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7화 (17/153)

33-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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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늘 긴급 교수 회의를 소집한 게 된 것은 오늘 학과 차원에서 신중히 논의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몹시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발언을 시작한 사람은 화학과 학과장 폴 해링턴 교수였다.

50대 후반의 나이인 폴 해링턴은 미국 학계에서 꽤 이름이 있는 학자였고.

상당히 큰 연구 펀드를 학교로 가져와, 학교 내에서도 대단한 입지를 쌓고 있는 중이었다.

조만간 석좌교수(Distinguish Professor)가 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한 인물.

그런 그는 회의실을 꽉 채운 이십여 명의 교수들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잠시 후,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를 바라보며, 그 시선을 잠깐 멈추고 있었다.

이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폴 해링턴은 가볍게 책상을 두 번 두드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저는 조금 전, 앨버트 학장님의 오피스로 불려가, 대략 1시간 정도 학장님과 면담을 하고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회의 안건과 관련된 것인데… 흐음. 불행히도 앨버트 학장님께선 며칠 전에 익명의 투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즉, 오늘 회의 안건은 그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뭐? 익명의 투서?

그 순간, 교수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폴 해링턴 교수를 빤히 쳐다봤다.

어쩌다가 한 번씩 학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투서 사건.

이런 투서 사건들은 대체로 내부 고발이거나 각종 비리, 추행 등의 고발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교수들은 저절로 불길한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가장 나이가 많은 70대 중반의 쇼어 코넬리 교수.

그가 참지를 못하고 즉시 상황을 묻자.

폴 해링턴은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음. 그게… 브룩하이머 교수가 과거 출판한 논문 2건에 대한 것입니다. 그 논문들이 사실상 조작되었다는 게, 바로 그 투서 내용이었습니다.”

폴 해링턴의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눈이 커지고 있는 학과 교수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폴! 대체 누가 그따위 소리를 했단 말이오?”

“설마 그게 투서의 내용이라는 거요?”

“허허! 아무리 그렇다고 하나, 이건 현직 교수의 논문입니다! 설마 뚜렷한 증거도 없이 누가 그런 주장을 했단 말입니까?”

“흠. 이거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인데.”

교수들은 이내 들끓기 시작했고.

한편으로 학과 교수들은 조심스러운 눈으로 브룩하이머 교수를 쳐다보고 있다.

학계에 명망이 자자한 노과학자가 그런 불명예스러운 투서 사건의 대상자라니.

다들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길함을 또한 감추지 못하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이때, 백발의 브룩하이머 교수는 자신에게 동료 교수들의 시선이 몰리자, 금방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그의 두 눈썹은 한없이 날카롭게 치솟고 있었다.

“음. 데이비드. 혹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브룩하이머 교수의 그런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피던 폴 해링턴 학과장은 그렇게 입을 열었고.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는 이내 다소 거친 목소리로 되묻고 있다.

“폴! 난 도대체 이해가 전혀 안 돼요! 대체 내 논문들! 대체 어느 부분들이 조작이 되었다고 합니까?”

그의 반발에 폴 해링턴은 바로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인쇄물들을 교수들에게 차례로 나누어주었다.

브룩하이머 교수도 잠시 후 인쇄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문건을 집중해서 살펴보다가, 이내 그의 표정은 아주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변화들은 일부 다른 교수들에게도 나타나는 모습이다.

“음. 교수님들. 다들 그 문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투서에 조작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음! 제가 이번 일을 이번 교수회의에 긴급하게 올리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건 브룩하이머 교수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몇몇 교수들은 정색하며 고개를 든다.

“음. 그레이그 교수님, 윌리어드 교수님, 쳉 교수님.”

폴 헤링턴 학과장의 호명에 미간을 바로 찌푸리고 있는 세 교수들.

“아마 세 분 교수님들도 전이금속 촉매(transition metal catalyst)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더 냉각되고 있다.

“불행히도 이번 투서 사건은 단순 비리 고발이 아니라, 학문적 고발입니다. 커튼 뒤에 숨은 누군가가 논리적으로 각 항목의 오류를 지적하며, 실험 조작 사실이 있다며 투서를 보냈습니다. 즉, 올레핀 메타세시스(Olefin metathesis)를 통한, Cis형 올레핀의 선택적 합성과 그 응용 차원에서 진행된 고분자 중합법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아마 각 교수님들이 도출했던, 반응생성물들의 높은 수율 데이터.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그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올레핀 메타세시스(Olefin metathesis): 2개의 올레핀(탄소-탄소 이중결합)이 서로 화학적으로 조각나고, 서로 다시 붙어 새로운 형태의 올레핀으로 만들어지는 흥미로운 화학반응임. 간단히 비유하자면, 사과와 배를 각각 반으로 쪼개 두 조각으로 내고, 이때 사과 반 조각과 배 반 조각을 각기 붙여서, 사과(반 조각)-배(반 조각) 같은 혼성 형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일반적인 유기화학 반응과 개념이 달라, 훗날 노벨상 수상 분야가 됨*

그리고 계속되는 폴 해링턴의 설명.

“아시다시피, 올레핀 메타세시스는 trans-이성질체와 cis-이성질체, 이 두 가지 구조적 혼합물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러나 주 생성물은 trans-이성질체가 될 수밖에 없죠. 그건 열역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질체: 분자량이 동일하고, 화학구조가 유사하나, 분자 내에서 작용기의 배치가 달라, 구조적으로 다른 물성을 갖게 되는 화학 물질. trans-이성질체는 작용기가 각기 반대 위치에 있는 것을 이야기하며, cis-이성질체는 작용기가 같은 선상에 위치하는 것을 이야기함. 이런 이성질체의 구조는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음. 예를 들어,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의 한쪽 이성질체는 항구토제(입덧 완화 작용) 효능이 있어 임산부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다른 쪽 이성질체는 혈관 생성 억제 부작용이 있어(기형아 출산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함), 이성질체 구조 제어 기술은 아주 중요한 화학 기술 중의 하나임*

폴 해링턴은 잠시 교수들의 반응을 살핀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음. 다만, 우리 학과의 몇 분 교수님들께서 현재 cis-이성질체 합성을 위하여, 새로운 착화합물 촉매(Complex catalyst) 개발 쪽에 의욕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뭐, 4년 전에 칼텍의 로버트 그럽스 교수가 루테늄-알킬리덴 촉매 합성에 성공했고, 그 결과들을 JACS(미국 화학회지)나 앙게반테 케미(독일 화학회지) 같은 저널들에 발표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결과들은 완벽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로버트 그럽스 교수: 올레핀 메타세시스 반응과 관련한 학문적 공헌으로, 200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함. 그의 대표적 논문들은 주로 JACS(미국 화학회지)와 앙게반테 케미(독일 화학회지) 등의 학술 저널지에 발표되었음.*

그렇게 폴 해링턴 학과장이 배경 설명을 마치자, 브룩하이머 교수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고 있다.

그런데 브룩하이머 교수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어 있다.

“폴! 그런 상황에서 이 투서의 내용은 순 억지가 아닙니까? 여길 자세히 보면, 내 논문대로 자기가 직접 물질합성도 해 봤다고 합니다. 이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대체 어떤 인간이 실험했길래, 내 결과와 완전히 어긋난 결과를 냈단 말입니까? 우선, 나는 이자의 결과를 절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폴 해링턴 학과장은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음. 데이비드. 허나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형태의 투서는 결국 공식적으로 이슈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뭐, 제 생각엔, 아마 조만간 교수님과 다른 교수님들에게도, 각각 해명절차들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으음. 해명이라….”

미간이 잔뜩 굳어지고 있는 브룩하이머 교수와 몇몇 교수들.

그런데 이때, 브룩하이머 교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갑자기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 때문일까.

사실, 이 연구를 주도했으며, 또한 논문작성을 주도했던 박사후연구원(포닥)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

그는 논문작성 당시에 브룩하이머 교수에게 이런 말이 했던 적이 있다.

- 음. 교수님. 한데 제가 합성한 이 루테늄 복합체는 약간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이성질체 생성 수율이 높게 나왔지만, 실험 횟수에 따라 그 수율이 55%에서부터 80%까지, 좀 많이 다르게 나옵니다. 그러나 뭐 논문이란 게 꼭 완벽한 것도 아니고, 우선은 평균치를 내서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약간 불안해했던 그의 말.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른 브룩하이머 교수.

그래서 그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음. 혹시 설마… 그 우려대로 문제가 생겼나? 그럼 상황에 따라… 정말 수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결국 이 루테늄 복합체는 실패라는 이야기다.

올레핀 메타세시스 반응은 trans-이성질체와 cis-이성질체, 이 두 가지 혼합물을 다 만들어낼 수가 있는데.

cis-이성질체의 수율이 50% 미만이라는 것은 결국 선택적으로 cis-이성질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즉, 투서를 날린 그자가 그 점을 주목했다면, 그의 주장대로 논문 2건은 결국 조작이라는 판정이 나올 수도 있다.

이제 거기까지 생각을 하게 되자, 안색이 더 하얗게 변하고 있는 브룩하이머 교수.

브룩하이머 교수는 갑자기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학과 회의는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문제 제기와 문제 인식만을 하고서 끝이 났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로부터 2주 뒤.

앨버트 학장은 공식적으로 브룩하이머 교수 등에게 투서 관련 서한을 보내온 것이다.

- 친애하는 교수님들. 이번 투서 내용을 정확하게 분석하신 뒤, 각 항목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고, 또한 한 치의 오류가 없는 답변서를 2주 이내에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기한 연장이 필요할 경우,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기한 연장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또한….

그러면서 앨버트 학장은 향후 제출된 해명서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학교 차원의 검증 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경고성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즉, 검증 실험이 실시된다는 것은, 학교 차원의 위원회가 결성된다는 의미였고.

고강도 조사가 병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으음. 결국, 상황이 더 나빠졌군.”

늘 학생들을 웃으며 대하던 브룩하이머 교수.

그는 그 2주 동안 웃음기가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

마침내 브룩하이머 교수, 그레이그 교수, 윌리어드 교수, 쳉 교수 등은 아주 전력을 다해 해명서를 작성한 뒤, 그걸 앨버트 학장에게 전달했는데.

그러나 이때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버렸다.

일본인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가 학과장 폴 해링턴을 찾아가, 이전 박사후연구원(포닥)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의 연구 노트에서 조작 흔적을 발견했다며, 정식 고발을 해 버린 것이다.

이때, 샤토 류노스케 박사는 무려 30가지 이상의 논리적 근거까지 제시하면서.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와 브룩하이머 교수의 논문은 아마도 조작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까지 한 것이다.

그 바람에 브룩하이머 교수는 정말 큰 난관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는 단숨에 학과 내에서 아주 주목할만한 존재로 우뚝 서게 되었다.

특히, 놀랍게도 샤토 류노스케 박사는 올레핀 메타세시스 반응과 관련해서.

브룩하이머 교수보다도 더 뛰어난 이해력을 갖춘 것이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주장한 30가지의 문제점들은, 향후 새로운 촉매제 개발 가능성을 예고할 수 있는.

이른바 아주 중요한 학문적 시사점들까지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샤토 류노스케 박사의 주장을 검토하던 다른 교수들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는 소식이, 학과 대학원생들에게까지 파다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이 상황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김태풍.

그도 나름 자신만의 생각을 하나둘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음. 뭐, 류노스케의 지적이 특출난 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의 말대로 새로운 촉매가 개발될 수 있다면, 결국 그는 나중에 노벨화학상을 받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김태풍은 곧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분석은 결국 틀렸어.’

김태풍은 그렇게 냉정하게 평가를 했는데.

왜냐하면, 실제 필드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그 과정에서 종종 새로운 이론들과 실험법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즉, 이론적 예측치와 실험적 결과치가 꼭 일치하지 않은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 결국… 결과가 말해주는 거니까.’

즉, 브룩하이머 교수와 같은 대열에 서 있는 로버트 그럽스 교수는 결국 노벨화학상을 받게 된다.

그게 김태풍이 보았던 미래의 모습.

그 때문에 김태풍은 좀 더 편안하게 자신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즉,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와 브룩하이머 교수는 절대 연구결과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것.

‘뭐 이번 일은 사실 답이 간단한 건데…. 저 류노스케가 머리를 심하게 굴렸어. 일을 만들기 전에,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음. 어쩌면 그는 이번 일로 학계에서 매장을 당할 수도 있어.’

그 때문에 김태풍은 잠깐 고민했으나.

그러나 브룩하이머 교수의 명예와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학문적 진실에 근거해서.

브룩하이머 교수를 돕기로 그는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뒤, 브룩하이머 교수의 앞에 앉은 김태풍.

김태풍은 자신의 견해를 또박또박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설마, 이 일로 브룩하이머 교수가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또한, 그로 인해 훗날 노벨상 수상자들 중의 하나가 되는.

즉, 미래가 완전히 바뀌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김태풍은 이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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