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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203화 (20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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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뜻밖의 잉여소득

준결승전의 두 번째 라운드가 부전승으로 끝난 후, 그 파장으로 황도는 온통 뒤숭숭했다.

교황청의 탈락이 확정됐다면 더 이상 신관들이 권력을 장악할 걱정이 없어진 셈이다.

게다가 그 출전자인 레벤 대신관마저 자취를 감췄으니 혼란은 더욱 커졌다.

그나마 레벤 대신관이 건재하다면 파장이 한결 덜했을 것이다.

그랜드마스터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면 누가 감히 교황청을 무시하겠는가!

하지만 어제 선발대전에 나타나지 않은 건 다름아닌 레벤 본인이었다.

귀족들이 교황청의 힘에 대해 의문을 가진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고무줄이 당겨졌다 튀어나오듯, 동일한 현상이 황도는 물론 지방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이쿠쿠!! 그만 둬!”

“이거 보게? 우리 프라샨 자작님. 어제까지만 해도 목이 빳빳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더니, 오늘은 아예 거북이가 되셨어? 얘들아. 좀 더 쳐라. 막는 놈은 베어도 괜찮아!”

“예이!!”

중년남자의 명에 그의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검을 빼든다.

시퍼렇게 솟구치는 마나 블레이드 앞에서 칼을 빼들은 프라샨 자작가의 기사들이 움찔댔다.

중년남자를 막아선 기사들의 경지는 거진 익스퍼트 중상급.

높아봤자 익스퍼트 중급이 끝인 자작가의 기사들로서는 달려들어 봤자 개죽음밖에 되지 않았다.

기사들이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중년남자, 로톤 백작은 이를 갈며 아래 깔린 프라샨 자작을 마저 구타했다.

그가 이러는 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의 응보였다.

프라샨 자작가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신관이었던 덕택에 8강전 마지막 날부터 프라샨 자작은 백작급, 심지어 후작급 귀족에게마저 콧대를 세웠던 것이다.

그 권력을 빌미로 수많은 뇌물과 이권을 취했다만, 레벤이 나타나지 않으며 그것도 삼일천하가 되었다.

평소 마음을 착하게 썼던 사람들은 그나마 덜했다.

하지만 순간의 기분에 취해 있던 귀족들은 어김없이 철퇴를 맞았다.

떡이 될 정도로 얻어맞는 건 프라샨 자작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도 전체가 뒤숭숭한 가운데, 교황청의 빈자리엔 자연스레 발린과 에블린이 대두되었다.

현 상황에서 크라탄 자작과 더불어 가능성있는 둘!

그러나 귀족들의 시선은 놀라운 무위를 보여 줬던 발린에게로 쏠렸다.

비록 라이덴이 보여준 신위도 절대 무시할 건 못 되었다.

상급의 소드마스터를 일격에 처리한다던가, 수만 명의 관중을 기세로 제압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역시 전체적인 인상에서 발린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골렘을 다루면서 보인 마법, 거기다 대 펜잔스 전에서 보인 오러블레이드가 결정적이었다.

발린의 행적과 머무는 곳을 찾는 귀족들이 어느새 수백 명이 넘었다.

그들이 합심하자 여관 꿀벌집의 주변엔 순식간에 귀족들의 마차가 가득 찼다.

교황청이야 성기사들과 신전병을 이용하면 된다지만, 빈민가에 있는 일개 여관이 그럴 힘이 있을 리 없었다.

“발린 공은 어디 계시느냐, 어서 들어가 북방영토의 제먼 백작이 왔다 이르라.”

“예이.”

중후한 목소리가 떨어지자 명령을 받은 기사가 득달같이 움직인다.

그의 주인인 제먼 백작은 카딤 연방제국 북방의 사자. 루덴스 공작가의 송곳니라 불리는 강력한 가문이다.

그 주인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수는 없다. 기사의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때를 보는 건 제먼 백작뿐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다른 귀족이 즉시 입을 열었다.

“아니, 제먼 백작보다 이 몸이 먼저다. 너희도 어서 움직여라. 북쪽의 털 날리는 놈들에게 진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명을 받듭니다!”

방금 말을 꺼낸 사람은 남쪽 대초원의 거물인 니라트하크 백작.

세계 20대 거부 안에 드는 그는 북방 귀족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발린과의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장차 가문의 부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

마침 원수같은 북방귀족들도 보이겠다, 그는 토끼를 사냥하는 사자처럼 눈을 빛내며 명했다.

고개를 숙여보인 한 무리의 기사가 화살처럼 달려가 제먼 백작의 기사와 맞부딪혔다.

쿠당! 동시에 사방에서 귀족들이 내리는 명령이 들려왔다.

“본가의 명예를 위해 지지 말아라!”

“1순위는 우리 후작가다! 나는 내 기사가 다른 놈들에게 질 거라...”

“우와아아!!”

각 유력자의 기사들이 저마다 모시는 주인의 명예를 걸고 격돌했다.

검이나 마나 블레이드를 쓰는 건 아니다. 칼부림을 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단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대신 그들이 쓰는 것은 바로 탄탄한 근육! 저마다 온 몸의 힘을 가득 써 서로를 밀어내려 했다.

그렇게 수백 명의 기사들이 엉거붙었다. 그 모습은 장관이라기보단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기사들의 뒤에선 각자 마차에서 대기중인 유력귀족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이들 모두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력자들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이 모조리 안달을 낼 만큼 현재 발린의 주가가 급상승중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 빈민가의 평민들은 천지가 개벽할 사태를 두 눈 크게 뜨고 구경했다.

더럽고 허름한 거리는 평상시 그대로인데, 어째서인지 갑자기 화려한 마차가 수백 대나 찬 것이다.

호호백발인 늙은이에게조차 이런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구경에 사람들은 흥겨워했으나, 조만간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평민들이 다가오는 걸 눈치챈 귀족들이 가병들을 시켜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평소처럼 벌이를 위해 움직이던 평민들은 순식간에 집 안에 갇혔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감히 버러지같은 네놈들이 어딜 나다니려고 그러느냐! 우리 마차에 진흙 한 덩이라도 묻으면 죄를 물어 보상금을 청구할 테니 그리 알아라!”

“아, 아이고. 나으리! 저희는 가진 거라고는 이 집밖에...”

“그럼 조심해서 다니란 말이야!”

쿵쾅! 뚱뚱보 귀족의 부하 기사가 집의 문을 걷어차는 소리였다.

이렇게 된 건 빈민가 주변 가게도 마찬가지, 무작정 고급 만찬을 요구하는 건 기본이요. 심지어 귀족의 권리를 내세워 음식을 공짜로 받아먹기까지 한다.

물론 값을 받고 싶으면 저택으로 가라는 말은 있었지만, 감히 그 말만 믿고 갈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소란은 갈수록 커졌고, 결국 수련에 몰두하던 발린에게까지 그 소식이 들어왔다.

여관 여주인은 그 말을 마친 뒤 연신 죄송하다며 머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귀족들이 한 번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얼굴이니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

“흐음...”

이야기를 들은 발린은 흔쾌히 여주인의 부탁을 승낙했다.

결승전 준비와 그 후를 생각하던 발린이었으나, 듣자하니 더 미룰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해결책은 단 하나, 저들이 힘으로 약자를 핍박한다면. 더 큰 힘으로 제어하면 그만이다.

발린은 왼손엔 지팡이, 오른손엔 검을 든 채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이번에는 전처럼 위엄을 숨기지 않았다. 전생에서부터 쌓아 온 막대한 힘이 순식간에 빈민가 전체를 덮었다.

“오오...!!”

“발린, 발린 공이시다!”

모습을 드러낸 발린, 기사들은 물론 귀족들까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스스스스.

순간 발린의 발 밑 땅이 높이 솟구쳤다. 미리 움직인 골렘이 때맞춰 도착한 것이다.

골렘을 타고 오른 발린은 알 수 없는 위엄을 풍겼다.

겉모습은 분명 소년이건만 무슨 영문인지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없었다.

“발린 공!”

“발린 공! 나 니라트하크 백작이요! 남방의 큰손 니라트하크! 어!?”

우글거리며 몰려든 귀족들, 그 앞에서 발린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쿵!

동시에 일어난 마나의 파동이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러자 벌떼처럼 떠들던 귀족들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더 이상은 못 두고 보겠습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에블린 백작영애의 결정이기도 하니, 여기 모인 귀족들은 제 말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발린은 그 다음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저와 에블린 백작영애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히, 히익!”

“끄으응...”

발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더러운 평민들이 뭔갈 묻힌다는 건 참을 수 없는 모독.

하지만 그걸 밖으로 표출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상황이 된 것이다.

자칫하다간 차세대 권력의 중심인 발린의 눈 밖에 나게 될 상황.

거기서 귀족들이 선택할 길이라고는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다음 날 발린은 여관주인 모자에게서 실컷 솜씨를 부린 특식을 선물받았다.

경고 한 번 했더니 그 날부터 귀족들의 횡포가 싸그리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숙이는 여주인 앞에서 발린은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차피 귀족들의 기를 죽이는 건 언젠가 한 번은 해둬야 할 일.

마침 때가 와서 처리한 것 뿐이었다.

게다가 여기 머무는 동안 먹은 음식들은 굉장히 맛있기도 했다. 이 정도 일이야 서비스인 셈 치면 그만이었다.

이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별수없이 이 곳에 머무르게 된 귀족들. 그들은 하릴없이 여관 앞에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하늘만 볼 수도 없으니 자연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우욱! 역겨운 냄새! 어이, 뭐 그리 옷이 더러운가? 씻긴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나으리. 물이 없어서 그만...”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평민.

그가 하는 답변에 입을 열었던 귀족은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물이 없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게냐! 세상에 넘쳐나는 게 물이거늘!”

“하지만 나으리, 정말로 마실 물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게 아니라 끓여서 마시지 않으면 탈이 나고요.”

“...어처구니가 없군! 도대체 무얼 하기에 그 따위로 돈을 버리는 게냐!”

“그...아침엔 서편 부두에서 해가 질 때까지 화물을 나르고, 밤이 되면 자정 전까지 시장에서 좌판을 펼치고 물건을 팝니다요.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이 밝기 전에 부두로 나가고...이걸 십오 년째 하고 있습니다요.”

말을 마치고 머리를 북북 긁는 평민에게선 거짓말의 기미가 한 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말이 맞다면 그네들은 휴식 없이 하루종일 일해도 먹고사는 게 고작이란 말이다.

역겨운 냄새에 구토할 것 같던 귀족은 토기마저도 잊고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목이 마르면 정령사가 깨끗한 물을 가져오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귀족들에게 황도 빈민가의 실상은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악한 것은 비단 이 귀족만이 아니다. 발린을 만나기 위해 빈민가에 온 귀족들의 상당수가 그 실상을 보고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가난한 평민들의 실상을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개중 몇몇은 평민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했다.

이 또한 발린 덕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그랬다.

한편 발린은 남은 기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단련에 열중했다. 가끔 휴식을 취할 때도 있었으나, 그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레벤이 이렇게 강해졌고, 에이블 공작의 경지도 직접 본 이상 철저히 수련을 해 둬야 했다.

열심히 수련하는 사이 한 가지 기쁜 소식이 들어왔다.

결승전까지 남은 시간은 본래 사흘이어야 했으나, 복잡한 사정이 얽힌 터에 그 기간이 일주일로 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조만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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