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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79화 (17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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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의 비밀

거기까지 말한 교황은 가볍게 아래를 향해 고갯짓하며 말을 이었다.

“그 후 저는 만일을 대비해 성물들을 지하에 모아 거대한 성법진을 만들었습니다. 당초의 목적은 강력한 대규모 성법의 사용, 혹은 그만큼 강력한 결계를 제작하려 했었지요.”

“으음.”

발린은 짧은 신음성을 흘렸다.

성법진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그 규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제대로만 모았다면 무엇이 됐든 엄청난 힘을 발휘했을 강력한 성법진!

그것이 당초 계획대로 완성됐다면 마왕군은 분명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했을 역사를 바꾼 비밀이 지금 교황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해도 심장이 절로 두근거렸다. 마나는 혈관을 타고 흐르며 그 감정을 더했다.

“성물들을 모으는 건 쉬웠습니다. 교황청은 장대한 역사를 지녔으니까요. 그렇게 마법진을 그리려던 순간, 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광경?”

국경지대의 유적과 성법진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광경이다.

그런 걸 태연하게 말하던 교황이 이번만큼은 몸을 떨고 있었다.

너무 집중했더니 목이 말랐다. 발린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교황의 말을 경청했다.

“늙은 몸이라지만 그 날만큼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사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마법진을 제작하던 도중 넴로드 대신관의 팔이 베여서 상처를 입었을 때의 일이죠.”

“...넴로드 대신관이?”

깜짝 놀란 발린이 옆에 시립해있던 넴로드를 바라보았다.

젊음이 남은 얼굴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40대를 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수행신관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동이라고나 할까요.”

넴로드의 대답을 듣자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수행신관은 속한 자나, 거느리는 자 모두가 서로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화한다.

요하네스 4세가 넴로드와 일을 진행한 것도 그가 수행신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서...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래요. 그 때...”

시작은 성법진을 파던 넴로드가 실수로 제 팔에 조각칼을 박은 것이었다.

재빨리 응급처치를 마친 뒤 신성력으로 회복 마법을 쓴 순간, 드래곤하트가 갑작스레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저절로 성물들의 신성력을 빨아들였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

거기까지 듣던 발린은 아찔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등을 기댔다.

그 행동이 무색하게 교황은 예상하던 대로의 답을 내놓았다.

“뼈와 살이 치솟아오르고,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더군요.”

“...레벤?”

“아니요, 그것이 만들어낸 건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생명체였습니다. 중간계의 최강자이자 신의 반열에 든 종족. 드래곤 말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발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그렇지, 심장만 남은 상태에서 몸을 전부 재생한단 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교황과 넴로드가 비밀로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드래곤까진 좋은데, 그게 레벤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후우...”

발린의 물음에 교황은 잠깐 눈을 감은 채 심호흡했다.

전부 말하기로 했음에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이럴 때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었다.

기껏 기다려 줬더니 죄송합니다. 소리 나오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심한 경우는 아예 거짓말을 섞어 말해버리는데, 그 정보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결심 끝에 사실대로 말해주는 건 고작해야 10분의 1, 아니. 20분의 1이다.

그걸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짐작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레벤은 그 드래곤의 해츨링이거나,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이기라도 한단 겁니까?”

발린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추리했던 바를 말했다.

허나 교황의 대답을 들은 순간 그 생각은 산산이 부숴지고 말았다.

“아니, 그녀는 해츨링이 아니오. 그녀는 드래곤 본인이라오.”

***

교황의 설명은 이러했다.

심장에서부터 되살아난 드래곤이 자신들을 인식하자마자 인간으로 변한 것. 그것이 레벤이라는 말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그녀, 그 아이는 레이안 님께서 직접 내려오셨거나, 아니면 그 분께서 우리를 갸륵히 여기사 화신을 내려주신 것이라고 말이오.”

교황은 그 말을 마친 뒤 몸에 힘을 풀었다. 후련한 기분이라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어지는 말들은 레벤을 어떻게 키웠는지, 그 사이에 일어난 여러 사건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범상찮은 일이 많았으나 발린은 그러려니 하며 들었다.

클라이막스가 지나가니 그 후의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그 아이가 그랜드마스터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소. 약간 빠른 감은 없지않았지만 당연히 가져야 할 힘을 가지게 된 것일 뿐이니까.”

“...레벤이...드래곤?”

발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교황의 표정과 몸짓, 그 어디에서도 방금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로서 할 말은 다 한 셈이오. 더 물어볼 게 있다면 지금 말하시오. 지금만큼은 모든 것을 대답해 줄 터이니.”

“잠깐만요. 잠시...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고개를 젓던 발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스쳐지나갔다.

저들이 얻었다는 드래곤하트는 총 두 개.

첫 번째 드래곤하트가 레벤이 됐고 두 번째 드래곤하트는 지금 교황의 손 안에 있다.

한데 그럼 교황과 넴로드 대신관이 지하에서 했던 실험은 뭐란 말인가?

“그럼 당신들이 지하에서 하던 건...”

“맞소. 우리는 첫 번째 기적을 보고 생각했소,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면, 두 번째 기적이라고 이루지 못할 것도 없다고 말이오.”

말인즉슨, 지하에서 하던 재생 실험은 제 2의 레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해서 실패하고는 있으나, 언젠간 반드시 성공할 걸 확신한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발린은 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교황이 하는 말을 듣다보니 그가 신관이라기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실험! 또 실험! 거기에 깃든 탐구정신은 마법사로서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레이안 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고자 직접 강림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 레벤을 신이라 부르는 것도 그래서이고.”

“...흠.”

레벤이 드래곤이다. 확실히 그 말대로라면 그 엄청난 재능도 전부 설명이 된다.

아니, 오히려 레벤이 인간의 형체를 하여 지금까지 늦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의문이 모두 풀린 건 아니었다.

실-레논이 레벤에게 달려들던 이유, 그리고 레벤이 앓고 있는 증상에 대한 설명.

그것만큼은 교황도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레벤의 탄생을 레이안 신의 강림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신이 강림한 게 맞나 싶으니까. 후...’

만약 그 사실이 맞다면 발린은 전생도 현생도 레이안 신과 툴툴대고 자존심을 세운 셈이다.

신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니,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더 이상 물어볼 건 없소?”

“...실은...아니, 없습니다.”

발린은 교황에게 레벤의 현 상태를 말할려다가 그만두었다.

전생의 레벤이 모든 무력을 잃은 것, 그게 교황청과 무관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아마 레벤의 상세를 말하면 교황청에서는 그 처방을 다시 한 번 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처방의 결과는 전생에서 본대로일 게 분명했다.

레벤은 무력을 잃고 다른 대신관들처럼 성법으로 활약할 것이고, 그 힘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할 것이다.

“...그걸로 만족할 리가 없잖아.”

“음...?”

“무슨?”

발린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눈동자 속으로 전생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지나갔다.

수많은 신관들을 일사불란히 지휘해 성법을 펼치던 레벤.

그 때는 그녀가 왜 그리 자신들을 타박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생을 지내며 그 이유가 얼핏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교황과 넴로드가 시선을 모았으나 발린은 대답 없이 주먹에 힘을 쥐었다.

기껏 그랜드마스터가 되었는데 그 힘을 전부 잃는다?

인류를 위해서도 엄청난 손해일 뿐더러, 레벤 본인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발린은 결국 레벤의 증상에 대한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잠시 눈을 크게 떴던 교황은 이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역시 과연 본 교단의 성물을 가지고 간 사람답습니다. 작년만 해도 당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거늘, 일 년 동안 당신은 세상에 수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지요.”

“...?”

뜬금없는 칭찬에 발린은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흑심을 숨긴 아부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교황의 미소가 한결 더 짙어졌다.

“하기야 그렇기에 레이안 님께서 그 성물을 직접 귀공의 목에 걸어주셨을지도 모르겠소이다. 교황청의 지하에 영원토록 있는 것보단 당신같은 인물에게 쓰이는 게 나을 테니 말예요.”

“...”

발린은 순간 저도 모르게 뒷목을 긁적였다.

이 목걸이는 레벤이 마지막 순간에 건넨 것이다.

정말 그녀가 레이안의 화신이라도 된다면, 어쩌면 정말 레이안이 자신에게 이 아티팩트를 준 것일지도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나도 지쳤나 보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지운 발린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편 교황은 드래곤 하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마쳤다.

“부디 그것이 당신에게 간 이유를 늘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행보로 보아선 제가 말할 것도 없겠지만...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부탁드리오.”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발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교황의 말은 자신의 목걸이에 걸린 사명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걸 잊을 리 없었다.

85년의 생이란 잠깐의 행복만으로 그리 쉽게 잊혀지는 게 아니니 말이다.

“아 참. 발린 공, 일전에 듣기로는 당신이 레벤 님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소만.”

“네?”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던 순간, 교황이 느닷없이 레벤의 이야기를 꺼냈다.

설마 그 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나, 잔뜩 긴장한 발린에게 들려온 건 뜻밖의 부탁이었다.

“부디 그 분을 잘 이끌어주시길 부탁하오. 신의 힘에 인간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다면 당연히 인간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바, 그 분과 가장 가까이 계시는 인간인 공께 많은 게 달렸소이다.”

“...그건...”

발린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은 한 번의 생을 겪고 온 회귀자,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외부인이다.

마왕군을 막는다는 사명이 없었다면 돌아올 이유도,뭣도 없는 것이다.

교황의 말마따나 레벤이 인간에게 영향을 받는다면 적어도 그게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됐다.

한 번의 생을 산 사람과 생을 한 번 더 반복하는 사람.

그것이 같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노력하겠습니다.”

결국 발린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허나 교황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아이를 스승에게 맡기는 부모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발린은 약간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번째 편 곧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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