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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가 회귀함-164화 (16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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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

“우선 격려 감사하고요, 황제가 된다면 여러분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

앞서 한 말이 있기에 관객들은 마찬가지로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이대로라면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말하던 에블린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건 관객 여러분들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예요.”

“...예?”

당황한 사회자의 목소리에 발린은 몸을 돌렸다.

혹여 문제되는 말이 나오면 빠르게 제지하려는 생각, 그러나 볼에 닿는 무언가를 느낀 순간 발린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오...오오...”

가볍게 볼 뽀뽀를 마친 에블린은 활짝 웃으며 발린과 팔짱을 껴 보였다.

아까의 질문이란 발린과 에블린 간의 관계. 거기에 대한 더없이 명쾌한 답변이었다.

“...쩝.”

순식간에 연인 관계로 여겨지게 된 발린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 앞이니만큼 우선은 그녀의 말에 맞춰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 대범함에 놀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관으로 돌아온 발린은 곧장 에블린을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겁니까? 볼에 키스한 것 말입니다.”

“그거요? 보상이예요. 발린 님께서 아까 제 이미지를 개선시켜드린 것에 대한 보상.”

에블린의 대답에 발린은 웃음부터 나오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빚을 갚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탓이다.

허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에블린이 적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자신의 후보자이고 장차 긴밀한 협력자가 될 관계다.

배신할 염려가 없는 협력자라면 똑똑한 게 나았다. 그래야 보다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닐 텐데요.”

발린은 가볍게 입을 열며 몸을 벽에 기댔다.

보상을 준다면 다른 때,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굳이 사람들로 가득한 콜로세움 한가운데서 볼 뽀뽀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뿐이예요.”

“그렇습니까?”

에블린은 대답과 함께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발린이라면 그녀가 어째서 그랬는지 알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말이다.

실제로 발린은 완벽히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일만 끝내고 가지 못하게 두고두고 붙잡아 두겠다 이거로군.’

지금껏 발린이 보여준 각종 능력과 수완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도저히 놓아주기 싫을 정도로 말이다.

허나 발린은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었다.

괘씸할 만한 일이었으나, 그보다는 그만큼 제국민들을 돌봐주려는 에블린의 마음이 와 닿았다.

‘방금 전 콜로세움에서 보인 행동...백성들을 위해서는 자기 순결마저도 바칠 수 있다는 얘기겠지. 후후.’

저 정도의 능력과 열의라면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왕군도, 노스트라 제국도 없는 평화의 시대에서 말이다.

어느새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볍게 기지개를 켠 발린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십시요. 혹시 잘못해서 삐뚤어지지 마시고. 제가 항상 같이 가 드릴 테니까요.”

“...네? 바, 방금 뭐라고!! 아니, 그! 알겠어요! 격려 고마워요!”

막 문을 열던 발린이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만 해도 노회한 정치가 같던 에블린이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아픕니까?”

“아뇨! 그...잠깐 더워서! 덥고 긴장도 풀려서 그래요. 별 거 아니예요. 좀만 있다가 내려갈게요!”

수만 관중과 발린의 직접 추궁 앞에서도 멀쩡하던 에블린이 긴장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발린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린 뒤 문을 닫았다.

어쩌면 연무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긴장하고 있다 지금 막 풀렸을지도 모르는 일.

만약 그렇다면 저 정도의 반응이야 약과였다.

‘그다지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속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발린이 내려간 방 안.

혼자 남아 있던 에블린은 저도 모르게 쿵쾅거리는 가슴팍을 힘주어 움켜잡았다.

“...어째서?”

황도에 올 때부터 이 느낌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혀왔다.

발린이 일 외의 다른 말을 꺼낼 때마다 심장이 마구 뛰며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다.

신관이나 치료사들도 특별히 이상은 없다고만 말하니 그녀로서는 참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어째서 그 사람만 보면...”

에블린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원래는 발린의 능력을 이용해 제국민을 풍요롭게 하려 했는데, 이러다간 발린에게 자신이 휘둘릴 판이다.

그럴 순 없었다. 에블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양옆으로 내저었다.

***

다음날 남은 경기는 실론과 레벤의 경기.

이 경기가 끝난 후엔 이틀간 별다른 일정 없이 축제를 즐기게 된다.

본래 그 이틀은 원래 펜잔스와 유르셀, 라이덴과 마르코 백작의 경기가 벌어져야 하는 날이었다.

허나 두 경기 모두 한쪽이 기권하는 바람에 졸지에 이틀 간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틀 동안 수련만 하실 거예요?”

“어.”

발린은 일부러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지 않으면 레벤이 더욱 붙어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같이 대련하자느니, 어디가 경치가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나 꺼내겠지.’

미안한 일이긴 하나, 지금 발린은 그런 데 어울려줄 시간이 없었다.

교황청 지하의 드래곤하트는 물론, 안드로포스에 대한 것도 파헤쳐둬야 하니 말이다.

우선 발린은 선발대전의 남은 기간 동안 드래곤하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안드로포스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은 맞으나, 아무 단서 없이 황도를 뒤지는 건 시간을 버리겠다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최소한 팔리아스를 한 번 더 보거나, 안드로포스 본인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수색을 재개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선발대전이 끝나면 시간은 얼마든지 생길 테니 말이다.

게다가 발린은 현재 레벤과 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교황청의 대신관.

같이 다니다가는 은연중 자신이 교황청에 들락거렸다는 게 몸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눈치빠른 레벤이니만큼 애시당초 그럴 빌미를 안 주는 게 나았다.

“역시 성실하시네요. 가끔은 부러워요.”

“뭐가?”

“그 성실함이요. 자신의 몸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끝도 없이 앞으로 갈 수 있는 용기. 저는 그런 게 없어서 부러워요.”

말을 마친 레벤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전생의 그녀를 아는 발린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네가 성실함이 없어? 전생 사람들이 알면 웃다가 지쳐 죽을지도 모르겠다.’

교황청이 무너진 뒤의 레벤은 보는 사람이 억지로 그녀를 재울 정도로 열심히 움직였다.

일반인 이하의 체력에도 불구하고 팔리아스마저도 넌더리를 칠 일정을 전부 소화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잠깐 한 것도 아니다. 그 때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물경 30년을 넘게 그래왔으니 지금 하는 말이 우습게 들릴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자신을 채찍질하진 마세요. 지금 발린 공은 마치 무언가에 얽매인 것 같아요.”

“얽매여? 내가?”

발린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아직도 자신을 얽매고 있는 옛날의 규율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허나 레벤은 부정하는 대신 표정을 굳혔다. 그녀가 그러는 건 전투시를 제외하고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네. 야망이나 욕심은 아닌 것 같지만...힘을 추구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힘을 추구한다라...”

말끝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발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니 마냥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왕군을 막으러 동분서주하는 것, 힘을 위해 검술을 배우고. 드래곤 하트를 위해 교황청에 잠입하는 것.

이들 모두 정상적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위니 말이다.

‘여기서 그게 뭐가 나쁘다고 하면 안 되겠지. 그게 왜 나쁜지는 전생의 나부터 알고 있으니까.’

이미 스스로도 틀리단 걸 설득해봤자 논파당할 뿐이다.

결국 발린은 하던 말을 잠시 멈춘 뒤 피식 웃었다.

‘조만간 밝힐 때가 다가오겠지. 마왕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내 힘이 그들이 감히 어쩔 수 없을만큼 커졌을 때.’

아마 그 때는 이번 선발대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드래곤 하트와 드래곤의 마법,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했다.

“...알았다. 내일과 모레 낮은 다같이 놀 만한 곳이라도 찾아보도록 하지.”

“가능하면 환상 마법도요.”

레벤은 침착하게 말하며 발린과 자신의 얼굴 가리켰다.

이미 선발대전을 통해 얼굴이 팔린만큼 그걸 감추는 건 필수.

그 점을 깨달은 발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후우, 좋아요. 그럼 멋들어지게 이기고 와야겠는걸요?”

“자신있나 본데.”

발린은 눈을 고쳐 뜨며 중얼거렸다.

실론은 그 정확한 수준을 짐작할 수 없는 상대다.

그 동안 여러 경기를 살펴봤으나 그 때마다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실력의 커트라인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무언가 있는 건 틀림없는데...어쩌면 내 아래가 아닐지도.’

발린은 다시 한 번 자신만만해하는 레벤의 옆모습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실론은 발린 본인도 실력을 짐작할 수 없는 상대.

자신이 그럴진대 레벤이라고 뭔가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허나 레벤의 눈 속에 패배에 대한 의구심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눈앞에 온 경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만이 가득할 뿐.

“레벤.”

“네?”

경기장으로 가던 발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가 레벤에게 먼저 말하는 건 대개 용건이 있을 때의 일.

그렇게 생각하고 별다른 기대 않던 레벤에게 발린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겨라. 이번 라운드.”

“...”

레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받아들인 것도, 깜짝 놀란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의식 자체가 반응할 수 없게 된 모습이었다.

“맞아요, 꼭 이기세요.”

“나도 응원하겠다냐! 착한 대신관님이니 결승전까지 가면...발린이랑 붙는 거다냐? 그건 누굴 응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냐! 어쨌든 이번 경기는 이기라냐!”

같이 걸음을 옮기던 소냐와 에블린도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넸다.

그 목소리에 레벤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까지 응원받으니 레이안 님께서도 잘 들어주시겠죠. 결승전 대비나 하세요. 아니, 준결승전이 될 수도 있으니 그것부터 생각하셔도 되고요.”

아침의 응원은 그것으로 끝났다.

수 시간 뒤, 아무도 없던 경기장은 순식간에 사람으로 가득 들어찼다.

인기로는 남은 선수 중 1위를 차지하는 레벤이니만큼 대부분의 응원은 그녀에게 몰려 있었다.

“힘내! 대신관!”

“발차기 한 방 제대로 먹여 줘!”

왁자지껄한 소리 사이로 출전자석에 앉은 발린은 조용히 오늘의 결투 시뮬레이션을 그려 보았다.

실론은 언제나 상대의 주력 분야와 똑같은 스탠스를 취한다.

그것이 준결승이라고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럼 결국 누가 더 헛점을 잡느냐인데, 이번만큼은 실론도 어려울 것 같군.’

레벤의 권각술을 떠올린 발린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검이나 마법과는 달리, 권각술은 기술과 노하우의 비중이 상상 이상으로 치솟는다.

그리고 그가 아는 레벤은 그런 권각술을 소드마스터 최상급까지 연마한 능력자다.

따라하려고 해도 이번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발린은 그렇게 예상하며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평소였다면 왁자지껄해야 할 레벤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지금쯤 출전자 대기실에서 몸을 풀고 있을 터.

순간 발린은 꿀꺽 침을 삼켰다.

큰 경기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은 잠시 정리를 마친 뒤에 올리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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