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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309화 (309/337)

00309 고래 싸움  =========================

북쪽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는 사이, 남쪽의 대장벽도 만만치 않게 사람들이 모였다.

기존의 인원들도 많았으나, 요사이 새로운 병력이 온 덕분에 더욱 붐비는 것이다.

케틸 공작은 그들을 크게 세 파벌로 분류했다.

첫 번째 파벌은 제국 중앙부에서 온 추가 지원병!

에블린의 명을 따른 다이아몬드 타워의 마법사와 제국군 군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상당수가 병사이긴 하나, 총합으로는 3만이 넘는 최대 인원수였다.

두 번째는 교황청에서 온 대규모의 원병이다.

요하네스 4세의 파견 명령에 성기사,신관을 비롯한 신전 병력들이 일제히 대장벽에 모였다.

그 수는 대략 일만 명 정도. 허나 절반 이상이 성기사,신관인 만큼 질적으로는 가장 우수했다.

마지막 세 번째 파벌은 각 마탑에서 모인 마법사들이었다.

이들은 발린과 협약을 맺은 마탑의 수련생, 그들을 감독하는 중진 마법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만큼 숫자는 세 파벌 중 가장 적다. 하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다른 두 파벌 못지않았다.

뭐니뭐니해도 이들은 발린의 이름 하에 온 인원들이니 말이다.

이들 세 파벌을 전부 합치면 대략 5만 명이다.

기존의 파벌과 합치면 15만 명!

한 개의 왕국이 온 힘을 모았을 때나 나오는 병사의 숫자다.

그만한 인원이 한데 모이자 어떤 마물도 감히 대장벽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북방에서 수백만 명이 모였다더니만, 여기도 그 못지 않게 힘이 몰린 것이다.

창! 차앙!

늘상 붐비는 대장벽의 교구 대신전, 그 뒤뜰에서 몇 차례 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대신전 뒤뜰은 분명 신관들만이 있어야 할 곳.

한데 지금은 웬 장년인과 소년이 서로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흥, 안드로포스 녀석의 제자라더니 겨우 이 정도냐? 조금 더 힘을 내 보거라!”

대머리 장년인, 케틸 공작이 그렇게 일갈하며 검을 내질렀다.

파파파팟!!

검날에서 쏟아나온 오러블레이드가 폭풍처럼 날아들었다.

비록 대련이라지만 거침없이 살수를 쓰는 공작!

팔리아스가 급히 몸을 날렸다.

저건 소드마스터 이상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다. 당연히 그 경지 이상이 되어야 막을 수 있기도 하다.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팔리아스로서는 피할밖에 없었다.

“우와아앗!!”

멀리서 지켜보던 소냐와 아르낙스가 급히 오러블레이드를 피워올렸다.

덕분에 신전의 벽이나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랑!

그 사이 둘 간의 대련이 끝났다.

목에 칼날이 닿은 팔리아스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졌습니다. 공작님.”

“흥.”

칼날을 거둔 케틸 공작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 멀었어. 그래서야 네 스승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겠느냐. 허 참.”

“더 정진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말을 마친 공작이 돌아섰다. 이로써 열흘째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셈이다.

“하아.”

아무리 재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 정도나 되면 의기소침하는 것도 당연했다.

역시 소드마스터의 벽은 높았다. 아무리 흐름을 타서 검을 흘려낸다 하더라도 오러블레이드를 빗겨내는 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벽을 넘지 않으면 같은 곳에 설 수 없다. 그 사실을 철저히 깨닫게 하는 열흘이다.

“고생 많았다냐.”

대련을 지켜보던 소냐가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케틸 공작의 제자로서 그녀도 지금 팔리아스의 심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다가가자 팔리아스는 예상과 전혀 다른 답변을 했다.

“보였어요.”

“어?”

멍하니 서 있던 그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 부딪히며 나타난 새로운 길, 그 곳에서 새로운 경지로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한편 돌아가던 케틸 공작은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럴 때마다 입술 사이에서 찍 소리가 났다.

“말씀하십시요. 스승님.”

옆에 있던 아르낙스가 입을 열었다.

공작의 의중이 불편함을 알아챈 것이다. 역시 공작의 직속 제자다웠다.

“아니, 그 녀석, 안드로포스의 제자라고 했었지? 허 참.”

“예. 그렇습니다. 한데 그건 어째서...”

저 소년이 안드로포스의 제자라는 건 처음 볼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제 와서 그걸 묻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낙스로서는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의문을 해결해준 건 이번에도 케틸 공작이었다.

“흥, 이래서야 진 셈이잖나. 안드로포스 녀석한테.”

“예?”

소냐가 느끼는 감정을 아르낙스도 똑같이 느꼈다.

케틸 공작은 투덜거리며 이유를 말했다.

“그 녀석이 그랜드마스터가 됐다는 걸 들어도 그다지 꿀린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제자 하나만큼은 내가 그 녀석보다 몇 배는 더 잘 받았다고 확신했거든. 너랑 소냐 둘 다 잘 커 줬고, 그만큼 성취도 뛰어나니까.”

안드로포스의 기행은 이미 온 대륙에 유명했다.

제자를 찾기 위해 모든 세상의 신동을 찾아 움직인다고 하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영 좋지 않았다.

강제로 데려와 무리한 교육을 몇 번이고 강요하니 당연한 결과다.

때문에 그랜드마스터가 안드로포스라는 소식에도 케틸 공작은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아무리 본인이 강해지면 뭘 하는가, 역사의 흐름 속에 잊혀질 검법이라면 그저 한 순간 빛날 뿐이다.

하지만 팔리아스를 본 순간 그 생각은 산산이 깨져나갔다.

녀석은 빛나는 별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자였다.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흘 간 대련하며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허 참, 에이블 공작이 이런 심정이었나? 돌겠군. 정말이지.”

“...그 소년 때문이군요. 따라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뭘 니가 미안해해? 그 녀석 정도야 너희 둘이면 순식간에 쌈을 싸 먹을 텐데. 문제는 나한테 있지.”

뒤따라오던 아르낙스의 사과에 공작은 코웃음을 쳤다.

팔리아스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그것이 소냐와 아르낙스의 성취를 가려주진 않는다.

30세 이전에 소드마스터가 된 둘이다. 심지어 소냐는 최상급 소드마스터인 공작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기까지 하다.

이 정도라면 팔리아스를 능가하진 못해도, 적어도 패배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그랜드마스터가 되지 못한 공작 자신이었다.

그 사실이 케틸 공작을 화나게 했다.

“이래서야 비겁하더라도 하는 수 없지. 팔리아스란 그 녀석, 어떻게 해서든지 내 검술의 절기와 유파를 흡수하도록 단련시켜야겠어. 그럼 안드로포스 녀석도 백 퍼센트 자기 제자라고는 말 못할 테니.”

“열심이시군요.”

“그런 셈이지.”

한 마디 대꾸한 케틸 공작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안드로포스도 발린 공한테 이야기를 듣고 팔리아스를 거둔 거라고 했지. 그 전까지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가 말이야.’

듣기론 이름을 떨친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안드로포스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대충 누구다. 누구다 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한 명을 찝어 말하는 자세함!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상하군.’

장군으로서의 감이 꿈틀거렸다. 그런 녀석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발린을 만나면 한 번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

검은 대지의 최심부에는 거대한 성채 한 곳이 있다.

천 년 전, 이 곳이 낙원이었을 때 있던 거대 제국의 중심부였던 곳이다.

금단의 의식으로 근원의 악, 마왕이 나타난 후 이 곳은 이제 마왕군 백만의 총집결지가 되었다.

“크르르.”

“크워어!”

24시간 악마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굴.

그러나 이렇게 많은 양의 마물이 한데 모인 건 맹세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기 모인 마왕군은 사실상 마왕군의 전체 전력이다.

자-쿨카가 얼마 전 내린 명에 따라 마왕군 전 병력이 이 곳에 모인 것이다.

지평선을 끝없이 채운 마족의 군단, 그들을 바라보던 자-쿨카가 입을 열었다.

“배신자 놈들이 군을 일으켜 인간을 쳤다고.”

“예.”

“역시 움직이는군. 목적은 마왕님의 부활 전 여기 당도하는 것이겠지.”

만약 그렇다면 정말이지 성급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마왕군이 여기 웅크린 이유는 대장벽이 단단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뒤에 있는 인류 연합이다.

모든 인류가 한 데 모여 무기를 들 때의 힘! 바로 그걸 감당키 어렵기에 마왕의 봉인이 풀리길 기다리는 것이다.

한데 그 인류의 땅을 치고, 거길 뚫어서 여기까지 온다고 한다.

자신감도 그 정도면 지나쳤다. 아마 저들은 카딤 제국도 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마왕님께서 곧 깨어나신다고는 하나, 너무 평정심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천 년 전 황제가 마왕에게 힘을 부여받을 시, 그는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망이 성공했고, 노스트라 제국이란 세력을 만들 수 있었다.

찢어죽일 배신자 놈들이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한데 이번 공격에서는 그 신중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끌어냈는지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마왕님이 부활한다면 그 때 들을 수 있으리라.

‘테네스 후작이 본 경지를 회복하고, 내가 봉인을 푸는 기간까지 맞추면...대략 1년 정도로군.’

자-쿨카의 세 머리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1년!

발린이 당초에 잡은 3년의 기한보다 월등히 빠른 시간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미 봉인은 그만큼 풀려간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마지막의 마지막. 지옥문이 살짝 열려 그 틈새 너머가 훤히 보일 정도!

황제를 자극한 게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시기상으로는 지금이 마지막인 게 맞았다.

그 때까지는 어떤 존재도, 어느 공격도 이 곳에 도달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자-쿨카는 곧바로 수하 마족에게 가서 물었다.

“거수병단을 궤멸시킨 그 폭발은 아직까지 조사가 안 끝났나?”

최심부 바로 근처에서 터진 대폭발!

원인을 확실히 규명해야 했다. 그런 일이 다시금 일어나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거수병단은 마왕군 내에서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만큼 그 희생은 굉장히 뼈아팠다. 언데드로 살릴 수 없도록 시체마저 없어져서 더더욱 그랬다.

“현재 조사중이긴 합니다만...아무 단서도 없다고 합니다. 흔적이 워낙 넓어서...”

“자연적인 현상은 절대 아니거늘...더욱 꼼꼼히 살피도록 하라.”

“예.”

감히 누구의 명령이라고 흘릴 수 있으랴! 마왕군은 일제히 극존의 예를 취했다.

보고를 들은 자-쿨카가 다음에 향한 곳은 거성 지하의 어느 독방이었다.

그 곳에서는 약기운을 빼고 있는 테네스 후작이 있었다.

“크, 크아아악!!”

강대한 어둠의 마나가 온 몸을 파고든다. 지금껏 쌓아온 정순한 마나는 여지없이 타락해 갔다.

그 고통은 생전 처음 느낄 것이다. 강제로 몸의 마나가 뽑히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었다. 이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수련을 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나 효율 양쪽 다 만족시킬 수 없었다.

“몸 상태는 어떻지?”

“그만둬! 죽는다! 이대로 계속 고통받다간 필히 죽고 말 거야! 어이, 여기서 나가는...크으으아아악!!”

“...말 할 기운은 남아 있군. 되었다.”

고개를 끄덕인 자-쿨카가 방을 나섰다.

쇼크사로 죽어버리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몸이니, 정신이야 얼마나 망가져도 상관없었다.

아무리 정신이 망가져도 근본적으로 마왕을 받아들이겠단 의사 하나만큼은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일을 마저 해야겠군.”

망치를 든 자-쿨카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더 아래로 들어간 자-쿨카에게 보인 것은 이제 몇 개 안 남은 별, 그리고 완연히 어두워진 검은 공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첫 번째 편입니다. 푹 쉬니까 상태가 좋아진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 걱정 덕분에 힘이 납니다.

그럼 두 번째 편, 세 번째 편으로 이어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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