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5화 (5/153)

폭풍! 김태풍!

“거기 앉게.”

“네. 교수님.”

“음.”

그리고 잠시 말이 없는 박한식 교수.

지금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지만.

그러나 선뜻 그의 속내를 읽을 수가 없다.

그저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박한식 교수.

갑자기 강한 불안감이 슬금슬금 일어나기 시작한다.

설마 네이처 논문이 거부(reject)당한 걸까?

‘설마?’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네이처 논문 게재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저 저널에 주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과학자들의 숫자는 정말 손을 꼽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과학자로서의 큰 영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음. 하긴 보통 저널이 아니니까, 뭐 탈락해도 그 다음 랭킹에 해당되는 저널에 재투고하면 될 거야.’

그럼에도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절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땐, 오늘 야간 실험은 몽땅 다 때려치우고.

동기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나가, 깡소주나 마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정말 탈락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뭐, 따지고 보면, 네이처지 논문 게재 확정이 된다고 해도, 기술이전 때처럼 돈이 생기는 일은 결코 아니다.

설령 게재가 된다고 해도, 네이처지에서 따로 출판료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다.

이건 경제적 이득이 아닌, 평생 얻기 힘든 과학자로서의 명예와 관계된 일인 것이다.

만약 출판 게재가 불허된다면, 그런 명예를 누릴 기회는 이제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교수님. 음! 교수님.”

결국, 참지를 못한 김태풍.

답답해진 그가 조심스레 박한식 교수를 부르자.

그제야 박한식 교수의 얼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자기 앞에 놓여있던 종이 하나를 김태풍에게 슬그머니 내민다.

“음. 한번 읽어보게.”

그런데 좀 이상하다.

분명 김태풍의 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어딘지 모르게 잦은 떨림들이 있다.

혹시 탈락해서 저러시는 걸까?

그런 불안감이 확 일어나자.

김태풍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지금 건네준 종이는 분명 심사 결과를 인쇄한 종이다.

불안감에, 초조함에, 심한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손.

그 손으로 종이를 받은 김태풍.

그리고 다소 흔들리는 눈으로, 김태풍은 종이에 적힌 것을 읽기 시작한다.

“Dear Prof. Park.”

여기까진 별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문장은?

곧 이어지는 영어 문장.

“I am pleased to confirm that your paper has been accepted for publication in Nature.”

……어??

“The proofs will be mailed to you in due course by Nature Publishing Group. We appreciate your…….”

어어??

어? 이건?

점점 더 김태풍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가고 있다.

“당신의 논문 을 Nature에서 게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문 교정본(proof)는 곧 당신한테 전달될 겁니다…….”

*Proof: 논문 출판 전에 출판사가 논문인쇄 양식에 맞추어, 저자들한테 보내는 최종 원고, 즉 출판 직전 단계를 의미함.

눈앞에 적힌 영문을 의역한다면, 바로 이런 말들이다.

다시금 영문을 눈으로 빠르게 읽어보다가.

결국, 김태풍의 눈과 입은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논문 교정본(proof)을 조만간 보낸다는 것은, 저자들에게 오타 등의 마지막 수정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문 교정본(proof)의 확인은 다소 형식적인 절차.

다시 말해서, 이미 네이처 논문 출판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

“맙소사! 이건? 교! 교수님!!”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김태풍은 고함을 질렀고.

바로 그 순간!

박한식 교수.

그의 입이 요란하게 벌어지더니, “으하하하하!” 하며 큰 소리를 내며 웃는 것이 아닌가.

“맞아! 억셉(accept) 레터야!! 으하하하!! 마침내 네이처 게재가 확정됐네!! 내가 지금껏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으하하하하!!”

도대체 박한식 교수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입천장까지 보일 정도로 요란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김태풍 역시 자신의 입이 남산만 하게 벌어지는 것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네이처지 논문 게재 결정이라니!

평생 자신과 무관한 저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곳에 자신이 당당히 논문을 싣게 된 것이다.

“이건 분명히 하늘이 우리를 도운 거야!! 하늘이 우리를 도왔다고!! 으하하하!!”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박한식 교수는 갑자기 두 팔을 활짝 벌린다.

난데없는 박한식 교수의 행동에 깜짝 놀란 김태풍.

그 역시 반사적으로 일어났고.

그리고 본능적으로 박한식 교수와 힘껏 얼싸안고 만다.

“으하하하!! 내 평생에 이런 행운이 다 있다니!! 내가 네이처 논문을 내게 될 줄은 죽어도 몰랐네!! 하하하!! 다 이게 자네 덕분이야!! 자네 덕분!! 으하하하!!”

학계에서 저명하다고 알려진 박한식 교수.

그 역시 이번 게재가 인생에서 처음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에 네이처 논문을 낸 한국인 과학자들의 숫자는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 힘든 바늘구멍을, 이들 두 사람은 뚫어낸 것이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로 네이처지 게재가 확정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있는 일.

그런 감격 때문에 두 사람은 포옹까지 하며 한바탕 격정을 풀었고.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박한식 교수는 다시금 크게 웃으며 말을 한다.

“이봐! 지금 당장 가서 다른 학생들한테 알려주게! 오늘 저녁은 무조건 회식을 해야겠어! 무조건 말이야! 뭐, 지금 시간을 보니까,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된 것 같은데, 다들 같이 나가자고! 내가 오늘 특별히 한우를 사줄 테니까, 다들 빨리 준비하라고 해!”

“네? 아, 네. 교수님.”

“어서 나가봐!”

“네! 교수님!”

김태풍은 거의 입이 찢어질 듯한 모습을 한 채, 박한식 교수의 방에서 나왔고.

랩으로 돌아오자마자.

안성훈, 배진수, 최기호 등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금방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요란한 비명들!

곧 이 사실이 랩 전체로 퍼져나갔다.

랩 공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선배들, 후배들.

우르르 달려왔고, 김태풍의 주위로 잔뜩 모이고 있다.

“이야아! 진짜? 진짜로 네이처에 나간다고? 진짜냐?”

“네. 그렇습니다. 선배님.”

“우와아아! 대박!!”

“야! 김태풍! 존나 존나 축하한다!”

“인마! 결국, 방귀끼더니 똥 쌌네. 네이처에 나간다고? 이거 완전히 미쳤다!”

“축하한다! 김태풍!”

“야! 인마! 너 저번에 기술이전료 받고, 한턱낸 것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야! 다시 쏴라! 다시 쏴!”

“맞아! 공석이 형 말이 무조건 맞아! 날마다 야식으로 프라이드치킨, 한 100마리는 쏴라!”

“야! 진짜 축하한다!”

“김태풍! 너는 뭔 놈의 운이 그렇게나 좋냐?”

“이게 말이 돼? 석사 2년 차가 네이처라고?”

“우와아! 다른 사람들 게거품 물겠다.”

“야! 김태풍! 그럼 교수님은 대체 뭐라고 하시냐?”

“아, 그게…… 저희 지금 회식하기로…….”

“우와아아! 야! 다들 잘 들어! 한우! 한우고기란다! 야! 교수님이 쏘신단다!!”

“우와아아! 오늘 교수님, 노래방도 가시겠는데.”

“그러고 보니까, 모처럼 용필이 형님의 ‘돌아와요, 부산항’ 그 노래도 들어보게 되겠어.”

곧이어 박사과정 2년 차, 4년 차 선배들도 몰려왔고.

랩이 또다시 한바탕 난리다.

“형들! 빨리 와 봐요! 소식, 들었어요? 김태풍, 네이처 나갔대요!”

“뭐야? 진짜? 야! 김태풍! 그 말 진짜냐?”

“인마! 넌 완전히 실험실 체질이다. 그냥 말뚝 박아!”

“미쳤다! 우리 랩에서 진짜 네이처가 나가다니! 미쳤다! 미쳤어!”

“야! 야! 야! 우리 빨리 준비해서 나가자! 교수님이 오늘 한턱 크게 쏘신단다! 야! 빨리 준비하자!”

그리고 이때, 슬금슬금 나타난 박사과정 5년 차 김철중과 박사과정 6년 차 박정식.

그들은 실험실 최고 짬밥들답게 흥분한 기색은 하나도 없다.

대신에 씩 웃으며, 축하 말을 건네고 있다.

“야. 김태풍. 축하한다.”

“잘 했다. 교수님도 좋아하시겠네.”

만약 꼬질꼬질한 이전 랩짱 최상준이 랩에 아직 남아 있었더라면, 재벌가 출신에 자존심이 엄청 센 최상준은 그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다행히 최상준은 올 초에 졸업해서 랩을 나간 상태라.

주변에 싸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가 없고.

다들 웃으며, 김태풍을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뒤늦게 조현상과 조현중까지 랩에 나오자.

마침내 랩원들은 한데 모여 화학과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한편, 박한식 교수가 주최하는 회식이라, 포닥들과 테크니션 연구원들도 이 회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식 참여 인원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랩 학위 과정 학생들 21명.

포닥 2명.

테크니션 연구원 2명.

그리고 랩 행정직원 1명.

박한식 교수까지 포함되자, 총 27명이나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근처 고깃집에서 봉고차 두 대를 보냈지만, 인원 전부를 한꺼번에 태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봉고차가 한 번 더 오고 간 끝에, 마침내 27명 전원은 고깃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다들 소주잔을 꽉꽉 채워!”

“네!! 교수님!!”

그리고 곧이어 다시 입을 여는 박한식 교수.

“오늘 우리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네이처 논문이 나왔네! 김태풍이 아주 열심히 일한 것도 있지만, 이건 바로 우리 실험실의 학풍이 이런 결과를 낳게 한 원동력이 된 거야! 다들 지금껏 수고가 많았네! 그리고 특별히! 김태풍이한테 내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 하하하! 그래. 오늘은 실컷 먹고! 또 실컷 즐기자고! 자아!! 원샤앗!!”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고함을 지르며, 그들은 일제히 달콤한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들 무지막지하게 먹어대기 시작한다.

값싼 돼지갈비 따위가 아니었다.

오늘 먹는 것은 무려 한우 등심.

무릇 한우고기란 불만 살짝 닿으면, 그냥 먹을 수 있다는 지론.

그런 지론을 외치며, 박사과정 3년 차 장공석은 무섭게 젓가락질을 한다.

그냥 고기 색깔만 살짝 변해도 그냥 무지막지하게 고깃덩이를 입에 넣고 있는 장공석. 그런 장공석을 보자면, 흡사 생고기를 먹는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의 그런 활약 덕분에 다들 눈이 뒤집혀지며, 미친 듯이 젓가락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모님! 여기 소주 6병 추가요!”

“이모님! 고기 12인분 추가요!”

“이모님! 여기 맥주 6병 더 주세요!”

“이모님! 여기 쌈장 좀 주세요! 여기 기름장도 추가요!”

“이모님! 상추랑 깻잎 좀 더 주세요!”

“이모님! 공깃밥 세 개 추가요!”

“이모님! 불판도 갈아주세요!”

“이모님! 여기 화력이 약해요!”

쉴 새 없이 주문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박한식 교수 역시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소주를 진탕 마셔댄다.

김태풍 역시 사방에서 자신한테 술을 권하는 바람에.

벌써부터 눈앞이 알딸딸해지고 있다.

순식간에 거의 소주 2병을 마신 것 같은 김태풍.

“야! 야! 그만 좀 줘라! 인마! 야. 김태풍. 넌 고기 좀 먹어. 야! 장공석! 너는 좀 천천히 먹어. 무슨 고기 킬러냐?”

박사과정 4년 차 강민수는 후배 장공석(박사과정 3년 차)를 은근히 제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강민수는 김태풍을 신경 써주고 있다.

“썬배님! 캄사합니다!”

결국, 혀가 약간 꼬이기 시작하는 김태풍.

그러나 네이처 출판 확정.

김태풍에게 이렇게 명예로운 순간은 평생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기뻐.

김태풍에게 소주 맛은 여전히 너무나도 달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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