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26화 (26/153)

42-이시하라 카스미

“김상. 그래도 맛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밝게 웃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그렇게 간단히 서로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마쳤고.

이제 두 사람은 초밥집 밖으로 나왔다.

사실, 이 초밥집 근처에는 김태풍도 한 번씩 들르는 리쿼 스토어(Liquor Store)가 있는데.

미국식 리쿼 스토어(Liquor Store)는 일반적으로 각종 술을 판매하고 있는 술 전용 상점이다.

그러나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이미 상점 안의 불은 꺼져 있었고, 문도 꼭 잠겨 있는 모습이다.

‘흠. 게스트 하우스에서 조용히 와인 한잔 마시면, 딱 좋은데. 젠장. 미리 사둘 걸 그랬어. 뭐, 할 수 없지.’

그렇게 김태풍은 리쿼 스토어(Liquor Store) 쪽을 잠시 쳐다보며, 아쉬운 표정을 약간 지었는데.

이때, 이 모습을 보게 된 이시하라 카스미.

그녀가 바로 입을 연다.

“김상. 혹시 말이죠. 지금 시간이 있다면, 저희 집으로 가서, 간단히 와인 한잔 마시지 않을래요?”

“네?”

“아, 저한테 선물 받은 와인들이 좀 있는데, 특별히 함께 마실 사람도 없고. 어때요? 저랑 같이 마시지 않을래요?”

그러면서 은근히 부드러운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이때, 본능적으로 김태풍은 묘한 느낌이 들고 있다.

살짝 이마를 가리고 있는 그녀의 앞머리.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는 흡사 전형적인 일본 여배우같은 모습이다.

큰 눈에 우아한 눈썹.

그녀의 미모는 확실히 뛰어난 편인데.

그런 그녀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게 되자.

김태풍은 어떻게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분위기라는 게, 참 묘하기만 하다.

하필,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보통, 싱글들은 옆구리가 허해지는 날.

그리고 마음이 더없이 싱숭생숭해지는 바로 그런 날.

거기다가 전날 내린 눈 때문인지.

아직 완전히 치우지 못한 하얀 눈들이 거리 곳곳에 가득 쌓여 있었고.

발끝에 밟히는 묘한 느낌과 사각사각하는 느낌들.

그런 느낌들이 청감과 촉각을 감질나게 자극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저물어 버렸다.

몇몇 상점 간판들에서 새어 나오는 화려한 조명들.

또한, 한 번씩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몸을 한껏 움츠리게 만드는데.

그래서일까.

몸과 마음이 좀 더 이상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김상! 김상! 같이 가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녀가 애교있게 외치며, 그를 다시금 재촉하는 순간.

결국, 김태풍의 벽은 우르르 무너지고 만다.

“아? 그럼 그럴까요?”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 탔고.

잠시 후,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자신의 차량을 몰고서.

자신이 살고 있는 풋힐 쪽, 콘도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상. 이쪽으로 오세요. 저 집이에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이시하라 카스미는 웃으며 앞장섰고.

김태풍은 조용히 그녀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는데….

그리고 어느덧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버렸다.

약간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는 김태풍.

그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콘도 하우스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한편, 긴 외투를 입고서 이쁘게 꾸민, 늘씬한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녀도 나란히 걸어 나오다가.

자신은 차량 운전석에 앉았고.

곧이어 조수석에 앉는 김태풍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김상. 그럼 게스트 하우스로 갈 건가요? 아니면 랩으로 갈까요?”

그녀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김태풍.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냥 랩으로 가죠. 뭐,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이것저것 또 쌓여 있고. 거기다가 저녁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네. 알았어요. 김상.”

운전석에 앉은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곧바로 엔진 시동을 켰다.

그러나 그녀는 차량 예열을 할 생각인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고 있다.

“그런데 김상. 어젯밤 일은….”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의 표정이 무척 이상해지고 있다.

“아. 그게… 카스미. 아, 그건….”

“잠깐만요. 김상.”

그녀는 조용히 김태풍을 다시 불렀고.

김태풍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휴. 카스미, 정말 저는….”

“아니에요. 김상. 전 괜찮아요. 그리고 전 어젯밤 일을 후회하지 않아요.”

“음. 카스미.”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아까 말씀도 드렸지만… 저한텐… 음. 일본에 약혼자가 있고…. 그러니까 김상! 어젯밤 일은, 작은 추억으로, 그럴 수 있죠? 그리고 김상은 곧 한국으로 간다면서요?”

“네. 그렇긴 한데… 아, 네. 알겠어요. 닥터 카스미! 저는 당신의 뜻을 존중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김상.”

눈빛이 한층 밝아지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그리고 다시 말을 하는 그녀.

“그럼, 정말 후회 없이….”

그리고 그 순간.

이시하라 카스미는 갑자기 몸을 돌려.

김태풍의 입에 격렬한 키스를 했다.

김태풍은 움찔 놀라면서도.

그녀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아주 격렬하긴 했으나, 그러나 무척 짧은 키스.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세를 바로 하며 앉았고.

자신의 차량을 몰고서, 다시 학교로 향하고 있다.

‘휴우. 근데 내가 대체 어제 왜 그랬지? 으으. 몰라! 내가 어쩌다가….’

김태풍은 다시금 머리를 긁적였는데.

그 사이, 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비로소 정신없이 합성 일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어느덧 오후 5시쯤 되자.

박형준의 차량 라이딩(riding) 도움을 받아서.

솔트레이크시티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솔트레이크시티의 위성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샌디(Sandy)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일부러 거기까지 멀리 간 이유는.

그곳에 살고 있는 소개팅녀 송지희의 아버지 송정민 박사.

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즉, Relian Medical Corporation의 연구소장 겸 CTO인 송정민 박사와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

Relian Medical Corporation의 연구소장 겸 CTO인 송정민 박사.

50대 중반의 나이인 그는 아주 두꺼운 검정 안경테 너머로, 무척 젊은 연구자 김태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전, 갑자기 걸려온 전화!

그때,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한번 만나자는 제안을 했던 어느 한국인 학생 연구원.

그래서 송정민 박사는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서.

이렇게 김태풍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음. 그러니까 내 회사에서 하는 일들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 말인가?”

“네. 송 박사님. 저는 전기화학 쪽 분야도 좀 관심이 많은데, 귀 회사에서 단백질 분석용 센서(sensor) 개발을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것 말인가? 하하! 그건 아주 단순한 키트(Kit) 수준에 불과하네. 현재로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고, 그보다는 MRI 조영제 쪽으로, 회사에서 큰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네. 말씀 감사합니다만, 음! 박사님. 저는 MRI 조영제 쪽이 아니라, 센서 쪽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하하. 그래?”

“네. 피 한 방울 분석만으로도, 다양한 질병들을 진단할 수 있는 그런 기술. 그건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다가, 검사 시간 단축, 환자의 의료 비용 절감. 이런 부분들까지 가능해서, 아마 아주 혁신적인 보건 기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음. 뭐, 그 말은 맞네. 내 회사에서도 그런 부분들까지 염두에 두고서, 계속 연구를 하고 있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연구 현장은 좀 다르네. 그런 기술들을 창출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서.”

송정민 박사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지고 있다.

아주 젊은 연구자.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저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곧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말을 듣던 중.

송정민 박사의 두 눈은 저절로 커졌고, 또 의외라는 표정을 짓게 된다.

“음. 그렇지만, 송 박사님. 우선, 제가 생각하는 센서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간단히, 질병과 관련된 여러 단백질 물질들을 표적 물질로 정하고, 이때 카운터 이온(반대 이온)을 가진 고분자 물질들을 각 전극에 코팅해서, 새로운 형태의 고감도 전극을 준비한다면… 그리고 이후, cyclic voltammetry(CV) 분석 기법을 활용해서, 각 단백질 수치 변화를 반복적으로 읽어내게 된다면, 충분히 이런 기술 개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cyclic voltammetry(CV): 전기화학 분석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전압-전류 측정법임. 이것은 전기화학적 산화, 환원과 같은 반응 거동을 확인할 수 있는 분석기술인데, 이때, 시간에 따라 전압(전위)를 변화시키면서, 작업 전극(working electrode)에 기록되는 전류를 확인하는 방식임. 특히, 전류(그래프 내의 y축)와 전압(그래프 내의 x축)과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특정 물질의 산화, 환원 반응을 정성, 정량적으로 감별할 수 있음*

*산화/환원 반응: 특정 화학 물질에서 전자(electron)가 떨어져나오는(즉, 방출되는) 반응을 산화 반응이라고 하며, 특정 화학 물질에 전자(electron)가 결합되는 반응을 환원 반응이라고 함. 이런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해서, 볼타 전지 혹은 일반적인 건전지를 제작할 수 있게 됨. 참고로, 전기라는 것은 전자의 흐름이므로, 전자를 뽑아내는 산화 반응은 아주 중요한 반응 중의 하나임*

“음. 하하하! cyclic voltammetry(CV) 분석이라?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긴 한데, 극미량의 단백질을 검출할 수 있는, 그런 측정 감도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특별히 cyclic voltammetry(CV)를 생각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아직 전기화학적 센서 기술들에 대한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송정민 박사가 저렇게 묻고 있는 것인데, 그건 아주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실제로 센서 쪽에 쓸 수 있는 측정 기술은, cyclic voltammetry(CV) 방법 외에도.

첨단 분석기술들에 해당이 되는, electrochemical impedance spectroscopy(EIS)나 chronoamperometry(AM) 등의 분석 방법을 포함할 수 있는데.

물론, 현재 단계에서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cyclic voltammetry(CV) 방법을, 김태풍은 가장 우선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분야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김태풍은 좀 더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