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비상장 주식
<13> 새로운 도전
“…그럼 좋습니다. 한 달 뒤, 저희가 샘플을 받는 대로 저희 쪽에서 간단히 테스트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 테스트가 끝나는 대로, 오늘 논의된 방식대로 기술이전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박 교수님?”
TeraTorus(테라토러스)의 CEO 로건 램버트 박사는 아주 적극적인 모습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었다.
사실, 그가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네이처 논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박한식 교수가 가져온 추가 실험 데이터도 나름 만족스럽고.
그가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낸 박한식 교수의 경력들.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과 여러 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그런 대단한 이력들.
그런 것들이 더 큰 신뢰를 만들어낸 모습이다.
“하하. 좋습니다. 램버트 대표님.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진, 이 정도까지 논의될 줄은 저희도 몰랐는데… 뭐 저희들한테도 꽤 만족스러운 제안을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하. 그리고 대표님께서 저희 추가 자료들을 보셨으니까 더 잘 아시겠지만, 이 TNP-470 유도체 기술은 아주 혁신적인 기술입니다. 항암 신생 혈관 억제능력이 기존 항암 억제제들보다 무려 10배 이상이나 뛰어나지 않습니까?”
박한식 교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다시금 TNP-470 기술의 우수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로건 램버트는 새카만 동공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을 한, 전형적인 백인계 미국인 로건 램버트.
그러나 MIT 박사학위 출신답게 학문적 이해력은 아주 뛰어났고.
이미 자신의 회사를 세운 젊은 경영자답게 아주 진취적인 모습이었다.
“네. 맞습니다. 저도 그 점을 아주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조금 전, 김태풍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TNP-470 유도체와 기존 항암제와의 앙상블, 즉 병용적 요법 가능성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로건 램버트는 아주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태풍을 쳐다본 뒤,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뭐, 사실 저희같은 기업인들은 과학자로서의 시선 외에도 이런 신기술을 대하게 되면, 가장 먼저 실용성을 또한 고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 판단 범위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수많은 암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암종, 즉 TNP-470 유도체를 말기 폐암과 말기 대장암 쪽 치료에 접목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건 램버트는 신기술이 아니라 진짜 개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타깃 암종을 언급했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김태풍은 그의 다음 발언을 제지한 뒤,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대표님. 죄송하지만, 그게… 타깃 암종 부분에서는, 저희 생각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게 된다면, 제 예상으로는 어쩌면 효능 검증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음. 그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좀 더 설명해주십시오.”
“아시다시피, 말기 암의 경우, 혈관 생성이 이미 많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전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말기 암종을 공략했을 땐, 혈관 생성 억제제 효과가 예상보다 많이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말기암 이전 단계에 해당되는 암종을 목표로 삼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김태풍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훗날 신생 혈관 생성 억제제의 다양한 임상시험에서 그런 결과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건 램버트의 말대로, 대다수의 임상시험들은 말기 암을 대상으로 했고.
결국, 대다수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전례를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임상시험 실패의 대가가 너무나도 잔혹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임상시험 비용을 한순간 허공에 날려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음.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같군요. 그러나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할 때, 저희들이 여러모로 경제적, 행정적으로 실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그건 오프 더 레코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뭐 확실히 논의할 가치가 있으니까, 그 부분은 저희들끼리 다시 진지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는, 로건 램버트는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시 실무적인 부분으로 돌아가면, 결국 IND(임상시험계획 승인신청, Investigational New Drug) 신청이 가장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대로, 향후 임상 1상 시험에서 정말 유의적인 수치가 나온다면, 하하! 그때부터는 제가 더욱더 발 벗고 뛸 생각입니다. 제법 큰 펀드들을 끌어당겨, 확실한 탄약고(달러)를 준비하고, 이런 펀드들을 기반으로 임상 2상 시험을 대비하겠습니다. 그런 단계까지 간다면, 저희 회사도 더 큰 도약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로건 램버트는 이 라이센스를 산 뒤에 얻게 될 회사의 이득 부분에 대해서도, 아주 가감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박한식 교수에게 기술이전을 타진했던 다른 한국 제약회사들에 비한다면, TeraTorus(테라토러스)의 규모는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곳은 아주 적극적으로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서 김태풍은 작은 감명까지 받았다.
진정한 신약 개척자다운 모습.
그 바람에 젊은 CEO 로건 램버트 박사에 대한 인식은 더욱더 좋아지고 있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사실, 제가 다른 측면에서도 아주 궁금한 부분들이 있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다소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질문을 지금 해도 되겠습니까?”
어느덧 3시간째 진행되고 있는 긴 회의.
그 때문에 피로감이 있을 텐데.
올해 36살인 젊은 CEO 로건 램버트는 정말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눈빛이 흐트러진 적이 없었고, 총명한 두 눈은 내내 반짝이고 있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성심껏 답변하겠습니다.”
박한식 교수가 웃으며 대답하자, 로건 램버트는 이제 고개를 돌려 김태풍을 응시한다.
그러자 김태풍도 바로 대답했다.
“네. 저도 괜찮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이번 질문만 마무리하고서, 늦은 점심은 제가 사도록 하지요.”
가볍게 웃던 그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바로 질문을 하지 않고, 또 말을 덧붙였다.
“사실, 두 분이 먼 곳에서 오셨는데, 저희가 비행기 티켓이나 숙소조차 마련하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이곳으로 모시게 되면, 그땐 모든 절차를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대접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은 신약 기술을 팔려고 여기 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로건 램버트 대표는 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더 높아졌고.
비로소 각자의 입장이 역전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긴, 이 기술을 제값에 팔 수만 있다면, 박한식 교수나 김태풍은 개인적으로 들어간 경비 이상의 비용을 몽땅 뽑아내게 될 것이다.
“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뭐, 이런 신약은 임상에서 효능 확인도 중요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초적인 자료 제출과 생산 부분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음.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TNP-470 유도체의 화학 구조와 분자량. 이걸 어떻게 정성, 정량화해서 FDA(미국식품의약국)에 제출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향후 대량생산, 불량품 관리, 이런 쪽은 또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이런 부분들이 저는 무척 궁금합니다.”
로건 램버트 대표의 질문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또한 아주 어려운 질문이었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분석 데이터를 뽑아서 논문에 싣고 하는 형식이 아니라.
바로 FDA에 NDA(임상시험 승인 요청) 관련 서류 제출을 위한 실무적인 접근법을 물어보는 것이다.
즉, FDA 제출용 서류들은 반드시 공신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래서 단순 실험 분석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객관적이고 규정에 맞춘 데이터를 확보하고.
또한, 그것을 제시해야 해서, 관련 실무 경험이 없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박한식 교수는 그 질문의 의도를 깨닫고, 바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러나 이미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 서 봤던 김태풍은 곧바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접근법들을 제시했다.
그의 대답을 듣던 박한식 교수도 흠칫 놀랄 정도였는데.
곧이어 김태풍은 다소 시대를 앞선 아주 기막힌 의약품 품질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음. 그래서 현재 요건인 cGMP(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 단계에서 품질관리를 진행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향후 불량품 제어 및 생산비용 감소를 위해서는, 이걸 넘어서는 단계인 일종의 QbD(Quality by Design, 설계기반 품질 고도화)와 같은 개념도 활용할 수가 있는데, 이 프로세스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등장하게 되는, 의약품 생산 관련 PAT(process analytical technology) 개념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즉, 각 공정 단계마다 샘플을 채취해서 불량 여부를 판단하게 되면, 각 공정마다 분석 검토 시간이 들어가, 결국 연속성이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로건 램버트가 관심을 가지자, 김태풍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샘플 채취 없이 실시간으로 공정 분석을 할 수 있다면, 공정 속도가 아주 빨라지게 됩니다. 그 결과, 약품 단가를 많이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장점도 생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개념을 더 확장하고 또 응용한다면, 의약품 개발, 품질 위해성 관리, 품질관리 시스템 등으로 확대될 수가 있습니다. 혹시 이런 프로세스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관련 세팅을 하는데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김태풍이 그렇게 답변을 마치자, 로건 램버트 박사는 즉시 두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추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실, 기존 시스템을 개량할 때, 일반적으로 공정 장비 비용 및 인력 비용 등이 크게 들어가게 되는데.
그래서 회사 측면에서는 큰 부담감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익숙한 로건 램버트 박사.
그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훗날, 한국 제약회사들이 QbD(Quality by Design) 도입 여부를 놓고서 난색을 표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 바람에 시간이 더 늦춰져, 결국 오후 2시가 되어서야 회의가 끝났고.
이후,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은 로건 램버트 박사의 안내를 받아,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실, 미국적 문화라는 게, 점심을 아주 간소하게 먹는 문화다.
주로 저녁을 아주 거하게 먹는 미국인들.
그러다 보니, 미국 직장인들은 대체로 점심으로 간단히 샌드위치나 샐러드 등을 먹으며, 허기를 지우곤 하는데.
로건 램버트 박사와 TeraTorus(테라토러스)의 젊은 경영진들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상황을 예측한 박한식 교수와 김태풍.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햄버거와 콜라를 시켰고.
다른 이들은 치즈들이 혼합된 샐러드를 시키거나, 혹은 작은 샌드위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럼 점심을 드신 뒤에, 잠깐 저희 회사도 둘러보시겠습니까? 하하! 아직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간 저희들이 열심히 투자를 유치한 덕분에, 이제 직원들 숫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로건 램버트 박사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렇게 말을 했다.
아마도 이번 미팅 결과가 안 좋았다면, 그는 회사 투어 제의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하. 그럼 점심 뒤에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램버트 대표님.”
그리고 잠시 뒤.
가벼운 점심 식사를 마쳤고.
이제 모두들 각자의 차량을 타고서.
이 호텔에서 차량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TeraTorus(테라토러스) 본사.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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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근데… 이번에 논의된 조건은, 의외로 괜찮은 것 같은데요?”
렌터카 내, 박한식 교수의 옆자리에 앉은 김태풍.
김태풍의 그 언급에, 운전석에 앉은 박한식 교수.
그는 바로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나쁘지 않아. 총액 5천만 달러 규모면, 절대 나쁘지 않지.”
“근데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하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어쩔 수 없네. 본래 항암제라는 게, 성공하면 큰 대박이지만, 임상시험 전단계에서는 다들 의심부터 한다니까. 뭐 동물 시험에선 잘 나오다가, 임상시험에 들어가자마자 망가진 약들이 워낙 많지 않나?”
“네. 그런 항암제 숫자가 꽤 많긴 하니까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허가받은 약들도 임상에선 별 효과가 없잖아요?”
“그래. 그래서 이쪽은 약리 기전이 좀 특이해야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네. 그래야 기술이전도 잘 되고, 투자유치도 잘 되고. 다행히 우리는 꽤 괜찮은 상대를 만난 것 같아.”
“그렇지만 교수님. 선급기술료가 고작 백만 달러인데, 너무 적지 않을까요?”
“대신에 비상장 주식을 받기로 했으니까, 자네 말대로 우리도 큰 투자를 한 셈이 아닌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태풍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창문을 내렸다.
12월인데도 아주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깥바람.
그리고 저절로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
대략 논의된 기술이전 금액은, 총액 5천만 달러.
그리고 선급기술료로 논의가 된 것은, 백만 달러 현금과 김태풍이 가장 원했던 TeraTorus(테라토러스)의 비상장 주식, 십만 주.
액면가 10달러짜리 주식이어서, 비상장 주식의 가치만 해도 무려 백만 달러나 된다.
결과적으로 도합 2백만 달러를 받게 되는 셈이다.
즉, 선급기술료의 현금은 학교로 넘기고.
비상장 주식을,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는 8대2로 나눠 갖기로 합의한 상태다.
물론, 또 다른 공헌자인 강신혜 박사(네이처 논문 공동 제1저자)는 학교 측을 경유해서 일부 현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김태풍은 비상장 주식 8만 주(액면가 주당 10달러, 총액 80만 달러)를 갖게 될 예정.
향후 TeraTorus(테라토러스)의 주식 상장 이후, 이게 10배 오르게 되면, 800만 달러가 되고.
만약 100배 오르게 된다면, 무려 8천만 달러가 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김태풍은 머리를 굴린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까,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으로 얻은 소득이 쏠쏠한데? 합의금 10만 달러, 그리고 TeraTorus(테라토러스) 주식 8만 주.’
김태풍의 얼굴은 더없이 환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TeraTorus(테라토러스) 본사.
그런데 그곳에서.
김태풍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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