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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204화 (20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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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뜻밖의 잉여소득

갑자기 생긴 여유! 오랫동안 달려왔으니만큼 심신의 긴장을 풀 수도 있었으나 발린은 오히려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아직 마왕과 자-쿨카가 살아 있고, 레-호트마저 황도에 있는 이상 안심하기엔 일렀다.

남은 시간 동안 발린은 혼자서는 마나 수련, 그리고 모두와 있을 땐 무투술을 연마했다.

무투술의 주된 내용은 삼 대 일 대련! 발린과 소냐, 아르낙스가 편을 이뤄 레벤 한 명과 싸우는 것이다.

무투술로만 싸운 덕에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는 셋의 패배였다.

그랜드마스터가 된 레벤은 무려 삼 대 일로 협공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패배의 경험은 쓰라렸으나 그 덕분에 수련에서 압도적인 성과가 있었다.

강한 상대와 맞붙다보니 여러 수련치가 상승한 것이다.

마법 수련에도 힘을 써야 하는 발린은 적당히 움직였으나, 나머지 둘은 달랐다.

그랜드마스터가 직접 봐 주는 대련! 어떤 무인이 이를 마다하겠는가.

아르낙스와 소냐는 하루 종일 대련에 매달렸고, 레벤은 발린의 명령에 따라 실컷 둘을 두들겨 패 주었다.

한편 그 사이 에블린은 면담을 청해 오는 귀족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장차 그녀가 황제로서 정치를 펼쳐가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처음 들어온 귀족들은 에블린의 모습에 코웃음쳤으나, 이내 그녀의 방대한 지식과 언변에 압도되곤 했다.

거기엔 항상 옆에서 도움을 주는 미나르바 백작도 한 몫했다.

가끔 에블린이 상대 귀족의 언변에 밀린다 싶은 경우가 있었다.

경륜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녀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 때 나서는 게 미나르바 백작의 역할.

살며시 끼어들은 그가 적절한 논리로 반박하면 귀족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귀족들도 하나둘씩 에블린의 사상과 정치에 감응하기 시작했다.

“확실히...기다리는 동안 본 평민들의 실상은 너무나도 처참하더이다.”

진심으로 민중을 걱정하는 자에게는 맑고 올바른 신념, 그리고 깨끗한 정치를.

“백작영애의 말에 동의하오. 인간이든 동물이든 너무 한도까지 몰면 반드시 들고일어서는 법이지. 알겠소. 최소한 하루동안 먹고 씻을 물, 그리고 청결한 환경과 풍족한 식사 정도는 보장해주도록 노력해 봅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귀족들에겐 현실적인 설득을.

“그딴 버러지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어차피 평민들이 아무리 소동을 피워봤자 기사단이 한 번만 훑고 지나가면...히,히익?! 발린 공!! 그러니까 이건!! 우와아악!!”

아무것도 모르고 잘난 듯 떠드는 멍청이들에겐 그에 맞는 정의구현이 주어졌다.

이미 평민들의 생활상을 본 상당수의 유력자들이 적잖이 충격받은 상태. 그것은 장차 꽤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았다.

한편 시간이 남을 때마다 발린은 직접 황도 곳곳을 훑었다.

안드로포스의 흔적을 찾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안드로포스를 직접 보진 못했으나 대신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은 곳곳에 돌아다니는 소문!

요사이 황도에서는 으슥한 곳에 혼자 가지 말라는 괴담이 파다했다.

곳곳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실종사건이 일어난단 것이다.

발린의 질문을 받은 일반인, 정보길드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영문을 모르겠어요.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다던 녀석이 다음날까지도 안 오는데, 그 사이 화장실은 물론 어디서도 안 보이게 된 겁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하아.”

“저희들로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입니다. 때문에 황도 치안수비대에서도 골머리를 썩힌다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의 조화! 잠깐 눈만 뗐다 하면 사라지니 조사하려 해도 도저히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으나 발린은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역시 레-호트 녀석. 이 곳에서도 인형을 만들고 있었군.’

마왕군 삼공작 중 한 명인 레-호트. 그의 능력은 보유한 인형의 개체수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그가 영혼을 먹으며 생긴 검은 인형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무인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

생전의 무력에 따라 수준차이도 다르니, 아마 그 중 강력 인형 개체, 특히 본체가 들어간 개체는 그랜드마스터와 싸워도 동수를 점할 것이다.

게다가 유지하는 데 별다른 어둠의 마나도 안 드니 가성비로서는 이만한 게 없었다.

이 실종현상도 레-호트의 짓. 그림자에 어둠을 깃들여 상대를 먹고 인형을 빼돌리는 것이다.

‘역시...’

발린은 안색을 굳혔다.

레-호트가 암약하는 게 확실해진 이상, 하루빨리 안드로포스를 찾고 대대적으로 황도를 조사해야 했다.

녀석이 낌새를 눈치채고 돌아가거나, 무언가 꾸미는 바를 이루기 전에 말이다.

“레벤을 데려와서 움직여야겠군. 소냐와 아르낙스는 조만간 돌려보내야겠어.”

발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둘과 헤어지는 건 아직 내키지 않았으나, 레-호트가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곳에 둘을 두는 것도 불안했다.

실제 과거의 소냐는 레-호트에게 잠식되어 본체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 때의 날카로운 오러블레이드를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정보 길드를 몇 곳 더 둘러보던 발린은 의외의 수확도 얻을 수 있었다.

팔리아스에게 들은 안드로포스의 용모를 얘기하니 그 쪽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것이다.

“거검을 들고 걷는 30대 초반 남성? 인상은 꽤나 강인하고...머리카락은 윤기있는 백발. 확실히...백발이라면 좀 봤을지도.”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어느 정도 목표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안드로포스에 대한 목격담이 많아진 걸 확인한 발린은 기쁨과 동시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늘상 은신을 하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버티기 힘겹다는 뜻.

자칫하다 레-호트의 인형이 되기 전에 빨리 합류시켜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온 발린의 눈 앞엔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

발린이 날카롭게 경고한 뒤로 귀족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 한 명씩 면담을 하고 있었다.

가끔 명망있는 가문이 오면 줄이 한 차례 흔들렸으나,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부대끼는 것보단 몇십 배 나았다.

한데 오늘, 그 열을 무시하고 바로 들어온 손님이 발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귀족들의 줄을 무시하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

그만큼 강대한 권력자는 황도뿐 아니라 전 세계를 둘러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하지만 미안한 듯 고갤 숙이는 아르낙스에게서 들은 손님의 정체는 확실히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 맞았다.

“죄송합니다. 발린 공께서 순서를 엄히 지키라 하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역시 저 분을 막을 수는 없더군요. 게다가 그 내용도 마찬가지고...”

“아니요...이해합니다. 올 때가 됐죠.”

발린은 연신 고갤 숙이는 아르낙스의 뒤로 선 두 인물에 주목했다.

허허로이 웃는 훤칠한 키의 노인과 그 옆에 선 안경의 장년인.

둘 모두 법복 대신 간단한 로브와 흰 신관복을 입었으나 발린이 그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이런 누추한 데 오시게 하여 대단히 황송합니다. 교황성하.”

“허허, 신의 인연에 따라 움직이는데 귀하고 누추한 게 무에 상관있겠소. 발린 공.”

“오랜만입니다.”

교황,요하네스 4세 옆에서 넴로드 대신관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선, 몇 가지 묻고자 하는데 잠시 시간을 내 주시지요. 결승을 앞두고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교황이 미안한 기색을 얼굴에 띄웠다. 한편 발린은 마음 속으로 꺼질 듯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안 교단의 주인이자 주신의 대리인! 그라면 충분히 저 귀족들의 열을 무시할 만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가 찾아온 명분도 뚜렷하다. 발린은 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하는 수 없지.’

그는 조용히 아르낙스를 불러 귀엣말을 건넸다.

‘우선 뒷마당에 가서 소냐는 어디 다른 데 몰래 가 있으라 하고, 레벤에게는 당장 씻고 제대로 차려입으라 해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아르낙스는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만큼 그에 따른 대처가 시급한 시점.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뒤편으로 사라지는 아르낙스를 확인한 발린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어디 가기도 뭣한데, 여기 자리도 많으니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요.”

“...교황성하. 귀족들이...”

“괜찮아요. 발린 공이 그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말씀하셨을 것 같진 않군요.”

말을 마친 요하네스 4세가 발린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의 예측대로 자리 주변엔 이미 각종 위장 마법이 물샐틈없이 쳐져 있었다.

바깥에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이니만큼 발린이 특별히 신경써서 만든 것이다. 목소리는 물론 인기척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발린 공. 레벤 대신관은 어떻게 된 겁니까?”

“...하아.”

발린은 잠깐 망설이다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이들은 레벤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솔직히 말해두는 게 편할 수 있었다.

“우선 레벤 대신관은 이 여관에 묵고 있습니다. 지금 저 방에서 기다리거나, 옷을 갈아입고 있을 거예요.”

“허어...”

“음.”

대답이 끝나자마자 교황과 넴로드 대주교가 탄식을 터뜨리는 게 보였다.

레벤이 나오지 않은 덕에 교황청의 주가가 수직으로 낙하중이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발린이 앞으로 할 말에 비하면 지금의 놀람은 별 거 아니었다.

“두 분께서는 레벤 대신관을 만나러 오셨을 겁니다. 저에게는 준결승전의 이유를 듣고, 레벤 대신관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고.”

“...그렇소. 정확해요.”

요하네스 4세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넴로드 대신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언가 큼지막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하아...”

한편 난감한 건 발린도 마찬가지였다.

레벤의 상태, 그리고 그녀가 가진 감정.

그 모든 것을 털어놓자니 어려움에 앞서 부끄러움이 먼저 찾아왔다.

“우선, 레벤 대신관이 경기에 안 나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발린은 천천히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이야기했다.

실-레논이 말해 준 레벤의 현재 상태.

그 때문에 그녀가 겪은 증상과, 그로 인해 변화된 성격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말이다.

지금 레벤에게 남은 감정을 이야기할 때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남한테 하는 연애 이야기는 설사 상대가 친부모라도 얼굴을 붉힐 일이다.

한데 그걸 얼굴 몇 번 본 남, 그것도 종교인에게 말하는 기분이 얼마나 그렇겠는가!

‘레벤의 탄생배경을 생각하면 사돈이라 봐도 될 사람이니...참 나, 이거 결혼하겠다 뭐다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이렇게 난감하긴 처음이구만.’

오랜만에 느끼는 기시감에 발린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한편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은 참을성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넴로드 대신관이 말문을 열려 했으나, 그 때마다 교황의 손이 그를 막았다.

그 사이 발린은 약간의 내용을 각색한 사연을 모두 말했다.

각색이래봤자 별 거 아니다.

원랜 에이블 공작과의 약속 때문에 안 나간 걸 병으로 포장했고.

자신이 실-레논에게서 들은 얘기를 옛 스승과 다이아몬드 타워에서 얻은 자료로 대체했을 뿐이다.

“허어, 그런 놀라운 일이...”

“...”

교황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고, 넴로드 대신관은 연신 입술을 핥았다.

할 말을 다 했으니 발린으로서도 기다릴밖에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 역시 교황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럼 혹시 지금 저희가 레벤 대신관...아니. 레벤 님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 작품 후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은 다른 날들처럼 아침 6시나, 그 이전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그럼 한숨 주무시고, 마지막 편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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