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8화 (18/153)

34-천재 대 천재

##

“…음. 그러니까 자네 의견은 내 논문상에 언급된 루테늄 촉매가 1970년대, 1980년대 그럽스 교수나 슈록 교수가 발표했던 그 물질들보다 훨씬 더 낫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음. 화학적으로도 더 안정하다? 다만, 온도, 용매와 같은 반응 조건에 따라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네. 교수님. 뭐, 그건 제 의견이긴 하지만, 발표된 논문들을 검토해보면, 확실히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님께선 온도 조건에 따른 추가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고, 또한 그 부분들을 실험 조건에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음.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하네.”

“그래서 cis형 생성물질의 수율이… 그렇게 들쑥날쑥하게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건 데이터 조작이 아니라….”

“음.”

“즉, 그런 착화합물 상태에선, 특히 실온 조건, 고온 조건에서 화학반응 메커니즘이 다소 역행하는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럼 수율이 많이 달라졌던 게… 겨우 그런 이유였다는 건가?”

“네. 단순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루테늄 계열의 촉매는 온도 조건에 아주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면, 즉, 화학반응을 위한 최적 온도를 찾아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런 약점 부분들을 제거하는 식의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루테늄과 접합된 리간드의 특성을 바꾸면, 어쩌면 약점을 능가하는, 이른바 초고도 수율의 촉매 개발도 현실화되지 않을까요?”

*리간드: 전이금속 물질에 전자쌍(electron pair)을 제공하면서, 전이금속과 배위결합을 형성할 수 있는 물질임. 이런 물질은 중성 혹은 음이온성을 지니고 있음. 이런 리간드들은 전이금속에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결과적으로 전이금속의 특성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음*

*배위결합: 두 원자의 결합이 발생할 때(즉, 분자가 될 때), 한쪽 원자만 전자(정확하게는 전자쌍)를 일방적으로 제공해서 다른 원자와 결합할 수 있는 원리. 다른 개념인 공유 결합의 원리는 각 원자들이 각각의 전자를 양쪽에서 제공해서, 두 원자들이 각 전자(전자쌍)를 함께 공유하면서 기본적인 화학 결합이 발생함*

“음. 리간드를 바꾼다? 으음.”

“네. 교수님. 그게 제 의견입니다.”

“음. 그러면 말이네….”

그러고는 한참 생각에 빠져들던 브룩하이머 교수.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을 이어가는 도중, 브룩하이머 교수의 눈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음. 만약에… 혹시 가정해서… 그런 온도 영향력을 좀 줄이려면 말이네. 이른바, 질소 계열의 N-헤테로사이클릭 카벤(carbene) 류의 물질을 준비하고… 음. 이런 리간드들을 저 루테늄 쪽에 배위결합시켜 버리면, 그건 특성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네? N-헤테로사이클릭 카벤?”

이때, 김태풍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고.

브룩하이머 교수가 언급한 물질이 대체 무엇인지 이내 파악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N-헤테로사이클릭 카벤을 다시금 외치며, 김태풍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이건 훗날 개발되는 리간드인데?’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루테늄 계열의 촉매 개발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촉매 개발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던 것인데.

그런 김태풍의 의도와 달리 전혀 뜻밖의 전개가 나타난 것이다.

설마 여기서 N-헤테로사이클릭 카벤이 언급될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것.

다시 말해서, N-헤테로사이클릭 카벤 리간드 계열이 붙은 루테늄 촉매들은 앞으로 10여 년 뒤에 나오게 되는 새로운 촉매 물질들이다.

이건 아무래도 미래 지식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느낌.

그래서 두 눈에 힘이 팍팍 들어가던 김태풍.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브룩하이머 교수를 쳐다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와아~ 역시 달라. 그 간단한 말 때문에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그래! 미국화학회지(JACS)의 부편집장은 누구나 하는 게 아니었어. 역시 차원이 다른 화학자이시구나.’

백발의 브룩하이머 교수는 지금 두 눈이 생기롭게 빛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 브룩하이머 교수는 김태풍의 지적을 듣자마자 바로 그 이상의 점프를 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는 오래전부터 차세대 루테늄 촉매의 화학 구조를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과 실현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보통 과학계에선 누가 먼저 한 발짝 더 빨리 가느냐를 놓고서, 밤잠을 설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건 올림픽 경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00m 달리기.

단순 1초 차이가 아니라.

십 분의 1초, 백 분의 1초 차이로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세계.

물론 금메달 수상자에겐 (은메달 수상자와 비할 수 없는) 거대한 명예가 뒤따르는 게 현실의 모습이었다.

“아. 교수님. 뭐, 방금 말씀하신 대로… 그런 리간드들을 루테늄에 도입하는 건, 음! 아무래도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그런 연구들을 한번 진행해 보시는 것도, 뭐 괜찮을 것 같습니다.”

김태풍은 그렇게 말을 한 뒤, 일단 그 일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왜냐하면, 김태풍의 눈에는 이 연구들이 큰 실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화학기술 자체가 원천 기술이어서, 향후 상당한 로얄티를 지급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자신이 주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약 개발의 그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연구가 김태풍에겐 다소 매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김태풍이 이 일에 더 관심을 가지기에는, 그가 가진 시간 자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왜냐하면, 화학물질 개발 연구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뚝딱 마무리되는 일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응 설계, 화학반응 조건 잡기, 아주 지루한 물질 정제 작업(불순물 제거), 물질 분석, 촉매 효능 테스트, scale-up 시험 등등.

이런 일들을 어쩌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소비해야 하나.

‘음. 암튼 일이 좀 희한하게 됐어. 그냥 조작 사건을 도와주려고 한 건데… 이건 어쩌다가 노벨상급 힌트를 준 꼴이잖아.’

그런데 지금 김태풍은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김태풍이 이 노벨상급 촉매 제작에 호기심이 동해 직접 이 일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가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업적에 대해 최초 발견자 혹은 최초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

혹여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런 과학적 업적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초창기부터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느냐, 그런 더 어려운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켜야 한다.

훗날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그럽스 교수, 슈록 교수, 쇼뱅 박사.

우선, 이들은 20년, 30년 전부터 이쪽 분야의 일을 개척해 왔고.

눈앞의 브룩하이머 교수 역시 이쪽 분야의 일에 의지를 갖고서, 무려 20년 전부터 이 연구들을 진행해온 학자다.

다시 말해서, 이쪽 올레핀 메타세시스(Olefin metathesis) 분야 쪽은 이 정도의 경력은 적어도 있어야, 학문적 공헌 정도를 운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눈앞의 브룩하이머 교수가 향후 혁신적인 루테늄 촉매를 개발한다면, 브룩하이머 교수의 업적은 더욱더 빛나게 되겠지만.

김태풍은 그저 앞선 개척자들을 쫓아가는, 단지 훌륭한 신생연구자로서 학계에 두각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김태풍은 시기를 크게 앞당긴 새로운 고효율 촉매 개발의 시발점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는데.

그러나 브룩하이머 교수의 생각은 김태풍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하하하! 지금 내 기분이 갑자기 어떻게 바뀐 줄 아는가? 한동안 머릿속이 꽉 막혀 있다가, 갑자기 뻥 뚫리는 기분이라네! 하하하! 이제 더 정확하게 알겠네!”

그렇게 호탕하게 웃던 브룩하이머 교수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뭐, 자네의 지적은 확실히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잘 짚어줬네. 그리고 이건, 평생 케미컬 냄새를 맡은 늙은 화학자로서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 자! 어떤가? 자네 덕분에 아이디어들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으니, 혹시 이 새로운 촉매 개발 일을 함께 진행해 볼 생각은 있는가? 우리가 그런 촉매들을 발굴해낸다면, 앞으로 수율 한계 벽까지 시원하게 돌파할 수도 있네. 이건 대단한 과학적 업적이 될 거네.”

그러면서 브룩하이머 교수는 김태풍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생각을 정리한 김태풍.

“하하. 뭘 그렇게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나? 하하! 설마 날 믿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래도 자네의 뛰어난 머리라면, 대략 눈치를 챘을 텐데? 그 촉매는 확실히 혁신적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음. 교수님. 그게 아니라… 그게, 제가 하고 있는 일들… 신약 합성 일 등, 그런 것들. 즉,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김태풍은 그렇게 말하며 핑계를 댔으나.

브룩하이머 교수는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 좀 더 노련했다.

“하하하. 그럼 좀 더 들어보게. 지금 내 머릿속에는 말이야. 갑자기 이십여 가지의 리간드 화학 구조들이 술술 떠오르고 있다네. 작곡가들한테는 영적인 뮤즈가 있어서 새로운 계기를 얻게 된다고 하더니, 하하! 조작 사건으로 신경을 많이 쓰며 생각을 많이 했더니, 이젠 자네의 그 말에 갑자기 불꽃이 확 치솟은 기분이라네.”

그리고 또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브룩하이머 교수.

“뭐, 저번 더어크(Derck) 미팅 때, 박한식 교수로부터 이미 이야길 많이 들었지만, 난 자네같이 손이 빠른 사람이 꼭 필요하네. 지금 내 목표는 칼텍의 그럽스 교수와 경쟁을 하는 거네. 꼭 좀 부탁을 하겠네.”

“그렇지만 교수님….”

“음. 그렇게 자네가 바쁘다면, 일을 좀 줄여보자고. 그러니까 자네는 그저 물질합성만 해 주게.”

“네?”

“나머지 scale-up(대량생산을 위한, 물질합성 조건 최적화) 연구, 분석 연구, 효능 테스트, 응용 연구 등은 내 학생들한테 모두 맡기겠네. 즉, 자네는 순수 합성 일만 해 주게. 향후 나오는 논문들에 대해서 제1 저자(논문의 주저자)를 꼭 보장해 주겠네. 만약 기술이전을 할 수 있다면, 기술 로얄티의 최소 20%를 보장해 주겠네. 이건 아이디어의 중요성도 있지만, 얼마나 빨리 물질을 만들어내고 특허출원을 하느냐! 이걸 정말 무시할 수가 없네.”

브룩하이머 교수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춘 김태풍의 면모 외에도 김태풍이 가진 실험적 능력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는데.

한편, 김태풍은 그런 제안을 브룩하이머 교수로부터 받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눈이 커지고 말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브룩하이머 교수의 큰 제안이었다.

물론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손을 가장 많이 타는 합성 연구 쪽이다.

그러나 그 다음 연구들도 아주 중요한데.

그 일들을 다른 학생들한테 맡기겠다는 브룩하이머 교수.

즉, 김태풍으로서는 실속은 실속대로 챙기고.

또한, 시간마저 크게 절약할 수 있게 된다.

그 바람에 김태풍이 호기심을 보이자.

이때부터 브룩하이머 교수는 김태풍의 지적 호기심을 더 자극하기 시작했다.

브룩하이머 교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리간드들의 화학 구조들을 언급했으며.

또한, 그런 리간드-루테늄 착화합물 촉매를 이용한 cis형 고분자합성 방법들도 차례로 제시해 나갔다.

그런데 그럼에도 브룩하이머 교수의 아이디어는 아직 완벽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는 아직 아이디어일 뿐.

과학적 논리 외에도 현실적 경험이 결합되지 않고서는.

그런 아이디어들은 그저 뜬구름에 불과한 것.

그런데 바로 그런 장벽들이 생길 때마다.

김태풍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기막힌 해법들을 제시하곤 했는데.

그런 김태풍의 모습에, 브룩하이머 교수는 매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태풍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하! 역시 내 생각이 옳았네! 자네야말로 이 일에 가장 최적임자가 분명하네. 나는 국적을 떠나서, 자네같은 천재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고 싶네.”

과거, 박한식 교수로부터 전해 들은 김태풍의 실력.

거기다가 조금 전 다시 확인하게 된 김태풍의 놀라움.

미국 화학계에서 아주 저명한 학자이자, 미국 화학회지 JACS(작스)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는 브룩하이머 교수.

그런 그를 김태풍은 완전히 매료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브룩하이머 교수의 허점을 찌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천재적 모습과 높아진 위상을 기대하고 있던 괴짜 천재,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날 그는 아주 음흉하게 웃으며,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가.

그때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즉, 브룩하이머 교수 진영에서 가져온 증거자료들에 완전히 경악하고 말았다.

결국,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위원회에서 나온 샤토 류노스케.

‘뭐? 죠센징 그 새끼가 그걸 찾아내? 바카야로! 헨타이야로(변태새끼)! 내가 먼저 그 이누칙쇼(개새끼)부터 랩에서 쫓아냈어야 했는데… 쿠소(제길)! 쿠소(제길)!'

그리고 그로부터 2주 뒤.

브룩하이머 교수와 학과장 폴 해링턴 교수는 상호 동의하에 샤토 류노스케 박사에게 해고 처분, 즉 박사후연구원(포닥) 신분을 박탈했다.

그 투서를 처음 날린 장본인이 바로 샤토 류노스케 박사라는 증거를, 브룩하이머 교수와 학과장 폴 해링턴 교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알아냈던 것이다.

이후, 브룩하이머 교수는 더어크(Derck) 측에도 이 사건에 대해 서면으로 알려주었다.

그러자 더어크(Derck)사에서는 즉각 샤토 류노스케 박사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어버렸는데.

결국, 도쿄대 출신의 젊은 천재 화학자 샤토 류노스케 박사는 초라한 모습을 하고서 일본으로 귀국해야 했다.

훗날 하버드대 종신교수가 된 뒤, 국제 학계에서 거대한 일본 학파를 이끌었을 화학천재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의 운명은 김태풍의 개입으로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 것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