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현자가 회귀함-251화 (251/337)

0251 / 0264 ----------------------------------------------

시찰

“마족의 시체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팔아 부당이득을 취했군요. 어차피 무적의 명성은 얼마 전에 끝났겠다. 이젠 아예 막나가는 겁니까?”

“병사들을 사사로이 농경지 개척과 작물 수확에 썼다라. 이 식량에 대한 장부 기록이 있습니까?”

자그마한 것부터 날카롭게 틀어막는 래트로스 후작은 진짜 쥐보다 훨씬 독했다.

아무리 어떤 행동이 결과적으로 이득이 됐다 해도 그것이 틀렸다면 온 힘을 다해 물어뜯는 집요함!

공작을 수행하던 무관들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질책에 항시 따라붙는 독설이다.

“어차피 이것도 다 겉모습만 그럴싸하겠지요. 규칙을, 법을 지키지 않으니 마족들이 황도까지 들어와 설치는 것 아닙니까.”

황도에 마족 삼공작이 출현한 이후 대장벽은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다.

안 그래도 그것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한이 맺힌 부분이었다. 그걸 어김없이 긁어대니 부글부글 끓어오를 만도 했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후작을 따라온 호위대의 만행!

그래도 법에 들어맞는 수준인 래트로스 후작과는 달리, 호위대는 권세를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날뛰었다.

대장벽의 무기와 군수물자 손대는 건 물론, 후방 도시에 거주중인 병사 가족이나 주민에게까지 치근덕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모두의 분노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당장 술집에서 발린에 대한 얘기는 쏙 들어가고, 전 장병 모두 담당관만을 성토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그거 들었나? 그 쥐새끼가 이번엔 성벽 망루 쪽을 헤집고 다니면서...!!”

“선조들이 건설한 장벽에 마음대로 손을 댄 게 또 문제라고? 한번 직접 들어가서 싸워 보라고 하시지!”

어느 식당에서나 똑같이 나오는 소리에 발린은 가볍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기 욕이 사라진 건 고마운 일이나, 상황이 결코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주앉아 음식을 먹던 레벤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듣자하니 대장벽 교구 신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꽤나 불만스러운 스탠스를 취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 신관들이 실제로 무언가 더 행동을 취하는 일은 없었다.

괜히 나섰다간 국권침해라느니 간섭이라니 할 수 있으니 나름 현명한 대처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대단한 것은 역시 케틸 공작. 그는 이 와중에도 절대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가 시킨 일이오니 부디 한 번만 넘어가 주시기를. 제가 명령해서 만든 게 맞습니다. 부하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가 입에 달린 채 고갤 숙이는 케틸 공작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불쌍할 정도였다.

하지만 발린이 신경쓰는 건 케틸 공작이 아니었다.

‘만약 저 사람이 무사히 돌아간다면 그 순간 대장벽은 버려야 한다!’

주변의 목소리를 슥 둘러본 발린은 눈에 힘을 주었다.

조용히 가도 모자랄 판에 래트로스 후작이란 자는 장벽 전체를 한바탕 들쑤셔놓았다.

이래서야 정말로 대장벽의 인원들이 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엔 이들 모두가 마왕군에 투신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마왕군 측에서도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고...’

케틸 공작을 비롯한 대장벽 기사 모두 고도로 훈련된 기사들이다.

이들이 어둠의 힘을 받아들여 한층 더 강해지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는 수 없지.’

발린은 남몰래 래트로스 후작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물론 직접 움직여 없애거나 하진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은밀히 목을 딸 수는 있으나, 그래서야 의심을 받는 건 케틸 공작뿐.

좀 더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선 따로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발린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황궁으로 갔다.

오랜만에 온 황궁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중이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아, 발린 공!”

지나가던 기사를 붙잡은 발린은 이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곧 시찰을 위해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대장벽 외에도 남부 산맥 접경지역, 북방 서리대평원을 둘러봐야 하니 그 준비 때문에 서두르는 겁니다.”

“대장벽? 그럼 사전 시찰에 상관없이 무조건 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기사는 고갤 저으며 말했다.

“우선은 중간 경유지로 남쪽 국경까지만 간다고 들었습니다. 대장벽은 머니까요. 물론 발린 공만 있으면 금방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을 테지만...”

“여하튼 황제폐하는 국경까지만 오시고, 거기서 보고를 받고 대장벽으로 온단 거 맞죠?”

“예에. 그렇습니다.”

국경에서 대장벽까지는 말을 타면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린다.

천천히 가는 게 그정도니, 전력으로 달리면 하루만에 주파도 가능한 수준이다.

‘여유가 얼마 없군.’

대답을 마친 기사를 보낸 발린은 그대로 아일란에게 향했다.

교황청에서 복구작업을 돕는 중인 그녀는 여러모로(?)행복해 보였다.

“아일란.”

“아, 네! 바, 발린 님.”

“잠시 얘기 좀 하자. 네 권속들을 쓸 데가 생겼다.”

아일란을 교황청 밖으로 데려간 발린은 그녀에게 본론을 말했다.

“제 권속들을 대장벽 근처에 매복시키고 후작을 죽이라고요?”

“호위대가 좀 많을 텐데, 한두 명만 살려 보내고 나머진 전부 없애. 할 수 있겠어?”

“네. 가능해요. 움직일 수 있는 권속들이 얼마 없긴 하지만...제 능력을 조금 쓰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가능하다는 사인에 발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래트로스 후작은 이미 칼을 갈고 나온 상황이다. 그 혼자라면 단순히 협박만 해도 되겠지만, 지금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저 정도면 보나마나 중앙 귀족들이 일제히 등을 밀어주고 있을 터.

어중간하게 움직이다 이도저도 안 되느니 확실히 지워버리는 게 마음 편했다.

“그럼 그렇게 해 줘. 그 권속들에게는 확실히 얘기하고. 래트로스 후작과 그 호위대야.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폐를 끼치지 말고.”

“그냥 후작을 뱀파이어로 만들면 안 되나요?”

래트로스 후작은 장차 카딤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권력자다.

그를 그냥 죽이는 것보다 뱀파이어로 만들어 두고두고 쓰자는 아일란의 말.

확실히 일리가 있는 제안이었으나 발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안 돼. 죽는 것도 파장이 큰데 뱀파이어가 되었단 걸 들킨다면 아예 대장벽 자체가 적으로 몰릴 수 있어.”

“알았어요. 시킨 건 확실히 처리할게요.”

말을 마친 아일란이 몸을 살며시 떨었다.

레벤에게 종속되었다 해도 교황청은 그녀에게 여전히 불편한 장소다.

거기서 잠시나마 해방됐다 다시 돌아가야 하니 꽤나 거부감이 든 듯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발린의 추측이 틀렸다. 막 돌아가려던 발린의 등 뒤에서 아일란이 꾸물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말할 게 더 있다고? 뭔데.”

발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보나마나 조금 더 있고 싶다거나, 거래를 제안한다거나 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황제폐하께서 군세를 모으고 계세요. 제 권속들을 직접 물어 그 분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노스트라 제국의 모든 군사를 우타니 성에 집결시키고 있어요.”

“우타니?”

“서리대평원과 맞닿은 제국의 국경요새예요. 거의 총력전 수준으로 모으고 있으니 그 숫자는 백만 명이 훨씬 넘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아일란이 고개를 숙였다.

서리대평원 너머에 군대가 모인다면 그 이유는 카딤 제국을 침공하겠다는 것 하나뿐이다.

소수라면 모를까, 백만이 넘는 군단이 집결한다는 건 작정하고 준비한다는 뜻.

미리 아일란의 권속들을 통해 들었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두 눈 뜨고 뒤통수를 맞을 뻔했다.

‘만약 실험재료로 당장 썼다면 이런 고급 정보는 절대 듣지 못했겠군.’

회귀 후 알 수 있는 건 대략적인 큰 흐름뿐, 이런 세부적인 변화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크게 바뀐다.

아일란을 살린 것도 그 일부다. 단지 레벤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하여 살려 둔 것이 이런 큰 효과로 돌아온 셈이다.

“백만이라...많긴 많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발린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이미 회귀 전 마왕군과 노스트라 제국 양쪽 모두를 상대로 싸워 보았다.

마왕군의 군단병만 해도 백만이다. 거기다 언데드가 된 사람들, 타락한 야생 몬스터만 더하면 그 두 배에 가까운 군대가 새로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 정도의 적을 상대해본 경험이 발린의 담을 키웠다.

덕분에 백만의 적이니 백오십만의 적이니 하는 말은 그러려니하고 넘길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알려준단 건 네가 완전히 황제랑 척을 진단 뜻인가?”

발린은 아일란을 향해 돌아서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게 완전히 끊긴 건지, 아니면 폐하께서 일부러 신경을 안 쓰는지는...”

황금혈의 뱀파이어는 일반 뱀파이어처럼 권속과 주인 간 계약에서 자유로운 편이라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만약 황제가 지금 발린과 똑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면 그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아일란에게 묻는 것, 아일란에게 말하는 정보가 모조리 역으로 황제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지. 조심해야겠다.’

물론 행동이나 의사를 조절할 수 없는 건 확실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전,현생을 통틀어 아일란이 그리 쉽게 넘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즉 역정보를 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 이 정보는 아일란이 속이지 않았다면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좋아, 앞으로 이렇게만 움직이면 심한 짓은 하지 않겠다. 알겠어?”

“교황청 말고 다른 곳으로만 옮겨 주시면 안 될까요? 레벤 대신관님이야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젠 완전히 기가 죽은 아일란이 손을 싹싹 비볐다.

발린은 아까 만날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괜찮지 않나? 신관들이랑 건설인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더만. 그 녀석들이랑 놀고 싶으면 놀아도 돼. 다만 뱀파이어로 만드는 순간 넌 내 손에 죽는다.”

아무래도 교황청이니만큼 신성력이 불편할 테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게 아일란의 입장이었다.

더 이상의 호의는 마왕군과 뱀파이어들 모두를 없앤 뒤에 생각해봐도 늦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친 발린은 곧바로 대장벽으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 에블린에게 이 소식을 알릴 수는 없었다.

만약 이야기를 듣는다면 에블린은 물론 관료들도 전부 북방에 시선을 집중할 것이다.

그만큼 발린이 하는 말의 비중은 카딤 제국에서 커져 있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만약 그 말을 하여 모두가 북방에 시선을 집중한다 치자.

그럼 자연히 대장벽은 아예 관심에서 논외가 될 터. 자연히 예산이나 보급품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안 그래도 래트로스 후작이 신경을 긁어 놓는 중이다.

거기에 예산과 보급품의 동결소식이 들어가면 대장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솔직히 예상할 수 없었다.

‘우선 이 곳의 일을 해결하고 움직여야 해. 선후관계를 확실히 계산해두지 않으면 일이 꼬인다. 지금이 클라이막스다! 기껏 준 기회, 여기까지 왔는데 꼬여 넘어질 순 없지!’

결의를 다지며 대장벽으로 돌아온 발린의 귓가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숙소의 창문 너머로 보니 성문 쪽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뭐지?’

무언가 일이 터진 것 같은데, 여기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발린은 재빨리 성문 방향으로 축지법을 사용했다.

타탓!

가만히 지켜보던 눈에 성문이 열리는 모습이 비쳤다.

그 앞에선 래트로스 후작과 기마병이, 맞은편의 성문 쪽에선 케틸 공작이 두 손을 벌리고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두번째 편입니다. 팔이 그럭저럭 괜찮아져서 세 번째 편까지 연재 가능할 듯 합니다.

독자분들이 저주를 푸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직접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 것은 간단합니다. 마족에 대해 아는 건 황제와 교황뿐. 귀족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데다가, 안다고 해도 대장벽 측 군사를 받아들일 리 없을 테니까요.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죠. 감정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 죽는...

해답이 되셨나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시기 전에 추천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