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44화 (44/153)

60-최단기 박사학위자 김태풍

<19> 최단기 박사학위자 김태풍

1997년 11월 22일.

각 신문 1면마다, 정부의 IMF 구제금융 공식 요청과 관련된 기사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른바, 외환위기에 대한 정부의 공식 선언과 관련된 기사들인데.

전날, 대한민국 경제부총리는 IMF에 유동성 조정 자금으로 200억 달러를 요청하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국가 부도 사태를 선언한 것이다.

사실, 그러고 보면, 불과 1년 전!

선진국 대열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흔한 말로 축제 분위기였던 대한민국.

그러나 불과 1년 사이, 대한민국은 경제적 대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초호황기를 맞이했던 국내 주식 시장과 국내 부동산 시장.

그러나 도무지 그때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는 현재 몰락 직전에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몰락의 조짐들은 이미 7월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6월!

경제 성장이 다시 가속화되면서.

코스피지수(종합주가지수)가 거의 800선까지 다다르긴 했으나.

하지만, 지난 7월!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부도유예 사태가 해결국면 없이 계속 지속되면서, 주변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고.

이때부터 한국 증시는 강보합(상승한 시세가 잠시 유지되는 현상)과 약보합(하락한 시세가 잠시 유지되는 현상) 상태를 오가더니.

결국, 10월에 이르러.

무디스, S&P 등, 해외 신용평가회사들이 국가 신용등급 및 기업 신용등급들을 대폭 떨어뜨리면서.

대한민국 경제는 돌이킬 수 있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때부터 해외 자금들은 물밀 듯이 해외로 빠져나가더니.

결국, 코스피지수는 500선까지 붕괴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11월 24일!

마침내 480선마저 붕괴되었는데.

이제 앞으로 내년 6월까지.

더 큰 증시 폭락이 예상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 가장 밑바닥 상태라고 할 수 있는 280선.

그곳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고.

한편, 국가 경제 관련 지수들 역시 무참한 추락이 벌써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휴! 회귀 전과 달리, 지금은 체감 온도가 확실히 다른데?’

사실, 회귀 전, IMF 사태를 이미 경험했던 김태풍.

그러나 그때는 단순한 박사과정 학생이었을 뿐.

그의 수중에 특별히 큰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김태풍은 그 시기를 아주 조용하게.

또한, 그저 학위과정에만 몰두하며 그 시기를 보낼 수 있었는데.

한편, 집안의 가장이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의 아버지.

다행히 그는 도청에서 일하고 있는 말단 공무원이어서.

정말 운 좋게.

이 험난한 IMF 시기를 비교적 순탄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는다고 늘 한탄만 했던 김태풍의 엄마.

그러나 이때만큼은 안도의 큰 한숨을 내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흠. 근데 지금 이 시기에, 주가를 확인해 봐도 될까? 이거 진짜 살 떨릴 것 같은데?’

그래도 호기심을 지우지 못한 김태풍은 결국 주가 창을 띄워봤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이 동그래지고 있는 김태풍.

이미 저번 주부터 대다수 종목 주가들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인데.

특히 월요일인 오늘!

대다수 종목들의 주가가 이미 하한가에서 출발하고 있는.

무척 우울한 모습들이다.

‘음.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미국 투자 루트로 넘어간 게 아주 잘한 일인데. 한데 다른 쪽은 어떻게 됐을까?’

김태풍이 집중 매수를 했던 미국 야후 주식.

이쪽은 미국증시에 속해 있는 터라, 현재 별 영향이 없는데.

김태풍은 자신이 투자한 또 다른 주식, 즉 국내 주식들.

다시 말해서, 현보컴퓨터와 한성정보네트워크 주가에 크게 신경이 쓰였다.

과거, 현보컴퓨터 주식은 1차 48만 주, 2차 24만3천 주를 구입하여.

총 72만3천 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성정보네트워트 주식은 현재 56만4천 주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역시! IMF 광풍! 어마어마하구나. 급등주 현보컴퓨터마저 지금은 이 꼴이라니?’

3천 원대였던 현보컴퓨터 주가.

이게 며칠 사이에 순식간에 2,500원대로 급락해 버린 모습이다.

물론 그 다음 미래를 알고 있어, 김태풍은 아주 여유가 있는 모습인데.

그러나 3천 원대에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이미 간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HTS 주가창에는 매도세가 급증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다행히도 현보컴퓨터 쪽은 이런 매도주문들을.

매수자들이 하나둘 흡수하면서.

조금씩 균형을 맞춰 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래. 현보컴퓨터는 주가가 떨어져도, 확실히 막판 뒤집기를 할 잠재력이 있어. 거기다가 저 한성정보네트워크도 다행히 잘 버텨주고 있고.’

과거, 주당 평균 5,750원에 매수했던 한성정보네트워크 주식.

현재 8,050원 선에서 매매 시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얼마 전, 8,300원대까지 올라섰던 주가에 비한다면.

주가가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그러나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런 두 종목들만 본다면, 뭐 IMF 별거 아니네?

이런 생각들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 외 다른 주식 종목들을 본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특히, 가장 심한 종목은 바로 종합금융사 주식!

현재 증권시장의 가격제한폭은 +8%(상한가), -8%(하한가)인데.

이 종합금융사 대다수가 하한가 폭탄을 맞아.

증시 개장 직후, 이미 거래가 실종된 상태였다.

바로 하한가에서 시작되어, 앞으로 한동안 하한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들.

이런 하한가 폭탄은 어쩌면 종합금융사들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

실제로 IMF 직전, 대한민국 종합금융사들은 200억 달러에 달하는 해외 자금들을 무분별하게 차입했고.

이런 무분별한 자금 운영은 바로 IMF 폭탄의 뇌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대다수 은행 종목들.

기계 부품 관련 종목들.

해상운수 종목들 역시.

이미 하한가를 향해서, 무섭게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휴! 그만 보자. 이러다간 눈 돌아가겠어.’

김태풍은 즉시 HTS 주식 차트 창을 없애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답이 없는 주식 동향을 계속 쳐다보기보다는.

차라리 실험을 더 하는 게.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다음 날.

이 날은 이상할 정도로.

날씨가 무척 칙칙하더니.

흐린 하늘 위에서 갑자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에 내린 재앙을 하늘도 슬퍼하는 모습이기도 한데.

이런 우천 상황은 그로부터 며칠간 더 지속되었고….

그리고 어느덧 1997년 12월로 넘어가면서.

스산하게 내리던 그 빗방울들은 어느덧 하얀 눈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1997년 12월 2일 화요일!

이날, 정부는 9개의 종합금융사들에 대해, 영업정지 결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복잡한 시국 임에도.

김태풍은 새벽부터 하얗게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아주 일찍 랩에 출근했고.

그때부터 그는 몇 가지 합성 실험을 바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어느 정도 끝낸 뒤.

그 다음으로.

최근에 확보한 샘플들의 분석 실험도 진행했는데.

그리고 그 일들마저 끝내고 나자.

때마침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의 호출도 받게 되었다.

“태풍아. 지금 교수님이 널 급하게 찾으시는데?”

배진수가 그 말을 전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김태풍은 곧장 박한식 교수의 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교수님! 찾으셨습니까?”

노크를 한 뒤, 즉시 박한식 교수 오피스, 방문을 열며 묻던 김태풍.

이때, 박한식 교수는 김태풍을 보자마자, 만면에 미소를 띠었고.

그리고 아주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고 있다.

“김태풍. 어서 오게. 어서 여기에 앉게.”

김태풍은 즉시 다가가.

박한식 교수의 앞쪽 의자에 앉았고.

곧바로 박한식 교수는 말을 이었다.

“뭐, 딴 게 아니라, 자네한테 참 좋은 소식이 있네. 또 자네한테 전달해야 할 사항도 있고해서, 그래서 자넬 불렀네.”

그러고는 박한식 교수는 미리 인쇄해 둔 무언가를, 김태풍에게 내밀고 있다.

조심스레 그걸 받아서 바로 읽어보던 김태풍.

그런데 김태풍의 표정은 순식간에 완전히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박한식 교수.

Dear Prof. Hawkins

Thank you for your interest in Science. We have received final reviews of your manuscript. Based on these reviews, I am pleased to confirm that your paper “Platinum-induced elastic and wearable polymers” has been accepted for publication in Science.

The proofs will be mailed to you in due course by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 We appreciate your….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호킨스 교수가 사이언스지로부터 받았던 메일 내용의 뒤쪽 부분까지 정신없이 읽어 가다가.

다시 앞쪽으로 돌아온 김태풍의 시선.

그의 두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이 대목!

I am pleased to confirm that your paper “Platinum-induced elastic and wearable polymers” has been accepted for publication in Science.

사이언스(Science)!

그래. 사이언스(Science)였다!

맙소사!

이건 논문 게재승인 레터(acceptance letter)가 아닌가.

세계적인 잡지, 사이언스(Science) 잡지!

여기에 게재 승인(accept)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부들부들.

종이를 쥔 김태풍의 두 손이 갑자기 떨리고 있었다.

네이처 출판도 놀랍지만.

사이언스 논문출판도 그 이상의 놀라움이다.

사실, 아무리 과학적 훌륭한 발명이라고 하더라도.

사이언스(Science) 논문 게재 확정은 전혀 별개의 사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 확정을 받기까지.

별의별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특히, 리뷰어(심사위원)가 꼰대 기질을 발휘하며 온갖 트집을 잡을 경우.

아무리 좋은 논문이라도.

게재 탈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정상급 학술잡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독창적이어야 하고.

또한, 연구결과도 아주 훌륭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필요한 ‘심사위원 운’이라는 것도 있다.

김태풍은 그 ‘심사위원 운’ 조건마저 만족해서.

썩 괜찮은 심사위원들로부터 평가를 받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하. 어떤가? 사실, 나는 이제 좀 익숙해졌네. 그래서 저번처럼 방방 뛰지도 않게 됐고. 뭐, 어쨌든, 자네가 이번에도 아주 큰 일을 해낸 것 같네. 아주 큰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박한식 교수는 첫 네이처 논문 게재승인을 받았을 때.

김태풍을 껴안고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는데.

지금은 껄껄 웃고 있을 뿐.

눈빛도 무척 반듯한 편이다.

그러나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처럼 저렇게 담담하게 있을 수가 없다.

사실, 박한식 교수는 고작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지만.

자신은 공동 제1저자.

즉, 주저자로 사이언스 논문 게재가 확정된 것이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주저자 논문출판이라는 기쁨은.

박한식 교수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 오늘 저녁에 랩 회식을 할 생각인데, 괜찮겠지?”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참! 지난 유타대학교에서, 학점 이수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거 맞나?”

“맞습니다. 교수님. 틈틈이 학점을 따 뒀습니다.”

“그건 아주 잘했네. 그래서 지금 내가, 아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네.”

“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리고 곧 흘러나온 박한식 교수의 말.

“자네 졸업 말이네.”

“???”

“벌써 12월이니까, 내년 8월 졸업을 목표로, 한번 준비해 보게.”

“!!!”

“박사학위 논문작성도 슬슬 시작해 보고. 자네 코스웍이 거의 끝난 거라면, 더 늦출 필요가 없지.”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박사졸업이 드디어 현실이 되자.

점점 숨결이 더 거칠어지고 있는 김태풍.

“네이처 2편! 사이언스 1편! 이런 학생이 세상에 또 어딨겠나? 이런 사람을 졸업 안 시키면, 대체 누굴 졸업시켜?”

그러면서 박한식 교수는 마침내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데.

지금 김태풍은 사이언스 논문 출판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앞서 목표로 삼았던.

2년 6개월 만의 박사학위 취득.

그것도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한우 갈비구이 집에서.

아주 요란한 랩 회식이 이어졌는데.

내년 하반기가 되면, 이제 박사가 될 김태풍.

그는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그 뒤.

시간은 다시 유유히 흘러갔고….

어느덧 다사다난했던 1997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 되었는데.

이날, 김태풍은 지난 18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된 새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위원회, 즉 교육과학 분과위원회에 뜻하지 않은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날, 그는 분과위원회 참석을 위해, 서울 소재 어느 호텔로 향하게 되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