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스톡옵션 50만 주
사실, 일반적으로 보면, 전극(electrode)을 사용하는 cyclic voltammetry(CV) 방법은 이미 1970년대에 이미 제안이 된 상태다.
이것은 그 당시, 혈액 내의 포도당 산화효소(glucose oxidase) 분석에 최초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그러나 당시 사용된 전극(electrode)은 아주 일반적인 형태였고.
그래서 김태풍은 이런 전극 표면에, 특정 고분자 물질을 코팅하는.
이른바, 훨씬 더 감별도가 높은, 새로운 세대의 센서 개발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cyclic voltammetry(CV) 방식은 좀 더 적용하기 쉬운 방법이면서도… 고감도 측정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극의 상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표적 단백질의 카운터 파트에 해당되는 특수 고분자 물질을 전극 표면에 입힐 생각이며, 이때 이런 고분자 물질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바로 합성을 진행하면 그런 대단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하. 합성이라고? 그건 더 어려운 일일 텐데?”
“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선 제 전공이 합성 쪽이라서, 만약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면, 향후 몇 달 이내에 최소 10종 이상의 특수 고분자 물질을 합성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 물질을 와이어(wire)형 백금 전극에 코팅해서 준비한다면, 결국 아주 크기가 작은 초소형, 초고감도 센서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곧이어, 김태풍은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종이 노트를 꺼내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담긴 고분자 물질들의 아주 대략적인 화학구조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김태풍.
처음엔 무척 여유로웠던 송정민 박사.
그런데 점점 그의 표정은 이상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그의 동공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즉, 이런 류의 고분자 물질들이 이온성 단백질 물질들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이온결합과 한편으로는 이런 분자 특이적 상호 작용이, 결국 cyclic voltammetry(CV) 분석 기법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겁니다.”
*이온결합: 양이온 물질과 음이온 물질이 결합하는 과정. 이때 양이온 물질은 전자를 빼앗기게 되고, 음이온 물질은 전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전자쌍을 공유하며 화학 원소들끼리 결합하는 공유결합과 다르게, 이온결합은 한쪽 물질이 전자를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상태가 된다. 대표적인 이온결합의 예시, NaCl (Na+, Cl-)*
그리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설명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김태풍의 설명들은 이미 전문가적인 수준이어서.
송정민 박사의 놀람은 더 커져가고 있다.
사실, 조금 전,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눈앞의 김태풍을, 단지 미국에 유학하러 온, 젊은 후배 연구자쯤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눈으로 김태풍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런 고분자 물질이 코팅된 전극에… 인위적으로 전위차를 바꾸어준다면, 결국 산화, 환원 반응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cyclic voltammetry(CV) 그래프 변화를 기록한다면, 그 변화의 정량화, 즉 단백질 물질의 혈중 수치 변화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겁니다.”
*(전공 상식) 전류의 흐름: 보통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최초 정의가 될 때, 즉 전기화학 역사에서 발생한 묘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전기 분야에서 전류는 전하(즉, 전자)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보통 전자(electron, 음이온성을 가짐)는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전류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른다고, 고쳐서 이해해야, 전기화학적 이론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태풍은 거기까지 말한 뒤, 송정민 박사의 표정을 살피며 잠시 기다리고 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거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송정민 박사는 지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잠시 후, 김태풍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송 박사님. 더불어, 향후 Epc(환원과 관련된 전위)와 Epa(산화와 관련된 전위)까지 측정해서 각각 비교한다면, 좀 더 고감도형 단백질 수치 분석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음. 나도 그 용어들이 무슨 말인지 잘 아네. 한데 지금… 머리가 좀 많이 아프네. 잠시만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게.”
마치 습관처럼, 두꺼운 검정 안경테와 이마를 계속 번갈아 가며 만지며, 깊은 생각에 다시 빠져들고 있는 송정민 박사.
그리고 한참 뒤.
비로소 고개를 드는 송정민 박사.
“하하! 이거 참! 오늘, 아주 가볍게 한국인 후배를 만난다는 기분으로 나왔는데, 이거 어쩌다가 내가 정신없이 공부까지 하게 된 건지 몰라.”
그렇게 운을 떼고는 그는 다시 말을 한다.
“한데 궁금한 게 있네. 이렇게 날 만나서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그럼 혹시 내 회사에 취업을 하고 싶은 건가?”
하긴, 김태풍이 너무 젊어서, 그런 의문을 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김태풍은 바로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뭐,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취업 쪽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 연구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그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제 기술을 Relian Medical Corporation에 팔고 싶습니다.”
“뭐? 기술을 팔겠다?”
전혀 생각지 못한 김태풍의 답변에 아주 많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정민 박사.
이때, 김태풍은 서류 가방에서 얼른 또 다른 자료를 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자신과 관련된 신문기사들.
이것들을 잘라서 만들어 두었던 스크랩 자료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건은 자신이 제 1저자로 출판한 네이처 논문 2건.
김태풍에게서 그런 문건들을 받고는.
그때부터 꼼꼼히 확인해 나가던 송정민 박사.
그런데 이내 송정민 박사의 두 눈은 한층 더 커져가고 있었다.
“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더어크(Derck)사에 기술이전한 신약 기술과 관련해서… 연구 지원 차, 유타대학교에 온 겁니다. 곧 이 일을 마무리할 예정인데, 그래서 조만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런 김태풍의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젊은 천재 연구자 김태풍을 조명하고 있는 여러 신문기사들을 꼼꼼히 읽어 나가고 있던 송정민 박사.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손이 조금씩 떨려 오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그 이름값으로, 그 가치를 톡톡히 한다고 하더니.
이런 기사들은 김태풍의 능력에 대한 아주 좋은 증빙 자료가 되고 있었다.
특히, 김태풍이 조금 전 했던 말들에 대한 신뢰성을 더욱더 높여주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송정민 박사는 더는 김태풍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군요. 그러고 보면, 오늘 이렇게 간단히 피자나 먹으면서, 그렇게 나눌 이야기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송정민의 말투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단순한 후배가 아니라,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김태풍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하하. 우리 이제 이걸 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자! 드세요. 하하하.”
아주 환하게 웃으며, 피자 한 조각을 권하고 있는 송정민 박사.
이미 40분 전에 피자가 나와, 테이블 위에 놓여있지만.
지금껏 송정민 박사는 피자에 입도 대지 않은 상태였고.
그건 김태풍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김태풍은 약간 식은 피자를 입에 물었고.
송정민 박사도 한 입 크게 피자를 베어 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주 딱딱한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편한 이야기들.
세상 사는 이야기들.
과거 인생 이야기 등으로 화제가 바뀌었는데.
이때, 송정민 박사의 과거 경력에 대해서도, 김태풍은 조금 듣게 되었다.
그는 원래 대기업에 다니던 회사원이었는데.
공부가 더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그 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주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는) 유학생들한테서 간혹 연락이 오면.
언제든 이렇게 피자를 먹으면서.
다양한 인생 상담을 해 주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풍도 (성당에 다니는) 그런 유학생이라고 오해를 했다는 것.
어쨌든, 이런저런 일들이 엮어서.
뜻밖의 좋은 만남을 갖게 된 두 사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송정민 박사의 요청에 따라, 김태풍은 Relian Medical Corporation 솔트레이크 연구소를 찾아갔고.
거기서 송정민 박사와 좀 더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그러고 보면, 현재 1996년 이맘때에.
그런 놀라운 센서 개발을 진행한다는 것은.
시기상으로 보면, 아주 시대를 앞선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아주 흥미로운 점은, 앞으로 10여 년 뒤.
피 한 방울만으로 다양한 질병 진단이 가능한.
‘혁신적인 혈액 진단법’이 미국 시장에 나오게 되는데.
그러나 이 진단법은 기술적으로 모든 게 부족해서.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은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어느 미모의 여성 사기꾼이 저지른, 시대적 대사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2014년, 주식시장에서 그 기술적 가치에 대한 기대심리가 엄청났고.
결과적으로 그 기업의 가치는 무려 9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는 분석 결과의 문제!
결국, 그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아주 쉽고 간단한 질병 진단법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김태풍의 이런 시도들은 앞으로 엄청난 미래가치를 담보하는 거나 다름없다.
“음. 김 선생님.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 건에 대해, 비상근 기술자문 직책과 함께… 스톡옵션 50만 주. 그게 이 조건이란 겁니까?”
“네. 송 박사님. 음. 제 제안을 한번 고민해보시고, 나중에라도 꼭 연락해주십시오. 이런 기술들은 결국, 어떤 누가 가장 먼저 상용화할 수 있느냐,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 이 일이 잘 된다면, 귀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태풍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고.
그런 김태풍의 모습 때문에.
송정민 박사의 고민은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김태풍은 송정민 박사에게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게 제시했고.
그로부터 솔트레이크시티를 떠나기 전까지.
무려 세 차례나 더 송정민 박사를 만나서, 아주 심도깊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1997년 1월 8일 수요일!
이날 아침.
김태풍은 솔트레이크 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이때,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와 인사를 나눴고.
또한,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브룩하이머 교수의 배웅을 받으며.
드디어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서, 솔트레이크시티를 떠나게 되었다.
일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박한식 교수가 허락해 주었던, 1, 2주간 미국 여행.
그런데 김태풍은 이 시간들을 좀 더 다르게 활용할 생각이다.
우선, 뉴욕 맨해튼에서 휴가 삼아 이틀을 보낸 뒤.
곧바로 보스턴으로 이동해서.
하버드대 호킨스 교수를 만날 볼 생각.
왜냐하면, 자신과 관련된 그 인체 접착제 연구에서.
곧 거대한 비즈니스의 장이 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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