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9화 (19/153)

35-하늘 높이 날아오르다

<12> 기술이전

Letter | 20 June 1996

- Solubilized fatty acid-shielded TNP-470 derivatives highly inhibited tumor angiogenesis

T.P. Kim, S.H. Kang & H.S. Park.

이 네이처 논문이 발표된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나가던 11월 하순 무렵.

미국 체류 중인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로부터 뜻밖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이 논문과 관련된 기술을 사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드디어 나타났고.

현재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제약회사 두 곳, 일본제약회사 한 곳, 그리고 미국의 작은 제약회사 한 곳.

총 네 군데 회사와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 회사들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김태풍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반짝거렸다.

‘어? 이건 길리어드?’

길리어드 사이언스!

바로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길리어드가 이 명단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김태풍은 흠칫 놀라며 다시 살펴보았다.

훗날 세계 제약계의 파란만장한 신화를 쌓게 되는 유명한 제약회사, 길리어드.

그런데 이 회사는 1987년 초라한 벤처기업으로부터 시작하여, 훗날 세계 10대 제약기업으로 승승장구한다.

물론 창립 이후 15년간 지독한 적자에 허덕이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그런 급격한 성장을 위한 성장 동력을, 이 회사는 항바이러스제 신약을 통해서 확보했다.

즉, 이 회사는 1994년에 발표된 네이처 논문을 본 뒤.

곧바로 ‘타미플루’ 개발에 들어갔고.

1996년 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그 뒤 이 기술을 세계적인 제약기업 로슈에 팔아버리는 데도 성공한 길리어드.

이후, 임상시험을 거친 뒤, ‘타미플루’는 1999년에 출시되었고, 한동안 부작용 시비가 붙기도 했으나.

2009년 신종플루의 대유행으로 큰 대박이 터지게 된다.

이때, 길리어드는 임상 단계별로 로얄티를 받은 것 외에도.

FDA 신약 승인 이후, 판매 로열티까지 챙기는 바람에.

세계 10위권 제약회사로 급부상하는데 필요한 재력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가히 세계 제약벤처들의 롤 모델감이 될만한 곳이었다.

‘음. 근데 이 회사는 나중에 그렇게 급부상하게 되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겨우 중소기업 수준이라서….’

이런 길리어드가 자신의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에 김태풍은 호기심이 커졌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 만다.

아무리 봐도, 길리어드의 재력으로는 김태풍의 기술을 살 여력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네이처지에 발표된 신약 기술이어서.

호기심을 갖고서 박한식 교수에게 접근한 모양이다.

‘음. 역시 너무 덩치가 작아. 거긴 한동안 항바이러스제 개발에만 올인할 테니까. 뭐, 항암제 시장까지 기웃거리긴 무리지. 그래도 여기서 길리어드 이름을 보게 될 줄이야. 그건 흥미롭단 말이야.’

잠깐 큰 관심을 가졌으나 이내 그런 관심이 사그라지고, 김태풍은 이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음. 그럼 어디가 좋을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먼저 국내 제약회사들은 아무리 이름값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된 개발 여력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국내는 너무 영세해. 1년 매출이 겨우 5천억 원도 안 되는데, 어떻게 신약 개발을 할 수 있겠어?’

아마도 그들은 신약 기술을 헐값에 산 뒤, 적당히 연구하는 척하다가.

다시 그 기술을 해외 기업에 파는 쪽을 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내부 회의만 진창하다가, 개발 단계 중간에 그 기술을 사장시켜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일본회사.

그러나 여기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록 일본 제약회사 순위 랭킹 5위권에 드는 곳이지만.

불행히도 이 회사가 제시하고 있는 조건이 너무 박했다.

‘선급기술료 5천만 엔(1996년 환율 기준, 대략 3억6천만 원)?’

계약 체결과 동시에 받게 되는 선급기술료가 그렇게 제시되어 있었고.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 해당되는, 즉 임상시험 단계별 로얄티의 총액도 겨우 5억 엔(대략 36억 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건데. 향후 임상시험에 실패하면, 지불한 기술이전료의 50%를 환급해야 한다? 이건 너무 독소조항이란 말이야.’

아쉽게도 이런 일본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제약회사들은 아직 단 한 군데도 없었던 것.

그래서 박한식 교수는 답답해진 상황이라, 이메일 상으로 김태풍에게 기술이전 관련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음. 역시 난감하긴 하네. 뭐, 현실적으로 보면… TNP-470 유도체 기술의 가치가 사실상 일본제약회사의 오퍼, 딱 그 정도이긴 한데. 물론 여기엔 변수가 있으니까.’

다시 말해서, 만약 임상 1상 단계에서 이 약물의 항암 효과가 충분히 증명된다면, 이 기술 가치는 적어도 100배 이상으로 부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임상 1상 단계: 임상 1상 시험은 보통 신약 후보 물질의 인체 안정성(부작용 확인)을 검증하고 신약 후보 물질의 복용 용량(하루에 얼마만큼의 약을 먹을지 혹은 어느 정도 용량을 주사할지)을 결정하는 단계임. 그러나 항암제의 경우는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특수성이 인정되어, 임상 1단계에서부터 제한적으로 항암 효능을 테스트할 수 있음. 참고로, 일반적인 신약 후보 물질의 효능 테스트는 임상 2상 단계부터 진행됨*

그래서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효과가 대단한 항암제는 정말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득을 보장받게 되지만.

그런 밝은 성공의 뒤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불행히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즉, 임상시험 과정에서 탈락하는 신약 항암 약물들의 숫자.

그 숫자는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쫄딱 망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음.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 네 군데 모두.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김태풍은 그런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박한식 교수에게 보냈고.

고심 끝에 메드TX 서정철 사장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다.

특히, 서정철 사장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그는 TNP-470 유도체 기술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네이처 논문 파일을 첨부했으며.

한편으로는 메드TX가 라이선스 인(Licence in: 기술을 사는 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향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닷새가 빠르게 흘러갔는데.

한참 기다렸던 서정철 사장으로부터의 답신이 마침내 날아왔다.

그러나 한껏 기대감을 품었던 것과 다르게.

그의 이메일 내용은 별반 신통치가 않았다.

‘음. 하긴 메드TX 규모 정도로는, 현재 확보된 신약 후보 파이프라인만 해도 벅차겠지.’

즉, 이메일에서, 서정철 사장은 메드TX의 신약 파이프라인이 충분해서 추가 라이센스를 사는 건 어렵다고 했다.

대신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미국 제약벤처 기업 한 곳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또 미국 제약벤처?’

자연스레 제약벤처의 대명사 길리어드를 다시금 떠올리던 김태풍.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고는, 서정철 사장에게 그쪽 정보를 우선 부탁해 봤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날아온 서정철 사장의 답신.

# 김태풍 선생님께.

바로 답장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뭐, 앞서 좋은 답변을 못 드려 죄송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 전에, 현재 진행 중인, 신약 개발 경과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당뇨병 치료제 MTD-2000375는 김 선생님 덕분에 아주 순조롭게 국내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쯤, 국내 임상 2상 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우선, 국내 임상 1상 시험이 끝나면, 미국 임상시험도 준비할 생각이라, 요즘 회사가 무척 바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 신약후보 물질에 대해선.

미국 벤처 쪽과의 협상을 고려하시는 것은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향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제가 추천하는 회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지요.

TeraTorus(테라토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벤처기업은 현재 미국 VC(벤처기업 투자사)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 이 회사의 펀딩(funding) 상황은 아주 좋은 편입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미국 투자시장은 신약 디스커버리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임상 단계마저 각종 VC들이 달라붙어, 신약 개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상황이죠.

특히, 뛰어난 VC들의 도움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나스닥 상장에 성공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일부 회사들은 큰 돈벼락을 맞기도 합니다.

뭐, 제 생각엔 이 회사도 최대 2년 이내에 나스닥 상장이 가능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회사의 설립일은 1992년도이며, 설립자는 로건 램버트 박사로 올해 36살인 그는….

#

그리고 쭉 이어지고 있는 설명들.

그 이메일을 다 읽은 김태풍은 곧바로 인터넷 야후에 들어가 검색을 해 봤다.

그리고 그런 검색 결과, 김태풍은 이내 단편적인 정보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TeraTorus(테라토러스)가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내걸고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은 항암제 5종, 면역억제제 1종, 골다공증 치료제 1종, 총 7종이다.

이 중에서 3종의 항암신약 후보 물질이 이미 미국 임상 1상 시험에 들어간 상태.

‘음. 근데 대체 어떤 물질들이지?’

호기심을 느낀 김태풍은 곧바로 메드TX 서정철 사장을 경유해서 그쪽 회사 정보를 더 획득했고.

신약 후보 물질과 관련된 간단한 약리 기전을 알게 되자, 그는 이내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와! 이게 그럼 설마 그 약인가? 이건 코바티스(COVARTIS)에서 출시하게 되는 그 항암제 기전과 거의 똑같은데? 설마 TeraTorus(테라토러스)에서 이 기술을 나중에 코바티스에 팔았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정말 그 일이 있었는지를 김태풍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약 개발에 정통한 그로서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제약회사들의 움직임들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음.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인데.’

그런 큰 성공을 한 벤처기업이라면, 김태풍도 자연 그 회사의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데 기억이 다소 흐릿하다는 것은, 중간에 이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을 당했거나, 아니면 쫄딱 망했다는 것.

‘그럼 혹시 모르니까.’

철두철미한 김태풍.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파악한 약리 기전을 바탕으로, 관련 논문들과 특허들을 뒤졌고.

또한, 자신의 미래 지식들과 재빨리 결합시켜 가능성을 예측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놀라운 결론.

‘그래. 현재까지 나온, 가장 높은 가능성. 그건 TeraTorus(테라토러스)가 코바티스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그리고 그게 진짜 맞다면, TeraTorus(테라토러스)는 그야말로 대박 회사라는 말인데.’

미래에 정말 이런 상황이 실현된다면, 전도유망한 TeraTorus(테라토러스)에 TNP-470 유도체 기술을 파는 건, 현 단계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 회사의 메인이 항암제 개발이라서, 좀 더 원활하게 기술이전 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

한편, 단순히 저렴한 기술이전료를 챙기기보다는, 비상장 주식으로 대체하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래. 어쩌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어. 그럼 교수님한테 이야기해서, 그쪽과 협상을 진행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어느덧 초겨울이 시작되는, 1996년 12월 초순이 되었을 때.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로부터 아주 희망적인 이메일을 받았다.

TeraTorus(테라토러스)의 CEO 로건 램버트 박사와의 첫 미팅.

이 미팅을 1996년 12월 12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갖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팅 날짜가 정해지자, 김태풍은 이제 다른 일들도 좀 더 빨리 진행해 나갔다.

물론 지난 미국 생활 동안, 정말 워커홀릭(일중독) 상태로 미친 듯이 합성 연구에 몰두했기 때문에.

더어크(Derck)사와의 공동 연구 일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였고.

브룩하이머 교수의 요청으로 시작된, 새로운 루테늄 착화합물 촉매 연구도 어느덧 궤도에 올라서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가 하버드대 데릭 호킨스 교수와 협력하고 있는, 백금(platinum) 유도형 신규 고분자 물질 합성. 이 일도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

그러고 보면, 지난 7월 초순, 그의 미국 생활이 시작된 이후.

쉬지 않고 피땀을 흘린 그 노력의 결과물들이, 이제 주렁주렁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모습들이 아닌가.

그리고 어느덧 1996년 12월 12일!

이날 새벽, 공항 라이딩(riding)을 해주겠다고 자청한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다운 그녀 덕분에 그는 좀 더 편안하게 솔트레이크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잠시 후, 새벽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해 비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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