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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93화 (19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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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맞추기

이야기를 들은 에이블 공작의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왕군이라면 천 년 전의 대전쟁 이후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존재들이다.

대장벽 남쪽의 불모지로 놈들이 쫓겨간 지 천 년. 그동안 마족들은 단 한 번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천 년 동안 빠짐없이 세계의 역사에 존재감을 드리워 왔다.

그렇기에 대장벽이 만들어졌고, 전면적인 세계대전이 몇 번이나 극적인 화해로 끝났다.

당장 실-레논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만 봐도 마족의 임팩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음모를 꾸민 것도, 인명피해가 난 것도 아니다.

단지 선발대전에 나타났고, 레벤에게 빈사상태까지 얻어맞아 도망친 것뿐.

그럼에도 황도는 한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마왕군의 준동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한데 눈앞의 마법사는 자신을 마왕군의 협력자로 소개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게 우선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에이블 공작은 앞서 들었던 정보가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마왕군. 마왕군이라면 뱀파이어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

천 년 전의 전쟁에서는 뱀파이어들도 마왕군에 소속된 마물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마왕군이 아는 정보 중에 뱀파이어들에 대한 게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실론인가, 그 자가 나타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만약 놈들이 같은 편이었다면 다른 출전자를 내세울 리 없겠지.”

“하하.”

가볍게 웃은 발린은 자신의 행보가 어땠는지를 꾸며 말했다.

본래의 클리든은 다크니스에게 먹혔으나, 발린은 의도적으로 그가 살아남아 마왕군과 합류했다고 말했다.

파이오니어 왕국을 관리하던 마족이 삼황자에게 죽고, 새로 온 책임자가 자신들을 황도로 데려갔다고 말이다.

“그렇군. 자네는 인간이니 인간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 덕분에 황도로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가볍게 긍정한 발린이 남은 내용을 마저 이야기했다.

뱀파이어들에게서 정보를 캐내고, 그러다 실론이 패퇴해서 다들 후퇴중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렇군, 자네는 마족의 땅으로 가기 애매해서 여기 남은 건가.”

“그렇습니다.”

에이블 공작은 발린의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뱀파이어들의 정체와 그 배후, 그리고 그들과 맞서는 마왕군의 존재! 하나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들으면서 점점 커진 의문이 하나 있었다. 에이블 공작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럼 네 녀석은 여전히 마왕군이고, 따라서 뱀파이어인 나와는 적일 텐데, 어째서 내게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이냐.”

공작은 황도에 가 직접 황금혈을 하사받은 황족 뱀파이어다.

마침 삼황자도 죽었겠다,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인재를 필요로 한 슈바인의 계책이었다.

덕분에 에이블 공작은 황제의 권속이 되었고, 그렇기에 슈바인과 아일란에게 제어받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허나 뱀파이어라면 당연히 마왕군과 적이 되어야 할 터.

발린이 진정 마왕군의 끄나풀이라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야 공작님께서 속고 계시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이블 공작님. 공작님께선 지금 두 뱀파이어들에게 버림패로 이용당하고 계신 겁니다.”

“내가 속아?”

“그렇습니다. 공작님.”

발린의 말에 에이블 공작은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창을 피하던 발린, 그가 했던 말에 따르면 두 뱀파이어는 일부러 힘을 덜 줬다는 말이 된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저는 두 뱀파이어가 공작님을 제어하기 어렵다 말하는 걸 들었고, 거기에 이번 계획까지 알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계획...? 네 녀석이 미끼가 된 사이 움직여 발린과 레벤을 둘 다 권속으로 만든다는? 그게 어째서...”

에이블 공작은 자신이 어느새 흥분해 있다는 것도 잊고 말했다.

레벤과 싸울 수 있는 기회! 오히려 이 쪽에서 자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던 게 방금까지의 그였다.

하지만 발린의 말을 들은 뒤 그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공작님, 현재 공작님께서는 그랜드마스터가 아니신데, 상대인 레벤 대신관은 완전한 그랜드마스터인 실론을 일대일로 무찌른 절대강자입니다. 서포트가 있다고 해도 무리입니다. 공작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소드마스터와 그랜드마스터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그럼 그 뜻은.”

“아마 에이블 공작님을 일회용으로 버린다. 그 뜻일 겁니다. 저는 이대로면 꼼짝없이 그렇게 흘러갈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고요.”

말을 마친 발린이 물러나는 사이, 에이블 공작은 그의 얼굴표정을 살폈다.

살짝 미소짓는 얼굴은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공작의 날카로운 감각은 금세 발린이 하는 말의 진위여부를 판별해냈다.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니로군. 그렇다면 정말 그들이 내게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당초 슈바인과 아일란은 그랜드마스터가 되지 못한 게 힘의 한계라고 말했다.

아무리 황금혈을 얻었을지라도 그게 그랜드마스터의 벽을 뚫게 해주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두려워한 수작이었고, 이 때문에 자신이 소드마스터에 머물러 있다면?

한 번 생겨난 의문은 무럭무럭 자라만 갔다. 열등감에 휩싸여있던 공작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 놈들...!’

이를 바드득 갈아붙이는 공작의 온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넘실거렸다.

자신은 그들을 믿고 인간이었던 시절의 모든 것을 넘겨주었다.

근데 정작 그 놈들은 자신을 이용하고 버리기 위해 사기를 쳤댄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절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한 놈까지 사지를 찢어 죽이고 말리라!

분노를 태우던 에이블 공작이 눈이 잠시 발린과 마주쳤다.

발린은 어느 정도는 만족하면서도 두려움에 떠는 흔한 인간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뇌리가 격렬하게 회전했다. 지금까지 안 사실들을 종합해 봤을 때 한 가지 의문점이 나타난 것이다.

‘잠깐만, 녀석은 마왕군의 인물이잖아. 분명 마왕군은 뱀파이어들과 적대 관계일 텐데, 그렇다면 놈들이 나와 두 뱀파이어들의 사이를 이간질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지?’

한 번 의문이 드니 순식간에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어지간한 인간이었다면 감정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랜드마스터의 벽을 반쯤 깬 초인인 덕택에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의심! 클리든이란 이 남자에 대한 의심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분명 예전에 들은 정보로는 파이오니어 왕국 마탑의 부탑주라고 했었지.’

발린 테오도르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파이오니어 왕국 전체가 뒤흔들릴 큰일이니 카딤 제국에 흘러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상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한다.

공작이 아는 것은 6클래스를 마스터한 마법사인 클리든이 발린에게 밀려나 추방되었다는 것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등골에 순간 식은땀이 배었다. 하마터면 마왕군 끄나풀에게 속아 계약을 성실히 이행한 뱀파이어들마저 칠 뻔했다.

에이블 공작은 발린 몰래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황금혈과 함께 얻은 고유 능력 중 하나인 웨폰 컨트롤, 이 능력을 통해 그는 자신의 병기가 어디에 있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물론 공작님께서는 절 의심하시겠지요. 그렇지 않으십니까?”

“음?”

막 창을 불러오려던 에이블 공작의 손이 멈칫했다.

발린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속내를 정확히 예측한 탓이다.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제 입으로 마왕군의 끄나풀이라 밝혔고, 마왕군과 뱀파이어가 적대한다는 것도 말씀드렸으니 앞뒤가 안 맞게 느껴질 밖에요.”

“...아예 멍청이는 아니었군.”

자기 논리에 매몰되는 건 겉멋만 든 멍청이라는 걸 증명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런 발린에게 공작은 어디 한 번 해명해 보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였다.

“하지만 공작님, 공작님께서 지금 이용당하시고 계시고 버림패로 쓰인단 건 티끌 하나 없는 진실입니다. 공작님께서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것도 제 진심이고요!”

“무엇을 보고 믿지?”

이미 의심이 돋아난 이상 공작을 설득하는 건 요원했다.

이 상황에서 그의 신뢰를 얻으려면 의심을 깰 확실한 증거나 심증을 내밀어야 했다.

의심보다 더 단단한 심증! 에이블 공작은 발린이 무슨 말을 할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발린은 역시나 공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제 진심을 증명하라면 하겠습니다. 5일 후 레벤 대신관과 공작님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지요. 그 때 제가 손을 써 레벤 대신관을 나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믿어주시겠습니까?”

“...레벤 대신관을?”

일순 에이블 공작은 놀라움에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앞서 들었다시피 레벤의 실력은 이미 그랜드마스터에 올라 있다.

게다가 실론을 이긴 것을 통해 그 중에서도 꽤나 원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분노가 일지만, 그녀의 강함만큼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한데 그런 사람을 경기에 못 나오게 손을 쓰다니, 그런 게 가능하다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양옆으로 흔들렸다.

“예. 레벤 대신관을 나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대회날 그게 사실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때 제 말을 믿어주십시요. 그 다음은 공작님 마음대로입니다. 마왕군을 찾아오건, 자유를 찾건, 혹은 뱀파이어들에게 계속 충성을 바치다 버려지는 것도 하실 수 있겠죠.”

“......”

에이블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레벤에 대한 감정, 그리고 방금 들은 말이 합쳐져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만약 이 자의 말이 틀리다면, 자신은 준결승전 연무장에서 레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건만 막상 상상하니 손이 떨렸다.

동시에 든 다른 생각은 눈앞의 남자, 발린에 대한 것이다.

이 남자는 마왕군이면서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간절히 설득하는 것일까?

그는 조용히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묻지.”

“그러십시요.”

승낙도 받았겠다. 에이블 공작은 빈 술병을 입에 대고 빨아먹은 뒤 말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나를 위하려는 것이지? 그럴 이유가 있나?”

“...질감.”

“뭐?”

다음 순간 들릴듯말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지에 이른 에이블 공작의 감각으로도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공작은 다시 한 번 말해보라며 손짓해야 했다.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공작님에게.”

“내게...? 동질감이라니, 무슨 소리지?”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입니다. 당신과 저는 많이 닮았어요. 강렬한 빛 앞에서 발버둥치나, 결국 어쩔 수 없이 밀려나게 되는. 그런 것에 대한 동질감 때문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순간 에이블 공작의 눈에 힘이 풀렸다.

그가 클리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대략적인 신상명세와 정황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클리든이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눈치채는 덴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군, 나나 네놈이나 그렇게 된 거란 말인가?’

같은 일을 겪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동질감이 공작의 의심을 누그러뜨렸다.

일단 한 번 의심이 허물어지니 그 틈을 타고 다시금 열등감과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그걸 막을 만한 무언가가 없는 이상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의 실행 일시에 대해선 아일란이 추후 사람을 보낸다고 하던가?”

“예. 그 때까지 제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만.”

“알았다. 가 보아라. 네놈의 말이 맞는진 그 때 판단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에이블 공작이 몸을 돌렸다.

이미 그는 어느 정도 발린의 말을 믿기로 결론을 내린 듯했다.

"...슈바인...아일란..."

두 뱀파이어의 이름을 되뇌이던 그의 목소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 가지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했다.

실수란 다름아닌 저택 밖으로 나가는 발린을 끝까지 살피지 않은 것이다.

문 밖으로 걸어나가는 발린의 얼굴엔 득의양양한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아주 신선한 새 미소가 말이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마지막 편 올라왔습니다. 어제보다 한시간 더 일찍 잘 수 있네요. 너무 멋져요.

여하튼간 이번 편까지 따라와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작품후기란에서 뵙게되어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럼 불초 늘푸르,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 편도 내일 0시와 아침 시간대에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팔리아스는 인간 재능충입니다. 네. 재능충이예요...

그리고 실-레논이 손가락으로 찌른 것은 레벤의 몸을 이룬 드래곤의 육신을 자극한 것입니다.

마지막 심장 에테르에 관련해서는, 소생할 때 에테르가 신성력으로 바뀌었다고 답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나 대신 신성력이 가득가득 찬 셈이죠. 덕분에 폴리모프라던가 언령이라던가 메테오라던가 그런 마법도 못 부리게 됐고요.

이상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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