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31화 (31/153)

47-천재 vs.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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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연구 미팅이 끝나자.

김태풍은 이제 캐리 보너빌 박사와 함께 호킨스 교수의 오피스에서 나오게 되었다.

사실, 미팅 전, 호킨스 교수의 소개로 소속 랩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랩 투어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캐리 보너빌 박사는 김태풍에게 랩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주기로 했는데.

‘우와! 진짜 랩 규모가 크긴 크구나.’

박한식 교수나 브룩하이머 교수의 랩 규모도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데.

이곳은 그냥 차원이 달랐다.

김태풍은 겉으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확실히 놀라고 있었다.

데릭 호킨스 교수의 랩은 보통 큰 규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려 4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들.

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 랩 규모로 본다면, 대형 규모의 랩 서너 개를 한데 묶어 놓은 것 같았고.

너무 넓어서, 여기서 달리기를 해도 될 것만 같았다.

물론 화학 시약들과 여러 장비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실제로 달리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규모가 큰 것은 사실!

즉, 이것만 봐도, 데릭 호킨스 교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캐리 보너빌 박사가 살짝 귀띔해준 것에 따르면.

데릭 호킨스 교수의 한 해 연구비는 대략 천만 달러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작은 중소기업의 거의 한 해 매출 수준에 해당되는 돈.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연구비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연구비의 가장 큰 부분은 간접비(오버헤드) 형식으로 학교에 지불할 것이고.

이때, 남은 돈으로 화학 시약과 소모품 등을 사는 데 쓰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비로부터, 대학원생들과 박사후연구원(포닥)들에게, 최소 2만 달러에서 최대 7만 달러까지 연봉을 준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두고 보면, 호킨스 교수의 학내 기여 부분은 상당히 큰 게 사실이다.

참고로, 미국 대학에 소속된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학비 면제 외에도 매달 몇천 달러의 급여를 받게 되는데.

이걸 연봉 기준으로 환산하게 된다면, 최소 1만 달러에서부터 최대 6만 달러 선까지.

이 기준은 학교별, 학위 연차별, 지역별로 각기 다양하다.

특히, 대학에서 이런 학위과정 학생들에게 급여 지급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국가 및 민간 발주 연구 프로젝트들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주체가 학생들이기 때문.

즉, 그런 노동력에 대해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 교수들의 연구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대학원생들은 학비 면제뿐만이 아니라 그런 급여조차 받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그런 교수들에게는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미국 이공계 교수들은 연구 펀드 없이는 제자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연구 간접비(오버헤드): 학교 내 시설 이용 및 행정 보조 등에 대한 비용을 책정해서, 연구비의 특정 비율 만큼의 돈을 학교가 가져가는 방식. 실제, 그 비율이 높은 경우, 연구비의 50%를 넘어서기도 함(미국 기준). 즉, 100만 달러짜리 연구비를 수주하여 학교에 가져온다면, 학교가 50만 달러를 학교 몫으로 징수할 수 있고, 교수는 나머지 50만 달러를 갖고서, 자신의 연구 수행을 하는 데 쓰게 되는 것임*

“아주 크죠? 특히, 여긴 하버드대 내에서도 최상위권 랩이라서, 규모가 이래요.”

웃으며 말을 하고 있는 캐리 보너빌 박사.

“그리고 한국 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긴 교육 체계도 확실히 잡혀 있어요.”

조금 전 미팅 때.

호킨스 교수가 사이언스 논문 투고를 직접 언급한 덕분인지.

기분이 무척 좋아진 그녀는 계속 웃으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우선, 신입생으로 들어오면… 최소 6개월간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그래서 실험 테크닉만큼은 확실히 배우고 시작하게 돼요.”

“네. 그건 한국과 좀 다르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죠. 문제는 그 다음부터라서. 그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기 스스로 모든 걸 해야 돼요. 연구 아이디어를 직접 내야 하고, 또 실험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돼요. 나중에 실적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랩을 나가기도 하는데, 또 쫓겨나기도 하고….”

캐리 보너빌 박사의 그런 설명에 김태풍은 이때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랩 문화가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과거의 삶에서 만난 하버드대 출신 박사학위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소위, 미국의 최상위권 대학의 랩들은 연구자의 기본기를 가장 중시하고 있었고.

그래서 신입생들은 몇 개월간 트레이닝 과정만 혹독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트레이닝 과정을 따로 두지 않고, 그냥 선배들로부터 알음알음 실험을 배우고 있는 한국 대학의 랩들이나 대다수 미국 주립대의 랩들과는 이곳 분위기가 확실히 다른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트레이닝 과정이 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본 실험 테크닉을 제공했기에, 그 이후부터는 무척 냉정한 평가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

예를 들어, 어느 학생이 네이처 같은 논문을 게재하게 된다면.

그때, 나머지 학생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절망감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이른바 뭐든 잘하는 학생들은 이런 시스템 속에서 극단적으로 최고의 기량을 드러낼 수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 속에서 대체로 자멸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숱한 낙오자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즉, 이 대학에 오기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

그런데 실제 필드에서 자신의 능력이 뒤처진다고 생각되면.

도저히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자존감 상실과 함께, 인생의 의욕마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즉, 자유방임적 분위기 속에서 노벨상급 신진 연구자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허물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며.

그 외 나머지는 조용히 묻혀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엘리트들이 절실히 필요한 과학계!

그런 특수성 때문에, 이런 시스템은 조용히 학생들을 채찍질하는 아주 무서운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그냥 이런 시스템에 대충대충 적응한 뒤.

순조롭게 학위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이런 사람들은 경쟁력이 확실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눈앞의 캐리 보너빌 박사.

그녀는 아주 숨 막히는 경쟁들 속에서, 적어도 억척같이 버티고 있는 것이고.

또한, 아주 성공적인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참! 저기 라비 라마누잔! 아까, 저 애랑 인사했죠?”

넓은 랩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던 캐리 보너빌 박사.

이때, 그녀는 실험 중인 17살 소년, 라비 라마누잔을 가리키며, 또 입을 열고 있다.

“저 녀석… 진짜 천재예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평가.

그 때문에 김태풍은 두 눈을 반짝이며, 라비 라마누잔 쪽을 쳐다봤다.

하버드대의 공부벌레, 아니 진짜 천재.

라비 라마누잔.

“음. 근데, 클로라이드(chloride) 계통의 시약들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무슨 연구를 진행하고 있죠?”

갑자기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김태풍.

라비 라마누잔이 쓰고 있는 화학 물질의 갈색 시약병을 우연히 보게 된 김태풍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김태풍이 말하고 있는 이 화학 물질은 반응성이 아주 강력한 벤질 클로라이드 계열.

반응성 화학 물질들 중에서도 냄새가 아주 고약한 놈인데.

물론 사람이 먹거나 흡입하면.

각종 암이 발생하거나 최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화학 물질이기도 하다.

“아, 저거! 아마, 펩타이드들을 직접 합성하는 중일 텐데….”

그러면서 캐리 보너빌 박사는 라비 라마누잔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저쪽은 주로 화학 합성 쪽이라,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혹시 키메라(chimera) 형태의 펩타이드(chimeric peptide)에 대해 들어봤어요?”

“네? 키메라 형태?”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김태풍.

*펩타이드(peptide): 보통, 단백질들은 아미노산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하위 단위인 아미노산들을 연속적으로 결합시켜 만들어진 물질임. 이 물질의 분자량은 단백질보다도 적어, 간단히 단백질의 축소판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음*

*키메라 형태 펩타이드(chimeric peptide): 하나의 펩타이드 구조 내에 서로 다른 기능성이 부여되어 있는 상태. 즉, 다른 특성(양면적 특성)을 하나의 펩타이드가 가지고 있는 상태*

“음. 듣기로는, 몇몇 단백질 구조들로부터 주요 스퀀스(펩타이드) 정보를 뽑아냈고, 그걸 화학적으로 합성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그런 핵심(key) 펩타이드들을 각기 연결해서, 키메라 형태의 펩타이드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녀의 핵심만 간추린 아주 간단한 설명 덕분에.

김태풍은 그 내용을 바로 이해를 한 뒤,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그녀는 라비 라마누잔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큰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의 경쟁자들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타깃은요?”

“아? 타깃?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

그러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

그녀는 라비의 일에 무척 관심이 많지만.

그럼에도 더욱 중요한 세부적인 연구 내용 쪽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키메라 형태의 펩타이드(chimeric peptide) 개발.

그런 식의 큰 연구 주제는 알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내부 디테일 기술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김태풍!

그는 지금 라비 라마누잔이 하고 있는 키메라 형태의 펩타이드와 관련하여, 미래 연구 정보들을 바로 떠올렸고.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들까지 겹쳐져.

순식간에 최소 20여 가지 이상의 응용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특정 단백질의 주요 구조 부분(펩타이드 시퀀스)만 활용하는 방식은, 과학적으로 봤을 때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잡다하고 복잡한 단백질의 화학구조를 단순화시키면.

아주 손쉽게 단백질 효능(액기스) 부분만 활용할 수 있고.

물질 분석 방법은 비교적 간단해져(즉, 펩타이드는 화학구조가 비교적 단순해서).

물질의 생산 및 품질관리(QC)까지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훗날 재조합 단백질, 즉 바이오 신약 개발 붐이 일어나기 전까지.

펩타이드 물질의 신약 가치는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어느 화학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연구는 신선하고, 단순 명쾌하게!’

즉, 지식이 단순화되는 과정에서, 그 이용 가능성은 폭발하듯 증가하게 된다.

어쨌든, 캐리 보너빌 박사의 그런 설명이 끝나자.

이때,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라비 라마누잔 쪽으로 다가서게 되었는데.

마침, 후드에서 막 손을 빼고 있던 라비.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눈이 커지고 있다.

“아! 킴!”

밝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라비.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발랄한 모습이다.

“아, 킴이 아니라, 대니. 그냥 대니라고 부르면 돼.”

“어? 네. 알겠어요. 대니!”

17살의 라비.

그는 호킨스 교수 식의 예의를 차리기보다는.

정말 김태풍을 편하게 대하고 있다.

“대니! 네이처에 나온 그 유도체 논문. 나도 봤어. 내가 물어볼 게 좀 많이 있는데.”

라비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을 하며, 실험 장갑을 벗어 던지고 있다.

또한, 두 손을 얼른 씻고는.

어느새 김태풍 앞에 서고 있는 라비.

김태풍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작았고, 체격 역시 아주 왜소했지만.

새카만 눈썹과 눈동자.

특히, 그의 새카만 눈동자는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때, 멀뚱멀뚱 서 있던 캐리 보너빌 박사.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김태풍은 입을 연다.

“닥터 보너빌! 제가 이 친구랑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런 뒤에 향후 실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아? 그러… 그러시겠어요? 그럼 이야기가 끝나면, 저기 저쪽 세포 실험실 쪽으로 오세요.”

어린 천재 라비 라마누잔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무척 관심이 많지만.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듯.

별말 없이 조용히 물러서고 있는 캐리 보너빌 박사.

그 바람에 김태풍은 드디어 라비 라마누잔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사실, 김태풍은 이 17살 소년에 대해서 무척 궁금한 게 사실이다.

과거, 라비 라마누잔에 대해 소문만 들었고.

이렇게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데.

인도 출신의 수학 천재이자, 화학 천재인 라비 라마누잔!

30대 중반의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순식간에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섰던.

아주 뛰어난 신약 개발자.

그리고 대단히 영리한 젊은 벤처 기업인.

이런 라비를 김태풍은 정말 일찍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선, 서로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네이처 논문을 무려 2개나 발표한 김태풍!

그런 김태풍을 17살 라비는 아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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