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48화 (48/153)

64-천재의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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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아. 너 뭘 그렇게 생각하냐?”

하얀 실험 가운을 입고, 안전 고글까지 쓴 모습인 안성훈.

손 장갑도 여러 겹으로 낀 모습이다.

“아. 그게, 그냥….”

서정철 사장의 제안, 김선호 대표의 제안. 혹은 또 다른 기회들.

이런 것들을 놓고서, 한참 고심을 하고 있던 김태풍.

그러다가 반색하며, 안성훈을 쳐다본다.

“야. 근데 너, 무슨 실험하려고 그렇게 중무장이냐?”

“아! 이거? 야! 나 드디어 포스진(phosgene) 쓰게 됐어.”

“뭐, 포스진?”

순간, 두 눈을 반짝이게 되는 김태풍.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만다.

“네가 포스진을 쓴다고? 너, 그거 어떻게 쓰는지 배웠어?”

“야. 당근이지. 형수 형한테서 배웠어.”

“음. 그래도 많이 조심해라. 특히, 냉장고에서 꺼내서 가져갈 때, 특히 그때 많이 조심해야 돼.”

김태풍은 그렇게 말하며, 안전 관리를 계속 당부했는데.

물론, 안성훈을 가르친 박사과정 4년차인 최형수.

그는 근 몇 년간 포스진(phosgene)을 사용한 사람으로서, 이미 포스진 관련 화학반응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런 최형수한테서 안성훈이 배웠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무척 조심해서 다뤄야 할 물질이 바로 포스진이 아닌가.

다름이 아니라, 이 포스진은 바로 세계 2차대전 때, 아우쉬비츠(Auschwitz)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 학살에 사용되었던 독가스다.

이 포스진은 섭씨 8°C에서 기체가 되기 때문에.

실온(25°C)에 두게 되면, 아주 위험천만한 가스 상태가 되는데.

그래서 이 물질을 보관할 때는 반드시 냉장고에 두고서, 액체 상태로 보관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 포스진으로 인하여, 심각한 독가스 유출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회귀 전 과거의 사건!

당시 한국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한 대학원생은 이 포스진이 가득 담긴 시약병을 냉장고에서 꺼내다가, 그걸 실수로 떨어뜨린 적이 있다.

쨍!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시약병은 깨져버렸고.

포스진 액체는 사방으로 튀었다.

이제 포스진이 곧바로 가스화가 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이 일대는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실제, 포스진의 인체 치사량은 밀폐된 공간에서 50ppm에 불과한데.

즉, 초미량 누출만으로도 사망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옆에 있던 또 다른 대학원생.

그가 바로 즉시 기지를 발휘하며 조치를 취했다.

그는 암모니아수가 가득 담긴 병을 그대로 깨서, 그 포스진 위에 확! 부어버린 것이다.

아주 냄새가 지독한 암모니아수.

이 액체도 제법 유독성 물질이지만.

이 포스진과 암모니아수는 서로 반응하여, 중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 결국, 포스진의 맹독성은 순식간에 희석되어버린 것.

이렇듯 이 대학원생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아주 무서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이 대학원생이 암모니아수 대신에 물을 때려 부었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실제로 포스진은 물과도 반응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 반응성의 정도는 암모니아수보다 무척 낮다.

왜냐하면, 포스진은 주로 아민(NH3, NH2, NH 등) 계통의 시약과 반응성이 꽤 좋은 편인데.

즉, 중화제로써는 암모니아수가 제격인 것이다.

그래서 물을 붓게 된다면, 일시적인 중화 효과는 있겠지만.

그게 완벽하지는 않은 거고.

어쩌면 소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또한, 호흡기 쪽 조직 괴사, 피부 화상, 안구 실명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상황들이, 도처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야! 그건 걱정도 하지 마. 내가 뭐, 실험 초짜도 아니고. 그것보다 태풍이 너, 디펜스 준비는 잘 돼 가냐?”

갑자기 화제 전환을 하고 있는 안성훈.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김태풍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디펜스? 그냥 뭐. 이미 학위논문 작성은 끝난 거고. 지금은 발표자료 준비 중인데, 이번 발표가 영어 발표라서, 좀 신경이 쓰이긴 해.”

“뭐? 영어 발표? 그래도 넌 영어 발표도 잘하는데, 뭔 걱정이야? 참! 대체 디펜스 심사위원들이 누구길래, 너만 영어 발표를 하는 거냐?”

“우선, 교내에서 세 분 교수님. 그리고 외부심사위원에 한국대 박길선 교수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UC버클리 마이클 코헨 교수님.”

“아. 그랬구나. 쯧쯧. 뭐, 미국인 교수님이 오시니까 뭐 어쩔 수가 없네. 그런데 한국대 박길선 교수님은… 우리 교수님 후배잖아?”

“그래. 그렇긴 하지.”

“그나마 다행이다. 박길선 교수님의 질문 스타일은 꽤 젠틀하잖아. 근데 UC버클리 마이클 코헨 교수님은… 음. 내가 듣기로는, 우리 교수님과 조만간 동업할 생각인 것 같던데?”

이때,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김태풍.

그는 바로 호기심을 가졌다.

“뭐? 동업이라고 했어?”

“야. 너 그거 몰랐냐? 아, 그러고 보니까, 넌 조만간 랩을 나갈 거라서, 교수님이 너한텐 그 말을 안 했나 보다.”

“그게 무슨 말인데?”

“포닥 박사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길 들었는데, 학교 측에서 이제 교수 창업을 허용해 주나 봐.”

교수 창업?

사실, 그러고 보면, IMF 시기부터 시작해서, 현직 교수들의 벤처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즉, IMF 시대의 새로운 분위기인 벤처 열풍.

그리고 조만간 터져 나올 코스닥 열풍.

이런 열풍들에 힘입어.

교수 창업 건수도 이때부터 나날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수 창업 쪽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들과는 달리, 이것을 직접 실행하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대학들은 대다수 아주 보수적이었고.

특히, 학생 교육에 대해서는 더더욱 보수적인 면모가 있었다.

즉, 창업 교수들은 학생 교육을 등한시한다는 논리가 곧바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대학교수는 적어도 (조선시대 선비처럼) 반드시 돈에 초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세간에 아주 많다는 게 문제였다.

즉, 자본주의 시대, 첨단과학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교적 관점의 사고들.

그런 색안경들 때문에.

교수 창업은 잠깐의 붐이 일어난 이후, 바로 어려워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관점에서 이걸 생각해 본다면.

창업 교수들의 이런 경험들을 기반으로 해서.

즉, 전공 교육을 일부 창업 관련 전공 교육으로 바꾸어 나간다면.

이것은 좀 더 현실적인, 학생 창업 교육이라는 선순환도 가능해질 수 있다.

비록 대다수 학생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서,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된다.

일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또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또 그런 회사 오너 밑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그런 뒤에 한낱 회사원이었던 개인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특히, IMF 이후에 생기는 또 다른 사회적 분위기들을 생각한다면, 더 심각하게 고민할 만하다.

삼팔선, 38세까지 회사에 다니면, 선방했다는 의미.

사오정, 45세 정년.

오륙도, 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

육이오, 62세까지 일하면 오적!

이런 유행어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좀 더 생각해 본다면.

교수 창업, 학생 창업, 그리고 청년 창업 등.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따지고 보면.

벤처 기업 설립과 육성이 아주 활발한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

이런 국가들과 진짜 경쟁을 하기 위해서라도.

또한, 한국형 대기업 재벌 문화에서 벗어나, 더 넓은 국가 산업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음. 성훈아. 내가 갑자기 다른 게 생각이 났는데. 잠깐 교수님을 다시 뵙고 와야겠어. 좀 있다가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

이때,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 김태풍.

그래서 김태풍은 곧장 박한식 교수의 방으로 가려고 했고.

그러자 안성훈은 갑자기 그를 만류하고 있다.

“야. 그럼 말이다. 그 전에 한 가지만 알려주고 가. 내가 이거 물어보려면, 이렇게 제대로 갖춰 입고, 너한테 온 건데.”

“뭐? 어떤 거? 그럼 어서 말해 봐.”

“그러니까, 실험에 관련된 것인데… N-carboxyanhydride(NCA)을 합성한 뒤, 그거 정제하는 게 아주 어렵다며? 형수 형 말로는, 네가 그쪽 부분도 좀 많이 안다던데?”

“아. 정제 방법? 혹시 그쪽 부분 관련해서, 따로 조언을 못 들었어?”

“못 듣긴? 이야기는 아주 많이 들었어. 형수 형이 웬만한 것은 다 알려줬고. 같이 실험도 해 봤어. 다만, 내가 궁금한 건… NCA 합성 과정과 정제 과정이 따지고 보면 별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힘드냐 이 말이지?”

“야. 그건 생각해 보면, 사실, 네 말대로 별것도 없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이유 때문인데. 너도 알다시피, NCA가 아주 불안정한 물질이잖아.”

“그래서?”

“즉, 용매 속에 초미량의 수분이라도 있으면, 그 수분을 매개로 해서 NCA가 서로 반응을 해서, 아주 이상한 화학구조가 형성되거든. 또한, 다른 불순물에 오래 노출되게 되면, NCA의 화학구조는 그대로 망가져 버려. 그래서 가장 큰 관건은, 최대한 공기(공기 중 수분) 접촉을 없애야 하고, 또한 유리 초자 등, 모든 반응 기구들 역시 수분 접촉이 하나도 없는, 아주 완벽한 상태여야 해.”

“음. 그리고 또?”

“물론,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정제 과정까지 마무리하는 게 필요해. 특히, 이쪽 합성 쪽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아주 빨리 할 수 있지만, 처음 하는 사람들은 간혹 덤벙거리다가 실수할 가능성이 높거든.”

“음.”

“특히, 포스진까지 다뤄야 하니까, 신경이 이중 분산될 가능성이 많고. 이때는 마치 기계적으로, 또한 기계는 할 수 없지만, 사람만 할 수 있는, 아주 감각적으로. 그렇게 합성과 정제를 해야 돼. 특히, NCA 합성 쪽이 손맛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손맛?”

“그래. 요리사들마다 각자의 손맛이라는 게 있잖아? 같은 요리인데도, 요리사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

“음. 그래. 대충 뭔지는 알겠다. 그럼 좀 있다가, 내가 실험하는 거, 좀 지켜봐 주라. 내가 뭘 잘못하는지, 이야기 좀 해 줄 수 있지?”

“알았어.”

흔쾌히 승낙하고 있는 김태풍.

지금 안성훈은 김태풍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인데.

그러고 보면, 연구자들은 이렇듯 상대 연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에도 무척 익숙해져야 한다.

흔히,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외골수적인 연구자는 결코 현대적 과학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일례로, 중세나 근대의 경우, 당시의 과학자들은 혼자만의 연구실에서 혼자만의 연구를 할 수 있었지만.

현대의 과학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아주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하면서.

과학적 발전 속도는 아주 빨라지고 있다.

즉, 다른 학자들이 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순간, 그 연구자는 이미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실험기술 습득도 마찬가지다.

이때도, 숙련자의 도움을 재빨리 구하는 게, 시간 소모를 줄일 수가 있다.

그래서 네트워크와 소통이 중요한, 과학 분야 연구개발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김태풍이 집중하고 있는 신약 개발 쪽 역시 그런 부분이 아주 중요했다.

다시 말해서, 화학, 물리학, 생물학, 수학, 약학, 의학 등.

더 세세하게는, 유기합성, 유기화학, 물리화학, 분석화학, 분자세포학, 약리학, 병리학, 독성학, 동물실험, 임상약학, 임상의학, 임상통계 등등.

신약 개발은 다양한 학문들의 총체라고 볼 수 있는데.

세상의 그 어떤 천재도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일례로, 이론물리학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왜 실험물리학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즉, 혼자만의 독식을 바라는 순간.

쫄딱 망하는 게 바로 이쪽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후, 김태풍은 다시 박한식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와 진지한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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