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미래 가치(1)
<21> 일성그룹 김신웅 회장
1998년 6월 8일 월요일 아침 8시.
강남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아파트 1층에 벤츠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주말에 이 아파트로 이사를 한 김태풍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아파트 밖으로 나왔고.
이때, 운전사가 웃으며, 차량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김태풍이 벤츠 차량 뒷좌석에 타는 순간, 막 출근을 하던 젊은 사람들.
그들은 저절로 그곳을 응시하며, 잠시 시선들이 그곳에 멈추고 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 이사하시니까 어떻습니까? 이제 회사와 가까워져서, 늦어도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음. 그래서 새벽에 운동할 데도 찾아볼 생각인데, 혹시 괜찮은 데, 추천할 데가 없을까요?”
“아? 헬스장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럼 여긴 어떨까요? 제 조카 놈이 요 근처 휘트니스 센터에 다니고 있는데, 트레이너입니다! 그럼 그쪽을 한번 소개해드릴까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차량은 출발했고.
잠시 후, 대로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주간 김태풍은 수원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머물면서, 출퇴근을 했다.
회사와 집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어, 회사에 다니기가 좀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김선호 대표는 약속대로 회사 차량과 운전사를 지원해줬고.
그래서 그동안 아주 편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면, 회귀 전, 이렇듯 회사 공용 차량을 지원받고, 또 운전사까지 있는 고위 임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 부러워했는데.
그런데 자신이 이제 그런 입장이 되고 나니.
뭔가 기분이 이상야릇해졌고.
한편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김태풍은 깨닫게 되었다.
‘음. 그러니까…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는 입장이 되면, 그에 상응하는 공헌을 꼭 해 줘야 하는, 그런 의무감도 발생하는 것 같단 말이야.’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니게 될지는 몰라도.
김태풍은 적어도 이 회사를 위해서.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꼭 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잠시 뒤, 운전사와의 잠깐의 대화를 끝낸 김태풍.
그는 이제 뒷좌석 한쪽에 구비되어 있는 조간신문들을 이리저리 훑어보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회사 본사에 도착해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차량에서 내린 김태풍.
그는 자신의 서류 가방을 들고서, 씩씩하게 걸어가.
곧바로 10층 본사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갔다.
띵!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일제히 사람들은 그곳에 타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약간 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앞서 김태풍과 가벼운 목례까지 할 정도로.
대다수 직원들은 김태풍을 알아보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를 탄 그들은 김태풍을 배려하는 듯, 그의 옆으로 바짝 붙지도 않고 있었다.
즉, 직책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경계심과 조심스러움.
그게 저절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지난 1주일 동안.
회사 내에 묘한 소문들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다름이 아니라, 혁신신약 연구소에 부임한 새로운 연구소장에 대한 소문!
그건 바로 김태풍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워낙 대단한 이야기들이라.
그 소문들은 삽시간에 퍼져 버렸는데.
직원들의 귀에 들어간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놀랍기만 한 것들이었다.
- 이야! 우리 신임 소장님 이야기 들었어? 나도 대학원 나왔지만, 그 이야기들은 너무 사기적이더라.
- 진짜 말 다 했어. 대학원 졸업하면서, 평생 회사에서 못 할 일들을, 그냥 다 하고 졸업한 거잖아!
- 대체 IQ가 얼마라고 하냐?
- 와! 대체 그런 사람이 다 있냐?
그렇게 다들 놀랄 정도로 김태풍의 지난 실적들은 대단했다.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에 주저자 논문 2편 게재.
또 다른 저명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주저자 논문 1편 게재.
한편, 최근 일 년 사이에 잇달아 게재된 미국 화학회지(JACS) 논문.
총 4건!
이렇듯 그가 발표한 논문들은 확실히 남달랐고.
특히, 최근에 발표한 차세대 루테늄 촉매들에 대한 연구 논문들은 현재 세계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으로, 새로운 고분자 소재 기술을 라이센스 아웃(licence-out, 기술을 파는 것)하는데 성공했고.
혁신적인 비마약성 진통제 신약 개발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런 비마약성 진통제 신약은 현재 더어크(Derck)사의 주도로, 미국 임상 1상 시험을 순탄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미국 바이오벤처 TeraTorus(테라토러스)에 항암 신약 기술을 이전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신약 기술 역시 조만간 미국 임상 1상 시험 진입을 앞둔 상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직은 개발자 김태풍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의 임상시험!
이것은 메드TX의 주도로 국내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 임상 2상이 종료되게 되면.
이때 국내 제약업계가 발칵 뒤집히는 대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IMF로 힘든 대한민국에 큰 힘이 되어줄, 엄청난 기술이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외에도 또 다른 호재가 김태풍에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하버드대 호킨스 교수.
그와 함께 설립한 회사와 관련된 일이다.
작년 7월.
호킨스 교수는 뉴스킨 테라피(New Skin Terapy, NST)라는 회사를 마침내 설립했고.
이 회사가 보유한 새로운 인공 피부 기술, 인공 피부 접착제 기술 등을 대형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이때, 그는 최초 목표로 했던 1억 달러가 아니라, 무려 3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예치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 이 NST가 바로 2주 전!
인공 피부 기술과 인공 피부 접착제 기술들에 대한 임상시험에 전격적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이 미국 언론에서 보도되자마자.
미국 전역에서 NST가 크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하게 된 한국 기자들.
이 순간, 일부 기자들은 김태풍의 이름을 저절로 떠올리게 되었는데.
사이언스지 논문 게재를 통해서, NST 기술 개발의 주역 중의 한 명이 김태풍인 것이 이미 알려진 상황임에도.
김태풍이 이 NST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고.
또한, NST 대주주 중의 한 명으로 등재된 사실마저 확인이 되자.
기자들은 이때부터 더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 NST 주식은 아직 비상장 상태!
그러나 그럼에도 임상시험 진입과 동시에 비상장 주식의 가치는 빠르게 급등하고 있었고.
현재 이 지분의 가치가 대략 9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분석이 되면서.
기자들은 이때부터 마구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잠시 뒤, 본사 7층에 도착한 김태풍.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직 내리지 않고 남아 있던 직원들.
그들은 바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 야. 김 대리, 그 기사 봤어?
- 네?
- 오늘 신문 보니까, 주식 가치가 무려 9천만 달러라잖아.
- 네? 9천만 달러?
- 어? 조간신문 안 봤어?
- 네. 아직 안 봤습니다.
- 야! 오늘 진짜 엄청난 게 터졌어!
- 네?
- 미국 벤처 기업 쪽에도 관련이 있는 모양인데. 지금 보유하고 있는 지분 가치가 무려 9천만 달러라고 하잖아.
- 네? 그거 정말입니까?
- 환율로 계산하면, 얼만 줄 알아?
- 뭐, 9천만 달러면… 대충… 우와! 1,200억 원?
-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갑부가 될 수 있지?
지금껏 조용히 갖가지 투자를 해 왔던 김태풍.
그러나 그가 NST 대주주 중의 한 명이다 보니.
이번에는 기자들의 눈을 도저히 피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김태풍에게는 뉴스킨테라피(NST)보다 더 큰 게 있었다.
바로 Typhoon-Samuel PharmaChem Incorporation!
즉, TSP!
NST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TSP.
이 TSP의 전체 지분 중에 삼분지 일, 대략 33.3% 지분을 가지고 있는 김태풍.
물론, TSP의 존재가 아직 한국 기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하지만 나중에 이게 알려지게 된다면, 한바탕 더 큰 난리가 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TSP는 신약 개발 회사다!
NST가 아직 피부와 관련된 폭넓은 회사로 확대되지 않고, 현재 인공 피부 기술 등, 의학 혹은 의공학적인 사업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는 터라.
이 시점에서 보면, 신약 개발 회사인 TSP는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태풍은 자신이 회귀 전 개발하려다가 실패했던 그 신약 물질을 이 TSP를 통해 개발하고자, 이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작년 연말.
김태풍은 TSP와 자신의 이름으로 미국 특허출원들을 대다수 완료했고.
그리고 이제는 TSP 연구진들을 중심으로 해서.
추가 합성 연구 외에도.
다양한 약리학적 분석 연구.
생체 약물 분석 및 독성학적 연구 등.
관련 연구들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어머. 소장님.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아, 뭐, 그냥 간단히…. 그럼 강 비서는요?”
“네. 저는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있는데. 소장님! 혹시 아침 안 드셨으면, 회사 식당에 이야기해서 도시락을 준비할까요?”
“아뇨. 그건 됐습니다.”
“네. 그럼 소장님. 좀 있다가 제가 오늘 스케쥴을 알려드릴게요.”
그렇듯 잠깐, 사무실 앞 데스크에서, 강 비서와 아침 인사를 나눈 김태풍.
이후, 그는 곧장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창문을 먼저 연 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때, 그는 아까 차에서 읽던 신문들을 다시 한번 펼쳐봤는데.
NST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가 여러 신문 지면에서 자극적으로 기사화되어 있었다.
‘휴! 앞으로 이런 게 더 많이 터질 텐데….’
은근히 걱정도 된다.
‘흠. 그래도 일들을 적당히 분산시켜서, 그나마 다행이지 뭐. 더는 뉴스킨테라피(NST) 쪽은 내가 신경 쓸 것도 없고. 참! Relian Medical Corporation 쪽도 곧 제품이 나올 거라도 하던데.’
그러고 보면, 김태풍이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 제공한 단백질 분석 센서와 관련된 아이디어도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특히, 그 분석 기술의 상품 가치는 상당히 대단해서.
Relian Medical Corporation은 김태풍의 회귀 전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올 연말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듯 곳곳에서 좋은 소식들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지금 김태풍의 신경은 다소 곤두서 있다.
왜냐하면, 지금 김태풍에게 가장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일성SD신약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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