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사이언스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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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Prof. Hawkins
Thank you for your interest in Science. We have received five reviews of your manuscript. As you can see from the reviewer's comments, there are many concerns on your manuscript before it can be accepted for publication. It seems that additional experiments are needed to support the novelty of your manuscript.
I would reconsider your manuscript if you could revise by reflecting all of the reviewer's concerns….
그러니까 사이언스지에서 5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심사평을 받았고.
이 심사평을 기준으로 해서 논문 원고를 수정한 뒤 다시 제출하라는 요청이었다.
이렇게 수정된 원고를 기준으로 다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안내 말.
그리고 메일 하단에는 각 리뷰어(심사위원)가 기재한 심사평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가량의 질문들이 각각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서를 추후 만들어야 했고.
또한, 필요한 경우, 추가 실험을 실시해야 했다.
실제로, 이런 최상위권 저널에서는 이런 식의 수정 요청을 하는 게 아주 일반적이었고.
그래서 이런 수정 과정을 거치는데.
많게는 1년 이상을 소모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하! 거기 보면, 크리티컬한 부분도 좀 있지만, 사소한 질문들도 제법 많아. 비록 메이저 리비전(major revision: 좀 더 큰 범위의 수정 요청) 판정이라고 해도, 이건 무려 사이언스 논문이란 말이야! 하하하! 정말 이것만 받아도, 정말 정말 대단한 일이지!”
김태풍이 심사평을 읽는 동안, 박한식 교수는 그렇게 감탄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 논문에 자신이 교신저자, 즉 연구 책임 저자로 참여한 게 아니어서, 기쁨은 조금 덜하지만.
그럼에도 공동저자로 참여하게 된 박한식 교수.
이제 자신의 이력 속에.
사이언스 논문 출판이라는 한 줄의 글귀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사실, 주저자로 참여한 김태풍.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두 눈이 한층 커지며, 도무지 입가에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을 정도다.
아직 출판 게재가 확정된 것도 아니지만.
비록 메이저 리비전(major revision) 판정이라, 추후 심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미 이것으로 큰 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이언스, 네이처 등과 같은 세계적인 저널들은.
첫 심사만으로 출판 게재 승인(accept) 판정을 내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논문 저자들은 메이저(major) 혹은 마이너(minor) 리비전(revision) 판정을 받게 되고.
그때부터 그들은 논문 원고 수정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일에 무려 1년이 넘게 걸리더라도.
대다수 아주 기분 좋게 이 논문 수정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잘한 SCI 논문 수십 개, 수백 배보다도.
이 한 편의 논문 가치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음. 이메일 상으로 보니까, 리뷰어(심사위원)들이 요청한 추가 실험들은, 캐리 보너빌 박사가 대부분 진행할 거라고 하네.”
역시 공동 연구를 하게 되면, 이럴 때 아주 편한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하버드대에서 그 추가 실험들이 이루어진다면.
이미 제시한 실험 데이터들에 대한 연속성도 생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네는 답변서 작성 외에도, 논문 문장 수정을 좀 해 보도록 하게. 추가 실험이 필요한 곳은 그냥 공란으로 남겨 두게. 그건 나중에 캐리 보너빌 박사가 마무리하겠다고 했네. 그리고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호킨스 교수가 전체 검토를 하겠다고 했으니까, 뭐, 일정상 7월 초순까지, 그 작업을 마무리해 보게.”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인자하게 웃는 박한식 교수의 모습을 뒤로하고서.
이제 김태풍은 그의 방에서 나왔고.
곧바로 펄쩍펄쩍 뛰며.
소리없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회귀한 뒤,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네이처 논문 출판.
그걸 무려 2개나 하게 되었고.
거기다가 이제 사이언스 논문 출판까지 눈앞에 두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저히 출판할 수 없는 셀(Cell) 학술지를 제외한다면.
이른바 세계 3대 학술지 중에 무려 2개 학술지에 주저자 논문 출판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한국에서는 무조건 교수 자리가 보장될 것이고.
세계적으로 보면, 웬만한 유명 해외 대학에서, 이런 김태풍을 스카웃하려고 난리가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빠! 왜 그렇게 싱글벙글? 혹시 좋은 일 있으세요?”
사이언스 논문 출판이라는 그런 미래를 소망하며.
한껏 웃으며 랩으로 들어오던 김태풍.
이때, 옆 후드에서 한창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최소연.
그녀가 무척 의아해진 눈으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다.
하얀 실험 가운을 입고서.
긴 생머리를 뒤로 꼭 묶은 모습인 최소연.
현재, 보안경까지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모습은 무척 두드러져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외모 때문일 터.
조각 같은 이목구비.
선명한 눈동자에 하얀 피부.
그리고 작은 얼굴.
저 정도 외모라면, 새하얀 비치 플로피햇 모자를 쓰고서 긴 치마를 펄럭이며, 음료 광고 CF모델을 해도 될 법한데.
그런 최소연은 김태풍의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랩 후배가 되었고.
한편, 그녀는 이제 여성 과학자를 꿈꾸는, 석사과정 1년차가 된 상태다.
“아, 아니 뭐. 그냥 뭐….”
애써 아닌 척 부정하며, 얼른 자기 자리로 가서 조용히 앉는 김태풍.
그런데 어느덧 1시간쯤 지나갈 무렵.
갑자기 최소연이 김태풍의 자리로 다가온다.
“오빠! 혹시 좀, 내일 시간 좀 있으세요?”
“응? 시간은 왜?”
“저녁에 잠깐, 시간을 내주면 좋겠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의아해하던 김태풍.
그리고 이때, 랩 테크니션 김민영도 조용히 다가와, 이 대화에 끼어들고 있었다.
“야! 김태풍! 이야기 못 들었어? 소연이 내일 소개팅한다잖아.”
“뭐?”
“우리 같이 나가서, 소개팅하는 거 지켜볼래? 소개팅 끝나면, 품평해 주는 건 어떨까?”
뭐? 품평?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김태풍.
그런데 이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야.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소개팅 자리에 같이 나갈 수 있어?”
남자로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인데.
최소연, 김민영, 두 여자들은 김태풍의 그 대답이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오빠! 그냥 좀 떨어진 곳에서, 몰래 지켜보면 되잖아요? 남자를 제일 잘 아는 건, 남자라고 하던데?”
이때, 랩 테크니션 김민영도 다시 끼어들었다.
“김태풍. 잠깐 나가자. 같이 팥빙수나 먹으면서, 지켜보면 되잖아. 소연이가 얼마나 마음이 약한대. 이상한 남자랑 사귀면, 절대 안 돼.”
랩 테크니션 김민영.
학번은 김태풍과 같은 90학번이다.
그녀는 학부 학위만 있는 상태인데.
현재, 랩에서 잡다한 합성 업무 외에도.
몇몇 연구 프로젝트에서, 연구 보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김태풍의 석사과정 1년차 때부터, 랩 일을 시작한 터라.
김태풍을 아주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데 그런 김민영을, 최소연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두 사람은 무척 친한 모습이었다.
“하하! 미안. 내가 지금 좀 많이 바빠. 현재, 논문 수정할 것도 좀 있고, 합성해야 할 거리도 좀 많아서….”
“야! 김태풍! 그냥 겸사겸사, 바람 쐬러 가자니까! 너, 정말 이러기야?”
결국,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민영.
김민영은 계속 항변했다.
“성훈이랑은 날마다 커피 마시러 잘 가면서, 우리한테 시간도 좀 못 내줘?”
“아, 그거야….”
당황해하며, 잠깐 생각을 하던 김태풍.
결국,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김민영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든 것이다.
아무래도 여우같은 최소연.
요즘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송아란과 달리.
저 최소연이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특히 소개팅이라니?
어쩌면 묘하게 자신의 질투심을 유발할 목적인가?
여하튼, 내일 저녁에 잠깐 학교 밖 찻집을 가기로 약속한 김태풍.
그러고는 곧바로 논문 수정 작업에 다시 몰두했는데.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지나.
순식간에 밤 12시가 되었는데.
그제야 책상 정리를 하고서, 일어서고 있는 김태풍.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 돌아온 뒤.
그의 생활 리듬이 완전히 바뀐 상태다.
야간조 생활을 접고서.
이제 한낮에 랩 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게 된 김태풍.
그리고 대략 밤 12시쯤이 되면.
퇴근하는 생활을 꾸준히 반복하고 있었다.
특히, 아침에는 아주 일찍 일어나, 조깅을 꾸준히 하면서.
체력 관리에도 빈틈이 없는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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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다음 날 저녁.
“음. 그럼 말이야. 내가 정말 냉정하게 말해줄까? 아니면… 정말 듣기 좋게 말해줄까?”
랩 후배 최소연.
그녀가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남학생과 소개팅을 하는 걸.
멀찍이서 지켜보게 된 김태풍.
그리고 그들의 소개팅이 끝나자마자.
김태풍은 그렇게 입을 열고 있었다.
“오빠. 그냥 냉정하게 말해주세요.”
두 눈을 반짝이며 최소연이 대꾸하자.
김태풍은 이내 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남자가 너무 눈빛이 별로야. 또 입술도 너무 얇고. 거기다가, 머리는 너무 크고. 피부도 별로. 흠. 이런 외모는, 네 취향이 아닐 텐데?”
“음. 그렇긴 하죠.”
“그래도 소개팅인데, 왜 차만 마시고 끝내? 맛있는 저녁이라도 같이 먹지 않고?”
그러자 최소연은 바로 고개를 젓는다.
“아뇨. 처음부터 제가 바쁘다고, 그냥 차만 마시자고 그랬어요.”
“왜?”
“혹시 몰라서요. 정말 괜찮으면, 상관없이 계속 데이트를 할 생각이었는데. 뭐, 아니니까. 풋!”
갑자기 피식 웃으며,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소개팅남이 꽝인 모양이다.
이럴 땐 최소연의 모습은 참 귀엽고 진솔해 보이는데.
하지만, 김태풍으로서는 마음으로 크게 끌리는 게 없다 보니.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런 김태풍의 담담한 표정을 바로 알아보게 된 것일까.
생글 웃던 최소연은 이내 표정이 바뀌며.
약간 표정이 굳어지고 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김태풍의 태도를 이제야 확실하게 알아본 것이다.
“야. 소연아. 나 지금 너무 배고파. 우리 근처에서 밥 먹고 가자.”
이때 김민영이 그렇게 말했고.
최소연은 바로 눈을 크게 뜨더니, 억지로 힘 있는 어조로 대답하고 있다.
“네. 그럼 바로 나가죠.”
그렇게 세 사람은 찻집 밖으로 나왔고.
그들은 이제 최소연의 작은 애마, 작은 외제 자동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던 최소연은 이내 가까운 돈가스 가게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그런데 확실히 무언가 달라진 점이 생겼다.
김태풍을 바라보고 있는 최소연의 눈빛이 확실히 많이 달라졌고.
일부러 김태풍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던 그 묘한 노력들.
이제 그런 모습들을 그녀로부터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흠. 좀 이상하게 끝났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한데, 그러고 보면 말이야. 내가 참 정신이 나갔어. 저런 예쁜 여자를, 내가 마다하다니. 휴!’
그래도 어쨌든 김태풍은 이제야 좀 더 편안한 랩 생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1997년 7월 2일 수요일이 되자.
이날, TeraTorus(테라토러스)와의 기술이전 계약이 드디어 체결되게 되었다.
이날, 학교를 방문한 TeraTorus(테라토러스) CEO 로건 램버트 박사!
그는 학교 총장을 비롯한 보직자들과 면담을 가졌고.
이후, 기술이전 계약서에 나란히 사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의 계약 결과로.
김태풍은 TeraTorus(테라토러스) 비상장 주식 8만 주(액면가 주당 10달러, 총액 80만 달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2주일 뒤.
김태풍은 드디어 두 번째 미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미국 방문 목적에, 미국 응용화학 학회 참석 외에도 특별 오럴(구두발표) 섹션에서, 한국 학생 대표로 구두발표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외에도, 1박 2일간의 솔트레이크시티를 다녀오는 일정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상태다.
한편, 박한식 교수는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 이 학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고.
대신에, 저번 네이처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이자 스탠퍼드대 박사학위자인 강신혜 박사가 이번 미국행에, 김태풍과 동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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