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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69화 (16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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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

“제가 부딪히면서 느낀 건, 그 사람의 어둠의 마나가 어느 부위에 모여 있는지예요. 발린 공도 아실 거예요. 인간과 마족을 가리지 않고 대개는 자기 심장 주변에 힘을 모은다는 걸.”

“...그렇지.”

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힘 그 자체인 마왕을 제외하고는 모든 마족 대부분이 그랬다.

심장은 혈액을 온 몸으로 보내고 순환시키는 중심 기관.

그렇기에 혈액에 자신의 힘을 실어 보내는 것으로 보다 쉽게 수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레논도 마찬가지. 아니. 그의 종족을 생각해봤을 때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제가 부딪히면서 느낀 건데, 그 사람은 다른 모든 부위가 어둠의 마나로 찼을지언정 심장만큼은 아니었어요. 심장은 엄청난 양의 무언가...마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더 강하지만 어둡지는 않은 무언가로 가득했어요.”

‘에테르로군. 역시나.’

마나보다 더 강하지만 어둡지는 않은 무언가.

실-레논의 종족과 교황청 지하에서 본 것을 합하면 순식간에 결론이 나왔다.

발린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레벤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짐작가는 것 있으세요? 그게 뭔지.”

“아니...마나 수련을 하다가 조금. 여하튼간 계속 말해봐.”

마나 수련을 하다가 에테르를 느낀 건 전생의 일이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은 셈이다. 발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재촉했다.

“여하튼간 계속 부딪히며 느꼈어요. 그 사람의 어둠의 마나가 제어불가능한 수준까지 요동치는 걸요. 신성력을 상대해서 정면으로 부딪히다 보니 근원까지 깨져나가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 상태만 해도 살아날지 아닐지 반반인데, 거기다 심장에 칼까지 꽂혔다면...”

“...”

거기까지 말을 들은 발린은 피식 웃었다.

레벤이 말하는 건 틀림없는 마력 폭주의 증상.

실-레논의 심장에 에테르를 밀어넣으며 느낀 것이기도 했다.

마력 폭주, 무인에게 가장 무서운 재앙이며, 이는 어떤 속성의 힘을 연마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힘을 자신이 제어 못하면 휘몰아친 힘은 그대로 자신을 파괴한다.

간단하지만, 치명적인 사인이다.

발린이 실-레논은 확실히 죽었다고 단정지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 아마도 틀림없겠지. 마력 폭주는...혼자서는 절대 다잡을 수 없으니까.”

발린은 그렇게 말하며 긴장을 풀었다.

마력 폭주를 치유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는데, 현재의 실-레논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상급의 존재가 그 힘을 대신 제어하여 안정기에 접어들게 하는 것. 그것이 마력 폭주의 유일한 치료법인 것이다.

만약 실-레논이 그 상태에 접어들었다면, 이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 즉 마왕이 직접 그의 힘을 다스려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왕은 현재 봉인된 상태, 따라서 현재 실-레논이 생환할 확률은 절대 없었다.

‘게다가 레벤의 말이 맞다면 확률은 0%를 넘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겠지. 안 그래도 어둠의 마나가 폭주할 때 드래곤 하트에까지 칼침을 먹였으니...!’

발린은 자신이 칼을 박을 때의 촉감을 상기했다.

그 단단함과 거대한 힘은 틀림없이 드래곤 하트다.

만약 거길 찔렸다면 이제 실-레논은 어둠의 마나뿐 아니라 자신의 에테르의 폭주도 살펴야 하는 셈.

그쯤되면 마왕이 직접 와도 그를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이를 이미 계산하고 움직인 것이나, 발린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물었다.

“확실히 그렇게 느낀 게 맞아? 혹시나 잘못 생각했을 가능성은?”

“제 힘을 제가 못 느낄 리가요. 발린 공도 자기 마나가 무슨 마법이 되어서 어떻게 맞는진 느끼고 계시잖아요.”

발린은 레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고개를 저으면 오히려 역효과다.

지금은 녀석을 놓친 척 연기해야 하는 시점. 그 대본에 따르면 이 부분은 안심하는 척 해줘야 할 시점이었다.

물론 세상에 완벽이란 없는 만큼 실-레논의 추적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위치 추적마법을 걸며 확인한 실-레논의 상태는 몇 번을 훑어보아도 가능성이 없었다.

‘녀석의 드래곤하트는 꽤나 쓸모가 있을 거야. 놈이 움직이면 즉각 추적해서 최대한 많은 적들을 뽑아내자!’

발린은 그렇게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그걸 나한테 말해주는 이유는 뭐야?”

“그야 발린 공, 아까 그 때부터 내내 그것만 신경쓰고 계셨잖아요? 상대방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이미 죽은 적 때문에 성내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요.”

말을 마친 레벤이 가볍게 웃었다.

마찬가지로 술기운이 올랐는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꿀꺽.

귓가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발린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술기운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레벤에게 다가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깐...’

걸음을 옮기면서도 발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평소처럼 가볍게 튕기는 말을 할 거라 생각했던 레벤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어...발린?”

무어라 말하려던 레벤의 입술 위로 발린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쪽.

다음 순간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 갑작스레 기습당한 레벤의 눈이 보름달처럼 크게 뜨였다.

“!!!”

예고도 없는데다 능숙하지도 않은 첫키스였다.

둘 다 키스 경험 자체가 처음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벤은 밀어내는 대신 천천히 혀를 움직이며 합을 맞춰 주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둘의 입술이 떨어진 건 일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파...”

“하.”

서서히 둘의 입술이 떨어진 순간 참았던 숨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어?!’

순간 발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달달하게 취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저지르고 나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생생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졸지에 한 여자의 첫키스를 뺏어간 희대의 악당(?)이 된 셈이다.

발린은 난감한 마음에 꿀꺽 침을 삼켰다.

레벤의 성격상 마구 엉겨붙어서 그 이상의 대가를 따내면 따냈지, 그걸 가만히 넘길 리 없었다.

‘큰일났다!’

발린이 아무리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곤 하나 첫키스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진 알고 있었다.

전생의 성녀 크리스텔에게 귀에 가시가 돋히도록 들은 덕분이다.

“아.”

마찬가지로 멍하니 있던 레벤이 짧게 신음성을 냈다.

그녀는 침을 닦을 생각도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충격이 꽤나 큰 듯했다.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발린은 그대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

레벤은 대답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개를 숙인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쫄깃해질밖에 없었다.

기척으로 반응을 보려 해도 레벤이 발린보다 고수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젠장, 이거 어떻게 되는 거람?’

크리스텔에게서 배운 대로라면 지금은 레벤이 용서해줄 때까지 머리를 굽히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아닌 본능은 고개를 들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우선 반응을 살펴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지! 어차피 일은 벌어진 거, 그만큼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지 않겠어?’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발린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여관 쪽에서 나오는 불빛 덕분에 최소한의 윤곽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살며시 시선을 올리던 발린에게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어?’

당연히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했던 추측이 완벽히 빗나간 것이다.

불빛이 적어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뭐지?’

“너무해요.”

날카로운 한마디에 고개를 들던 발린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미안하다.”

“제 첫키스였는데...”

레벤은 말을 마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드러나는 표정을 통해 진의를 파악하려던 발린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교황청 대신관의 첫키스를 가져가시다니, 이걸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나...”

말을 마친 레벤의 한숨에 발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괜히 우울한 척 한답시고 술을 들이킨 게 이렇게 돌아갈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우물쭈물하던 그에게 레벤이 한 마디를 건넸다.

“미안하면 책임져요.”

“책임?”

발린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물었다.

역시나 그 말이 나올 줄 알았기에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무엇을 요구하려나? 새로운 아티팩트? 루비 타워의 이권? 교황청 방문?’

가장 유력한 건 역시 안드로포스와의 대련 주선이다.

그랜드마스터가 되었으니 세상 어떤 사람을 데려와도 연습상대로는 부족할 터.

허나 안드로포스라면 레벤과 합을 맞추거나, 혹은 어느 정도 비슷한 싸움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짐작한 발린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책임...그래, 마침 네 경지가 오르기도 했으니 거기에 맞는 대련 상대를 찾아주는 건 어때?”

“대련 상대요? 글쎄요...”

레벤은 잠깐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만...역시 안 내켜요. 다른 걸로 할래요.”

“다른 거?”

불안한 느낌이 들었으나 발린은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여기서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들키면 그 자체로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레벤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그녀는 쿡쿡 웃은 뒤 말했다.

“같이 자 줘요. 오늘.”

“...어?”

순간 잘못 들었나 생각한 발린이 마나를 모아 귀를 통과시켰다.

허나 레벤은 희망이 무색하게도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이번에는 보다 가까이 와 있었기에 착각마저도 할 수 없었다.

“원래는 각성 기념으로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오늘 하룻밤 같이 자 줘요. 둘이서.”

말을 마친 레벤이 활짝 웃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달빛이 내리쬔 덕분에 그녀의 표정이 제대로 보였다.

***

삐걱.

가벼운 나무문 소리에 식탁에 둘러앉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와! 금방 끝났다냐!”

“그 정도나 실력이 차이나요?”

문 안으로 들어오는 건 발린과 레벤이었다.

대련하러 나간 지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별달리 땀을 낸 것 같지도 않은 모습에 일행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대련 결과는 비밀이예요. 알고 싶으면 절 이기셔야 할걸요?”

레벤은 모두의 물음에 가벼운 농담으로 응대하며 빈 자리를 차지했다.

허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과는 뻔한 것 같았다.

에블린은 옆자리에 앉은 발린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여 주었다.

“기운내요. 상대는 천 년 동안 두 번 나온 초인이라고요.”

“...그래. 기운내야지.”

발린은 마치 해탈한 고승 같은 표정으로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기껏 가라앉은 술기운이 다시 올라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이 자다니, 그게 말이 되나!’

몇 번을 생각해도 그 때마다 온 몸에 닭살이 돋는 요구조건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는 걸 다른 의미로 오해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제각기 위로를 건넸다.

“괜찮습니다. 발린 공도 충분히 강합니다. 다만 그 상대가 너무 강했을 뿐입니다.”

이건 아르낙스의 위로.

“허허,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경쟁자로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건 미나르바 백작의 위로다.

발린이 허허 웃는 사이 에블린은 애매한 표정으로 같이 술잔을 들이켰다.

경사스러운 일이 여러 개 겹친 만큼 모두가 경계심을 풀 수 있었다.

선발대전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호사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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