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998년 박사학위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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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또 만나게 됐군요. 하하하!”
유쾌하게 웃고 있는 김동걸 국회의원.
1996년도 과학의 날.
과학 유공자들에 대한 훈‧포장, 표창 수여식 때 만났던 김동걸 의원.
당시, 김태풍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박한식 교수의 소개로, 저 김동걸 의원을 만난 바 있다.
그때, 벤처 육성 관련 법안 발의 건으로.
박한식 교수와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던 김동걸 의원.
그는 김태풍에게 나중에 다시 한번 만나자며, 명함을 건넸고.
그런데 오늘 이렇듯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네.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김태풍이 반듯하게 인사를 하자.
김동걸 의원은 웃으며 대꾸했다.
“뭐, 저야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국정 청사진을 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하하. 참! 김태풍씨. 오늘 이렇게 부른 것은 몇 가지 도움을 받으려고 그런 겁니다. 그 전에, 갑작스러운 제 부탁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김동걸 의원은 김태풍을 인수위 관계자들로 북적이는 회의실 한쪽으로 데려갔고.
수북한 서류들로 가득한 회의실 한쪽 자리를 김태풍에게 권했다.
이때, 이 좌석 앞쪽에 놓여있는 작은 이름표를 쳐다보니.
‘학생 대표 김태풍’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이때, 김태풍의 옆자리에 잠시 앉는 김동걸 의원.
“아! 의원님! 여기 가져왔습니다.”
때마침 젊은 보좌진 한 사람은 곧바로 다가왔고.
그는 김동걸 의원에게 서류를 건넸다.
이걸 다시 김태풍에게 전하는 김동걸 의원.
“바로 이 자료가 오늘 회의 자료입니다. 먼저 이 문건을 검토해보면 잘 알겠지만, 오늘 간담회 회의 안건은 대한민국 바이오·제약 산업 육성 전략입니다. 이 간담회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더러 참석하겠지만,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 남다른 성과를 발휘하고 있는 김태풍씨의 의견을, 저희는 아주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더 이어지는 그의 설명.
“그러니까, 신약 개발 분야 전문가 입장이면서도, 또한 박사과정 학생 입장에서 많은 고견들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의원님. 사실, 제가 얼마나 도움될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회의에 참여하겠습니다. 다만 더 궁금한 부분은, 대체 정확하게 어떤 전략들을 논의하게 되는 겁니까?”
“즉, 바이오·제약 분야 산업 육성 전략과 인재 육성 전략 수립, 이게 바로 이 간담회의 주요 안건입니다. 이것들은 향후 정부의 산업 부흥 정책, 교육 진흥 방안 등, 세부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겁니다.”
눈빛이 아주 밝고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김동걸 의원.
원래 기업인 출신이었다가 2선 국회의원이 된 김동걸.
그는 이번 정권 인수위에서 교육과학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중인데.
특히, 전문적 역량을 갖춘 그는 좀 더 상세하게 간담회 내용에 대해 김태풍에게 설명했다.
그런 그의 설명을 잠시 들으면서.
좀 더 큰 범위의 세계관.
즉, 김태풍은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을 좀 더 진지하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시점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으며 정신없이 휘청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심각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현재 아주 발 빠른 대응책들이, 정부 기관, 민간 기관 등에서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다.
특히, 3달 전,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본격적인 벤처 기업 창업 붐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 터전이 대한민국에 갖춰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4년 뒤.
대한민국 벤처 기업 숫자는 무려 1만1,300개로 급증을 하게 될 것인데.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식의 단순한 양적 증가 형태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질적인 가치 증가가 더욱 필요한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벤처 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전 정신을 기반으로, 아주 우수한 기술들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걸 사회적 선순환을 하면서.
협력과 상생의 경제 가치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렇게 진짜배기 벤처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또한, 이런 회사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정부의 산업 부흥 정책도 한편으로는 좋은 결실을 맺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김동걸 의원의 요청에 따라.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간담회 장소에 도착했던 김태풍.
그리고 잠시 후.
김태풍은 이 간담회 참석을 위해 출석한 여러 사람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아. 반갑습니다. 과기처 차현식 국장입니다.”
“정통부 배승정 국장입니다.”
“교육부 최경훈 국장입니다.”
이때, 김동걸 의원이 직접 김태풍의 인사를 도운 터라.
과학기술처, 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 국장급 고위공무원들과 김태풍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제약회사 경영진들과 벤처 협회 임원들.
그리고 대학교수들.
또한, 조문식, 노관범, 김시현 등의 국회의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된 김태풍.
그러고 보면, 이번 간담회에서 학생 대표는 김태풍이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김태풍의 모습이 눈에 띄는 게 사실인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김태풍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제약회사 경영진들과 벤처 협회 임원들.
그들은 학생 대표 김태풍을, 새 여당의 청년 대표 위원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된 간담회!
이때, 50대 후반의 나이인 2선 의원, 김동걸 의원은 이 간담회를 주도하며, 회의를 시작했고.
먼저 회의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때부터 대학교수들이.
가장 먼저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이 회의 진행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한 김태풍.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있다.
‘역시! 그 입담들, 대단하시구나. 경영, 경제, 교육, 이쪽 교수님들 입담.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어.’
그들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김태풍 같은 초짜는 감히 어디에도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다.
누군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툭 치고 들어가며.
자신의 입장을 아주 논리적으로 개진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는 재빨리 반박을 하거나.
또는, 그 의견에 열렬히 힘을 보태주기도 하는 교수들.
정말 제대로 된 토의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 중인, 또 다른 교수들.
이공계 교수와 약학대학 교수들.
그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네. 좋습니다. 김 교수, 진 교수님, 윤 교수님, 그리고 최 교수님. 다들 좋은 의견들을 주셔서, 저 역시 무척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좀 더 다른 관점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그럼, 차 국장님! 차 국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때, 김동걸 의원은 교수들의 의사 발언을 제한하며.
과학기술처 소속의 차현식 국장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러자 차현식 국장은 아주 정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갔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분위기가 아까와 달리, 많이 바뀌게 되었다.
제약회사 경영진들, 벤처 협회 임원들, 이공계 교수, 그리고 약학대학 교수.
이들 역시 차례로 발언권을 갖고서.
각자의 입장을 좀 더 진지하게 설명했는데.
또한,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동걸 의원은 학생 대표로 참석한 김태풍에게도 정책 의견을 물어보게 되었는데.
지금껏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만 있던 김태풍은 비로소 입을 열게 되었다.
“음. 사실, 저는 이런 자리가 오늘 처음입니다. 다소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이 간담회에서 아주 훌륭하신 말씀들을 들을 수가 있어, 많이 배우고 간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럼에도 김 의원님께서, 저에게 소중한 발언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제가 평소 생각했던 바를 소신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정중한 말투로 발언을 시작한 김태풍.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의견을, 이때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번 간담회의 안건은 바이오·제약 분야 산업 육성과 인재 육성에 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쪽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과 육성이, 그 어떤 산업적 영역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저는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 속, 대한민국 제약 기업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김태풍은 지금 현실적 화두를 던지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대다수 회사가, 제너릭 개발과 퍼스트 제너릭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국내 제약업계의 모습은 세계적 경쟁력이라는 말을 도무지 입에 담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즉, 기술 경쟁력 대비, 선진국 수준보다 무려 30년, 40년 정도 모자란, 아주 극악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국 국내 제약업계는 속된 말로, 그저 내수용 산업이라고 과감히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너릭: 카피 의약품*
*퍼스트 제너릭: 최초 출시된 카피 의약품*
김태풍의 따끔한 지적에 제약업계 경영진들은 바로 표정이 굳어졌지만.
그렇다고 김태풍이 빈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1990년대 중반, 제약업계의 현실이었다.
“물론, 현재 제약업계가 많이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영세한 규모로는 도무지 신약 개발을 할 수가 없고, 국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자본력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도 확실히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태풍의 신랄한 비판.
“정말 놀라운 사실은, 활발하게 인수합병(M&A)이 일어나고 있는 타 산업 분야들과 다르게… 제약업계는 인수합병(M&A)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왜 이게 그럴까요?”
김태풍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바로 리베이트 관행 때문입니다. 이 리베이트로 인해 담보되는 국내 영업 이익! 이런 꾸준한 이익에 눈이 멀게 되고, 또한 스스로 슈퍼마켓이 되는 걸 마다치 않게 되는 겁니다. 물론, 법적으로 리베이트를 막는다고 해도, 편법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세태적 관행에서 확실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김태풍은 좀 더 힘을 주어 말했다.
“저는 이 리베이트 관행부터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소 제약회사들은 반드시 정리가 되어야 하고, 제약업계의 큰 구도는 스스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제약업계에 새로운 활로 역시 반드시 열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책에 대한 설명.
“뭐, 예를 든다면, 신약 개발 연구 프로젝트, 그리고 기업에 임상시험 비용을 적극적으로 보조해 주는 국가적 산업 활성화 프로젝트. 이런 것들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즉, 제약업계뿐만이 아니라, 신약 개발 벤처, 바이오 벤처들까지도 이런 혜택을 두루 누리게 된다면, 결국 자연스럽게 국가 바이오·제약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태풍은 한 가지 더, 향후 추진되게 될 BK21 사업을 떠올리며,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다.
즉,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 사업.
그리고 우수연구인력 양성 사업인 BK21 프로젝트!
사실, 이 대학원 육성 사업은 단점도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서.
각 산업 분야별 연구 인력들이 더 크게 확대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이런 사업은 결국 국가 단위의 인재양성 사업이어서.
그 혜택은 순차적으로 바이오·제약 등의 산업에도.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김태풍의 발언이 끝나게 되자.
그때부터 곧바로 열띤 토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어느덧 1시간쯤 지나갈 무렵.
마침내 긴 간담회는 어느덧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막판 마지막 1시간 동안.
정신없이 난상 토론에 뛰어들었던 김태풍.
그런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들도 다소 늘어난 상태였다.
특히, 조문식, 노관범, 김시현 등의 국회의원들.
그들은 김태풍에게 다시 한번 보자는 이야기를 했고.
각 정부부처 국장들은 묘하게 웃으며 다가와.
김태풍에게 혹시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하. 박사과정이라고 하셨죠? 근데 김 의원님과 좀 많이 친하신 모양입니다? 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동걸 의원과 같은 정권 실세와 어떡하든 친하게 지내고 싶은 국장들.
그래서 그들은 혹시 몰라, 김태풍에게도 아부성 발언을 던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수위 실세 중의 한 명인 김동걸 의원!
그가 간담회 중간중간 김태풍의 발언을 강하게 지지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또한, 김태풍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아주 신경을 써서 메모를 하는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치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나.
그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소신 발언을 했던 김태풍.
그는 1997년의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낸 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1998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물 흐르듯이 흘러갔는데….
추운 겨울이 지나, 아직은 꽃샘추위가 가득한 봄이 왔고.
김태풍의 박사학위 디펜스(학위 심사) 날짜는 어느덧 2달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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