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인기 좋은 김태풍
그러면서 시작되는 박형준의 설명.
“아마 가져오신 한국 국제 면허증은 유효기간이 1년짜리잖아요? 근데 미국은 주마다 규정이 달라서, 대부분의 주 정부는 그걸 1년 동안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이곳도 딱 3개월만 인정해줘요.”
아! 그런 규정이 있었나?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3개월 이내에 면허증을 따야, 이후에 계속 운전할 수 있어요. 그럼 면허증 따는 것도 제가 도와드릴게요. 우선은 중고 자동차 쪽도 알아봐야겠군요.”
그러고는 솔트레이크 시내를 돌면서, 여기저기 상점들과 한인 마트, 음식점 위치 등을 가르쳐주는 박형준.
그러고는 중고차 매매장까지 데려가 주었다.
김태풍은 무척 고마워, 그날 그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가 빠르게 흘러갔는데….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지.
김태풍은 좀 더 일찍 SSN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빠르게 다음 일들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선, 학교에 SSN 번호와 계좌번호 정보를 넘겨주자.
그로부터 1주 뒤, 김태풍은 드디어 주급을 받게 되었다.
‘와~ 급여를 이렇게 많이 받은 건 평생 처음인데?’
서류상으로 약정된 급여는 6개월에 20만 달러.
이걸 총 12등분 해서, 2주마다 김태풍은 주급을 받게 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이번에 찍힌 주급의 총액은 무려 16,670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그 액수를 보고서 놀란 것도 잠시.
Federal(연방정부) 세금과 State(주정부) 세금 외에도 의료보험료가 엄청나게 많이 잡혀 있다.
그걸 차감하고서 실제로 찍힌 금액은 11,750달러.
대략 5천 불 가까운 돈이 뜯겨 나간 것이 너무 아깝기만 하던 김태풍.
그러나 이때, 박형준의 전화를 받고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발급받은 학술교류비자, J1 비자.
이 비자는 2년간 미국 내에서 면세(tax exemption)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개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신청을 하면 다음부터 세금이 없고, 지금 낸 것도 환불받는다 이거지? 모르고 신청 안 하면, 그냥 바보가 되는 거고? 참, 신청할 게 정말 많네.’
어쨌든 지금 받은 돈으로 중고차 구매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필요한 잡다한 것들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야흐로 김태풍의 진짜 미국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1> 천재 대 천재
“헤이~ 대니. 이거 좀 도와줄래?”
학교 행정 절차상 페이퍼 웍을 진행할 때, 자신을 도와줬던 박사과정 학생 잭 커비.
그 인연으로 친해진 김태풍은 웃으며, 한쪽 실험대로 다가갔다.
지금, 브룩하이머 교수의 랩 소속, 이십여 명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실험대 곳곳에 자리 잡고서 각종 실험을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이때, 김태풍은 잭 커비가 이온교환형 오픈 컬럼을 세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보통 이온교환형 오픈 컬럼은 이온 특성을 이용하여 불순물 제거에 사용되는 장치인데.
그 방식을 간단히 살펴보면, 특정 물질이 가지고 있는 이온 특성에 따라, 오픈 컬럼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오픈 컬럼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료 물질이 컬럼 내에 트랩이 되거나, 혹은 그냥 컬럼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런 차별화된 특성(트랩되거나 혹은 통과하거나)을 통해 불순물을 효율적으로 분리하는 방식이다.
“이건 양이온성 레진을 쓴 거야?”
“아. 맞아. 대니.”
그런데 조금 전 두 사람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일반적으로 이런 컬럼에 충진된 레진(점성을 가진 특수 고분자 물질)은 양이온성 혹은 음이온성을 갖고 있는데.
만약 양이온성 레진이 컬럼에 충진되어(채워져) 있다면, 음이온성 시료 물질은 그 컬럼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트랩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양이온(레진)과 음이온(시료)이 서로 반응해서 상호 간에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양이온성 시료 물질과 양이온성 레진은 정전기적으로 반발해서, 그냥 그 컬럼을 통과하게 된다.
이런 이온 반응성이 가진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한편으로는 그 시료가 포함하고 있는 이온의 개수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시료가 갖고 있는 이온수가 많으면, 더욱 강력하게 인력 혹은 반발력이 작용하게 되는데.
이런 이온 개수의 차이를 이용해서, 컬럼 속에 잡혀 있는(트랩되어 있는) 시간과 강도를 달리할 수 있다.
이후, 아주 강력한 전해질 물질(이를테면, 소금 NaCl)을 컬럼 속에 넣어주면.
양이온성 레진과 결합되어 있던 음이온성 시료 물질은 바로 탈착되어 컬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때, 밖으로 나온 용액들을 모두 모아서, 추출과 증류 등의 작업을 거치게 되면, 아주 순수한 상태인 음이온성 시료 물질을 얻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음. 근데, 이건 도무지 모르겠어. 어떤 때는 너무 쉽게 칼럼 준비가 되고, 어떤 때는 매번 실패야.”
지금 잭 커비가 하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서 오픈 컬럼으로 투입하는 용액(수용액)의 속도와 나중에 오픈 컬럼에서 나오는 용액의 속도가 거의 일정해야, 컬럼 내부 상태가 유지가 되고, 또한 컬럼이 넘치거나 마르지 않게 되는데, 이런 상태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상태가 유지가 되어야, 투입 용액 속도를 기계적으로 맞출 수 있고.
이후, 오토 샘플러를 이용해서 컬럼에서 나오는 용액들을 시간별로 유리 튜브에 담을 수가 있다.
그렇게 확보된 샘플들을 정성 평가를 통해 선별하면, 좀 더 편안하게 순수 물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잭! 결국은 얼마나 천천히, 얼마나 고르게 레진을 컬럼 속에 쌓아 올리느냐 이게 관건이거든.”
그러면서 김태풍은 레진 충진 법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또한 시연해 보였다.
보통, 점성이 있는 레진이 잘못 충진되면, 흔한 말로 떡이 되어버리는데.
그렇게 떡이 되어버린 레진은 분리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김태풍은 아주 스무스(smooth)하게 레진 분산용액을 유리관(컬럼)에 충진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손이 서툰 서양인들은 이런 쪽 역시 좀 약한 편인데.
반면 김태풍은 아주 숙련되어 있었다.
“다 됐어. 잘 봐. 물이 들어가는 속도, 물이 나오는 속도, 아주 일정하지? 이걸로 불순물 분리를 진행하면, 아주 잘 될 거야.”
“오~ 땡큐! 대니!”
무척 고마워하며, 즉각 김태풍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잭 커비.
그런데 그는 지금 김태풍을 계속해서 대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실, 그가 그렇게 호칭하게 된 것은, 바로 김태풍의 영어 이름 때문.
Tae Poong Kim.
원래 정상적인 영어 이름은 Tae-Poong Kim,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보통 한국인들은 여권상 영어 이름으로 각 글자들을 띄어서 쓰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김태풍의 퍼스트 네임을 Tae, 미들 네임을 Poong, 패밀리 네임을 Kim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처음에는 Tae라고 부르려고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쉽지 않은 발음이고.
그렇다고 Tae-Poong이라는 발음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우연히 잭 커비는 ‘탠’, ‘태니’, ‘대니’ 이런 식으로 바꿔 부르다가.
갑자기 ‘대니’가 좋을 것 같다며, 영어 닉네임 ‘대니’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 제안을 받고서 잠시 생각하던 김태풍. 결국, 그는 웃으며,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Please~ 대니! 혹시 지금 시간 괜찮다면, 내 것도 좀 봐 줄래? 방금 TLC(thin-layer chromatography)를 찍어 봤는데, 맙소사! 대체 왜 이렇게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하하. 레이첼. 너는 대체 무슨 문제인데?”
김태풍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쪽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갈색 머리의 백인 여학생 레이첼.
그녀는 TLC 판에 찍힌 결과를 김태풍에게 보여주었고.
유심히 쳐다보던 김태풍은 이것저것 코멘트를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 어떤 화학 실험을 하든,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숙달된 연구자는 설령 하버드대 실험실에서 실험을 진행한다고 해도,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수많은 경험을 가진 연구자들은 늘 존중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큰 두각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김태풍은 네이처지에 2번이나 주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사람이다.
미래에도 그렇지만, 이 시대 역시 네이처지 논문게재는 과학자들에게 꿈과 같은 일.
그런 꿈을 달성한 김태풍의 모습!
자연스레 김태풍의 네이처 논문들을 읽어본 이곳 학생들은 김태풍을 더욱더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실력을 갖춘 사람이 또한 남을 잘 배려해주고 있다 보니, 김태풍은 자연스레 미래를 위한 다국적 네트워크까지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덧 미국 생활 3주차를 지나, 어느덧 미국 생활 4주차로 진입하고 있는 김태풍.
그의 미래는 아주 밝기만 하다.
“김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한편, 브룩하이머 교수 랩에 와서, 간간이 일을 하고 있는 일본인 여성 과학자 이시하라 카스미.
그녀 역시 두 눈을 반짝이며, 김태풍에게 감사의 말을 번번이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대학 박사학위를 가진 똑똑한 그녀가 김태풍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사실 한국에서 김태풍은 좀 많이 자제를 했지만.
그러나 미국으로 나오게 되자, 좀 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선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느낌이 좀 더 강했고.
이미 교수급을 훨씬 뛰어넘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김태풍은 그 때문에 자신이 아는 부분에 대해선 가감 없이 설명을 해주곤 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만큼은 절대 누설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하. 대니. 넌 대체 어떻게 그걸 다 알지? 확실히 넌 천재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천재!”
“오! 쿨 가이~ 근데 어떡해? 나, 네가 점점 마음에 드는데.”
“맙소사! 레이첼. 너무 작업거는 거 아냐?”
“호호. 암튼 대니는 천재야. 어떻게 벌써 네이처가 2개나 있을까?”
“어머! 닥터 카스미, 근데 너무 대니만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
“아? 아닙니다! 애나. 그게 아닌데.”
“야. 대니! 대니! 빨리 와 봐! 나 좀 도와줘! 대니!”
그렇게 김태풍이 브룩하이머 교수 랩에 완벽하게 적응해 나가는 사이.
항상 혼자서, 항상 구석진 곳에서, 자신만의 실험을 하고 있던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 젊은 일본인 박사의 눈빛은 점점 더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8월 하순을 넘어갈 때.
브룩하이머 교수 랩에서 정말 이상한 사건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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