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새로운 열풍의 주역
따지고 보면, 최소연은 긴 생머리에 청순하고 가녀린 타입이지만.
그런 외모 덕분에, 친구 안성훈마저 그녀에게 홀라당 넘어갈 정도였지만.
그러나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본다면.
김태풍의 이상형과는 좀 거리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즉, 김태풍은 최하영과 같은 도도한 느낌에.
약간 섹시하면서도.
또한, 귀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적이며.
또한, 날씬하기도 한….
괜히 욕(?)이 나올 만큼.
그런 콧대 높은 이상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탑 연예인급에 해당되는 그런 이상형?
그러다 보니 과거, 김태풍은 장가조차 못 갔던 것이다.
“그럼 한국에선 한국연구기술원에 다니시다가?”
“네. 맞습니다. 현재 박사과정 1년차입니다.”
“그럼, 여긴 어떻게 오시게 된 거죠?”
송지희는 김태풍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었고.
김태풍은 이것저것 사심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서로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이때, 알고 보니, 그녀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이곳으로 이주해 왔고.
그 뒤, 치안이 아주 좋고 무척 조용하기도 한, 이곳 솔트레이크에서 계속 살아왔다고 한다.
“아, 그럼 태풍씨는 결국 귀국하셔야 되겠네요? 언제쯤 귀국하실 계획이죠?”
“그게, 얼마 안 남았습니다. 내년 1월 초순쯤? 음. 곧 귀국날짜를 잡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려고요.”
“네? 그렇게나 빨리요?”
그 순간, 바로 아쉬운 표정이 송지희의 얼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미국 시민권자다.
그래서 눈앞의 상대가.
곧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에 바로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럼 언제 다시 오세요?”
그리고 바로 그 말에, 김태풍은 바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휴! 이 여자도 아닌 건 같네. 하긴… 한국, 미국. 거리가 너무 멀긴 하지.’
아마 한 달 전, 박형준이 송지희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땐 정신적으로 너무 바빠서.
대충 듣는 시늉만 했던 김태풍.
그랬던 게 김태풍은 약간 후회스럽다.
“아마… 그게… 아, 하하. 뭐, 어쩌면 다음에 공동 연구 때문에… 여길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브룩하이머 교수님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여러 연구들이 있긴 하니까요.”
그렇게 대충 대답한 뒤, 음식을 조금 먹는 김태풍.
그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고 있다.
그런데 얼마 뒤.
송지희는 포크를 내려놓고는, 문득 다른 말을 꺼내고 있다.
“근데 제가… 음. 아마 내년부터 많이 바빠지거든요. 그때부턴 공부할 게 더 많아지고, 걱정도 더 많이 되고….”
그렇다.
의대 공부.
확실히 해야 할 게,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외워야 할 것도 엄청나게 많고.
또한, 훗날 실습수업까지 하려면, 그 얼마나 머리가 지긋지긋하게 아플까.
결국, 그것은 의사로서 필요한, 진짜 지식을 쌓기 위한 기나긴 여정인 것이다.
일례로 이런 이야기들도 있다.
보통 임상 쪽 의대 교수들은, 한 한기 내내 강의만 하는 게 아니다.
한 한기에 한두 시간 정도 강의를 하고는.
그냥 강의실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갖고 있는 관련 지식들을 몽땅 풀어낸 뒤, 강의실을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향후 시험을 치를 때, 그냥 죽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놓고서.
일부 의대 교수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뭐, 의학 지식들이 별거 있나? 2시간이면, 내 밑천도 싹 다 털리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보통, 암기한 지식, 스스로 이해한 지식, 그리고 자신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지식.
이런 식으로 지식들을 나눌 수가 있는데.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가,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보다 별로 크지 않은 편이다.
즉, 남들한테 말할 땐, 불과 몇 시간 안에 자신이 갈고 닦은 그 실용 지식들을 몽땅 다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런 실용적인 지식들을 자신이 직접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주 놀랍게도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
실제로, 의사, 과학자, 그 외 다른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여유 시간을 거의 반납하고.
수많은 시간들을 자신들의 공부에 무진장 투자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훗날 얻게 되는 진짜 지식은.
결국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지식들’인 것이다.
그래서 비록 전문가들로부터.
2시간 남짓한 실용적인 지식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장 학생 자신의 것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실용적인 지식은, 지식 하나하나마다 각각의 개념이 들어가 있고.
그런 개념들이 다시 응용되고, 또 확대될 수가 있는데.
그런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땐.
그건 진정한 실용적인 지식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동안 무척 고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그럼 앞으로 많이 바쁘시겠군요?”
“네…. 좀 그래요.”
“뭐, 저는 그런 의대 공부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하하. 그게 힘든 건,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이곳에서 계속 의사 생활을 하실 건가요?”
그냥 김태풍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충 질문을 던졌는데.
이때, 송지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고 있다.
“아뇨. 졸업하면, 그땐 여길 떠나서… 저기, LA나 미국 동부 쪽에서 PGY(Post Graduate Year: 미국식 병원 레지던트 과정)를 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음. 여긴 좀, 지루해서.”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쪽에 사시는 부모님들은… 아, 대체 무슨 일들을 하고 계시죠? 그냥 한국분들, 이쪽 생활이 좀 궁금해서요.”
별로 할 이야깃거리도 없고.
그냥 단순히 재미 교포의 생활 터전에 대해 궁금해져서.
그렇게 물어보던 김태풍.
그런데 그때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송지희로부터 듣게 되었다.
“뭐,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저희 아빤, 진단 시약 개발 사업 쪽을 하고 계세요.”
“네?”
식당, 세탁소, 슈퍼마켓, 미용실, 치과의사, 의사 등을 생각하고 있던 김태풍.
그런데 정말 의외의 답변을 듣게 된 것이다.
“네? 지금 진단 시약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네.”
“그럼 어떤 종류의?”
“아, MRI 조영제, 그리고 엔자임(enzyme) 분석 키트. 뭐, 이런 등등의 개발 연구를 주로 하시는데, 아빠 회사 본사는 LA 쪽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말에 김태풍의 두 눈이 갑자기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혹시 여기가 지부라는 말씀입니까?”
“네. 아빤, 공동 설립자라서, 여기 브랜치(branch: 지부) 쪽을 주로 맡고 계신 데, 주로 의대 교수님들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아! 그럼 혹시, 기술 라이센스를 파시는 일도?”
“네. 그것도 하시고, 최근에는 큰 기업들과 컨소시엄까지 꾸면서, 임상시험까지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의 두 눈은 조금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럼 혹시, 아버님 전공이 화학과인가요? 아니면 화공? 아니면 약학?”
“네. 화공과 출신이세요. 조지아텍(Georgia Tech)에서 박사학위도 하셨고….”
“정말 죄송한데, 혹시 그 회사 이름이?”
“네?”
사실, 아까 전부터 김태풍이 갑자기 꼬치꼬치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대답을 하던 송지희.
그런데 이제 아빠 회사 이름까지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송지희의 얼굴에는 조금씩 거부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이때, 송지희는 힐끔 다른 테이블 쪽을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 그곳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젊은 유학생 박형준과 그의 아내이자, 자신의 성당 친구인 이현숙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파스타를 먹고 있는 모습.
사실, 이 소개팅 자리는 좀 애매한 상황이다.
주선자들이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박형준과 이현숙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자.
송지희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 조심스레 입을 연다.
“음. 그냥 Relian Medical Corporation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확 높아지고 만다.
“네? 설마 RMC!!”
김태풍이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Relian Medical Corporation은 훗날 국내에도 브랜치를 차린 뒤, 국내 주식상장까지 하게 되는 회사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겨우 수천 원대였던 주가가 불과 몇 년 사이, 수십만 대까지 치솟게 되고.
이른바, 2000년대 초반.
바이오벤처 주가폭등 열풍의 주역들 중의 하나.
그게 바로 저 Relian Medical Corporation의 적나라한 미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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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이, 미국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1996년, 한해 마지막을 장식하는.
1996년 12월 24일 화요일, 크리스마스이브 날을 어느덧 맞이하게 되었다.
보통, 미국은 크리스마스 시즌 기간 동안, 연말 연휴를 실시하게 되는데.
즉,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시작해서, 내년 1월 1일까지 쉬는 장기간 연휴가 이때 실시되는 것이다.
실제로, 브룩하이머 교수 역시 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랩 학생들에게 모처럼 겨울 휴가를 주었고.
그래서 이때부터 랩은 거의 텅 비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특별히 어디 갈 데가 없는 김태풍.
결국, 그는 거의 텅 빈 랩에서.
거의 혼자서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바깥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이때,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그 때문에 오후 늦게 랩으로 출근한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녀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을 했고.
그래서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계 40대 후반의 털보 남자가 운영하는 초밥집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곳에서, 그들은 간단히 저녁거리로 초밥을 먹게 되었다.
“어때요? 맛은 어때요? 일본식과 좀 다를 텐데? 이거 먹을 만해요?”
초밥 하나를 먼저 먹은 뒤, 김태풍이 그렇게 묻자.
이시하라 카스미는 바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네.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어요.”
“하하.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 일본 초밥이랑 비교하면 어때요? 혹시,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요?”
“음. 먼저, 이 밥알부터가 좀 다른데….”
그러고 보면, 전통적인 일본 초밥은 밥을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생선의 저온 숙성 방식에도 확실한 차이가 있고.
또한, 대체로 일본인들은 참치, 연어 등, 좀 더 육질이 연한 붉은살 생선 쪽을 좀 더 선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