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숙명 같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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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경유해서, 마침내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온 김태풍.
그리고 이번에도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가 공항에 라이딩(riding)을 나와 있는 모습이었다.
“고마워요. 닥터 카스미.”
김태풍이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3살 연상의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아뇨. 이런 라이딩은 제가 계속 도와드릴게요. 그럼 김상. 바로 게스트 하우스로 갈 건가요? 아니면 랩으로 출근할 건가요?”
“네. 당연히 랩으로 가야죠!”
“네?”
“아, 이 정장 상의만 벗으면, 바로 실험 가운을 입고서, 당장 실험할 수 있습니다.”
김태풍의 당찬 그 말에.
잠시 공항 터미널 도로에 정차하고 있던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밝게 웃으며 곧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공항 Terminal Drive 도로를 지나.
I-80 E를 타고서 빠르게 달렸는데.
그로부터 25분 뒤.
무사히 유타대 화학과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이 잠시 후, 나란히 랩으로 들어오자.
이때, 갈색 머리의 백인 여학생 레이첼.
그녀는 이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다가, 묘하게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이내 김태풍만을 쳐다보며, 바로 밝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레이첼.
“헤이! 대니! 도대체 어딜 다녀온 거야?”
또한, 손까지 흔들며 김태풍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있는 레이첼.
김태풍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왔어. 거기 미팅이 좀 있어서. 하하. 근데 레이첼! 랩에 별일 없지?”
“아니. 당연히 문제가 있지. 널 못 봐서, 내 눈이 이렇게 빠질 뻔했다니까.”
“오! 레이첼! 혹시 너 날 놀리는 거야?”
“하하. 그래. 조크야. 조크! 참! 로렌스키 교수님 랩의 혀엉주가 널 찾던데?”
“아? 박형준씨?”
형준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형준을 ‘혀엉주’이라고 말하고 있는 레이첼.
그러나 그녀의 발음을 바로 알아듣고는, 김태풍은 곧바로 전화기를 잡았다.
“헬로우! 아임…. 아! 접니다! 김태풍입니다.”
- 아? 태풍씨! 오늘은 나오셨군요?
“네. 방금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쩐 일로?”
보통 통화를 할 때, 겨우 몇 마디만 들어보면, 바로 상대가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된다.
‘헬로우’라는 발음 자체부터, 일반 미국인들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전에도 박형준의 전화 목소리를 듣자마자.
김태풍은 바로 한국말을 썼던 것이다.
- 아, 혹시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 의대생이랑….
그리고 그 순간, 깜짝 놀라고 있는 김태풍.
“맙소사! 벌써 그 날이 된 건가요?”
- 네! 그 날입니다. 미루고 미뤘던 바로 그 날! 근데, 역시나 태풍씨는 정말 바쁘게 사시는군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제가 부탁한 소개팅 날짜까지 잊어버리시다니. 정말 너무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 6시쯤 요 앞에서 만나서, 같이 가도록 하죠.
“아. 죄송합니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박형준과의 통화를 마친 뒤.
김태풍은 곧바로 시약 주문을 시작하며, 늦은 하루 일과를 바쁘게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번 TeraTorus(테라토러스) 미팅 결과, 또 다른 일들이 갑자기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새롭게 필요하게 된 화학 시약 목록들을 작성한 뒤.
화학 시약 판매회사인 시그마(Sigma)에 전화를 걸었고.
브룩하이머 랩의 고유 PO넘버(Purchase Order Number)를 제시한 뒤.
다양한 화학 시약들을 바로 주문했다.
아마도 이 시약들은, 최대 2, 3일 내로 실험실에서 받아보게 될 것이다.
‘뭐, 할 수 없지. 이곳에서 TNP-470 유도체 합성도 바로 진행하는 수밖에.’
아마도 한국 실험실에서 보관하고 있는 그 샘플들의 재고는 금방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보통, 기술이전 단계에서, 상대편 회사는 상당히 많은 양의 샘플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중간에 샘플 재고가 끊기게 되면, 여러모로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김태풍은 추가 합성을 시작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시약 주문을 서둘러 마친 뒤.
비로소 김태풍은 며칠 전에 진공건조기에 넣어두었던 루테늄 착화합물 시료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와! 이거 뾰송뾰송하게 잘 말랐네.’
사실, 뾰송뾰송하다는 말은 아주 터무니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합성한 시약들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음. 그럼 이걸로 총 3가지를 더 더하면, 이제 도합 30가지 샘플 합성이 끝났어.’
즉, 무려 30종류의 루테늄 착화합물 합성을 무사히 마치게 된 김태풍.
‘휴! 이 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뭐, 그래도 이걸로 이 연구는 내 손을 떠나게 되는 거네.’
우선, 그는 분말 시료들을 샘플 용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담았고.
각 샘플 용기 표면에 각 라벨 딱지까지 붙이고 샘플명을 기재하고 나자.
이제 아주 뿌듯한 마음이 되어, 실실 웃게 된다.
그러고는 그 샘플들을 들고서, 곧장 브룩하이머 교수의 오피스로 향했다.
이때, 정신없이 무언가 문서 작업을 하고 있던 브룩하이머 교수.
약간 열린 문틈 바깥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바로 고개를 들던 브룩하이머 교수.
그는 곧 김태풍을 알아보고는 동그란 안경을 벗고는 그를 맞이했다.
*약간 열린 문: 유리창 형태의 오픈 오피스가 아닌, 밀폐된 오피스 내에 있을 경우, 미국 교수들은 학생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표현으로, 오피스 문을 조금 열어두는 경우가 종종 있음*
“아, 김태풍 군! 대체 무슨 일인가?”
“교수님! 이거 좀 보십시오! 하하. 이게 바로 마지막 샘플들입니다.”
오피스로 들어온 김태풍이 곧바로 샘플들을 내밀자.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
가장 먼저 라벨 딱지부터 확인하던 백발의 브룩하이머 교수.
그리고 곧 그의 입가에는 주름 같은 미소가, 파도같이 강하게 번지고 있었다.
“와우! 지저스! 허허허! 이거 정말 대단하군! 그 많은 일들을, 채 반년도 안 됐는데도, 이걸 모두 마치다니! 내 평생, 자네처럼 일을 빨리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
그러고는 드디어 봇물 터지듯 시작되는 긴 칭찬 퍼레이드.
김태풍은 그저 웃으며.
브룩하이머 교수의 쉴 새 없는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뒤.
기분 좋게 브룩하이머 교수의 오피스에서 나온 김태풍은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개인 노트를 곧장 펼쳤고.
이때 자신이 거기에 적어놓은 무언가를, 유심히 살펴본다.
- 더어커(Derck) 비마약성 진통제 신약(새로운 유도체 합성): GP10-A3622, GP10-A3623, GP10-A3624… GP10-A3645 (합성 완료: 총 24종)
- 하버드대 데릭 호킨스 교수와의 공동 연구, 백금(platinum) 유도형 인체 접착제 고분자합성: PT-C2021, PT-C2022, PT-C2023… PT-C2036 (합성 완료: 총 16종)
- 루테늄 착화합물 합성: LB-700, LB-701, LB-702, LK-700, LK-701, LPi-600, LPi-601… LTi-501, LTi-502 (합성 완료: 총 30종)
그리고 그 하단 부분에는.
이번에 추가로 합성할 계획인 TNP-470 유도체에 대해서 기재했고.
그 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음. 그럼 분석 결과들은?’
다음으로 김태풍은 다른 연구 노트들을 차례로 꺼내서.
각 시료에 대한 다양한 화학구조 분석 결과 및 분자량 분석 결과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LC(액체크로마토그래피) 혹은 GC(기체크로마토그래피) 등의 분석기기로 분석한 불순물 함량 결과들도 꼼꼼히 확인했다.
“좋아! 이걸로 대부분 끝났어!”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척추를 타고서 사르르 번져 나가는 쾌감 같은 성취감!
물론 이번에 회수한 3건의 샘플들에 대해서, 화학구조 분석 및 분자량 분석 등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앞서 반복해 왔던 분석을 한 번 더 하는 것이라, 크게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는….’
그리고 드디어 김태풍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바로 자신의 숙명과도 같은 그 신약 합성.
그 신약 합성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즉, 과거, 일성그룹 종합기술원에서 재직하고 있을 때.
임상시험 실패로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바로 그 신약.
그 신약 물질합성에 재도전할 생각인 것이다.
물론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화학 기능성기들의 위치 변경 외에도.
일부 화학 구조들을 색다르게 바꿀 생각인 김태풍.
그래서 김태풍은 지금 실험 초자(유리 실험 기구)들을 이리저리 만지며.
복잡한 화학반응을 위한 초자 세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얼른 실험 가운을 벗어 던진 김태풍.
그리고 그는 서둘러 화학과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박형준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14> 새로운 사업 테마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솔트레이크 시티, 슈거하우스 파크 인근에 위치한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
김태풍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앉아 있었고.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아주 다소곳한 모습의 여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무척 단아한 모습이다.
갈매기 날개처럼 눈매가 휘어지며 웃는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기도 한데.
송지희.
그녀의 이름이다.
또한, 그녀의 미국 이름은 Jina Song.
본래 재미 교포인 그녀는 현재 유타대 의대, 즉, school of medicine에 다니는 의대생이기도 한데.
그런 그녀는 지금 무척 반짝이는 눈으로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다.
이때, 어색하게 웃고 있는 김태풍.
사실, 김태풍은 이런 자리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 달 전.
박형준의 부탁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소개팅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김태풍.
비록 자신의 일이 너무 바빠.
데이트할 시간을 내기가 무척 힘들지만.
그럼에도 정말 우연히,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기막힌 경우의 수를.
그로서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년, 재작년, 김태풍의 마음을 잠시 흔들어 놓았던.
그런 여자들이 몇몇 있다.
한국대 화학과 출신, 최하영과 최소연.
그러나 김태풍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최하영은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고.
직접적으로 호감을 드러냈던 최소연은 김태풍의 마음을 잠시 설레게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고심 끝에, 김태풍은 결국 외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