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폭발적인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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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연구기술원의 김태풍입니다!”
힘찬 목소리!
“오늘 저는 새로운 형태의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과 관련하여, 특히 신약 물질을 디자인하게 된 배경과 컨셉 원리, 그리고 기본적인 화학 구조, 또한 최근 임상시험 승인을 위해 IND 신청 때 제시했던 동물 실험 결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여, 저희 신약 물질의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또렷또렷한 영어 발음을 이어가던 김태풍.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연단 아래 장내를 잠시 응시한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좌측 발표석을 제외하고, 넓은 강연장 전체가 약간 어두운 모습.
그 때문에 발표석 뒤쪽, 정중앙에 위치한 대형 스크린은 더 강렬하게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특히, 오늘 제가 발표하고자 하는 내용은, 저희 한국연구기술원에서 시작한 연구이면서도, 작년 여름, 기술이전을 통해, 현재 더어크(Derck)사와 공동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GP10-A1610에 대한 것입니다.”
김태풍의 그런 깔끔한 소개가 끝나자.
강연장 곳곳에서는 작은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눈앞으로 보이고 있는 아주 넓은 강연장!
국내외 대학교수들, 저명 과학자들, 각 연구소 연구원들, 기업인들, 그리고 학생들.
다양한 직종, 다양한 경력,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데.
지금 김태풍의 입에서 세계적인 기업 더어크(Derck)가 언급되자.
긴 학회 일정을 부지런히 따라가느라, 점점 더 피로도가 누적되던 청중들.
그들의 두 눈이 이제 다시금 반짝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쪽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회사, 더어크(Derck).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기업이자, 대단한 명성을 지닌 기업이 아닌가.
이런 회사에 기술이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다가 학계의 꾸준한 관심이었던.
새로운 개념의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
이런 화두까지 언급되자.
그 덕분에 청중의 흥미는 더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저희는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과 NSAID(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계열의 약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진통제 컨셉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김태풍은 좀 더 구체적인 신약 개발 배경 설명 외에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진통·소염제의 전체 시장 규모를 발표했다.
또한, 이런 약물들의 효능 분석, 부작용 사례 등에 관해서 설명을 빠르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드디어 이번 신약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컨셉 설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 작은 웅성거림까지 생길 정도로, 그 반응들이 아주 대단하다.
“…그리고 이 화학구조들은, 저희 연구팀에서 구상한 다양한 유도체 물질들의 예시입니다. 이 물질들을 합성한 경로에 대해서, 제가 이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간단하게 GP10-A1832에 대해서만, 합성경로를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자신이 합성한 총 48가지 화학 물질들의 기본적인 화학 구조를 보여준 뒤.
단 한 가지 물질에 대해서만 그 자세한 합성경로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강연장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들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누군가 김태풍의 데이터들을 찍어가려고.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이다.
보통, 이런 공식적인 학회에서는 초록집(발표 개요들을 모아 놓은 책자)을 발간하고 있는데.
이 초록집에 중요 데이터들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듯 발표 중간에 등장하는 데이터들이 훨씬 더 구체적인데.
그래서 일부 청중들은 사진까지 찍어가면서 정보 채집에서 혈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촬영은 학회에서 금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제지하는 이가 따로 없어
눈치도 없이 플래시까지 터트리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저희의 신약 후보 물질 GP10-A1610. 그러나 이 물질을 이 자리에서는 직접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흘러나온 김태풍의 그 말.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김태풍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신에 저는, 이 물질과 다소 유사한 구조를 가진 GP10-A1832를 기반으로, 저희 연구팀과 더어크 연구팀에서 진행했던 실험 결과들을 자세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오늘 이 자리에서는 GP10-A1832를 기준으로, 세포 실험, 동물 실험 결과들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흡사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이들을 견제하기라도 한 듯, 바로 흘러나온 김태풍의 그런 언급.
그 때문에 잠시 카메라 플래시들이 줄어들긴 했으나.
다만, 좌정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은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 음. 할 수 없지 않나? 여기서 다 공개할 수는 없을 테지?
- 뭐, 여기저기서 소문만 무성하던데…. 그래도 더어크 결과를 일찍 볼 수 있으니까, 그건 좀 흥미로울 것 같네.
- 근데 저 청년은 누군지 아나?
- 음! 대표 발표를 하는 걸 보면, 보통 연구자는 아닌 것 같은데?
- 그래도 특허출원까지 다 마무리했을 텐데, 좀 더 보여주지. 뭘 그렇게 숨기는 건지. 쯧쯧….
사실, 이런 학회 자리에서, 상용화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화학 물질을 공개적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게 가능한 것은, 적어도 특허 등의 지적 재산권 설정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말.
실제로, 김태풍이 이 자리에서 제시한 48가지 화학 물질.
이것들은 이미 특허출원이 모두 완료된 상태였고.
또한, 이번에 비공개 처리된, 나머지 48종류의 화학물질들.
이것들 역시 특허출원까지 완전히 마무리된 상태다.
즉, 단 한 건의 신약 개발 과정이지만.
묶음 형식으로 나간 특허출원 건수가 무려 10건을 넘어설 정도다.
이른바 박한식 교수, 김태풍, 더어크(Derck)사 쪽은 아주 빡빡하게 권리 독점 장벽을 세운 것이다.
어쨌든 그런 배경 설명을 마친 김태풍은 이제 여러 데이터들을 하나하나씩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는데.
그는 특히 GP10-A1832의 진통·소염 기작과 NSAID 계열에 속한 약물들과의 차이점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그러니까 이 GP10-A1832가 진통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먼저 안지오텐신(angiotensin) II 수용체와의 결합을 통해서, 포스포리파아제(phospholipase) A2,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E2 등을 연속적으로 활성화시킨 결과입니다. 이런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칼륨 채널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이 동물 실험 결과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마우스(mouse), 랫(rat), 토끼 등의 통증 반응이 아주 크게 지연될 수 있었습니다. 그 외 다른 기작으로 항염증 작용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린다면….”
그렇게 약물 기작(mechanism)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들을 이어나간 김태풍은.
그 다음으로 좀 더 다양한 세포 분석 결과와 동물 효능 결과들을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추가로, GP10-A1832 이외의 다양한 유도체들을 이용한, 유사 실험 결과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나갔다.
사실, 이런 식의 유사 화학 구조 물질들에 대한 연구는.
혹시 모를 효능 개선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목적이 있기도 했고.
또한, 관련 경쟁업체들이 화학 유사체를 재빨리 합성한 뒤, 그걸 기반으로 신약 허가를 받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특히, 이런 쪽에서 김태풍은 큰 역량을 발휘했는데.
그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화학 물질들을 쉴 새 없이 제안했으며.
또한, 그것들의 합성법까지 완벽하게 창출해 냈던 것이다.
“음. 그래서, 저의 결론은 저희의 이 신약 물질이야말로, 기존 진통제 시장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훨씬 더 낮은 부작용을 가지면서도,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복용할 수 있는… 즉, 새로운 형태의 획기적인 범용성 진통제로써, 모두에게 인정받길 저는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김태풍은 마지막 말도 잊지 않았다.
“끝으로, 이 연구는, 저의 석사과정 1년차(1994년) 하반기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진행했던 연구들로, 조만간 관련 신약 후보 물질이 더어크(Derck)사의 주도하에 임상 1상 시험으로 이어질 예정에 있습니다.”
그렇게 김태풍은 발표를 마치게 되었는데.
사실, 김태풍은 발표 초반에 신약 후보 물질로 GP10-A1610을 언급하며, 이것의 유사체가 바로 GP10-A1832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리고 오늘, 모든 발표를 GP10-A1832를 기준으로 진행했는데.
그런데 좀 묘한 사실은, GP10-A1610과 GP10-A1832, 이 두 물질들은 그저 초창기 핵심 물질들이었고.
현재, 실질적으로는 최종 신약 후보 물질로 GP10-A2612가 거론되고 있는 상태였다.
즉, 오늘 이 발표 자리에서, 김태풍은 이른바 맛보기 결론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김태풍의 이런 발표가 끝나자마자.
아주 폭발적인 반응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전을 가진 진통제 개발!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놀라운 실험 결과들이 베일을 벗고서 등장하게 되자.
청중들은 그 모든 데이터를 보고서 크게 놀라며 감탄했던 것이다.
- 와우! 정말 놀랍군! 마침내 새로운 진통제 컨셉이 나왔다니!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인데?
- 흠. 또 모르지 않나? 임상에서 확 뒤집힐 수도 있잖아? 임상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네.
- 음. 아니네. 꼭 그렇지는 않지. 저 정도 결과라면, 확실히 달라. 이건 확실히 NSAID(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계열들보다 더 뛰어나 보이네.
- 음. 그렇다면 앞으로 제약업계에 큰 지각 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인데?
- 하하. 이거야말로 더어크(Derck)사가 정말 제대로 큰 건수를 물은 경우지.
그 와중에 점점 더 소란이 커져 갔고.
곧 청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신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열렬한 학자들.
그리고 이 연구를 처음 발표하게 된 김태풍. 이 한국인 청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그 바람에 마이크 질문대 앞으로, 긴 줄이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런 모습에 놀란 좌장!
그는 서둘러 손을 저으며, 질문자 숫자를 제한하려 했다.
왜냐하면, 김태풍 때문에 다음 발표 순서에 큰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
“하하! 이거 참! 자자! 여러분들!! 좀 진정들 하십시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다 질문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학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딱 다섯 분만….”
그러자 바로 터져 나오는 불만들!
- 아니! 그거는 좀 너무 하지 않습니까?
- 좌장! 저희한테도 질문 기회를 주시오!
- 좌장! 아니, 프로페서 알란! 저희도 꼭 질문하고 싶습니다!
긴 대열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큰 목소리로 항변하자.
결국, 좌장을 맡은 알란(Allan) 교수는 좀 더 물러서지 않을 수 없다.
“음.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럼 총 열 분, 아니 총 열다섯 분까지, 질문 기회를 제한하겠습니다. 대신에 짧고 간단한 질문들을 부탁드립니다.”
결국, 순번에서 밀린 뒤쪽 대기자들은 무척 아쉬운 표정들을 지으며, 질문자 대열에서 이탈하는 가운데.
곧 시작된 질문 공세.
그러나 김태풍은 내내 미소를 띠며, 아주 여유롭게 그 질문들을 받아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김태풍의 모습은 정말 대단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일개 박사과정 학생에 불과한 김태풍!
그런 그가 지금 세계적인 학자들의 질문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내고 있었고.
그 질문들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또 아주 깔끔하게 대답들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영어 발표를 잘한다는 것은.
수많은 연습을 거친다면.
적어도 어느 수준까지 영어 발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예기치 못한 질문들을 받을 땐.
보통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아주 침착하게, 모든 질문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받아내고 있는 김태풍의 모습.
이 학회에 참석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들.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은.
그런 김태풍의 모습 때문에, 도무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발표의 큰 방점을 찍는 일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순번을 받은 어느 질문 대기자.
그가 자신의 질문 차례를 과감하게 누군가에게 양보했는데.
이때, 조용히 걸어 나온, 백발의 노인.
그의 등장에 잠깐 장내에는 놀라움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 와! 닥터 코니(Corney)가 직접 나왔어!
사실, 학회 내내 여러 발표들을 아주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었던 노인.
그런데 이 노인의 중요한 이력 중의 하나가 바로 노벨상 수상이다.
즉, 노벨상을 이미 수상한 학자.
학계의 거목.
그런 그가 지금 마이크를 잡고 있었고.
그는 한껏 인자한 미소마저 띠며.
김태풍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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