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32화 (32/153)

48-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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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키메라 펩타이드에 항암제를 컨쥬게이션(conjugation: 화학적 연결)하겠다는 거잖아?”

“네.”

“결국, 이 펩타이드는 암세포 표면에 위치하고 있는 CD20 수용체에 달라붙는 거고. 이때, 면역 대식세포(Macrophage), 단핵구 세포(Monocyte), NK 세포(Natural Killer Cell: 자연살해 세포) 등을 활성화해서… 결국 면역 반응에 의해, 암세포를 제거하겠다는 거잖아?”

“네. 그렇긴 한데….”

“그리고 MAPK signaling Pathway나 NF-кB Pathway 등과 같은 추가 기전들을 통해서, 암세포 자살(apoptosis)를 유도하겠다는 거고?”

조금 전, 라비 라마누잔은 김태풍의 네이처 논문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며, 아주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이때, 김태풍은 아주 친절하게 그의 질문들을 받아주었다.

그러자 무척 흥분한 라비!

그는 곧바로 자신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 컨셉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그전에 이미 여러 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던 김태풍.

그래서 곧바로 라비의 의도를 이해해 버렸다.

이후, 김태풍은 라비가 말하지 않은 그 다음 단계 기작까지.

바로 넘겨짚듯 이야기해 버렸는데.

그 바람에 라비는 약간 당황한 표정마저 짓고 있다.

“그리고 이 항암제는 결국… 약물 전구체(pro-drug) 개념인 거고. 아마 키메라 펩타이드로부터 떨어져 나갈 테지?”

“네. 그건 그렇죠.”

“즉, 이 항암제마저 추가로 암세포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종합하자면, 다방면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 이런 부분들까지 다 합친다면, 결국 이 물질의 항암 효과가 정말 엄청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김태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자신의 두 번째 네이처 논문.

거기서 발표한 약물 전구체(pro-drug)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새로운 약물 전구체 컨셉을.

라비 라마누잔은 디자인했던 것이다.

즉, 앞서 김태풍은 약물 TNP-470을, 화학적으로 변형시킨 지방산과 결합시켜.

결국, 새로운 형태의 화학적 결합체를 합성할 수 있었는데.

이 결합체는 암 조직에서 과다하게 분비되고 있는 특정 효소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암 조직에서만, TNP-470과 지방산과의 화학적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는데.

이때, 분리가 되어서 자유로워진 TNP-470은 아주 강력한 암세포 성장 억제 작용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화학적 결합체 상태일 때는, TNP-470의 약효가 없지만(즉, 이 상태는 pro-drug 상태 = 약물 이전 단계 상태 = 약효가 없는 상태).

그러나 결합체에서 TNP-470이 완전히 분리가 되면(즉, 암 조직의 특정 효소 때문에).

이때, 이런 TNP-470는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항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즉, 이 상태는 drug 상태 = 약물 상태 = 약효가 있는 상태).

이게 바로 신약의 화학구조를 디자인할 때.

종종 쓰이고 있는 약물 전구체(pro-drug) 기술인 것이다.

보통 때는 약효가 없다가.

특정 조건에 부합되면, 약효가 생기게 되는 전략.

이런 기술들을 항암제에서 쓰는 이유는, 약물의 부작용이 심해 약효가 제한적일 경우, 특정 암 조직에서만 강력하게 약효를 발휘하게 하여 정상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 조직만 파괴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김태풍의 항암제 컨셉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보니.

라비 라마누잔은 앞서 질문할 거리들이 아주 많았던 것인데.

그런데 지금 라비는 자신의 주요 컨셉마저 완전히 노출되자.

정말 놀란 표정마저 지으며, 또한 탄성을 지르고 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걸 다, 그렇게 빨리 추론할 수 있지?”

라비가 저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

즉, 신약 기술 컨셉이다.

그런데 라비가 말한 일부 사실만을 듣고서, 전체 컨셉을 바로 이해해 버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단계는,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는 단계.

즉, 책을 통해서, 단순히 공부해서 얻는 게 아니라.

책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 스스로 구축해 나가는 단계인 것이다.

고도의 이해력과 천재적 창의력이 없다면, 정말 불가능한 단계.

그래서 천재적인 과학자는 단순히 계산 능력이 좋거나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런 능력에서 벗어나.

결국,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이게 바로 진짜 진정한 천재의 능력!

그래서 수학적 능력이 부족해도, 이런 천재적 능력을 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안타깝게도 통속적인 교육 체계들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자신도 모른 채.

그 능력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즉, 놀라운 수학적 계산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만 천재라고 외치고 있는 한국적 일반 정서로서는.

도저히 진짜 천재들을 감별해 낼 수가 없는 것이고.

어쩌면 무직자 백수 청년한테.

이런 대단한 능력이 잠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와! 내가 진짜 중요한 건 말도 안 했는데. 대니! 당신은 설마 키메라 펩타이드 구조까지 이해한 건 아니죠?”

더 반짝이는 눈을 하며, 라비는 그렇게 묻고 있었는데.

물론 그가 자신의 펩타이드 합성에 사용된 아미노산들과 펩타이드 시퀀스에 대해 이미 간략하게 설명을 한 터라.

똑똑한 김태풍은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펩타이드 화학구조 컨셉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라비 라마누잔은 나이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순진한 모습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노출된다면.

누군가 그 아이디어를 손쉽게 도둑질할 수도 있는 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김태풍이라는 것.

특별한 사심이 없는 김태풍.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대답했다.

“뭐, 대충 이해는 했어. 그리고 아주 흥미로웠고. 근데 아까, 두 가닥의 펩타이드들을 서로 붙여 놓았다고 했는데. 사실 내 생각에는, 두 가닥의 꼬여있는 펩타이드들을 각기 준비해서, 그걸 서로 연결한 게 맞지? 즉, 꼬여있는 펩타이드 2개의 끄트머리를 서로 딱! 붙였으니까, 결과적으로 총 4개의 펩타이드를 붙였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때, 김태풍은 라비의 예상과 다르게, 더 깊숙한 내용까지 바로 이야기해 버렸는데.

그리고 그 순간, 라비는 한층 더 놀라고 있었다.

그건 정말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아주 중요한 컨셉.

아직 발표된 적도 없었고.

아직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화학적인 컨셉.

즉, DNA의 알파-헬릭스 구조처럼.

두 개의 펩타이드들을 각기 물리적으로 꼬아 놓은 뒤.

각 말단(끄트머리) 한쪽을 서로 연결해서, 마치 항체(antibody) 모양으로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컨셉이 바로 들통이 나자.

라비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눈이 동그래지고, 입도 쩍 벌어지고 있는 모습.

17살 라비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김태풍은 피식 웃다가.

갑자기 묘하게 두 눈을 반짝이더니.

이제 라비에게 괴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근데, 나는… 사실, 꼬여있는 그 부분들 쪽에 더 관심이 있어. 특히, 그 꼬여있는 펩타이드들 말이야. 그렇게 꼬여있는 각도들이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데? 즉, 화학구조와 수소결합력에 기인해서, 그 꼬인 각도들을 수학적으로 예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수소결합: 통상적으로 H, O, N 등의 화학원소들끼리 상호 간에 서로 붙으려는 인력을 이야기함. 응용 예로, DNA는 두 쌍의 유전자 정보가 꼬여있는 이중 나선 구조인데. 두 쌍의 유전자 정보는 수소결합에 의해 헬릭스 구조를 형성하게 됨*

그렇듯, 김태풍으로부터 그런 묘한 질문을 받게 되자.

잠시 멈칫했고, 또한 잠깐 석상처럼 변하던 17살 인도인 소년 라비.

그러나 곧 그는 새카만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을 시작하고 있었다.

“음…. 그건 제 생각에, 가우스가 제시한 이중 적분식을 도입한다면, 공간 모델 계산이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즉, 벡터 t(s1)과 벡터 t(s2)의 상관 관계식을 통해, 수학적 계산식(equation)을 유도할 수도 있고. 또한, Writhe (매듭)의 Wr의 값에 따라 계산을 하게 된다면, 아마 공간상에서 기본적으로…… 으음. 대략 256가지 공간 모델 정도가 될까? 우선, 이걸 도출한 뒤, 다시 수학적으로 풀어내면….”

그러고는 그는 김태풍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는.

즉,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Writhe (매듭) 모델의 Wr 값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김태풍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김태풍에게 수학적 모델 계산은 영 무리다.

그러나 라비 라마누잔.

그는 수학적 분야에서도.

그의 천재다운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즉 새로운 개념이 포함된, 총 6가지의 꼬인 나선 모델들을 제시했는데.

거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의 천재적 능력에, 김태풍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아주 담담한 표정을 짓고는, 김태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하하. 뭐, 그럴듯하네. 하지만, 이 일은 구조 분석까지 직접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

“아, 뭐, 그렇긴… 하죠.”

“다시 말해서, 이론 모델과 실제가 맞는지, 꼭 확인이 필요할 것 같은데?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어. 이런 구조 분석 실험들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

즉, 머리를 이용해서 풀어내는 과정과 직접 기기를 써서 분석을 실시하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물리학 쪽에서도 이론 물리를 하느냐, 아니면 실험 물리를 하느냐.

그것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라비 라마누잔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더 진지했고.

또한, 아주 길어지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캐리 보너빌 박사.

그녀는 도무지 참지를 못하고, 다시 이쪽으로 걸어왔는데.

그제야 김태풍은 싱긋 웃으며, 라비 라마누잔과의 대화를 마치게 되었다.

이때, 라비는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런 라비를 바라보며.

김태풍은 다소 흑심(?)이 섞인 작업을 슬쩍 했다.

“하하. 라비. 혹시 말이야. 다음에 우리, 기회가 된다면, 뭐든 같이 연구해 보는 건 어때? 조금 전에 보니까, 생각이 서로 잘 맞지 않았어? 나중에 뭐든 같이 한다면, 뭔가 큰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과학계에서는 수많은 네트워크들이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건 개발자 혼자만의 기술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는 다른 연구자들까지 직접 나서서, 그 기술을 더 발전시켜주기도 하고.

또한, 그런 과정이 순차적으로 확대되면서.

이른바 사회적 대변혁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록 천재가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는 게 맞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의 진정한 성장은.

결국, 수많은 연구자들의 몫인 것이다.

그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김태풍.

그래서 김태풍 역시 연구 협력의 중요성을 아주 높이 생각하고 있었다.

“맞아요. 대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리, 다음번 연구는 정말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김태풍은 큰 미소를 짓고 있다.

17살이지만, 좀 아이 같은 외모에, 실제로 아이 같다는 느낌이 드는 라비 라마누잔.

인도계 아리아인 혈통이 강해서인지.

약간 밝은 피부색을 갖고 있는 라비.

그런 피부색 외에도.

성실함 등, 보통 인도인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가 있는 녀석.

어쨌든 그렇게 라비 라마누잔과의 대화를 마친 뒤.

김태풍은 이제 캐리 보너빌 박사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공동 연구에 대한, 실무적인 상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호킨스 교수의 저택으로 가게 된 김태풍.

그는 호킨스 교수 부부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게 되었고.

이날, 환하게 웃으면서.

호킨스 교수와 어깨동무까지 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낮 동안, 김태풍은 하버드대 실험실에 계속 머물면서.

하버드대 연구원들과 더불어.

아주 긴 학술적 토론을 하기도 했고.

그렇게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2박 3일간의 하버드대 일정은.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다시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어느덧 1997년 1월 12일!

무려 6개월 남짓한 미국 생활을 이제 마무리하게 된 김태풍.

이날, 호킨스 교수 부부의 배웅을 받은 그는 가장 먼저 LA로 날아갔는데.

그리고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김태풍은, 이제 대한민국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한, 많은 일들을 진행한 결과.

앞으로 큰 열매들이 많이 맺어지길 기대할 수 있게 된 미국 생활.

그런데 실제로, 아주 감칠맛 나는 열매들은 지금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메드TX 스톡옵션 행사.

IMF 광풍이 불어닥치기 전, 백억 원대가 넘는 현금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김태풍.

특히, 신약 개발 붐을 주도하고 있는 메드TX는 현재 그 주가가 다시 불붙기 시작해서.

어느덧 주가가 14만 원대를 돌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는 날.

이날 아침, 김태풍은 드디어 한국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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