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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천재-29화 (29/153)

45-라마누잔

‘뭐, 하긴… 혹시 모르니까(미래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분산 투자라는 보험도 있어야 했어. 근데, 이제는 진짜 모 아니면 도야! 조만간 IT 버블 징후가 거세어질 거고….’

그렇게 미국 투자 쪽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김태풍.

그는 이제 국내 투자 쪽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에는 긴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 하하! 뭐니 뭐니 해도, 현보컴퓨터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지.’

즉, 메드TX 스톡옵션 납입금 2억 원을 제외한, 국내 은행 잔고 4억 원과 미국 은행 잔고 2억 3천여만 원(28만 달러)을 몽땅 현보컴퓨터 주식매수에 사용할 생각.

왜냐하면, 1997년 하반기, 현보컴퓨터는 빅히트, 체인지업 시리즈를 출시하게 되는데.

이때, 이 회사는 구입한 컴퓨터에 대해서 무려 2년간 CPU 및 메인보드를 무상 교체해주겠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하게 되고.

이 때문에 (IMF의 와중에도) 엄청난 호황을 누리게 된다.

당시, 이 회사의 주가는 단 몇 개월 사이에 50배나 뛰어오르게 되는데.

이듬해인 1998년까지 고려한다면, 주가 상승률은 무려 75배를 넘어설 정도다.

그래서 조만간, 최저가인 이 회사 주식부터 쓸어모은 뒤.

내년 하반기쯤에 이 주식을 털어낼 생각.

앞으로 IMF 후반기 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거대한 국내 투자금을, 이 기회를 통해서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김태풍.

우선, 그는 다음 주중에 은행에 들러, 미국 은행 계좌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귀국한 뒤에는.

국내 증권사를 통해, 넷스케이프 주식부터 먼저 처리하고.

그 돈으로 야후 주식을 매수할 생각.

그리고 어느덧,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제 김태풍은 보스턴으로 향하게 되었다.

##

어느덧 오전 11시 무렵.

보스턴 로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 김태풍.

그는 거기서 하버드대 데릭 호킨스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유태인 특유의 외모.

곱습곱슬한 머리에, 반짝이는 두 눈.

여전한 모습인 40대 후반의 호킨스 교수는 환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김태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하. 그간 샘플들을 아주 잘 받았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태풍 군.”

이때, 김태풍은 그를 배려하는 측면에서, 갑자기 유태인 식으로 인사를 한다.

“샤나 토바(Shanah tovah). 하하. 교수님! 다시 뵙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이 샤나 토바라는 말은 본래 히브리어로 ‘좋은 한 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유태인들이 주로 새해 인사말로 쓰는 단어다.

1997년 새해가 밝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김태풍은 그렇게 인사를 했는데.

그 바람에 호킨스 교수의 입가에는 선명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 안뇽하십니까(안녕하십니까)?”

이때, 호킨스 교수는 답례하듯, 어설픈 한국어 인사말을 했는데.

그 바람에 김태풍 역시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하하. 참, 이쪽은 내 와이프, 사라(Sarah)! 여보! 이쪽은 한국에서 온 김태풍 군.”

숏커트를 한 검정 머리에, 긴 입술이 좌우로 벌어지며 아주 매력적인 모습으로 웃고 있는 중년 여자.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까지 한 그녀는 유난히 얼굴이 백옥같이 하얀 편인데.

호킨스 교수보다 키가 조금 더 큰 편이다.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자, 이때 호킨스 교수는 김태풍을 다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캐리어가 이것뿐입니까?”

호킨스 교수는 좀 의아해하며 물어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김태풍의 짐이 무척 단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기로, 김태풍은 이번 일을 마친 뒤.

곧장 한국으로 귀국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상당히 큰 짐들을 갖고 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은 일부러, 트렁크가 아주 큰 대형 SUV를 몰고서 공항까지 왔는데.

뜻밖에도 자신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아, 교수님. 웬만한 짐들은, 이미 한국에 부쳤습니다.”

“아? 그랬어요?”

“네. 유타에서 절 도와주시던 한국인 유학생분 말씀이, 솔트레이크시티를 떠날 땐, 꼭 파크시티 몰(Mall)에 들러, 옷을 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옷을 산다? 하긴, 미국 옷값이 싸긴 하니까요.”

“네. 그거 때문에도 저도 거기서 이것저것 좀 많이 샀습니다. 근데, 그걸 큰 이민 가방에 넣고서, 계속 들고 다니려니까, 그게 또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해외 배송으로 한국에 보내 버렸습니다.”

“하하. 좋아요. 그럼 바로 갑시다. 우선, 점심부터 먼저 먹고. 그 짐은 저희 집에 내려놓은 뒤, 그때 하버드로 가서 본격적인 미팅을 하도록 해요.”

“네. 교수님. 아, 참! 잊기 전에 말씀드리는 건데… 오늘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면, 하루하루가 무척 바쁜 호킨스 교수.

그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만큼 김태풍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리갈 하버사이드(Legal harborside)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김태풍은 그들 부부와 함께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며, 해산물 요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런데 사실 이번 김태풍의 하버드대 방문은 2박 3일간의 일정인데.

그래서 적어도 김태풍은 이틀 밤을 보스턴에서 보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몇 주 전, 근처 호텔을 미리 예약까지 했는데.

그런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호킨스 교수.

그는 즉시 호텔 예약을 취소하라고 부탁했고.

대신에 김태풍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현재 코네티컷주, 예일대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두 쌍둥이 딸들.

그 딸들은 이미 독립한 상태라고 했으며.

그래서 자신의 집에 방들이 충분히 남아돈다는 것이다.

어쨌든 호킨스 교수의 그런 선심 때문에.

잠시 후, 호킨스 교수의 집에 도착하게 된 김태풍.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집 규모에.

김태풍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 보스턴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부유한 지역, 비콘 힐(Beacon Hill).

특히, 이 지역 건물들은 19세기 전후의 영국 건축 양식들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아주 고전적인 모습이기도 한데.

이런 비콘 힐의 저택들 중에서도.

호킨스 교수의 집은 단연 두각을 드러낼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저택의 모습이 아닌가.

특히, 그의 집,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긴 나선형의 고급스러운 계단들.

또한, 거실 한쪽에는, 새하얀 그랜드 피아노가 마치 거실 소품인 양, 장식되어져 있는 모습이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태풍? 태푼?”

“아, 그냥 대니라고 하셔도 됩니다. 그건 제 영어 별칭입니다.”

“호호~ 아주 발음하기가 좋군요. 대니~ 그럼 당신은 며칠간 여기 2층 방에서 머물면 됩니다. 여기에다 잠깐 캐리어를 두고. 그럼 저희 집부터 구경하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미세스 호킨스.”

호킨스 교수가 자신의 서재로 잠시 들어간 사이.

호킨스 교수의 부인, 사라는 웃으며.

김태풍을 데리고 이곳저곳 안내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저택 내부 복도를 돌아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건물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저택 안쪽, 외부 공간을, 김태풍은 보게 되었다.

보통, 미국의 저택들은 건물 안쪽에 자신들만의 프라이빗 공간을 마련하곤 하는데.

이 저택 역시 안쪽에, 작은 풀장과 함께 작은 테니스장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재는 아주 추운 겨울.

그래서 일광욕에 쓰이는 선베드(sun bed)들이 한쪽으로 치워져 있는데.

땅값 비싼 보스턴에서, 이런 넓은 집 풍경을 보게 되자.

김태풍은 역시 호킨스 교수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능력 좋은 호킨스 교수는 여느 일반적인 미국 교수들과 다르게, 연봉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하버드대 종신교수였고.

이미 몇 개의 벤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CEO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켰으며.

몇 건의 재료기술들에 대해서는 상용화까지 마친, 천재 과학자가 아닌가.

그렇게 그의 집 구경을 마친 뒤.

거실로 다시 돌아오자.

마침 준비하고 있던 호킨스 교수와 함께, 다시 차고로 이동했고.

곧이어 두 사람은 멋진 벤츠 세단을 타고서,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대략 20여 분 뒤.

I-90E를 경유해서, 캠버리지 St를 지나, North 하버드 St 방면으로 주행한 끝에.

드디어 하버드대 말린크로트 홀(Mallinckrodt Hall)에 도착할 수 있게 된 두 사람.

그리고 그곳에서 김태풍은 호킨스 교수 랩에 소속된 포닥들 외에도 학생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때, 호킨스 교수는 김태풍을 이렇게 소개했다.

“잘 보게. 여기 이 친구는, 한국에서 날 찾아온 아주 뛰어난 젊은 과학자네. 벌써 네이처 논문을 두 편이나 출판했고, 1억 8천만 달러짜리 기술이전까지 해낸 천재 중의 천재. 이 젊은 쿨가이의 얼굴과 이름을, 꼭 기억하는 게 좋을 거네. 나중에 뭐든 도움을 받으려면 말이네.”

세계 최고 중의 최고 대학, 하버드대.

이런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들.

그리고 박사후연구원(포닥)들.

미국인들 중에서도 천재급에 속하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김태풍을 소개한 것이다.

사실, 호킨스 교수가 그런 극찬을 한 적이 없어.

파란 눈의 미국인 천재 학생들은 아주 놀란 모습을 하고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이들 무리 속에서,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어린 남학생.

그 역시 조용히 김태풍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김태풍과 악수할 차례가 되자, 얼른 입을 열고 있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온, 라비 나라얀 라마누잔(Ravi Narayan Ramanujan)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또박또박 소개한 뒤.

정말 강한 호기심을 갖고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는.

아주 눈썹이 짙은, 어린 인도인 유학생.

그리고 그때, 김태풍은 곧바로 이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사실, 호킨스 교수 랩 인원이 거의 40여 명에 달해.

대충 웃으며 인사하다가, 뒤늦게 저 소년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김태풍은 그 즉시 그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라비 나라얀 라마누잔(Ravi Narayan Ramanujan)!

인도의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1920년 사망)과 같은 혈족 출신인 그는.

이른바, 과거 회귀적 천재(김태풍)가 아닌 진짜 천재였고.

아마 지금 나이가 17살일 테지만.

이미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진정한 천재 소년이기도 했다.

종종 한국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고 있는 이상한 천재(실제로는 단순 수학 영재 수준에 불과하지만) 따위가 아니라.

이미 저 나이에 한국인 교수들도 게재하기 어렵다는, 미국 화학회지(JACS)에 논문을 여러 차례 출판한.

즉, 창의력(학문적 창조력)까지 갖춘 진짜 천재 소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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