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3화 (3/153)

뉴스에 등장한 대학원생

“……그럼 앞으로 다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도록 하지요. 하하하.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데릭 호킨스 교수가 머무는 호텔,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조찬 회의.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김태풍은 그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버드대와의 공식적인 공동 연구가 결정이 된 것이다.

“그럼 물질합성은 한국에서 진행하고, 추후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면, 저희 하버드대에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또한, 세계 마켓을 겨냥한 비즈니스 부분은 제가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호킨스 교수, 박한식 교수, 김태풍, 이렇게 세 사람은 각자의 일을 맡게 되는 공동연구 방식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때, 김태풍이 조심스럽게 따져보았던 것은 향후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처리 방식이다.

다행히 호킨스 교수와 박한식 교수는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조율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김태풍은 이 자리에서 자신한테 전혀 손해가 되지 않는 그런 의견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럼 다들 동의한 대로, 이 연구에 대한 지분은 1대 1대 1로 하기로 합시다. 물론 각 학교 본부에서 따로 가져가는 지분 몫은 어쩔 수 없이 별개로 하고…….”

이제 고작 석사과정 2년 차에 불과한 김태풍.

그런 그에게 정말 많은 포지션을 할당해 준 것이다.

그만큼 김태풍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의미였고.

또한, 김태풍의 아이디어를 무척 존중한다는 의사 표시였다.

박한식 교수의 그런 면모야 이미 알고 있어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김태풍은 호킨스 교수가 보인 따뜻한 배려에 크게 놀라고 만다.

만약 그가 하버드대 종신 교수라는 직위를 적극 활용한다면, 아마 1:0.5:0.5 정도가 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대 한국, 1대 1로 지분을 주장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지금 모든 것을 다 오픈하고 있었고.

그 결과, 1:1:1로 합의가 되자, 이것은 김태풍으로서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위결합’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결국 호킨스 교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실행과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연구 수행자인 김태풍의 몫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호킨스 교수는 확실히 김태풍의 역할을 크게 인정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박한식 교수가 김태풍에 대한 칭찬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쉴 새 없이 했던 것이 분명했다.

“하하. 박 교수님도 그렇지만, 김태풍 군도 그렇고, 저는 한국의 역량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또 한편, 박한식 교수는 이번 공동연구에 자신이 무임승차하는 건 절대 싫다며, 김태풍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외에도 김태풍의 일을 여러 방식으로 도와주겠다며, 여러 차례 공언까지 하기도 했다.

“그럼 물질합성이 완료가 되면, 그때 제가 한국을 다시 방문하는 거로 일정을 한번 조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차후에 두 분도 보스턴(보스턴 인근, 케임브리지에 하버드대가 있음)을 한번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런 일자들은 나중에 다시 정확하게 잡도록 하죠.”

호킨스 교수는 무척 바쁜 사람이다.

미국 내 여러 회사에서 R&D 분야 컨설팅을 해주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미국 현지에 설립한 자신의 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미국 각 대학과 주요 회사들로부터 수많은 세미나 초청들을 받고 있다.

수많은 국제학회를 돌아다니고 있고, 각지에서 그의 방문을 바라는 이들의 요청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학생 강의가 있는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늘 학교 밖을 떠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학교 일, 학생 교육을 등한시한다며, 그런 일로 그를 욕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는 학교에 큰 연구 펀드를 가져와 학교에 큰 보탬이 되고 있고.

자신의 랩에 속한 40여 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보통 한국적 사고에서, 대학교수는 매일 학교에 나와, 교육, 행정,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런 것 자체가 오픈 마인드인 것이다.

즉, 미국은 단순히 개근상을 받으려고 하는 교수들보다 오히려 실적 좋고 능력 좋은 교수를 더 우대하는 것이다.

날마다 시간 맞춰 출근만 하는 늙다리 교수들이나 연구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교수들은 학교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가하기도 하는데.

비록 그들이 테뉴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좀 더 일찍 은퇴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로 미국 대학의 현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 테뉴어 심사를 할 때도.

상위권 논문 게재 실적 여부를 따져보는 것도 있지만.

주로 대외에서 수주한 연구비 상황을 더 꼼꼼하게 따져보는 게 사실이었고.

한편으로는 당사자의 대외인지도 혹은 학계 명성 부분 역시 크게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하하. 데릭. 그럼 이제 일본으로 날아가는 건가?”

“네. 일본 도쿄대에서 세미나를 여러 개 하고, 그러고 나서 그쪽 회사들과도 여러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자신의 일정에 대해 간단히 대답하고 있는 호킨스 교수.

그는 역시 무척 바쁜 사람이었다.

“그럼 박 교수님. 6월에 시애틀에서 열리는 저널 편집위원(Journal editorial board member) 회의 때,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죠.”

호킨스 교수는 여러 SCI 저널의 편집 일도 맡고 있는데.

아마도 박한식 교수 역시 참여하고 있는 화학 관련 저널의 편집위원(editorial board member) 회의에 참여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하. 그래. 그럼 그때 보도록 하자고.”

그렇게 아침 식사는 어느덧 끝이 났고, 잠시 후 호킨스 교수는 짐을 챙겨서 호텔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공항리무진 버스에 그가 탑승하는 것을 지켜본 뒤.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는 주차장으로 걸어가, 박한식 교수가 가져온 승용차에 탑승했다.

“흠. 근데 앞으로 말이야. 자네가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괜찮겠나?”

운전석에 앉은 박한식 교수.

그는 새삼스레 걱정하며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그러자 김태풍은 곧바로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뭐, 일이 많다는 게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나?”

“네! 교수님!”

“하하. 그러면 내가 더 고맙지. 뭐, 젊었을 때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해. 그래도 더 큰 발전을 볼 수도 있는 거고. 하긴 자네 나이 때라면, 아마 밤을 새워도 끄떡없을 텐데, 안 그런가?”

“아, 네. 교수님. 하하.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가지.”

엔진 시동을 걸고 곧바로 출발하는 박한식 교수.

그러고 보면, 김태풍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갈수록 태산같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박한식 교수의 아이디어에 기반을 둬서 진행하고 있는 신약 물질 합성.

강신혜 박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네이처 투고용 연구.

그리고 메드TX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연구.

거기다가 이제 호킨스 교수와 새롭게 추진하게 된, 새로운 인체 접착제 연구까지.

보통의 석사과정 2년 차로서는 단 한 가지 연구도 제대로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보통 연구가 아닌, 아주 어려운 연구를 동시에 4개나 진행하게 된 상황.

누가 봐도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김태풍이 회귀를 하지 않았더라면, 김태풍은 그날로 머리가 팡 터져 버렸을 것이다.

‘음. 계속 일들이 늘어나고 있네. 일에 치여, 괜히 머리가 산만해지면, 되는 일도 안 되는데. 하나하나 빨리 매듭지어야겠어. 그럼 먼저…….’

고민에 빠져들고 있는 김태풍.

‘그래. 가장 먼저 네이처 논문 수정부터 빨리 마무리하고, 두 번째는 강신혜 박사님과 하는 연구들도 서둘러 끝내자. 그리고 메드TX 쪽 일 역시 적어도 3달 안에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그리고 또…… 앗! 으악~ 이게 대체 뭐야? 대체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건 그냥 무조건 다, 한 번에 다 하는 거잖아? 으으.’

조수석에 앉아 혼자만의 궁리를 하던 김태풍은 이내 울상이 되고 만다.

하나하나 차례로 조율할 수 없을 정도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하나같이 다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흠. 할 수 없지. 당분간 교수님한테 말씀드리고 야간조라도 해야겠어.’

야간조.

물론, 과거에 야간조를 한번 해 본 적이 있는 김태풍은 야간조가 나름 괜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야식 때문에 살이 찐다는 것이 큰 맹점이긴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사람들(랩 선배들)이 보이지 않아, 한밤 내내 아주 조용히 실험에만 몰두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시간 관리하기에도 딱 좋은 게 야간조 생활이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김태풍은 조만간 야간조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   *   *

“야! 너희들, 이제 막막 살아날 것 같지 않냐? 혈색도 팍팍 돌아오는 것 같고?”

“야. 진짜 실험실에서 실험하랴 시험공부하랴 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게. 우리 학교는 진짜 왜 그러냐?”

“맞아. 다른 학교는 안 그런데. 뭐 대학원까지 올라와서 무슨 시험공부한다고 이 고생인지 몰라?”

“뭐, 어쩌겠어? 학교 방침이 그런데. 그래도 중간고사가 이제 끝났잖아. 와! 이제 살 것 같지 않냐?”

“인마! 살긴 뭘 살아? 다들 다음 주 랩미팅이라며?”

“으으. 그 이야기는 왜 갑자기 하고 그래? 짜증나게시리.”

시간은 어느덧 흘러, 마침내 1995년 4월 중순, 대학원 중간고사 기간이 어느덧 끝이 나고 있었다.

사실, 김태풍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는 보통 일반 대학교와 달리 과학 특화 학교이다 보니, 대학원생들 역시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 시험에 등한시했다간, B 학점 혹은 C 학점 등을 받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그야말로 망신살이 뻗치게 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그래서 다들 학점 관리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중간고사 기간이 끝이 나자, 김태풍은 다시금 자신의 실험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음. 확실히 난 연구하는 것보다 시험공부가 더 힘들어.’

단순 시험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게 더 재미있는 김태풍.

그는 다시금 의욕을 불사르며 실험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야간조 생활을 4월 초부터 시작한 터라.

김태풍의 하루 일과는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이제 김태풍의 기상 시간은 오후 4시다.

그는 오후 4시쯤 일어나 가볍게 샤워를 한 뒤, 학생회관에 들러 분식 코너에서 바로 저녁을 먹는다.

그곳의 메뉴는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비빔밥, 김밥, 떡볶이, 라면 등이 있는데, 이런 류의 음식 중의 하나를 골라 배를 채우게 된다.

이후, 자전거를 타고서 랩에 도착하게 되면, 대략 오후 4시 50분 전후가 된다.

그 시각에 대학원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듣고.

수업이 없으면 그때부터 김태풍의 실험실 일과가 바로 시작되는 것이다.

“야. 우리 저녁 먹고 올 테니까, 실험실 잘 봐.”

어느덧 저녁 6시가 되면, 그의 동기들인 안성훈, 배진수, 최기호는 손을 흔들며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그러나 김태풍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실험에 몰두한다.

사실 저녁만큼은 동기들과 같이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고약 처방으로 그렇게 결정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들 저녁을 먹으러 나간 사이.

그때가 되면, 개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랩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 무렵, 흡사 귀신처럼 조용히 기어 나오고 있는 또 다른 야간조 인간들.

조현중과 조현상.

그들도 비로소 출근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태풍은 이제 저들과 생체 리듬이 거의 똑같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분명한 차이는 있다.

김태풍은 늘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칼같이 출근한다.

하지만 조현중과 조현상의 출근 시간은 들쑥날쑥.

오후 5시가 되기도 하고, 오후 6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오후 7시가 되기도 하는 등 자기 마음대로인 것이다.

다만 희한한 점은 두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정말 서로의 시간만큼은 칼 같이 맞춰가면서 같이 다닌다는 점이다.

그들의 기숙사 방이 서로 같은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흠. 대체 무슨 공통점들이 있어서 저렇게 같이 잘 다닐 수가 있지?’

과거 회귀 전, 김태풍은 저들 야간조들의 생체 리듬이 무척 궁금해서 유심히 관찰한 적도 있다.

그리고 당시에 내렸던 결론.

‘그래. 두 사람은 공통점들이 확실히 많아.’

그래서 정리된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둘 다 식성이 비슷하다. 유난히 빵과 우유를 좋아한다. 저녁 대신에 그걸 자주 먹는 경우가 많다.

둘 다 키가 작다.

둘 다 성격이 너무 특이하다.

둘 다 조용하고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둘 다 컴퓨터 도사에 비공식적인 해커 출신들이다.

둘 다 세상 물정에 어둡다(그래서 버스를 잘 못 타서 이상한 곳에 종종 내리기도 한다).

둘 다 지독하게 공부를 잘한다. 특히 유기화학, 유기합성과 관련해서는 교수들보다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둘 다 한국대 학부 출신으로 선후배 사이이다.

둘 다 숫기가 없어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둘 다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신다.]

이런 조현중과 조현상.

훗날 저 조현중은 지방 거점 국립대 교수가 되는데.

또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과 결혼을 하게 된다.

미래를 아는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조현중의 모습이다.

그리고 조현중보다 1살이 더 많은, 그리고 좀 더 똑똑한 조현상.

그는 훗날 모교인 이 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임용이 되며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그런데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그의 와이프는 보통 센 여자가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당당히 담배도 곧잘 피워대던 여자.

나중에 정당 공천까지 받아 국회의원 출마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회귀하는 바람에 과연 그녀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는지는 그건 김태풍으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그런 두 사람과 어울리게 된 김태풍.

“아! 현상이 형, 현중이 형. 지금 나왔어요?”

실험 후드 앞에서 정신없이 반응기를 세팅하고 있던 김태풍은 두 사람의 등장에 곧바로 아는 체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꼭꼭 선배라는 말을 붙이지만, 이들에게는 ‘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김태풍. 그러고 보면 저들의 또 다른 공통점 하나가 둘 다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넌 왜 그렇게 빨리 왔어?”

“밥은 먹고 왔어?”

두 사람은 각자 다르게 묻고 있다.

김태풍은 웃으며 대답한다.

“전 저녁 먹었죠. 형들은요?”

“우리?”

“네. 식사하셨어요?”

그런데 가장 간단한 김태풍의 식사 질문임에도 바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괜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그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들이 좀 괴이해지고 있는 조현상과 조현중.

이때 조현상은 갑자기 인상을 팍팍 쓰더니 머리를 뻑뻑 긁는다.

“그게, 으으으.”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게, 그게, 으으으. 우리 지금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네?”

“랩미팅이잖아. 다음 주 월요일 랩미팅.”

“네?”

“나 큰일났어. 큰일났다고.”

“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그러나 대번에 김태풍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조현상, 조현중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때면, 꼭 무언가 사고를 쳤을 가능성이 높다.

역시나 그런 조짐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사정없이 자기 손톱을 뜯어먹기 시작하는 저 조현상.

‘뭐야? 진짜 사고를 쳤어? 요즘 조용하더니, 또 사고를? 대체 이번엔 또 뭐야?’

“형. 잘 생각해 봐요. 어디에 뒀는지, 아마 어디에 뒀을 텐데?”

“몰라. 난 기억이 안 나.”

“아니, 그래도.”

“진짜 기억이 안 난다니까.”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조현중과 조현상.

답답해진 김태풍은 후드에서 손을 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조현중이 비로소 설명을 한다.

“그게, 현상이 형이…… 플로피 디스크를 잃어버렸대.”

이 시대는 아직 USB가 없어, 플로피 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

“네? 플로피 디스크라면? 아! 혹시 실험 데이터 저장본인가요?”

“응. 맞아.”

“네에??”

실로 너무 뜬끔없는 소리라, 그 순간 김태풍은 바로 헛바람 소리를 낼뻔하다가 간신히 참아냈다.

“하지만 컴퓨터에 저장해 둔 게 있으면…….”

그러나 조현중은 곧바로 머리를 젓는다.

“해킹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곳에 저장해?”

“네? 해킹 우려??”

김태풍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럽다. 랩에 있는 컴퓨터들이 설마 해킹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나?

저 두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는 걸까.

“암튼 지금 큰일 났어. 그걸 어디에 뒀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잖아.”

“그래도 저장을 다른 곳에 해 뒀으면…….”

“디스크 케이스 자체를 통째로 잃어버렸다는데?”

아! 이런!

김태풍은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간다.

“형. 다시 생각해 보죠.”

“몰라. 어떡하면 좋냐?”

“형. 다시 앉아서 생각해 보자.”

중얼중얼. 중얼중얼.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올 초에 두 사람 모두 책상 자리를 옮긴 터라) 이제 자기들의 책상이 있는 옆방으로 걸어가고 있다.

‘휴. 대체 뭔 일이래.’

김태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실험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유유히 흘러갔는데.

어느덧 9시간이 지난, 새벽 3시.

김태풍은 그때서야 비로소 오늘 실험을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중간고사 시험공부 때문에 잠깐 미뤄뒀던 논문 수정 작업을 곧바로 진행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쯤 뒤.

드디어 마지막 결론 부분까지 다 고치고 나자.

마침내 길고 길었던 네이처 논문 수정 작업을 김태풍은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 이제야 다 했네. 네이처 논문 내는 데, 수정 작업이 더 힘들다고 하더니, 그건 진짜였어.’

실제로 리뷰어(심사위원)들이 요구한 추가 실험까지 진행하고.

또한, 그 결과를 근거로, 원고 수정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그동안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야 논문 수정 작업이 완전히 끝이 나자, 어깨를 누르고 있던 부담감 하나가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다.

김태풍은 자연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

‘오늘 일찍 퇴근할까?’

생글생글 웃고 있던 김태풍.

그런데 바로 그때.

혼자서 웃고 있던 김태풍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갑작스러운 거친 굉음이 옆쪽 방에서 들려오고 있다.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김태풍.

쿠르르쾅. 탕. 탕. 드르르릉. 쿵쾅쾅.

여전한 굉음 소리들.

새벽의 정적을 깰 정도로 소음들이 요란하다.

‘설마 폭발 사고?’

대경실색하며, 얼른 옆방 실험실로 뛰어간 김태풍은 곧 거기서 아주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책상들과 책장들, 서랍들까지 다 풀어 헤쳐져, 난장판이 되어 있는 실험실의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정신없이 뭔가를 찾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들.

조현상, 조현중, 그들이었다.

“대체 지금 뭐 하세요?”

“어? 아? 아아~ 이거?”

“……?”

“우리 지금 플로피 디스크를 찾으려고?”

“네?”

“내 생각엔 확실히 랩에 있어. 거기까지 기억이 났어.”

“네??”

“내가 집중해서 생각한 끝에 얻은 결과야.”

“……?”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있어.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그러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정신없이 뒤지고 있는 두 사람.

아.

갑자기 골이 아프기 시작하는 김태풍.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저들 두 사람을 도와줘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김태풍은 이내 등을 돌린다.

미친 듯이 뒤지고 있는 두 사람의 행동을 보니.

자신의 손 하나 빌려줘 봤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도로 자리로 돌아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할 수 없이 연구 노트를 다시 살피고, 내일 진행할 실험 계획을 차분하게 짜기 시작하는 김태풍.

그러나 그사이 요란한 소리들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찾고 있는지 몰라도,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새벽 6시가 되었을까.

갑자기 요란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고.

또 궁금해져 김태풍은 그쪽 방으로 뛰어가 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게 된, 웃고 있는 두 사람.

플로피 디스크 케이스를 하늘 높이 들고서 환하게 웃고 있는 조현상의 모습.

“결국, 그걸 찾았어요?”

“그래! 찾았어! 결국, 찾았다고! 하하하!”

“아. 다행이네요. 근데 대체 어디에 있었어요?”

“어?”

그런데 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걸까.

김태풍의 질문을 받고서, 저 두 사람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지고 있다.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다가, 곧이어 조현상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연다.

“……레……통…….”

“네?”

“……쓰……레기 통에 있더라고.”

그러고 보니까, 한옆으로 큼직한 쓰레기통 하나가 완전히 풀어 헤쳐져 있다.

잠시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다가.

짧은 한숨을 뱉으며, 다시 등을 돌리고 마는 김태풍.

몰라. 생각하기도 싫어.

진짜 저 일에 대해선 생각 자체가 싫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쓰레기통에서 그게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김태풍은 조용히 뒷골을 잡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래. 확실히 자신이 안 도와주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어느덧 아침 8시.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같이 아침 먹으러 가려고, 그쪽 방으로 가보니.

밤새 소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곤 믿을 수 없게, 모든 것들이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이 형들.

야간조 생활을 하면서, 혹시 이런 식으로 실험실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그러고 보면, 밤새 저들이 뭘 했는지 저들 빼고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흠. 형들. 이제 식사하러 안 가세요?”

“아? 아침? 당연히 먹으러 가야지. 배고파서 죽는 줄 알았어.”

그리고 잠시 뒤.

세 사람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서 학생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이제 출근하는 길이지만.

이들은 퇴근 겸 아침 식사를 하려는 것이다.

그래도 아침 공기가 무척 시원하고 맑아서, 정신도 좀 맑아지는 기분이다.

‘뭐,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침 퇴근길에 먹는 아침밥이야말로 그야말로 꿀맛이지.’

잠시 후, 따뜻한 된장국에 밥을 쓱쓱 말아서, 맛있게 먹어대는 김태풍.

이 맛이야말로, 야간조 생활 중에 맛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맛이 아닐까.

이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기숙사로 들어가 발 뻗고 신나게 잘 수가 있다.

“야. 다 먹었으면 가자.”

드디어 기숙사로 향하는 길.

김태풍의 자전거 바퀴는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다.

드디어 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순간이니까 말이다.

*   *   *

1995년 5월 3일 수요일.

봄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서 랩으로 들어오는 날.

김태풍은 모처럼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오! 김태풍. 양복 입고 나왔어?”

“야. 좀 멋있는데?”

“축하한다! 김태풍!”

동기들부터 탄성을 지르고 있고, 선배들, 후배들까지 김태풍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미국 듀폰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세부 계약 체결 외에도 행정 처리를 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순조롭게 계약 과정은 이어져.

비로소 오늘 계약 체결식을 학교에서 갖기로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오~ 너 인물이 좀 나는데?”

한편, 한쪽에서 일을 하고 있던 테크니션 김민영. 그녀도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김태풍을 쳐다보고 있다.

호리호리한 키.

새카맣고 맑은 눈동자.

야간조 생활로 약간 볼살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볼만한 얼굴.

김태풍은 나름 멋이 있다.

“그럼 몇 시에 하기로 했어?”

“아. 10시쯤이라고 들었어.”

“근데 기자들도 온다며?”

“그렇다고 하네. 어제 교수님 말씀이, 기자들이 좀 온다고 하더라고.”

“어디서 하는데?”

“행정동 회의실. 오늘 총장님도 참석하신다네.”

김태풍이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행사의 규모가 좀 커졌다.

학교 보직자들을 비롯해서 학교 총장까지 참석하는 큰 규모의 행사가 된 것이다.

하긴 초기 계약금만 해도 무려 2백만 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학교 본부에서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학교 홍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기자들을 부르고.

또한, 학교 자체 홍보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 촬영 카메라들도 준비해뒀다고 한다.

“김태풍! 뭐 해? 지금 교수님이 널 찾는데.”

잠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겸, 논문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곧이어 들려오는 배진수의 목소리.

김태풍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오늘 있을 기술이전 계약 행사 때문에 겨우 2시간만 자고 나온 터라 약간 해롱해롱하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의 방으로 걸어갔다.

이때, 근사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박한식 교수는 눈으로 웃으며 말을 한다.

“자네도 깨끗하게 입고 왔군, 그래. 참! 좀 일찍 나가자고. 우린 좀 미리 가서, 거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

“네. 교수님.”

“그리고 계약식 끝나면, 인터뷰를 따로 진행할 거라고 하던데, 괜찮겠지? 뭐 카메라 앞에서 떨진 않겠지?”

“네? 인터뷰요?”

“그래. 학교 홍보용인가 뭔가 하는 건데, 암튼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어. 그냥 본부에서 인터뷰 준비도 하라고 아까 연락이 왔어.”

“아, 네.”

“뭐, 그쪽에서 일이 갑자기 더 생겼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뭐, 별 게 있겠어? 그냥 자기 소신대로 설명만 잘하면 되지. 다만 말이야. 나중에 그 사람들이 잘 끊어서 편집할 수 있도록, 말을 좀 천천히 하는 게 필요해.”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럼 10분 후에 같이 나가도록 하지.”

“네! 교수님!”

잠시, 랩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복도로 나가자, 마침 박한식 교수가 방에서 나오고 있다.

방문을 잠근 뒤, 박한식 교수는 이내 앞장을 선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본부 행정실 5층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바로 눈길을 끄는 부분은 큼직한 플래카드다.

그 플래카드가 한쪽 벽면에 요란하게 걸려 있다.

[(경) 한국연구기술원-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 첨단신소재 관련 기술이전 협약 체결 (축)]

[(일시: 1995년 5월 3일, 장소: 한국연구기술원 행정동 5층 대회의실)]

……그리고 회의 테이블 양쪽에는 계약서류들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이때, 그곳을 정리하고 있던 행정직원들. 그들은 박한식 교수를 즉시 알아보고는 바로 인사를 한다.

이때, 어느 40대 초반의 한 남자 직원. 그가 반색하더니 박한식 교수 쪽으로 다가왔다.

“아, 오셨습니까? 교수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아, 장 팀장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할 게 아니라,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바로 이 친구입니다. 하하.”

박한식 교수가 바로 김태풍을 가리키자, 눈이 약간 커지는 남자.

“아, 이 학생이 바로 김태풍이라는 그 학생이군요?”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남자.

곧바로 자신을 홍보팀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김태풍과 악수를 나눈 뒤, 바로 입을 연다.

“정말 축하해요. 벌써 그런 큰일을 다 하고, 앞날이 더 기대되는군요. 참! 나중에 인터뷰 시간이 따로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생각해 봤어요?”

“네? 아, 그냥. 네. 하하.”

“그럴 게 아니라, 좀 더 설명을 듣죠. 아! 저기! 혜선 씨! 혜선 씨! 여기 좀 와보세요.”

홍보팀 팀장은 갑자기 한 여자 직원을 불렀고, 20대 중반의 늘씬한 체격을 가진, 한 여직원이 단숨에 이쪽으로 걸어온다.

“아. 혜선 씨. 이 학생한테 주의사항을 자세히 좀 이야기해주시고, 일정 설명도 좀 해주세요. 중요한 일이니까 꼼꼼하게 부탁합니다. 아! 그럼 교수님, 저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누시죠.”

홍보팀 팀장은 김태풍을 여직원에게 인계한 뒤, 옆으로 물러나 박한식 교수와 계속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면, 김태풍은 눈빛이 약간 새초롬한 여직원과 대화를 하게 됐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대학 학부를 마친 뒤, 곧바로 교직원이 된 김혜선.

반면, 석사과정 2년 차인 김태풍은 어느덧 24살의 건실한 청년이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 석사과정 맞죠?”

“네. 2년 차입니다.”

“와! 석사과정인데 이런 계약까지 맺게 되고, 정말 대단하네요.”

“아. 아닙니다.”

“그럼 제가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오늘 총장님께서 여기 참석하시겠지만, 계약 당사자로 듀폰사의 일본지사장님도 직접 참석하시기로 하셨어요.”

“아. 네.”

“지금 총장님하고 그분이 면담 중이신 것 같은데, 좀 있다가 그분들이 내려오면 바로 계약식이 시작될 거예요.”

“네.”

“그리고 그게 끝나면, 일본지사장 측에서 김태풍 씨한테 잠깐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

“네?”

“자세한 사안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뒤에 곧바로 인터뷰를 하게 될 거예요. 각 방송사 별로 30분씩 진행할 예정인데, 김태풍 씨는…….”

“앗! 네에? 방송사라고요?? 잠시만요!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죠?”

깜짝 놀라며 김태풍은 그녀의 말을 끊어낸다.

그런 김태풍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김혜선.

그녀는 이내 의아해하며 묻는다.

“혹시 그 이야기 못 들었어요?”

“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정말로요? 이상하다. 박 교수님한테 저희가 미리 알려드렸었는데.”

“네?”

“KBC 방송국하고 MBS 방송국, 이렇게 두 군데에서 오기로 했어요. 각각 30분 정도 촬영할 거지만,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고. 마지막 인터뷰는 홍보팀에서 촬영할 거고요.”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은 정신이 번쩍 든다.

KBC 방송국?

MBS 방송국?

금방 긴장한 김태풍의 얼굴을 보고는 김혜선은 보기 좋게 보조개를 보이며 웃는다.

“정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어요?”

“네.”

그렇게 대답한 김태풍은 이내 고개를 슬쩍 돌려, 박한식 교수를 힐끔 쳐다봤다. 홍보팀 팀장과 뭔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한식 교수.

왜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자신한테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혹여 자신이 떨까 봐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런 인터뷰는 정말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암튼, 김태풍은 달리 방도가 없어, 놀란 마음부터 차분히 다스리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경험들이 이미 김태풍에게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성그룹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할 때, 김태풍은 임상시험 단계마다 여러 번 언론 앞에 서야 했고.

그래서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다행히 마음을 진정하는 시간이 더 빨라지는 게 사실이었다.

“혹시나 해서 제가 팁을 드리자면, 카메라가 있다고 괜한 의식을 안 하면 돼요.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 인터뷰를 문제없이 끝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녹화방송이라서 방송사에서 알아서 편집할 테니까 그냥 부담 없이 하시면 돼요.”

지금 김혜선은 계속 김태풍의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입가에 미소까지 보이며, 그녀는 진지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김태풍은 그녀의 약간 끈질긴 시선 때문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다.

저렇듯 여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모태솔로인 김태풍은 저절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자, 그의 마음은 저절로 편해진다. 그래. 저 여자는 그냥 직원이야. 그냥 여자 직원. 이렇게 생각하니까 저절로 마음은 편해지고 있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팁도 고맙습니다.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한번 잘 해볼게요.”

김태풍은 당당하게 말했고, 이때 김혜선은 다시금 유심히 그를 쳐다보다가, 김태풍이 앉을 자리를 조심스레 지정해 준다.

그러고는 조용히 물러서는 김혜선.

그리고 그녀는 다른 여자 직원한테로 다가가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민정아. 저 사람, 생각보다 잘 생기지 않았어? 내가 본 여기 학생들은 다들 별로던데, 인상이 너무 좋아.”

“그치? 나도 방금 보고 놀랐다니까. 근데 박 교수님 말씀으론 완전 천재래. 이번 계약으로 학교에서 지급받는 돈이 얼만 줄 알아?”

“얼마?”

“8억 7천만 원.”

“와~! 진짜 어마어마하네!”

“혹시 저 남학생, 여자친구는 있을까?”

“어?”

“야. 김혜선. 너 좀 관심 있는 거 맞지?”

“야. 너 왜 그래? 목소리 좀 낮춰.”

“풋~ 근데 아까 널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걸 보면, 눈이 좀 높아 보이는데. 외모도 그렇고.”

“음. 좀 그렇게 보이지?”

1995년 현재,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은 대략 1,800만 원 선이다.

그런데 기술이전 계약으로 한 방에 8억 7천만 원을 받게 되는 김태풍.

그래서 교직원들마저 놀랄 ‘노’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학교 보직자들을 이끌고 회의실에 나타난 이 학교 총장.

곧이어 듀폰 일본지사장 와카바야시 가쓰히코도 일본인 직원들을 대동하고서 나란히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때, 김태풍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박한식 교수는 먼저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곧이어 박한식 교수가 김태풍을 소개하자, 총장은 웃으며, 김태풍의 어깨를 두드리며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와카바야시 가쓰히코 일본지사장과의 인사.

그 역시 눈을 반짝이며 김태풍과 악수를 하다가, 갑자기 뭔가 계속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김태풍.

잠시 멍해져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직원이 통역을 해 주는 바람에, 와카바야시 가쓰히코의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하. 김태풍 선생님. 저희 일본지사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무척 아끼고 있습니다. 만약 저희 일본지사에 오실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저한테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회사는 김 선생님의 입사를 무조건 환영합니다. 뭐, 김 선생님도 잘 아시다시피, 이런 작은 후진국 한국에서 큰 연구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하하! 위대한 선진국 일본으로 오십시오. 하하하.”

바로 그런 식의 오퍼였다.

90년대 초반, 일본 버블 붕괴로, 일본 경제는 암흑기에 들어선 상태지만.

그럼에도 일본 기업들의 뛰어난 능력들이 갑자기 하늘로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고, 전세계적으로 그들의 파워는 여전했다.

그래서 일본인 특유의 자만심이 그의 그런 말 속에 자연 배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김태풍은 피식 웃다가 당당하게 대답한다.

“음. 하지만 저는 절대 한국이 좁고 열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한국의 과학기술은 앞으로 힘이 들더라도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고, 아마 가까운 미래에 일본을 뛰어넘어,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일본 취업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 김 센세이! 저희 회사가 제시할 연봉을 아시면…….”

그러나 구태여 일본지사장한테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김태풍은 생각했다.

그래서 김태풍은 자신의 소신대로 이야기했고.

그리고 그 바람에 와카바야시 가쓰히코의 얼굴은 금세 굳어지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일본지사장이 이 기술이전 체결식을 취소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김태풍의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는 여러 보직자들.

이내 그들의 얼굴에는 ‘이놈, 만만한 놈이 아니네.’ 이런 생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계약서 사인이 끝났고, 곧바로 사진 촬영식이 이어졌다.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는 그들의 옆에 서서, 계약 체결을 증명하는 사진 촬영을 마무리했고.

그것까지 끝나자, 모두 요란하게 손뼉을 친다.

모처럼 생긴 학교 차원의 큰 경사였다.

“하하하! 박 교수님! 그리고 김태풍 군!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가 조만간 공로패를 따로 준비할 겁니다. 앞으로도 우리 학교를 위해 더욱더 큰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쾌하게 큰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총장님.

그렇게 계약식은 완전히 끝이 났는데.

곧이어 예정되어 있던 김태풍과 와카바야시 가쓰히코의 면담 일정은 갑자기 취소되어 버렸다.

와카바야시 가쓰히코가 다른 스케쥴이 갑자기 생겼다며, 그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린 것이다.

뭐, 그게 취소가 돼도, 김태풍으로서는 아무 느낌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그가 떠나자, 김태풍은 이제 방송사 스탭들과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1시간쯤 지난 뒤.

와이셔츠 등 쪽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깨달은 김태풍.

아무리 안 그런 척해도.

긴장한 마음 때문에 저절로 땀을 흥건하게 쏟아낸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친 김태풍은 힘이 축 빠진 채로 랩으로 돌아왔는데.

그런데 그가 랩에 들어서자마자.

배진수, 안성훈, 최기호가 우르르 뛰어온다.

그들은 큼직한 꽃다발을 김태풍의 가슴에 한가득 안겨 주고 있다.

“야! 김태풍! 인마! 너 진짜 축하한다! 김태풍!! 축하해!!”

“야! 무조건 한 턱 쏴라!”

“인마! 우리 동기들 중에서 네가 넘버원이다! 하하하!”

하하하.

그래!

동기들의 축하세례에 김태풍은 그저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   *   *

오늘은 참 하루가 긴 편에 속한다.

새벽 6시에 퇴근한 뒤, 겨우 2시간만 자고 일어나 양복 차림으로 실험실에 나왔던 김태풍.

모처럼 점심도 먹고, 동기들과 수다도 떨다가.

다시 실험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어가고 있다.

“야. 김태풍. 빨리 기숙사에 가자.”

“어?”

잠시 앉아서 연구 노트를 쓰고 있던 김태풍은 안성훈의 말에 눈을 반짝인다.

“왜?”

“오늘 9시 뉴스에 나온다고 했잖아?”

아. 맞다. KBC 방송국과 MBS 방송국이 자신의 인터뷰를 따 갔다.

그러나 약간 걱정도 되는 김태풍.

“근데 부모님한테 전화는 드렸어?”

“아! 아까 전화는 드렸어. 근데 잠깐만 좀 기다려줄래? 이것만 정리하고, 바로 가자.”

그렇게 잠깐 시간을 얻은 김태풍은 재빨리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실험실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동기들을 만났다.

“야. 이제 빨리 움직이자. 요즘 기숙사 휴게실들이 많이 북적이더라. 우리가 빨리 가서 점령해야지.”

최기호는 서둘러 가자고 난리다.

곧바로 건물 1층으로 내려온 그들은 각자 자전거를 타고서,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기숙사.

네 사람은 곧장 3층에 위치한 남자 휴게실로 뛰어갔다.

기숙사에는 각 통로마다 휴게실이 있는데.

TV 채널권을 확보하려면, 비어 있는 휴게실에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이미 각 휴게실마다 소파를 점령한 채 완전히 드러누워 있는 이들이 더러 있었고.

그중에는 구수한 후라이드 치킨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닭 다리를 열심히 뜯고 있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다른 동으로 가자.”

다시 복도를 뛰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한쪽 구석진 휴게실을 찾아낸 네 사람.

“야! 여기가 그나마 나아.”

“뭐, TV가 좀 오래된 거지만, 그래도 이건 운이 좋은 거야. 요즘 밤만 되면 휴게실에 사람들이 버글버글한다니까.”

“근데 요즘 왜 이렇게 휴게실이 붐벼?”

“그러게. 밤 날씨도 따뜻하고 좋은데, 데이트하러 다들 안 나가나?”

“야.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여자들도 사람 봐가면서 사귀지, 뭔 이상한 놈이랑 사귈 것 같냐?”

“그래. 너희들도 아까 봤잖아? 휴게실에서 발톱 깎고 있는 그 인간. 공용 휴게실에서 뭔 짓인지 몰라.”

“야! 그건 양반이지. 난 그것보다 더 심한 것도 봤어.”

“뭐?”

“밤늦게 술에 쩔어 비틀거리던 녀석이 샤워실에서 막 튀어나오더라. 뭣도 모르게 거기 들어갔다가 그냥 토하는 줄 알았어.”

“으엑! 너 혹시 그 대변좌 이야기냐?”

“그래. 그때 좀만 빨랐어도 그 새끼 잡았는데. 그새 감쪽같이 사라졌더라. 내 생각엔 분명히 샤워실 근처에 사는 놈이 분명해.”

“야. 그 이야긴 이제 그만하고, 빨리 TV나 틀어봐. 근데 두 군데 방송국이라며? 어떡하냐? KBC를 먼저 볼까? 아니면 MBS?”

두 군데 방송사에서 촬영해 간 거라, 참 묘한 상황이다.

그래서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슬그머니 김태풍을 쳐다본다.

결국, 김태풍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음. 뭐, 난 상관없어. 아무거나 틀어.”

“진짜 아무거나?”

“응.”

“그럼 진짜 나 마음대로 한다.”

“그래. 그냥 알아서 해.”

결국, 리모컨을 잡은 최기호가 재빨리 MBS를 틀고 있다.

그리고 한참 MBS 9시 뉴스를 보며, 김태풍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감감무소식이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데.

그런데 갑자기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는 김태풍의 삐삐.

슬그머니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살펴보니 거의 동시에 2개의 음성녹음 호출이 찍히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진동하는 삐삐.

그 순간, 갑자기 등골이 싸해지며, 정신이 번쩍 드는 김태풍.

‘설마?’

그리고 바로 그때, 김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만다.

“기호야! 잠깐만! 빨리 돌려! 빨리!! KBC야!! KBC 9시 뉴스!!”

갑자기 김태풍이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최기호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그만 놓쳤다가 얼른 줍는다.

그러나 손이 늦어 또 한 발짝 늦게, 채널을 바꾸고 있는 최기호.

그리고 갑자기 확 바뀐 화면.

그곳에서는 뉴스 앵커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고 있다.

-잘 보셨습니까? (미소 짓는 앵커) 보시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과학계에 새로운 샛별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김태풍 군이 원하는 대로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길 기대합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21세기 미래형 자동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첨단 모터쇼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김철기 기자!

-네, KBC 김철기 기자입니다. 오늘 아침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 내, 첨단자동차 모터쇼가 성황리에 개최되며…….

그러면서 바로 화면이 바뀌더니, 다가오는 21세기를 전망하며 미래형 자동차 모습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모터쇼 현장에 나타난 KBC 김철기 기자가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관련 설명들을 주르르 이어 나가고 있는데.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어, 그저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그들.

바로 그때, 안성훈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고함을 지른다.

“야! 최기호!!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빨리 돌려! 빨리! MBS 9시 뉴스!!”

“앗!”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기호가 서둘러 채널을 돌린다.

그러나 그것도 한발 늦고 말았다.

깜빡하는 사이, 이미 반쯤 잘린 김태풍의 인터뷰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네. 저의 바람은 한국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올라서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휙 사라지고 있는 김태풍의 얼굴.

그 순간, 다들 정말 뻥진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장면으로 완전히 넘어가자.

비로소 터져 나오는 아우성들.

“야! 최기호! 이씨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우우- 야아!!”

“너 진짜 죽을래?”

리모컨을 들고 있던 최기호.

그는 눈이 동그래진 상태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하필 리모컨을 왜 자기가 잡아가지고 이런 사태가 생겼단 말인가.

그러고는 슬그머니 좌우를 살피던 최기호.

그런 그를 향해, 안성훈, 배진수가 무섭게 달려든다.

“방송은 무조건 KBC지!!”

“진수야! 너 저 자식 모가지 잡고 있어! 내가 완전히 밟아주마!!”

그러고 보면, 이 무렵 KBC 뉴스의 인지도는 타 방송사보다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순간적인 최기호의 판단 미스.

그 덕분에 김태풍의 인터뷰를 온전히 보지 못하게 된 그들.

지금은 ‘다시보기’ 기능도 없다.

아마 이 인터뷰 방송을 다시 보는 건, 이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뉴스를 본 지인들이 꽤 많은 듯하다.

김태풍의 삐삐는 그때부터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열 개 이상의 호출번호가 찍히고 있었고.

음성녹음도 여러 개나 날아오고 있었다.

“야. 그만하자. 이미 끝났는데.”

김태풍은 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고, 몸이 바빠졌다.

삐삐 음성사서함에 녹음된 음성녹음 메시지들.

누가 보냈는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그날의 소동은 끝이 났지만.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주요 신문사마다 김태풍과 관련된 기사들을 지면에 싣고 있었다.

특히 어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갔던 카메라맨들.

그리고 학교에서 배포한 상세 자료들을 바탕으로.

기자들은 다소 자극적인 기사들을 작성한 것 같았다.

특히, 신문마다 진한 글씨체로 인쇄된 헤드라인들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2백만 달러 기술이전 대박 사건의 주인공, 과학 천재 김태풍 씨!]

[듀폰이 인정한 24살의 천재 학생 김태풍 씨, 석사과정 재학 중으로 알려져…….]

[기존 과학자들이 못한 일을 해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쾌거! 혁기적인 소재 기술 개발 연구자! 한국연구기술원 석사과정 김태풍!]

[세계가 놀랐다! 대한의 건아! 듀폰의 마음을 훔쳐 간 새로운 소재 기술!]

그리고 몇몇 신문들은 간단히 관련 동정만을 다루기도 한다.

[한국연구기술원 신규 소재 기술, 듀폰에 기술이전하기로.]

[한국연구기술원, 세계적 기업 듀폰과 기술이전 체결 완료!]

바로 이런 식들이었다.

특히, 앞선 뉴스 출연 외에도 이런 언론 보도들까지 빗발치면서, 김태풍의 위상은 자연스레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김태풍은 단순 명예 때문이 아니라.

또 다른 소식을 듣고는, 마침내 심장이 벌떡벌떡 뛰기 시작했다.

기술이전료 중의 자기 몫인 8억 7천만 원.

총장님이 빠르게 결재해 준 덕분에.

좀 더 이른 시기에 그 돈을 입금받게 된 것이다.

그의 계좌에 기타소득 원천징수세를 뗀 8억 4천여만 원이 바로 일시금으로 콱 찍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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