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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전
“못 들었나?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우리는 바로 제국으로 돌아간다. 작전은 취소다.”
“하!”
아일란은 눈매에 독기를 품은 채 비웃었다.
“미친 거 아냐?? 기껏 에이블 공작이랑 그 가문을 먹어치워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돌아간다고? 정말 미쳤어?”
항상 하던 존댓말까지 엎을 정도로 지금의 그녀는 당혹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슈바인은 자신의 뜻을 꺾지도, 그녀에게 설명을 해 주지도 않았다.
“이미 결정은 내렸다. 돌아가자마자 남은 권속들을 거느리고 올라가도록 하지. 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이야아아!!”
아일란이 거세게 반발하며 발을 굴렀다.
쿵!
비전투 분야라 해도 엄연한 황족이다. 황금혈의 힘을 담아 구른 발은 경기장의 돌바닥을 푹 패어 놓았다.
“혼자 가. 나는 안 갈 거니까.”
“...”
슈바인은 바로 답하는 대신 묵묵히 아일란을, 그리고 그 뒤의 에이블 공작을 바라보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으나,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마음대로 해라. 네 권속들을 데리고 무얼 하든 신경쓰지 않으마.”
“흥! 멍청한 작자 같으니라고! 나중에 공작가랑 황도의 인간들은 모조리 내 권속이 될걸? 그 때 가서 빌어봤자 소용없을 줄 알아!”
아일란이 몇 번이고 소리쳤으나 슈바인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돌아가기로 확실히 마음을 굳힌 차였다.
홀로 공작가 저택으로 돌아온 슈바인은 자신의 권속들을 소집했다.
굳이 말을 할 필요 없었다. 황금혈의 뱀파이어에게는 제 권속들에게 강렬한 파동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덕분이다.
“부르셨습니까.”
“명령을 기다립니다. 주인이시여.”
저택 곳곳에서 권속들이 튀어나왔다.
숫자는 대략 십여 명. 저택 전체에 퍼진 권속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은 수였다.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데려온 아일란과는 달리 그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선별했기 때문이다.
“돌아간다. 노스트라 제국으로.”
“주인님이시여. 그럼 아일란의 권속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막 움직이려던 권속이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슈바인과 아일란은 한 명처럼 움직여 왔다.
그 기간은 적게 잡아도 수십 년이 넘는지라, 이제는 권속들도 거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한데 방금 슈바인은 그 암묵적인 움직임을 깨뜨리라 말한 것이다.
“아, 그...”
“그래. 우리는 아일란과 별개로 움직인다. 지하의 구울들도 포기해. 챙겨갈 수 없는 건 과감하게 버려라.”
“알겠습니다!!”
의문을 품던 권속 몇이 이내 명을 받들었다.
주인의 의도를 헤아리는 건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다.
재빨리 움직이는 권속들을 눈앞에 둔 슈바인이 양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일란...이미 흐름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 것을...’
권속 늘리기에 치중하는 아일란과 달리, 슈바인은 마왕군의 동향, 그리고 황도의 흐름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레-호트의 검은 시체를 확인한 건 물론, 레벤과 교황청. 심지어는 황실의 행보에까지도 말이다.
그래도 에이블이 있는 한 어떻게든 헤쳐나갈 자신은 있었다. 적의 공격을 막을 무기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본 에이블 공작, 그의 표정과 행동은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손을 떠난 무기는 위험하다. 게다가 지금은 그 무기가 자신들을 겨누고 있다.
슈바인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비록 엄청난 손해를 입은 데다, 앞으로 더 큰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소멸보다는 그것이 나았다. 불로불사를 얻은 것도 그것을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한편 슈바인의 움직임으로 저택이 소란스러워지는 시각, 황도의 지하 하수도 속에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스슥. 스슥.
움직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후드를 온 몸에 뒤집어써 형체를 감췄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진 순간,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체를 드러냈다.
“크흐...”
“푸하.”
밭은숨을 내쉬는 그들의 얼굴은 어딜 봐도 인간이라 볼 수 없었다.
한 명은 늑대의 머리가 튀어나왔고, 다른 한 명은 뱀의 머리에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었다.
온 몸에선 어둠의 기운이 풀풀 풍기는 이형의 전사들.
마족! 그것도 마왕군 소속의 마족들이다.
대장벽 남쪽에 있어야 할 그들이 어째선지 황도의 지하에 있는지는 미스테리다.
하수도를 수 분 정도 걷던 그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보고드립니다. 서편 강가 부두에서 놈을 추적하여 마족 칠십여 명, 인형 세 체로 공격하였으나...”
“알고 있다. 안드로포스가 내 인형을 두 체 더 부쉈더군. 남은 하나는 거둬 뒀다.”
하수도 깊숙한 곳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동시에 나타난 건 칠흑색 덩어리와 같은 수십 명의 형체다.
그들은 머리카락도, 눈도, 피부도 전부 검은색이었다.
어찌나 검었는지, 생물이라기보다는 그림자 형체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바로 이들이 레-호트의 인형. 한때는 용맹하게 정의를 부르짖었던 자들의 말로였다.
“죄송하옵나이다.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놈을 도저히...”
“뭐 됐다. 어차피 이건 단순한 시간끌기에 불과하니. 그것도 이제는 끝낼 때가 다가오고 있고.”
두 마족은 순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주인이시여. 얼마 전 안드로포스를 먼저 처치하고 움직인다 하시지 않으셨나이까? 그 말씀은 거짓이셨습니까?”
“...나는 자-쿨카처럼 부하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비웃음섞인 어조의 대답이 들린 순간 뱀머리 마족이 사지를 땅에 붙이며 읊조렸다.
“잘못했습니다! 레-호트님! 부디 한 번만, 한 번만 자비를! 다시는 묻지 않을 터이니...”
잠시 후 사태를 깨달은 늑대 마족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산 자와 죽은 자는 완벽히 구분된 뒤였다.
쭈와아악! 쫘아악!
“우, 우아악! 우갸아아아악!!!!!”
몸을 둘러싼 그림자에 늑대 마족이 미친듯이 괴성을 질렀다.
마족이라 하더라도 살고자 하는 욕망만큼은 남 못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자비없는 그림자는 그대로 그의 온 몸을 감쌌다.
살아남은 뱀머리 마족은 세 번째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으적으적. 으득! 뚝!
보이지 않는 시야 너머로 살점을 물어뜯고 피를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마다 뱀머리 마족의 공포는 한층 더 배가되었다.
레-호트의 식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일어나라.”
웃음기를 띈 명령에 뱀머리 마족이 고개를 든다.
식사가 끝난 지금, 눈앞엔 검은 형체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자의 변화에 뱀머리 마족은 파들파들 떨었다.
“대가를 받았으니 알려 주마. 안드로포스에게 인형을 보낸 건 단순히 그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흐, 흐으.”
신음하는 뱀머리에게 레-호트는 수십 명의 입을 빌려 동시에 말했다.
“진실로 내가 노리는 것은 바로 교황청이다. 그 곳의 모든 걸 타락시켜 우리의 가장 성가신 방해요소를 모조리 치리라! 놈들은 밤이 올 때 빛에서 떨어질 것이고, 아침이 오기 전에 어둠에 먹히리라.”
“아아...!!”
레-호트의 계획을 들은 뱀머리 마족이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황도 곳곳에 끄나풀을 퍼뜨린 것도, 안드로포스를 친 것도 모두 그 쪽에 신경을 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다름아닌 교황청! 장차 마왕군의 가장 성가신 적이 될 적들이었다.
“하오나 주인님이시여. 그 곳을 치는 덴 힘과 지혜가 둘 다 필요하옵나이다. 주인님께서는 신의 힘을 뚫는 데 어떤 복안을 가지고 계시옵나이까.”
말은 어려우나 요약하면 너는 어떤 방법으로 교황청을 칠 것이냐는 내용이다.
확실히 뱀머리 마족의 질문은 한 번 짚고 넘어갈 만한 것이다.
그동안 마족들이 교황청 성가신 걸 몰라서 안 친 게 아니었다.
교황청의 신성력이 엄청나게 강할 뿐더러, 거기 모인 성기사들도 막강하기에 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지적하는 뱀머리 마족에게 레-호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본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나, 너는 네 동료를 이것의 목숨값으로 팔아넘겼지. 말해주마. 내가 어째서 교황청을 치겠다 말했는지.”
레-호트는 자신이 발견한 교황청의 약점을 조심스레 속삭였다.
‘아! 그거라면!’
말이 끝나자 뱀머리 마족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교황청을 못 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 교황청을 모조리 타락시킨다면, 이는 실-레논의 패배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이미 사전답사는 마쳐 두었다. 행동은 선발대전이 끝난 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는 날이다. 모두가 술과 음식에 취한 사이 어둠으로 놈들의 목을 치리라!”
“그 명령 따르겠나이다!”
하수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응답에 레-호트의 인형들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그 본체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당연히 얻을 수 있었는데, 설마하니 놓칠 줄이야...’
그가 놓친 대상이란 당연히 실-레논이다.
당초 레-호트는 그가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었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추적을 시작했었다.
허나 수색방향이 잘못된 게 화근이었다. 진작 남쪽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해 길을 막아 뒀으나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다.
루덴스 공작가에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실-레논이 몸을 뺀 뒤였다.
눈앞에서 드래곤 인형을 놓친 레-호트의 분노는 기실 이미 한계치까지 다다라 있었다.
‘놈만 먹었다면 자-쿨카와 대적해도 더 이상 밀리지 않았을 텐데, 버러지 같은 자식이 패배하고 도망을 쳐? 누가 목숨 아까워 꼬리숙인 녀석 아니랄까 봐! 젠장! 젠장할!’
그래도 그를 참게 한 것은 교황청의 인간들, 그리고 황도에 모인 수많은 무인들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고품질의 인형이 없다면 그 자리를 많은 수로 채우면 된다.
기대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교황청의 틈새를 살피던 중 발견한 지하, 거기에서 본 것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과 그것만 있으면 그럭저럭 실-레논 녀석을 놓친 대가로 삼을 수 있겠지. 킬킬킬킬’
“저, 레-호트님. 한 가지 고할 말씀이...”
한창 이득을 생각하던 도중 뱀머리 마족이 끼어들었다.
그 순간 기분이 상했다. 본래는 동료의 목숨을 바쳤기에 이번만큼은 용서해 주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일단 이어지는 말을 듣고 다시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았다.
“말해봐.”
“그...자-쿨카님께서 일 크게 벌리지 말고 실-레논님의 보조만 하라 하지 않으셨...으어어끅!!!”
조심스레 고하던 뱀머리 마족의 온 몸을 그림자가 감쌌다.
자-쿨카라는 말을 꺼낸 순간 레-호트는 그를 살려줄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으직! 으저적! 콰득!
영혼이 뜯겨 들어오는 맛이 그림자를 통해 레-호트에게 받아들여졌다.
“으음, 그래. 이 맛이야. 조만간 떼거지로 느낄 맛...”
맛을 보는 사이 그림자가 뱀머리 마족의 몸을 완전히 잠식했다.
그러고 나타난 건 뱀머리 마족의 검은 형체, 이 두 마족이 오늘 완파된 인형 2체의 대용물이었다.
“오직 나만이...나만이 마왕님을 보좌할 자격이 있다. 실-레논도, 자 쿨카도 아니야! 바로 이 탐식자 레-호트만이 가능하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새겨 주리라! 인간들! 자-쿨카! 네놈들 모두에게!!“
으르렁대는 레-호트의 전신에서 그림자같은 어둠의 마나가 일렁거렸다.
마족 삼공작의 분노가 지상을 뒤덮을 날이 머지않았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세 번째, 마지막 편이예요.
이번 편에도 작품 후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다시 한 번 표하는 바입니다.
얘기할 게 몇 가지 있네요. 첫째는 200화...솔직히 저도 열심히 쓰다 보니 어느순간 되어 있어서 당황스럽습니다 ㅎㅎ;
200화 같은 기념할만한 걸 넘기면 축하로 이벤트나 연참이라도 해야 하는데, 플롯 구상이라던가 하는 게 요새 워낙 힘들어져서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드릴 게 연재밖에 없어 부족한 작가는 지금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몸이 허락하고, 플롯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열심히 써 볼 예정이니 응원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는...독자분들의 조기완결, 연중 걱정.
아무래도 조노블 화제의 작품 중 하나인 세컨드 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여러분께 꽤나 걱정을 끼친 모양...이예요.
저도 그거 보면서 느낌이 참...모호하더라고요. 많은 독자가 붙은 작품이 갑작스레 연중하는 걸 보면서. 네.
그래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요. 대현자가 회귀함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연중하기엔 너무 많이 왔어요. 이미 200화도 넘어 버렸는걸.
이제 남은 건 꾸준히 완결까지 속도를 유지하는 것. 그것만큼은 잘 될 거 같네요
지금까지 잘 됐으니 앞으로도 그러겠죠.
재미를 챙기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것도 가능한 한 힘써보도록 합지요. 독자 여러분의 도움도 받아서요.
그럼 202화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완결까지 같이 달려주시는 수고를 해야 하실 독자분들.
삼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며 불초 늘푸르, 내일 연재를 위해 물러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