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현자가 회귀함-168화 (16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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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

8강전은 끝났고, 최후의 4인이 남았다.

카딤 제국의 황제를 가리는 대전의 막바지!

경기장을 나서는 관중들은 하나같이 그 얘기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내용은 조금 달랐다.

평소였다면 각각의 출전자 모두가 고르게 관심을 끌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은 넷 중 한 명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뭐?! 교황청 대신관이 새로운 그랜드마스터가 되었다고!!”

“예! 나으리! 제가 두 눈으로 보았고, 주변 자리에 있던 기사님들도 똑똑히 봤습니다요!”

업무에 밀려 다른 곳에 있던 귀족들, 먼저 밖으로 도망친 부유층은 하인들의 증언을 통해 정보를 확보했다.

소식을 들은 그들의 얼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귀족연합이나 황제의 편에 섰던 자들은 졸도하거나 심하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까지 보였다.

당장 교황청의 세가 무섭도록 강해지게 생겼다. 그 편과 대립각을 세우던 이들에게는 이만한 비보가 없었다.

반면 교황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그 인맥을 과시하기 바빴다.

자그마한 신전의 수석신관 하나라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서든 vip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하물며 교황청과 동맹관계를 맺거나, 그 아래에서 활동하는 귀족들의 세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으핫핫핫!! 이럴 줄 알았지!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캬! 후작님의 혜안은 역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요!”

황제가 교황을 무시 못한다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교황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정도였다.

당연히 교황청을 따르는 귀족들은 아주 오랫동안 주류에서 소외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허나 그것도 이제 끝!

그랜드마스터가 출현함으로서 단숨에 권력구도가 뒤집힌 황도는 너나없이 소란스러웠다.

다량의 헌금을 바치며 위안을 얻던 청년은 가문의 골칫덩이에서 차기 가주로.

성기사 아들을 둔 아버지는 길가 청소부에서 한순간에 고급 사교 클럽의 회원으로 변했다.

이런 일이 황도 전역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일이 있었다.

바로 교황청을 향한 수많은 고급 마차의 행렬!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이나 거부, 혹은 각지에서 이름을 떨치는 검사나 마법사들이었다.

모두가 지금이라도 교황청에 줄을 대보려 하는 것이다.

덕분에 현재 교황청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레벤 대신관과 만나고 싶소! 헌금이라면 얼마든지 낼 테니 어서!!”

“만나지 않아도 좋아요! 개인 훈련이라도 좋으니 멀찍이서나마 뵈었으면 합니다!”

레벤에게 줄을 대려는 귀족, 레벤의 경지를 선망하는 무인들이 무리를 이룬다.

평소 해가 지면 문을 닫는 교황청이나, 오늘만큼은 인파로 가득해 밤까지 불빛이 환했다.

허나 그렇게까지 몰린 귀족들이 한 가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찾고 있는 레벤은 현재 교황청에 없었다.

여관 꿀벌집은 오늘도 사람들로 붐볐다.

허나 다른 점은 레벤이 여급이 아니라 손님으로서 있다는 점.

오늘의 승자이자 mvp인 만큼 이 시간마저도 일을 시킬 순 없었다.

“건배!”

객실 한 곳을 통째 빌린 한 방, 온갖 호화 요리들이 가득한 가운데 장내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질렀다.

모인 사람들은 발린과 레벤 일행 모두였다.

방 안에서 학문을 연구하던 미나르바 백작까지 같이 참가했다.

4강전의 안착! 거기다 레벤이 그랜드마스터가 되었으니 경사가 두 배로 온 셈이다.

하지만 발린의 얼굴은 그럼에도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아닌 실-레논을 놓친 것.

자신이 그에게 위치 추적기를 달아놓았다는 건 혼자만이 알아야 하는 비밀이다.

추후 실-레논을 통해 놈들의 본거지와 세력을 송두리째 들어내는 때까지!

그 전에는 누구에게도 안심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없었다.

“끙...”

맨정신으론 도무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발린은 술을 들이키며 의도적으로 전생의 과거를 생각했다.

마족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왕국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 학살당하는 민간인들!

끝의 끝까지 뒤에서 칼을 꽂는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배신자들까지 말이다.

하나하나 곱씹다 보니 그럭저럭 기쁨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발린은 짐짓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오늘의 전과를 정리했다.

자세히 생각할 것도 없다. 대놓고 봐도 대승! 완벽한 대승이었다.

우선은 레벤이 그랜드마스터가 된 게 크다.

어둠의 마나의 극상성인 게 신성력인 만큼 레벤은 안드로포스 이상의 조커 카드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안드로포스와 우유를 한껏 탄 연한 커피라면 레벤은 커피 열매를 농축한 무언가라 해야 할 정도.

신성력을 가진 그랜드마스터라는 건 그만큼 든든한 존재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소소한 이득도 있지.’

발린은 눈앞의 스테이크를 힘주어 썰며 생각을 이었다.

실론의 정체가 실-레논이라는 걸 알게 된 덕에 또다른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발린에게는 정신공격 자체가 원천봉쇄되었다는 사실! 설령 그 수단이 절대의 힘을 자랑하는 용언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용언은 전생의 세계에서도 상대하기 굉장히 껄끄러웠던 공격이다.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발린은 한결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목걸이가 준 고유 능력 덕분인가...’

에픽 급 스킬인 고결한 영혼!

모든 정신 계열의 공격에 면역을 가지게 하는 강력한 고유 능력이다.

허나 그것이 실제 능력을 발휘한 것은 단 두 번.

뱀파이어 셀리아의 현혹을 튕겨내고, 삼황자의 정신공격을 마찬가지로 무효화시킨 게 전부다.

에픽 급 치고는 그다지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감이 있었으나, 오늘부로 그 의심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럼 첫날에 녀석이 나에게 접근해 왔던 것은 내게 용언 마법을 걸기 위해서였군...’

발린은 목전에 사신의 낫이 스쳐지나간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 그 능력이 얼마나 유용한 것이었는지 절실히 체감되었다.

‘아마 정신계 공격은 실-레논이 아니라 마왕도 굉장히 능한 걸로 기억하는데, 이 능력만 있다면 그것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건가.’

만약 그게 가능한 사실이라면 발린에게는 이만한 호조가 따로 없었다.

마왕의 힘은 물리적인 면에서도 최강급이나, 정신 공격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어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먹히지 않는다면 발린은 시작부터 상대방의 공격력 절반을 까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이득은 실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주변의 소리나 시야도 파악할 수 있었다면 훨씬 나았겠으나, 그 정도의 섬세함을 바라다간 적에게 들킬 수도 있었다.

‘늘상 보다 더 나은 걸 추구하는 게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너무 심했지.’

발린은 자신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본성을 느끼고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감정이 가라앉으니 표정이 풀어졌다. 발린은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얼굴로 식사를 했다.

허나 여전히 굳어진 얼굴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근육에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레벤이 잠시 혀를 굴리더니, 이내 옆자리에 있던 에블린에게 잠깐 손짓을 해 보였다.

“저기, 잠깐만.”

“네?”

레벤이 에블린과 이야기하는 사이 발린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지금까지가 전과를 곱씹는다면, 이제는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우선 안드로포스와 팔리아스를 찾아야 하고, 교황청의 드래곤하트는 조만간 가지고 와야 해. 거기에 두기에는 활용도가 너무 크다.’

몇 가지 할 일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남은 선발대전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눈앞의 접시가 비어 있었다.

온갖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식과 술을 비운 것이다.

“하아.”

“발린 공.”

이미 술 한 병을 비운 발린은 다음 차례의 병뚜껑을 열다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왔으나 그래도 이성이 아예 흐리멍텅해진 건 아니었다.

덕분에 발린은 그럭저럭 혀 꼬이지 않은 말투로 대답할 수 있었다.

“레벤? 무슨 일이야?”

“그랜드마스터의 움직임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아요? 오늘은 기념으로 특별히 한 판 상대해드릴게요.”

“...흐응?”

레벤의 제안에 발린은 눈을 가볍게 떴다.

평소였다면 차후로 미뤘겠으나 오늘은 술기운이 그 생각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가자.”

“그럼 잠깐 실례할게요!”

먼저 움직이는 발린의 등 뒤, 레벤은 모두에게 살짝 눈짓을 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몰래 말을 해 둔 것이다.

자리에서 나간 발린과 레벤은 나란히 뒷마당에 가 섰다.

여관 안은 사람으로 붐볐으나 뒷마당은 사람 하나 없이 한적했다.

꿀벌집의 여주인의 배려 덕분이다. 발린이 출전자인 걸 알자마자 그녀는 선뜻 뒷마당을 비밀 공간으로 내어 주었다.

소냐와 매일 저녁마다 대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럼 시작하자. 마나는 안 쓰고 몸으로만 승부하는 거 맞지?”

“자요.”

“...?”

자세를 잡던 발린이 순간 앞에 내밀어진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벤이 내민 건 목검 대신 의자, 설마 의자를 무기로 쓰라는 건 아닐 테니 그 의미는 분명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발린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의자를 같이 내놓으며 말했다.

“일단 앉아봐요. 오늘 일에 대해서 간단히라도 얘길 나눠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발린은 술기운을 몰아내려 했으나 레벤이 살며시 그 손을 붙들었다.

“그 상태로도 괜찮으니까. 일단은.”

“...”

레벤이 필요없다고 말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서부터 그래왔고, 현생에서도 그녀의 지혜는 여전히 빛났다.

발린은 천천히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

“우선 지금 발린 공이 계속 분노하고 있는 거, 실론을 놓쳐서 그런 거죠? 어둠의 마나를 쓰는 그 사람.”

“...”

정곡을 찔린 발린의 양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레벤이 한 말은 어느 정도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물론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굉장히 다르지만, 거기까지만 접근한 것도 충분히 칭찬해줄 만한 성과다.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군. 설마 이걸 노리고 그렇게 말한 건가...’

정상적인 정신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의 발린은 레벤에게 말싸움에서도, 대련에서도 밀릴밖에 없었다.

이걸 의도하고 술기운을 해독하지 말라 한 것일 터.

여기서 진의를 말했다가는 운신의 자유가 큰 폭으로 제한당할지도 몰랐다.

‘정신을...차리자! 이대로는 남김없이 불어버릴지도 몰라!’

발린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맞아. 녀석을 놓쳐서 그래.”

“그 사람이 어둠의 마나를 보여서 그렇죠?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어차피 그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예상외의 말에 발린은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실-레논이 죽을 만큼의 상처를 입은 것은 자신이 확인했다.

하지만 레벤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건 확실히 예상외였다.

발린은 짐짓 모르는 척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녀석은 분명 텔레포트로...”

“아까 봤어요. 심장에 칼을 찔러넣으셨죠?”

“...그랬지.”

발린은 우선 레벤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일단은 들어주는 게 맞았다.

싱긋 미소지은 레벤이 말을 이었다.

“역시 그게 맞다면 확실하네요. 그 사람, 아니. 마족...잘해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걸요?”

“무슨 말이야? 그게?”

그녀의 말대로라면 역시 실-레논은 완전히 죽은 셈이다.

칼을 찔러넣으며 느꼈던 대로 말이다.

허나 발린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적어도 실-레논을 죽이고, 카딤 제국 내 침투한 마왕군의 세력을 파악할 때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눈을 빛내며 물어오는 발린에게 레벤은 자신이 직접 부딪히면서 느낀 바를 설명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마지막 연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떡밥을 완전히 풀어 놓고, 이게 추후 전개에 어떻게 작용할지까지 한 번에 올리고 싶으나...그러기에는 제 손이 느릿느릿하군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내일은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17/01/03일 내용 보강 수정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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