이런 아이디어 수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장기간 연구를 했음에도 보통 실패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김선호 대표의 앞에 앉아서 힘차게 설명을 하고 있는 김태풍.
그는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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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서… 앞으로 폐질환 치료제와 혈전증 치료제 개발에… 포커스를 맞추겠다? 그 말이냐?”
“네. 회장님.”
“그럼 포부는?”
“우선, 저희 내부 검토 결과, 세계 질환 사망자 순위에 COPD(만성폐쇄성 폐질환)는 세계 5위권 질환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타 질환의 경우, 지난 30년간 의료 기술 및 약물 기술의 발달로 사망율이 최대 60% 정도까지 감소했지만, COPD 질환은 지난 30년간 160%가량 사망율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즉, 국내 환자뿐만이 아니라 세계 규모까지 추산한다면, 충분히 블록버스터 약물로 성장할 수가 있고, 만성 환자들은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하므로 경제적 가치도 아주 뛰어납니다. 또한, 비슷한 만성 질환인 혈전증 치료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성질환 쪽이라? 개발 단계에선 뭐든 리스크가 있긴 하겠지. 무슨 일이든 쉬운 일은 없어. 허나, 시장에 치료제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네가 제법 노력했구나. 잠재성과 시장성을 잘 보고, 목표도 잘 잡았고. 뭐, 다 좋아. 한데 말이야. 그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녀석이… 고작 27살짜리라며?”
“네?”
갑자기 뜻밖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노인.
이 순간, 그의 앞에서 공손하게 대답을 이어가던 김선호 대표.
그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지금 김선호 대표의 앞에 있는 노인.
놀랍게도 그는 요즘 언론에는 일절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총수 중의 총수!
일성그룹 김신웅 회장이었다.
“회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김태풍 소장은 대단한 천재 화학자입니다. 비록 나이가 저처럼 젊지만, 이미 신약 개발 분야에서 성공 경험도 충분합니다.”
이때, 김선호 대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꼬리만 씩 올리고 있는, 86살 노령의 나이인 김신웅 회장.
수십 년간 일성그룹을 이끌어온 총수답게 그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에 많이 노쇠해진 그는 재발한 심혈관 질환 때문에 현재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그 날카로운 눈빛과 위압적인 기세만큼은 여전했다.
“그럼 병원에서 팔리고 있는 약이 있나?”
“네? 아… 회장님. 그건… 그건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것들이 있어서, 곧….”
그러나 바로 그때, 김신웅 회장은 곧바로 오른손을 살짝 든다.
그리고 김선호 대표의 다음 말을 막고 있다.
“그만. 그만해도 돼.”
사실, 오늘 김선호 대표가 이곳에 갑자기 불려오게 된 것은.
오늘 아침 8시쯤, 갑자기 그룹비서실에서 전해진 연락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신웅 회장과의 만남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비서실을 통해, 김신웅 회장의 연락이 오게 되면.
무조건 김신웅 회장이 지정한 장소로 와야 한다.
일성그룹 임직원들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조건 그 지시에 응해야 한다.
이것은 거의 불문율 같은 것.
“김 대표.”
“네?”
“아니, 선호야.”
“네? 아… 네! 회장님.”
“쯧쯧. 너는 어찌, 아직도 그리 피라미 같은 모습이냐?”
“?”
“너는 우리 그룹이 한국 최고의 일성그룹인 것을 잊고 있느냐?”
“네? 아닙니다.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비전을 세우고, 또 새로운 사업을 실행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네?”
“우리는 항상 최고의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회장님! 하지만 김태풍 소장은….”
“쯧쯧! 아직 신약 출시 경험도 없는 사람한테, 그 모든 것을 다 일임했다고? 그게 바로 어리석은 경영자의 자세가 아니냐?”
27살 나이를 운운하는 순간.
무언가 불길했던 김선호 대표.
곧바로 그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일성의 역량이라면, 그에 합당하게 처신해야지. 스스로를 이류 취급을 할 생각이냐?”
그리고 다시금 혀를 차고 있는 김신웅 회장.
“회장님. 하지만 저는 김태풍 소장을….”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눈빛이 더 차가워지고 있는 김신웅 회장.
그리고 김 회장이 입술에 힘을 주며 입을 꼭 닫자.
김선호 대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김신웅 회장이 저런 표정을 보일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할 때다.
함부로 나섰다간,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순간.
그래서 김선호는 바로 머리를 숙이며, 자신의 자세를 한껏 낮췄다.
어찌 되었든, 김신웅 회장은 가문의 최고 어른이다.
비록 노쇠했다고 해도.
아직도 발톱이 날카로운 무시무시한 늙은 사자.
“너는 아직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연구 능력이 아니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경영 능력! 연륜!”
“음.”
“무릇 연구소장 급이라면, 나중에 임원급으로 올라서게 될 거고. 더 큰 무대에서 널 대신해서 큰 비즈니스를 해야 할 위치가 된다. 거기까지 기다리기엔 그자는 너무 나이가 어려! 차라리 그 자리는 지금 너한테 바로 도움이 되는, 그런 중진급 가신을 세울 자리다.”
그렇게 단정해 버리고 있는 김신웅 회장.
“선호야. 나는 네 형뿐만이 아니라, 너한테도 기대가 크다. 그래서 네가 신약 개발 회사를 창립한다고 할 때, 나는 말리지도 않았어. 허나, 이제 더 늦기 전에, 널 좀 도와야겠다. 네가 하려는 일을, 최 실장을 통해서 듣다 보니, 나도 관심이 좀 더 생기고. 아마 그게 앞으로 잘 된다면, 향후 일성그룹은 더 큰 시장까지도 노릴 수 있게 된다던데?”
“네. 회장님. 결국, 처음에는 합성신약에서부터 시작하겠지만, 바이오신약, 의료기기, 진단, 의공학 등, 더 넓은 분야, 더 넓은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흠. 그런 좋은 일을 하는 건, 언제나 환영한다. 허나 경영자는 더 머리를 써야 하고, 또 어떻게 사람을 쓸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연구소장도 불렀다.”
“네?”
“너보다 30분 뒤에 연락을 했으니까, 곧 오겠지. 그때까지 잠깐 우리끼리 좀 더 이야기를 하자.”
김신웅 회장이 그렇게 말하자, 김선호 대표는 더 놀라고 있었다.
조금 전, 연구소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지적을 했던 김신웅 회장.
그런 그가 갑자기 김태풍 소장마저 호출을 했다?
그래서 김선호 대표는 더욱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이어지는 김신웅 회장의 말.
그건 김선호가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다시금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 너는 결국… 그 서씨 집안과 반드시 결혼을 할 생각이냐? 저번에 네 약혼식에서 보니까 그 아이는 아주 대단한 미인이더구나. 허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그 집안과 우리 일성그룹은 확실히 차이가 있어. 물론 네 아비가 별말이 없다고 하길래, 네 약혼에 대해서, 내가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허나 아직도 난 모르겠다. 과연 네가 그 집안과 결혼할 가치가 있는지, 그걸 도무지 모르겠어.”
“아, 그건… 회장님. 저는….”
지금 김선호의 얼굴은 다소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약혼녀 서희선까지 언급되자.
재빨리 정신을 차린 김선호.
“회장님! 이번 일에 대해서,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제 의지가 정말 확고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반드시 결혼을 할 생각입니다.”
“으음.”
“그리고 저는 그 집안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화캐피탈 서인겸 회장님의 작고하신 부친께서는 독립유공자이십니다. 임정(상해 임시정부)에서 총장까지 하셨던 분이고. 현재 저희가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신약 벤처 기업, 메드TX. 이 회사의 서정철 사장. 이 분의 부친은 한때 장관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혹시나 하는 불길함에 김선호 대표의 말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김선호 대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총수 김신웅 회장은 그 정도 따위의 가문이 전혀 눈에 차지도 않는 것이다.
“으음. 그렇게 네 뜻이 확고하다면, 나도 더 이상 네 결혼 문제에 대해선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 허나! 너는 네 형, 재호(김재호)보다도 더 못한 길을 가게 된다는 걸, 그걸 꼭 기억하도록 해라.”
무척 차가운 말.
그 때문에 그 자리가 더욱더 얼음장같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어느덧 10여 분 뒤.
어느덧 노크 소리와 함께.
그룹비서실 최 실장이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물론, 그 젊은 남자는 김태풍 연구소장.
그런데 이때.
좀 묘한 일이 일어났다.
아까 전,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던 김신웅 회장.
그가 난데없이 환하게 웃으며, 김태풍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김선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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