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4화 (14/153)

30-샤토 류노스케 박사

- 아. 죄송합니다. 미스터 킴. 항공사 쪽에서 대체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요청하신 대로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지요.

다행히 전화를 받은 존 헨드릭 이사는 그렇게 대답했고.

김태풍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났을 때.

더어크(Derck) 본사의 협조 요청을 받고서,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더어크(Derck) 고문 변호사 두 명이 공항으로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들은 공항 경찰들과 함께 게이트 앞으로 나타났는데.

풍채도 좋고, 눈빛도 날카로운 백인 변호사들이다.

이때 공항 경찰은 김태풍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바로 그쪽으로 다가간 김태풍은 먼저 변호사들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심각하게 김태풍의 말을 들은 그들은 곧이어 그 항공사 직원 쪽을 쳐다봤다.

“음. 잠깐만 기다리시죠. 저희들이 먼저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그쪽으로 간 두 변호사는 아주 심각하게 그 직원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안색이 굳어지고 있는 흑인 여자 직원.

그러다가 그 여자 직원은 들고 있던 펜을 거칠게 내려놓더니.

한옆으로 서 있는 김태풍을 잠시 성난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미스터 킴. 잠시 이쪽으로 와 보시겠습니까?”

백인 변호사가 불러서 그쪽으로 다가가자, 주춤하던 흑인 여자는 미간을 몇 번이고 찌푸리더니 곧이어 입을 연다.

“흠. 저희 전산망에 에러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건 제 탓이 절대 아니고, 고객 조회가 잘 안 된 거라서, 어쩔 수 없어요. 이제 확인이 됐으니까, 저희 항공사 방침에 따라, 다음 항공기 편 좌석 대기 순번 12번으로 올려놨으니까, 저기 앉아서 대기하세요. 그러나 오늘 같은 날, 비행기 탑승이 가능한지, 그것에 대해선 어떠한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건 저희 항공사 방침입니다.”

아까 전보다는 좀 말투가 누그러졌으나, 그럼에도 무척 딱딱한 말투.

그런데 뭐 대기 순번이 12번이라고?

김태풍의 목소리가 저절로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정말 웃긴 응대로군요? 조금 전에는 제 이름이 명단에 없다고 하더니, 제 변호사들이 오니까 그게 조회가 된다고요? 그걸 저더러 믿으라고요? 흥! 당신은 제가 아직도 만만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변호사님들! 음!! 제가 이 상황에서 저 사람을 당장 고소할 수 있습니까?”

김태풍이 갑자기 고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식 고소, 소송 문화를 어느 정도 잘 아는 김태풍이 바로 그 이야기를 꺼내자.

두 변호사들은 눈을 반짝인다.

“아? 고소? 네! 가능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변호사도 즉시 대답했다.

“지금 바로 의뢰를 원하신다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음. 사실, 저 직원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몇몇 위법 사실을 확인한 것도 있고, 나중에 조용히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지만, 뭐, 원하신다면 차별금지법 위반, 모욕 사실 등으로 당장 고소가 가능합니다. 또한, 항공사를 대상으로 민사소송 진행도 가능합니다. 더불어 이 직원의 차별적 태도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항공사 측에 공식적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그 순간, 그 대화를 엿듣고서 눈이 동그래지고 있는 흑인 여자 직원.

변호사들이 두 명이나 움직이고 있고.

그들이 지금 고소, 소송, 이의 제기 등을 언급하자, 그녀는 이제야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말에 그 여자는 더 놀라버린다.

“저희들은 더어크(Derck)사의 법률 대리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전력을 다해 이번 일을 수습하겠습니다. 음.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끝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최대한 다 강구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갑자기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는 흑인 여자 직원.

“더, 더어크(Derck)?”

미국 내에서 알아주는 대기업 중의 하나인 더어크(Derck).

그런 더어크(Derck)에서 변호사 2명을 바로 보냈고.

그리고 그들을 부릴 수 있는 위치를 가진 이상한(?) 동양인 청년.

그 순간 그 여자는 무척 혼란스러워진 것 같았다.

너무 착해 보여, 병신 같아 보였던 동양인 원숭이.

그런데 전혀 만만하지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고소와 소송을 당하면, 아무리 소송 천국인 미국 본토의 미국인이라고 해도 그 얼마나 머리가 아파지는가.

더군다나 이슈가 되는 것은 차별금지법이다.

그게 항공사 내에서 이슈가 된다면, 자신은 바로 해고 조치를 당할 수도 있는 일.

그 순간,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흑인 여자 직원.

“아! 잠시만! 잠시만요! 흠! 흠! 제가 다시 확인해 보니까… 아… 이제 됐어요.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군요? 한 승객이 갑자기 좌석 취소를 해서… 여기 22D! 이 좌석으로 해서 제가 다음 항공편 티켓을 발급해드릴 수 있어요. 이거 받고, 더는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러고는 서둘러 다음 일정의 티켓을 바로 찍어주고 있는 흑인 여자 직원.

어떻게 이런 티켓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코앞에서 또 다른 오버부킹의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김태풍은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이 티켓을 받지 않으면, 오늘 중으로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 티켓을 받지 않을 이유가 또 없지 않은가.

순전히 항공사 책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금 전에 자신이 받았던 그 무시와 모욕을 이 티켓 한장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태풍은 영리하게 결정했다.

조용히 티켓을 챙긴 김태풍.

그러나 물러서면서, 두 변호사들에게 부탁했다.

“음. 이건 제가 원래 받아야 하는 티켓입니다. 하지만, 전 확실히 모욕을 당했고, 저는 절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고소와 소송, 그리고 이의제기. 모든 걸, 정상적으로 진행해주십시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원이 될지 모르겠지만, 추가 비용이 든다면, 제 개인 비용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자 백인 변호사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하하. 존 헨드릭 이사님께서 직접 지시한 건이라, 회사 차원에서 모든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건은 차별 관련된 건이라, 제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습니다. 뭐, 징벌적 손해배상 차원과 관련이 있어, 좀 더 분석한 뒤에 저희가 진행하겠지만, 저희 같은 대형 법무 법인이 덤벼들면, 어쩌면 최대 수천만 달러대의 민사소송도 가능합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티켓은 티켓대로 챙기고.

고소, 소송, 이의제기를 모두 다 한다고 하니까,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리는 여자 직원.

거기다가 상대가 대형 법무법인 소속이었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백인은 흑인을 무시하고.

또 흑인은 동양인을 무시한다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

법적 규제와 달리, 각박한 현실은 여전한 것이다.

어쨌든 김태풍이 변호사들까지 대동해서 난리를 피운 덕분에, 항공사 다른 직원들이 부랴부랴 달려 나와, 다시 난리가 일어났으나.

이때, 변호사들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막아주는 바람에.

아무 탈 없이 김태풍은 다음 항공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루한 비행시간은 끝나고.

마침내 솔트레이크 공항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김태풍.

‘휴! 그동안 일들이 너무 잘 돼서 이건 액땜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래도 내가 머리를 잘 썼어.’

나름 흐뭇한 김태풍은 잠시 후 자신의 짐을 찾았다.

앞서 샌프란시스코 공항 연결 통로에서 수하물을 해당 직원에게 미리 맡겼던 김태풍.

그 짐은 앞선 비행기를 통해, 이미 솔트레이크 공항에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이것만 봐도, 자신이 갖고 있던 미국 국내선 예약 스케줄이 항공사 내에서 유효한 정보였다는 것이다.

잠시 후, 김태풍은 위탁 수하물 라벨을 제시한 뒤, 분실물 센타에서 자신의 짐을 찾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통로 밖으로 나오자.

이때, 자신의 이름 푯말을 든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체격이 듬직한 백인 남자.

그리고 두 동양인 남녀.

“아. 미스터 킴? 하하! 반갑습니다. 회사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오늘 좀 늦었지만, 솔트레이크에 무사히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김태풍입니다.”

“저는 롭이라고 합니다. 현재, 솔트레이크 지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두 분 박사님들.”

인상좋게 웃는 롭은 곧이어 자신과 같이 온 두 사람을 소개했다.

여성 쪽은 더어크(Derck) 일본 도쿄지사 소속으로, 파견근무 중이라는 20대 후반의 여성 과학자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상당한 미모를 갖춘 여성 과학자다.

그리고 남자는 더어크(Derck)사의 지원을 받아 몇 달 전부터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 랩의 박사후연구원(포닥)으로 합류한, 20대 중반의 도쿄대 박사학위자인 샤토 류노스케 박사.

“음.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차례로 그들과 악수를 나눈 김태풍.

그 인사를 마친 뒤, 김태풍은 롭의 간단한 일정 설명을 들었는데.

이때, 김태풍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의 두 눈이 약간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유타대학교 내 프레지던츠 서클에 위치한 화학과 건물로 찾아간 김태풍.

“하하! 반갑네. 박한식 교수로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유타대학교에 조인하게 된 걸, 정말 환영하네!”

그곳에서 그는 이 학교 종신교수인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하얀 머리. 인자하게 웃고 있는 백인 노인.

미국은 정년이 없다 보니, 70살, 80살까지도 연구활동과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런 활동을 뒷받침해줄 충분한 연구비(그랜트)가 없을 경우엔 그것도 쉽지 않다.

대체로 나이가 많은 교수들은 활동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국가 연구비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은퇴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러나 학문적으로 아주 뛰어난 교수들은 국가 연구비 외에도 기업으로부터 각종 연구비들을 지원받아, 상당히 오랜 기간 연구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행히 브룩하이머 교수는 아직도 왕성한 연구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자! 앉아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닥터 카스미, 닥터 류노스케. 당신들은 거기 앉게.”

다소 목소리가 쾌활하고, 또 음성 톤이 무척 높은 브룩하이머 교수.

거의 70세가 다 된 나이지만, 매사에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곧이어 그들은 작은 교수실, 회의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았고.

대단한 학문적 명성을 가진 브룩하이머 교수는 직접 커피를 그들에게 제공해주었다.

뭐, 간단하게 깨끗한 커피잔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커피를 부어 각자에게 건넨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하하. 첫날은 어땠는가?”

브룩하이머 교수는 웃으며, 솔트레이크시티로 온 첫날의 감상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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