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놀라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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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먼저 인사부터 하시지요.”
웃으며, 메드TX의 서정철 사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이쪽은 한국연구기술원의 박한식 교수님, 그리고 김태풍 선생님! 그리고 여긴 제 사촌 동생인, 일성전자 서희선 연구원, 그리고 이 분은 일성전자 전략기획팀에 계시는 김선호 차장님이십니다.”
메드TX의 서정철 사장은 양쪽을 다 알고 있어, 중간자 입장에서 서로를 소개했다.
각자 악수를 마친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이때, 박한식 교수는 약간 묘해진 눈으로 김선호 차장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김신웅 회장님과 어떤 관계가 있으십니까?”
사실,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게, 유난히 젊어 보이는 김선호 차장.
그의 직급이 무려 차장이기 때문이었다.
저 나잇대에선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직책.
한편으로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귀공자 같은 모습을 한 그는.
현 일성그룹 회장인 김신웅 회장의 외모를 이곳저곳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때, 김선호는 서정철 사장 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박한식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생각하신 대로 맞습니다. 저의 친조부되십니다.”
“아! 역시 그러셨군요.”
박한식 교수의 예측이 맞았다.
김선호 차장.
그는 일성그룹 재벌가의 일원인 것이다.
왜 낮에 서정철 사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박한식 교수는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국내 최고 그룹, 일성그룹의 손자!
그런 사람과 안면을 트는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 그럼 혹시 부친께선?”
“네. 현재 일성전자 부회장님이십니다.”
“아!”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박한식 교수가 많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김신웅 회장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이가 바로 김인철 일성전자 부회장이 아닌가.
이른바 직계 중의 직계!
그런 김인철 부회장에겐 슬하에 두 아들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저 김선호가 첫째 아들인지, 둘째 아들인지.
박한식 교수로서는 그것이 절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궁금함을 잠시 억누르며.
박한식 교수는 이내 다른 말을 꺼내고 있다.
사실, 간단히 인터넷만 뒤져봐도 나오는 그런 정보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개인정보들을 꼬치꼬치 묻는 것은 어쩌면 결례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하! 정말 훌륭하신 부친을 두셨군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일성전자! 이 큰 회사를 이끌어가시는 그분의 역량은,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박 교수님.”
박한식 교수의 정중한 찬사에 곧바로 차분하게 대답하고 있는 김선호.
그런 그의 모습에 박한식 교수는 다시금 그를 눈여겨 쳐다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저 김선호는 재벌가의 핏줄답지 않게 아주 겸손한 모습이다.
태도는 공손하면서도, 눈빛은 아주 맑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탐욕스러운 재벌가에서 나왔는지 의아할 정도로.
첫인상부터가 무척 좋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선호의 말투 역시 무척 공손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여기 계신 서 사장님의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하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제가 박한식 교수님, 김태풍씨, 두 분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김선호.
이때, 김태풍은 맞은 편 앉아 있던 서희선과 밝게 눈인사를 하던 중.
김선호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정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다름이 아니라, 비록 제가 현재 일성전자에서 일하고 있지만, 제 전공 분야와는 달라도, 세계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신약 개발 쪽에 상당히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종의 그룹 차원에서, 저희 그룹에서 가장 필요한, 새로운 성장 동력들을 물색하고 있는데… 아주 우연히 박한식 교수님, 그리고 태풍씨, 하하! 두 분에 관한 언론 기사들을 여러 번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선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여기, 서 사장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 주셔서, 더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입니다. 뭐, 두 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21세기 신성장 동력 발굴은… 뭐, 저희 일성그룹 뿐만이 아니라, 아마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데도 크게 일조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김선호 차장.
이것은 확실히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리고 그런 김선호의 모습에서.
김태풍은 참지를 못하고 묘한 미소를 짓게 된다.
‘휴! 정말 운명 같은 건 무시할 수가 없나? 결국, 저분과 이렇게 만나게 되고…. 그러고 보니까, 저분 때문에 신약 연구 파트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아직 일성그룹 종합기술연구원 내에는 신약 연구 파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1, 2년 이내에, 신약 연구 파트가 종합기술연구원 내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과거, 김태풍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개 계열사에 소속된 연구소, 일성제약 연구소 입사가 아니라.
일성그룹 전체와 연관된 일성그룹 종합기술연구원에 입사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김선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흠. 그땐 일성그룹 종기원(종합기술연구원)에 입사할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긴 했는데.’
옛일이 떠올라, 김태풍은 씁쓸한 미소를 살짝 짓고 있다.
어쨌든 일성그룹 종기원은 자신에게 애증이 서린 곳이 아닌가.
그리고 잠시 뒤.
프랑스식 요리들로 이루어진 코스 만찬이 시작되었는데.
천천히 음식들을 먹으면서, 이런 대화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저희 그룹에서는 조만간 종합기술연구원 내에 신약 개발 파트도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제약업계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런 시도들이 무척 어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학자분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지혜들을 모으고, 또한 도움을 받게 된다면,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선호는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어느 정도 드러낸 뒤.
그 뒤부터는 좀 더 유쾌하게 대화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그에겐 아주 좋은 방법이 있었다.
지금껏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의 여자친구 서희선을 대화에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하하. 근데, 태풍씨. 태풍씨는 희선이랑 동기라고 하셨죠?”
“아, 네. 그렇습니다.”
김태풍은 간단히 그렇게 대답한 뒤, 좀 더 말을 곁들였다.
“뭐, 석사과정 때는 별로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학부 다닐 때,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긴 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하하. 근데, 그뿐만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네?”
김선호는 갑자기 활짝 웃었고.
이때 서희선이 비로소 입을 열고 있다.
“아, 태풍아. 내가 그 이야기도 했어.”
“응? 뭘?”
김태풍이 의아해하자, 서희선은 바로 입을 열고 있다.
“그때 많이 도와줬잖아. 일성그룹 논문경진대회.”
“아! 그거?”
“그래. 그 휴대폰 관련 아이디어들 말이야.”
그 순간, 김태풍은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서희선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휴대폰으로 전산망에 들어가 정보 검색을 할 수도 있고, 워크맨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또, 작은 게임도 할 수도 있고, 더군다나 PC통신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채팅까지 가능한 거. 정말 혁신적이긴 해.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고 보면, 그때, 자신이 그런 말들을 그녀에게 한 적이 있다.
다시금 그때 일이 떠오르고 있는 김태풍은 이내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고 만다.
사실, 그때, 김태풍은 일부러 서희선에게 접근한 것이다.
아주 똑똑하면서도 얼굴도 이뻐, 학교 내에서 아주 유명한 서희선.
그녀가 일성그룹이 주최하는 논문경진대회에 나가, 대상 수상을 한 후.
일성그룹가의 손자의 눈에 띄어, 그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김태풍.
그런데 그런 놀라운 사실들보다는.
그녀의 사촌오빠, 메드TX의 서정철 사장을 그는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휴대폰 아이디어를 주면서, 그녀의 논문 작성하는 걸 도와줬던 것이다.
물론 김태풍의 도움이 없더라도.
똑똑한 서희선은 대상 수상을 반드시 했을 테지만 말이다.
“하하! 그때 말입니다! 그런 기막힌 아이디어들이, 정말 논리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서, 전 깜짝 놀랐습니다. 그 바람에 희선이랑 이렇게 사귀게 된 셈인데, 하하! 제가 나중에 꼭 태풍씨한테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사실, 김태풍이 그 아이디어를 서희선에게 주지 않더라도.
저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날 운명일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결혼할 운명!
단지 김태풍은 슬쩍 그들 사이에 인연 하나를 끼워 넣은 것에 불과한데.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당시에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던 김선호 사장.
그를 이렇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게 되어.
김태풍은 기분이 무척 묘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저 김선호!
김인철 회장(이후 그룹 회장이 됨)의 차남이자, 무척 노력했던 잠룡이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용은 용이되, 완전한 용이 되지 못하고, 끝까지 잠룡 신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친형인 김재호 부회장의 견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즉, 일성그룹 그룹전략기획팀 상무를 마지막으로, 그룹 총괄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일성제약 부사장, 일성섬유 부사장, 일성제지 사장, 일성엘리베이트 사장 등.
주로 한직에 해당되는 계열사 사장 직책을 두루 거쳐야 했다.
그리고 김태풍이 회귀하기 직전.
김재호 부회장이 마침내 그룹 후계자 자리를 공식적으로 꿰차게 되면서.
결국, 김선호는 재벌가에서 실패한 인생이나 다름없다.
‘음. 김선호 사장은 무척 똑똑하긴 한데, 너무 성격이 유해. 그런 성격이니, 절대 김재호 부회장의 상대가 될 수가 없지.’
김태풍은 그렇게 김선호를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기 서희선 때문인지, 자연스레 김선호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눈앞의 서희선은 참 착하다.
과거, 일성그룹 임원 파티장에, 자신은 신약 개발자라는 명목으로 불려갔을 때.
특별히 친한 임원들이 별로 없어, 외톨이가 되어 구석진 곳을 떠돌아야 했는데.
그때, 일성그룹가 며느리인 서희선이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자신에게 이것저것 배려를 해준 것을, 김태풍은 절대 잊지 않고 있다.
‘음…. 그럼 내가 뭐라도 좀 도와줄까?’
문득 김선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과거 자신의 퇴사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인간.
그게 바로 일성그룹 부회장 김재호였다.
어쨌든, 이날 식사가 끝나면서.
김선호는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조만간 일성그룹 차원에서 신약 벤처 하나를 세울 예정이며.
이 회사를 그룹 계열사로 키워나갈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이 회사에 관여할 생각이 없냐고 묻기까지 했다.
사실, 이것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
어쩌면, 그만큼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이 독보적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에, 그런 변화들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래서 만약 정말 두 분이 합류를 결정하신다면, 박한식 교수님은 그룹 차원에서 사외이사 겸 고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태풍씨는 박사졸업 후에… 아직 벤처 수준이긴 하지만, 일부 경영권을 보장하는, 회사 상무급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어마어마한 제안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이날 식사가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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