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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265화 (26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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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논의 안배

“왔어요? 어? 엘리아 탑주님도 오셨네요?”

“어, 언니!”

공동 안에 있던 레벤과 소냐는 돌아오는 발린과 엘리아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출발한 지 대여섯시간 만에 이 곳에서 수도까지 갔다온 것이다.

아무리 마법을 활용했다고는 하나 실로 엄청난 이동속도였다.

“언니이이이!!!”

그대로 달려나간 엘리아는 레벤을 와락 껴안으며 훌쩍거렸다.

“스승님께서...흐윽...갑자기 나타나셔서는...끄웁...!! 흑!”

“괜찮아. 이제 진정해. 다 왔어.”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엘리아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좀 쉬게 해 주면 괜찮을 거야. 신성력을 쓰는 건...무리겠지. 엘리아도 마법사이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레벤의 물음에 발린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속도를 좀 내다보니 엘리아가 많이 힘들어한것 뿐이야. 마탑에는 따로 이야기를 해 뒀으니 괜찮을 거고.”

“하긴...수도에 갔다 이렇게 오려면 어쩔 수 없었겠죠.”

아무리 텔레포트를 최대한 사용했다고 하나, 솔다인 영지와 수도는 말을 타고 수 일은 움직여야 하는 거리다.

부동보가 있는 발린이야 멀쩡했겠지만, 엘리아는 경우가 달랐다.

수련을 쉬지 않고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괜찮아지면 말해. 그 전까진 숨 좀 돌리고 있고.”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스승님, 정말 이렇게 와도괜찮을까요?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오는 건 역시 좀...”

잠시 홀로 있던 엘리아 앞에 발린이 나타난 것은 낮 12시가 좀 넘은 시간대였다.

반가움과 놀람을 같이 표하는 그녀에게 발린은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디 좀 같이 가자. 업무는 며칠 정도 다른 마법사들에게 맡겨도 되니까.”

“네?”

황당한 일이었지만, 엘리아는 그 말을 따라 움직여 여기에 왔다.

다른 마법사들을 위해 미리 쪽지를 남겨뒀다지만, 분명 지금쯤 루비 타워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엘리아의 고민에 발린은 씩 웃고 실-레논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그건...네.”

축 늘어진 드래곤의 시체는 확실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저게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드래곤의 육체란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저 꼬맹이는 또 뭐냐. 네놈 제자냐?

가만히 지켜보던 실-레논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곳은 그가 발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든 극비처.

세 명이나 되는 손님에 어처구니없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린은 표정을 굳히며 대꾸했다.

“네놈이 알 바 아니잖나. 망령. 나 혼자만 오라는 조건은 없었을 텐데?”

당장 살아있을 때만 해도 죽이지 않으면 죽는 사이였다.

아무리 죽었다고는 하나 이제 와서 고운 말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었다.

-네놈이 여기서 적나라하게 번식행위를 하던, 술과 약에 절어있던 내 알바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기껏 내 준 내 몸을 내버리는 짓을 하게 둘 순 없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너는 패배자답게 거기 구석에서 쭈그려져 있으면 되는 거라고. 레-호트처럼 말이야.”

발린은 서슴없이 독설을 마친 뒤 준비한 아티팩트를 꺼냈다.

-흥, 마음대로 지껄여라. 어쨌거나 내 의무는 이것으로 끝이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실-레논이 코웃음을 치며 고갤 돌렸다.

하지만 가끔 이 쪽을 흘긋거리는 걸 봐선 약간이나마 흥미가 있긴 한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소냐는 동굴의 경비를 맡고, 레벤은 어둠의 마나를 정화해주면 되겠다. 나와 엘리아는 그 다음에 최종적으로 아티팩트를 만들고.”

“아티팩트?! 그럼 이걸로 아티팩트를...만드는 거다냐?”

아직 두려움이 남은 소냐가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발린의 의견은 확고했다. 그는 보물고에서 가져온 아티팩트 몇 개를 늘어놓았다.

‘우선 에테르를 다룰 수 있는 이 마도장갑. 이런 고대의 기물이 있는 줄은 몰랐군.’

마나로 드래곤의 시체를 다루는 건 극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난이도부터가 상상을 초월할 뿐더러, 기껏 마나선을 팠다 해도 에테르가 금방 그것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래곤과 관련된 아티팩트는 에테르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드래곤의 몸을 이용한 아티팩트가 거의 나오지 않은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이 장갑만 있다면 에테르를 수월하게 다룰 수 있었다.

“다음은 이거. 엘리아, 잘 보고 있어라.”

말을 마친 발린은 일전에 얻었던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이 때 쓰기 위해 가져온 고대 대장장이들의 영혼 반지!

이들이라면 드래곤의 시체를 세공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오오, 연자여, 이것 때문에 우리를 꺼내 온 것인가!

-이럴 수가, 이런 멋진 재료를 보는 건 생전 처음이군.

-야!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고독이니 적막이니 할 때가 아니라고! 봐! 최고의 재료가 눈앞에 있다! 뭐든지 만들 수 있어! 더 늑장부리면 우리가 먼저 다 써버릴 테니 그 때 가서 후회하지나 말라고!

반지 안의 영혼들도 진작부터 실-레논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제정신이 있는 영혼, 없는 영혼 모두 미친 듯 날뛰었는데, 덕분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시장통처럼 난잡해졌다.

“잠깐만 조용히 있어. 일단 부위별로 살펴본 다음 처리해야 하니까.”

말을 마친 발린은 레벤을 향해 손짓해 보였다.

시체 안에 있는 어둠의 마나를 정화시키라는 뜻이다.

“...우와.”

등거죽 비늘에 손을 갖다댄 레벤의 입이 벌어졌다.

“이거 엄청난데요.”

“역시 그런가.”

발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 만졌던 실-레논의 시체도 그랬다.

강력한 어둠의 마나 때문에 대부분을 헛되이 버렸던 뼈아픈 기억!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 힘 좀 쓴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예요.”

말을 마친 레벤은 이내 신성력을 한껏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시이이익!!

상반되는 두 힘이 충돌하자 강렬한 파동이 나타났다.

뽀얗게 일어나는 수증기는 그 안의 충돌이 얼마나 심한지를 암시했다.

-...레벤, 너무 빨리 하려고 하지 마라. 그...으음.

신성력의 행사를 지켜보던 실-레논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죽은 뒤라 해도 자기 몸이 연기를 피워올리는 건 지켜보기 어려운 듯했다.

“어쩌죠?”

“몸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힘을 주어서 해 봐. 어차피 나중에 다 써야 하니까 상하지 않게 하는 편이 낫지.”

의견을 묻는 레벤에게 발린은 그렇게 대답했다.

실-레논이 헛웃음을 지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다.

이십여 분 동안 신성력을 불어넣자 그럭저럭 결과가 나왔다.

“드래곤하트와 그 주변부는 멀쩡한 것 같고, 나머지 온 몸엔 엄청난 어둠의 마나가 있어요.”

-당연하지. 천 년 전 마왕에게 직접 받은 어둠의 마나이니까.

마왕은 모든 어둠의 마나의 결정체. 신격존재인 만큼 그 힘의 농도도 강력할밖에 없었다.

레벤이 그랜드마스터일 뿐 아니라 같은 드래곤으로서 있지 않았다면 아마 정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쓸 수 있는 곳은?”

“심장이랑 가죽, 그리고 살과 장기 약간이요. 뼈는...몇 조각이면 모를까, 전부 다 쓰는 건 불가능해요. 물론 겉가죽은 이대로도 쓸 수 있고, 정화해서 쓸 수도 있고 둘 다 가능해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절반도 안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발린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가죽만 벗기고 생으로 녹여야 했던 전생에 비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이었다.

-가죽! 겉가죽이라면 내가 전문이지. 두고 보게. 아주 멋진 갑주를 한 벌 만들어 주지. 그뿐인가! 비늘과 가죽을 겹치고 겹치면 뭐든 막을 수 있는 갑옷도 될 거야!

-흥, 드래곤의 가죽으로 고작 방어구밖에 생각지 못하나? 저걸로 새긴 방어 마법은 어떤 성이든, 어떤 건물이든 무적에 가까운 내구성을 가지게 할 거야. 소드마스터가 오러블레이드로 득득 긁어도 흠집조차 안 날 무적의 성벽! 나라면 그걸 만들 수 있어! 으흐흐흐. 으히히히!

-가죽은 됐어, 나는 이빨과 눈동자, 간이나 내장 같은 걸 다루게 해 줘. 그거라면 내 전문이니 천하에 둘도 없는 촉매제를 만들어 주지.

-촉매제? 저주의 재료가 아니라?

-이 미친 할망구가!!

흥분하던 영혼들이 이내 이를 드러냈다.

이 녀석들이 모조리 깃든 반지를 엘리아가 잘 다룰 수 있을까.

생각하자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하아.”

푸욱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실-레논이 이죽거렸다.

-가죽부터 그렇게 망설이니 심장에 이르러서는 천 년이 지나도 결정을 못 하겠군. 인간 마법사. 안 그런가?

-심장!!

-심장...

심장이란 말이 들려오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각기 부위를 노리던 대장장이들이 일제히 조용해진 것이다.

드래곤하트는 해당 드래곤의 육신 중에서 가장 귀한 부분.

엄청난 에테르를 담은 그것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무언가였다.

-흥, 네놈의 반지에 있는 놈들이 뭐라더냐. 조용해지지 않았더냐?

실-레논이 꺼낸 말에 발린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 사실을? 혹시 읽은 거냐?”

-멍청한, 살아있을 때라면 모를까. 죽은 뒤에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예측한 거다.

거기서 한숨 말을 끊은 실-레논이 갑자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없는 게다. 그 녀석들 모두 다 마찬가지야. 드래곤하트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니. 섣불리 손 대다가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그건 영원토록 자신을 붙잡을 저주가 될 테니.

-...인정할 수밖에 없군.

-아마 피안에 들고, 모든 걸 잊는다 해도 영원히 각인되어 나를 괴롭히겠지. 미안하네. 연자여. 드래곤하트만은 만질 수 없다네.

순순히 인정하는 대장장이들의 영혼.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지금은 초상집처럼 우울했다.

‘자괴감...인가.’

왠지 모르게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발린은 목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이미 한 번 보고 만지기까지 해 봤으니까 드래곤하트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알고 있다고.”

-봤다고...? 하기야 내 동족이 옆에 있으니 기회야 많았겠군. 감히 인간 따위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실-레논이 일순 으르렁거렸다.

교황청의 드래곤하트를 생각하던 발린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봤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드래곤하트를 맨눈으로 보고 만지다니, 너 레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게냐. 인간?

“...으냐?”

“에?”

“아, 아앗!”

세 여자가 순간 동시에 다른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발린은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 드래곤하트 말고! 다른 거! 다른 거!”

그가 교황에게서 받은 드래곤하트에 대해 설명하기까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야기를 납득한 실-레논이 킬킬거리며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할 거지? 단순히 에테르만 흡수할 건가? 거기에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기껏 준비해 온 대장장이들도 소용이 없는걸. 응?

“말했지.”

-뭐?

“네 녀석이 걱정할 얘기가 아니라고. 비켜, 망령.”

주저없이 숨을 내쉰 발린은 두 손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럼 레벤, 잠시 물러나 있어. 가죽을 벗길 테니!”

“하지만 발린, 뭘 만들지는 정했어요? 여기 이 분이 말한 것처럼...”

“괜찮아.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말을 마친 발린은 그대로 트와일라잇을 뽑아들었다.

스아아아!!

반투명한 기류가 모인다 싶더니, 그 끝에서 무형의 검이 생겨났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자 첫 편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편도 금방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추천 하나만 부탁드려요.

아까 낮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프더니만, 밤이 되니까 가라앉더군요. 전 이미 늦었어요. 야행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 전편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간에 끊긴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해당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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